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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Rush Hour) 이언 게이틀리 지음

경기도에서만 매일 1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의 먼 여정을 떠난다고 한다. 지하철에서 혹은 광역버스에서 좌석을 확보하지 못한 채 서서 가야 하는, 1시간이 넘는 통근시간은 무척 고달픈 일이지만 멈출 수는 없다. 승객으로 꽉 들어찬 좁은 공간에 서의 끈적거리는 여름철 통근은 더욱 힘든 일이지만 이것 또한 감수해야 할 하나의 상황 일 뿐이다. 연구자들이 통행 패턴에 대한 연구를 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은 통근통행이 다. 통행의 목적에는 통근뿐만 아니라 쇼핑, 업무, 여가통행 등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통 근통행은 그 반복성으로 인해 패턴을 예측하기가 상대적으로 쉽고, 시민의 삶에 큰 영향 을 미쳐 정책적으로 주목할 만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나친 장거리 출퇴근은 분명히 육체적으로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장과 집이 한 장소에 있는 ‘제로 출퇴근 시간’ 또한 그렇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2001년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거주하는 직장인 1300명을 조사한 결과, 이상적 통근시간 평균은 16분이며, 30분가량의 통근시간을 이상적으로 본 다는 사람도 8.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의 통근자들이 출퇴근 시간대의 극 심한 교통정체에 대해서 불평하고 심지어는 분노한다. 교통학자와 경제학자는 출퇴근 시 간대의 교통정체가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을 어마어마한 규모의 돈으로 환산하여 그 폐해 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통근을 너무나 당 연한 일상생활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 심지어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왜 통근이 등장하게 되었는지부터 설명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일터와 쉼터를 분리하는 이유는 개인적 측면에서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도심지에서 직장을 갖고 높은 소득을 유지하면서도 쾌적한 환경에서 거 주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자면 통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한 통근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1세대 통근자는 비싼 철도요금을 부담할 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저소득층에게 통근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런던 도심부 의 악취, 혼탁한 공기와 같은 비위생적 환경을 피해 교외를 주거지로 선택하면서 통근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현시대의 직장인들도 모두 나름의 이유로 통근을 선택하고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이 그렇듯이.

통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교통수단의 발전이다. 화물이나 실어나르던 기차를 객차로 전환하면서 안전시설의 부족으로 기차운행 중 승객이 떨어지기도 했다는 이야기, 영국에 서 기차를 타면 사람들은 대화하기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선호하면서 철도가 문자이용능 력을 급증시켰다는 가설도 설득력 있어 보인다. 1863년에 개통된 영국 최초이자 전 세계 최초의 지하노선인 6km 구간의 메트로폴리탄 철도가 통근자를 실어 나르기 시작할 때는 사망자를 땅에 매장하는 것과 결부시켜 지하로 다니는 것에 대해 부정적 연상을 하였다 고 한다. 더 나아가 지하철도가 지옥문을 통과할 수도 있다는 설교자도 있었다고 하니 재 미 있기도 하다. 새로운 교통수단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미국에서의 초기 통근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통근은 도심의 과밀하고 비위생

471호 2021 January

<그림 1> 출근시간대 런던 지하철 내부 모습

연구자의 서가 • 32

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건강한 환경을 추구할 수 있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도시에서 의 높은 과세를 피하려는 방편으로써, 그리고 단독주택을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 주거 지를 도심부에서 외곽으로 옮겼다. 통근을 의미하는 ‘Commute’가 여러 묶음의 철도 티 켓을 할인된 가격으로 돈과 교환하는 의미에서 기원했다는 설명도 이 책은 덧붙인다. 교 외 지역에서 통근하는 사람이 지적이고 진보적이라는 부동산 광고의 등장처럼 통근이 교 외개발을 가속화 시켰다고 하니, 통근과 도시개발은 상생의 관계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제 조금 더 가까운 과거로 가보자. 철도의 시대를 지나 자동차의 시대이다. 1등칸 철 도객실의 편의에 ‘독립성’이라는 부가적인 가치를 부여한 자동차의 등장은 통근의 편리성 을 더욱 높여주었다. 여기에 더해 자동차 에어컨과 상업용 자동차 라디오의 등장은 통근 을 쾌적하고 편안한 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자동차 통근을 염두에 둔 도시개발, 차고와 주택의 결합, 교외 통근자들의 경제력을 감안한 대형 백화점의 교외화 등 통근이 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아인슈타인이 베른(Bern)에서 특허국 사무원으로 근무하면서 통근하던 시절 시청 건 물의 시계탑을 바라보면서 시간의 항상성에 대해 고민을 했던 것처럼, 통근은 어떤 사람 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독서와 음악감상의 시간을 제공하고 이성과 데 이트하는 기회도 만들어준다고 한다. 그렇지만, 통신기술의 발달로 굳이 사무실에 출근 하지 않아도 되는 원격근무(혹은 가상근무)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통근이 주는 ‘혜 택’을 누릴 기회가 많이 줄어들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니 2020년 코로나 시대에 강제적 (혹은 반강제적) 재택근무가 확산 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통근이 생겼다고 한다. 이른바, ‘Fake Commute(가짜 통근)’이다.

이 새로운 유형의 통근은 침실에서 컴퓨터가 있는 서재로 옮겨가는 사이 15분간의 사색 의 시간을 갖거나 간단한 운동을 하는 방식으로 집과 일을 분리해내는 과정이다. 재택근 무로 육체적으로 피곤한 통근시간은 사라졌어도 집과 직장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통근의 심리적 편익은 지켜보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해야만 하는 출퇴근의 의미와 흥미로운 역사적 에피소드가 가 득한 서적이다. 도시 혹은 교통을 공부하고 있다면 더더욱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출 퇴근의 역사를 통해 도시의 발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편하고 즐 겁게.

연구자의 서가 33회 예고

이윤상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다음 호 필자로 나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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