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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봄의 마을’

방승환 「닮은 도시 다른 공간」 저자 (archur@naver.com) 2020 urBan ODySSEy•13

471호 2021 January

마을의 중심, 시장과 광장

한여름 태양 빛은 광장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아내와 아이는 벌써 청소년문화센터로 들어가 버렸고, 나는 광장 한가운데 서서 생각했다.

‘날씨도 더운데 그냥 갈까….’

광장의 모습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신문기사에 실린 도판을 통해 본 광장은 마 을 주민들의 사랑방이었다. 어떤 기사에는 서천군이 설치한 워터풀(waterpool)에서 동 네 어린이들이 신나게 노는 사진도 있었다. 물론, 여름과 겨울을 빼고 그나마 외부활동이 가능한 계절 중 비 내리고 황사 있는 날을 제외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광장의 활 용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지방 소도시에 있는 광장이라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습이 일상적인 상황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으로 북적대는 광장만큼 보기 좋은 것은 없기에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광장은 ‘서천 봄의 마을’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조성됐다. ‘봄의 마을’은 서천시장이 이 전하고 남은 빈 땅에 조성된 일종의 ‘사회복지시설 콤플렉스’다. 청소년문화센터, 여성문 화센터, 종합교육센터, 어린이 급식관리지원센터 외에도 도서관, 노인정, 직거래장터, 새 벽시장, 생협, 생계형 임대상가 등이 배치돼 있다. 그래서 설계자는 이곳을 ‘문화장터’라 고 설명했다. 서천시장을 폐지하고 서천특화시장을 개장한 시기는 2004년이다. 서천특 화시장은 원래 자리에서 남서쪽으로 350m 정도 떨어진 곳에 조성됐다. 얼핏 보면 이전 했다고 볼 수 없을 만큼 가깝지만, 옛 시장 주변 주민들 입장에서는 원도심에서 나름 신 시가지로 이전한 셈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재래시장만큼 번화한 장소는 없다.

서천 ‘봄의 마을’ 프로젝트의 시작

서천 봄의 마을 프로젝트는 2006년 사단법인 문화도시연구소가 기본계획 학술용역을 착 수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에는 국토해양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추진하는 ‘살고 싶은 도시만들기 2007년 시범도시’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에 ‘봄의 도시 서천만들 기 마스터플랜 및 봄의 마을 시설 실시설계’가 진행됐다.

조성과정에서 수립된 계획을 보면 일단 문제 인식이 좋았다. 계획가는 “예비조사 과정 에서, 옛 시장 문제가 시장 이전만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원도심 상업환경의 불량과 외 곽 주민들의 도심 진입에 대한 어려움, 그리고 그에 따른 주민들의 인근 도시 이탈이라고 하는, 매우 복합적인 상황의 결과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후 적지(後適地)뿐만 아니라 후적지 정비를 통해 서천 읍내 공간환경 및 공간문화 전반의 재

사진제공: 서천군청.

구성을 위한 연구 필요성”을 제기했다. 봄의 마을은 사회복지시설을 물리적으로 한군데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비드건축 홈페이지).

원도심 쇠퇴를 대응하는 시행착오

‘봄의 마을’ 광장의 평면은 반듯하지 않다. 굳이 형태를 설명하자면 광장 서쪽을 지나가는 군청로에서 남동쪽으로 긴 깔때기 모양이다. 광장이 이런 모양인 이유는 자연발생적인 기 존의 필지 형태를 따랐기 때문이다. 계획수립 당시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주민 협의체인

‘봄의 도시 서천읍 주민자치위원회’는 광장 조성 방안으로 블록 전체를 정비하는 ‘교환정 비방안’을 선택했다. 교환정비방안은 토지보상 없이 대토(代土) 교환으로 사업지와 도시 계획도로를 개설하는 방식이다.

2012년 광장과 주변 건물까지 완공되면서 사업은 일단락됐다. ‘봄의 마을’은 그해 대한 민국 공공건축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공공건축사업의 패러다임 으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공공 및 지역사회에서의 잠재적 역할”을 높이 평가 했다. 또한 “사업 진행과정에서 주민, 전문가, 공무원, 시민단체의 협력이 가장 돋보이는 사업으로, 향후 지역주민을 긴밀하게 단결시키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구심점 역할이 가능 한 공간이라 사료된다”라고 봤다(아우름 홈페이지). 준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봄의 마을’

을 주목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규모와 상관없이 지방도시에서 일어나는 원도심 공동 화(空洞化)에 대한 도시재생 차원의 접근이 기존과 달랐고 그 과정이 주민 주도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성장 시대에 집객 효과가 큰 시설을 이전하여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방안은 보편적이었 고, 그 이면에 시설이 빠져나간 원도심 쇠퇴는 주목할 사항이 아니었다. 원도심 입장에서 도 그 정도의 공백은 메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번듯한 신시가지를 만들고 싶은 집단들의 욕구는 그대로인데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집 객 효과가 큰 시설을 이전시켜 신시가지를 조성하는 방안은 ‘밑돌 빼서 윗돌 괴기’가 됐다.

신시가지는 계획대로 채울 수 없게 됐고 원도심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울 수 없게 됐다.

서천군의 인구도 1970년 14만 6269명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9년 5만 4205명이 됐다(서천군청 홈페이지). 서천시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상가를 신축하고, 민간 매각 후 주상복합 아파트 분양을 통한 인구유입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내 자식만큼은 명문대를 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라는 생각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봄의 마을’처럼 그 자리를 광 장으로 비우고 그 주변에 원도심 주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을 배치하는 계획안은 분명 다른 접근이었다.

2020 urBan ODySSEy•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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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렇게 원도심을 재생하는 방향에 대해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2018 년, 충청남도는 서천군청 이전부지가 포함된 ‘군사지구 도시개발사업’ 시행을 결정했다 (구역면적 16만 8282㎡). 위치는 기존 시가지 동쪽의, 이제는 폐역이 된 서천역에서 원도 심과 연결된다. 서천 읍내는 서천읍성이 있는 산을 가운데 두고 그 일대에 분포돼 있다.

현재 서천군청은 서천읍성으로 인해 2층 이상 개발이 불가능하다. 신청사 건립은 서천군 의 숙원사업이었는데, 기존 부지개발에 제약이 있다는 얘기는 기존 부지매각대금으로 청 사 신축비를 충당하는 일반적인 사업방식을 취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2017 년 기존 청사를 리모델링하는 방안이 검토됐 었다. 현재 서천군이 가지고 있는 기존 청사 부지의 활용방안은 서천 읍사무소와 각급 사 회단체 사무실의 입주다.

기존 청사 부지매각비를 기대할 수 없다 면 신청사 주변에 매각할 수 있는 택지를 함 께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사업비와 청사 신 축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실제 군사지구 토 지이용계획을 보면 신청사 건립부지 주변으 로 공동주택용지와 단독주택용지가 함께 조 성된다. 일반적인 패턴이라면 공동주택용지

<그림 1> 봄의 마을 전경

사진제공: 서천군청.

<그림 2> 서천군청 신축 조감도

사진제공: 서천군청.

가 가장 빨리 개발될 것이다. 그리고 새로 지 어지는 아파트 단지 입주자의 상당수는 원도 심 거주자들이 될 듯하다. 물론, 외부 유입을 기대할 수는 있으나 아파트 신축이 그런 역할 을 할 수 있었다면 서천군을 비롯한 지방중소 도시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지는 않았 을 것이다. 멋들어진 신청사와 그 뒤로 펼쳐 진 논이 그려진 신청사 조감도를 보며, ‘친환 경 도 · 농복합도시’라는 이미지보다는 현실과 너무 먼 이상을 보는 듯하다.

마을의 광장이 되기 위한 노력

‘봄의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어찌 됐든 가운데 있는 광장이다. 광장은 공간을 둘 러싼 경계(edge)가 역할을 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광장을 둘러싼 건물의 용도와 자 세가 중요한데, 그렇지 않으면 광장은 넓기만 한 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봄의 마을’ 광 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의 용도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사회복지시설은 운영시간이 끝나 면 문을 닫고 휴일에는 대부분 휴관이다. 건물이 쉬면 광장도 한적해진다. 한쪽이 대화를 멈추면 다른 한쪽도 멈추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판매시설에도 영업시간은 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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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봄의 마을 광장 모습

사진제공: 서천군청.

<그림 4> 광장과 건물 간 시각적, 물리적 투과성을 높이려는 시도

471호 2021 January

만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시간은 의무이지만 판매시설의 영업시간은 생계다. 의무가 생계 보다 적극적일 수는 없다. ‘봄의 마을’ 조성 주체가 공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 는 측면이지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설계자는 건물과 광장의 접점을 최대한 늘리려고 했다. 비록 사회복지시설이 지만 광장에 면한 건물의 입면을 유리로 처리해 시각적 투과성(permeability)을 높였고, 광장에서 2층과 3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계단이나 테라스(terrace) 등을 설치해 물리적인 접근성도 가능한 한 높였다. 1층의 건축면적을 상층부보다 좁게 해서 크고 작은 외부공간 을 만들고 다목적 공용공간을 광장에 접한 부분에 배치하는 시도도 했다. 그중 압권은 군 청로에서 가장 먼, 광장 가장 안쪽에 있는 청소년문화센터다.

기울어진 상자, 청소년문화센터

기울어진 상자, 청소년문화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