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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출산율의 변화와 사회경제적 변화

출산율 변화의 중요한 연구 주제 중의 하나는 출산율과 사회경제적 조 건의 변화와의 관계이다. 특히 경제발전과 출산율 변화의 관계는 많은 관 심을 끌어온 연구 주제 중의 하나이다. 경제발전과 출산율 하락이 같이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었는데, 1990년 중반 이후 북미와 유럽에 서는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선, 경제발전이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 다. 인구변천 이론에 따르면, 사망력 하락은 출산율 하락의 전제조건인데 (Coale, 1973; Dyson, 2010; Notestein, 1945), 경제발전은 사망력 하락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경제발전과 출산율 하락의 시 작 시점은 긴밀하게 연결된다(Kirk 1996). 경제학적 이론 역시 경제발전 에 따라 출산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경 제활동 참가가 출산에 따른 직접적 비용과 기회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 이다(Becker, 1960; Schultz, 1973). 경제발전에 따라 자녀 양육 비용 이 증가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가 확대되는데, 이는 출산의 직접적 비 용과 기회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따라 출산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이념적(cultural-ideational) 접 근 역시 비슷한 예상을 제시한다. 이 접근 방식에서는 출산 통제 이념의 확산이 출산율 하락의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데(Cleland and Wilson, 1987),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은 출산율의 하락을 가속화하 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Lesthaeghe, 1995; van de Kaa, 1987). 물 론 문화/이념적 접근은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발전과 출산율 변화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제시하지 않지만, 경제발전과 개인 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이 같은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이론 또한 경제발전에 따라 출산율이 하락한다는 예상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경험적인 연구들은 경제발전과 출산율 간에 단선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2-2]에 따르면 인간개발지수 (Human Development Index, HDI)와 합계출산율 간의 관계는 1975 년과 2005년 사이에 근본적으로 변화했다(Myrskylä et al., 2009). 즉, 1975년의 경우에는 합계출산율과 HDI 간에 분명한 부정적인 상관관계

가 존재했던 반면에, 2005년에는 둘 사이에 U자형 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이 올라가는 초기에는 합계출산 율이 하락하지만, 사회경제적 발전 정도가 어느 수준(HDI 기준 0.8 이상) 에 도달하면 이 관계가 역전된다는 것이다. 출산의 비용과 효용에 초점을 맞추는 경제학적 이론이나 문화/이념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접근 모두 이러한 패턴을 설명하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발전이 출산의 직접적 비용과 기회비용을 줄이거나 개 인주의적 가치관을 억제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발전과 출산율의 관계 역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론적·개념적 설명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설명 방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림 2-2〕 합계출산율과 인간개발지수 간의 횡단적 관계(1975년과 2005년)

출처: Myrskylä et al.(2009). p.741.

비슷한 경향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와 출산율 간의 관계에서도 나타 나고 있다. 즉, 1970년대까지는 둘 사이에 부정적인 상관관계가 나타났 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그 관계가 역전되어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이 높은 국가들에서 오히려 출산율이 높게 관찰되고 있다(Brewster and Rindfuss, 2000; Billari and Kohler, 2004). 효용과 비용 혹은 가치관 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제학적 혹은 문화/이념적 이론 틀로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개인 수준의 자료를 활용한 연구들은 자료와 국가에 따라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경제 발전 수준이 높은 20개 국가의 비교 연구(Hisgeman and Butts, 2009) 나 미국의 사례를 분석한 연구(Budig, 2003) 모두 개인 수준에서는 여성 의 고용이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와는 대 조적으로, 동유럽 국가에서는 고용이 출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통 계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연구 결과 또한 최근 들어 보고되고 있다(Robert and Bukodi, 2005; Kreyenfeld, 2010). 폴란드의 경우 여성의 고용이 출산의 전제조건이 되고 있다는 결과 또한 제시되었다(Matysiak, 2009).

김현식의 최근 연구 또한 한국의 경우 고용이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 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으며(Kim, 2014), 일본의 경우에도 여성의 고용 과 출산 사이에 특정한 인과관계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결과가 보고되었 다(Lee and Lee, 2014). 요약하면, 1990년대 이후 집합적인 수준에서 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을수록 합계출산율이 높은 경향이 관찰 되는 반면, 개인 수준에서는 고용과 출산의 관계가 지역/국가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북유럽, 서유럽, 북미의 경우에는 부정적인 관계가 유지 되는 반면, 동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관찰되지 않 는다.

흥미로운 것은 고용과 출산의 관계가 유의미하지 않은 국가들이 대표

적인 저출산 국가들이며, 이들 국가의 성평등주의 발전 정도가 북유럽, 서유럽, 북미보다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성평등주 의의 발전 정도가 출산율 및 출산과 고용의 관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 연구들을 성평등주의와 연결해서 재해석하면 다 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성평등주의가 발달한 국가들은 전반적인 출산 율 수준이 높으며, 고용이 출산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유의미하다. 반 면, 동아시아 등 성평등주의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국가들은 출산 율 수준이 낮으며 고용이 출산에 미치는 효과가 무의미하다. 즉, 일하는 여성과 일하지 않는 여성의 차이가 이들 국가들에서 보다 크게 나타난다 고 할 수 있다. 이는 성평등주의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이 국가별로 차 이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 연구는 이와 같은 측면에 주목하여 성평등주의 와 출산율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