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상태 평형이론은 확산 모형(diffusion model)에 기반하여 성평등 주의의 확산과 출산율의 변화를 설명하고자 한다. 규범의 변화를 새로운 규범이 사회구성원들에게 확산되는 과정에 주목하여 설명한다는 점에서 는 이 이론은 규범의 변화와 개인의 선호의 변화를 연결하여 설명하는 특 징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다중상태 평형이론을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작업 은 성역할과 관련된 개인의 선호를 규정하는 작업을 요청한다. 이를 고려 할 때, 생활양식 선호(lifestyle preference)를 여성의 성역할 태도, 직업 등을 설명하는 중심 변수로 사용하는 하킴의 선호이론(Hakim, 2000)은 다중상태 평형이론을 적용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 다. 하킴에 따르면 피임 혁명, 남녀 간 기회 균등 혁명, 화이트 칼라 및 파 트타임 직업의 확산,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확산 등이 진행됨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으 며, 이에 따라 여성의 생활양식 선호가 가족 구성 및 출산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Hakim, 2000). 하킴은 현대사회의 여성들은 일 -중심적 여성, 가정-중심적 여성, 적응적 여성 등 세 가지 다른 형태의 생 활양식 선호가 존재하며, 이러한 선호에 따라 교육 지속, 성역할 태도, 출 산, 직업 선택 등이 다른 형태로 나타남을 보여주고 있다.
다중상태 평형이론과 선호이론은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중 상태 평형이론의 경우 성평등주의의 확산에 따라 출산율이 어떻게 변화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성평등주의의 확산은 선호 집단 (preference group)의 상대적 비중의 변화와 연결된다. 성평등주의적 태도가 확산된다는 것은 결국 일-중심적 여성의 비중이 증가하고 가정-중심적 여성의 비중이 감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킴의 선호 집단
구분을 활용하여 성평등주의의 확산 정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단, 두 개념적 틀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선호의 변 화 가능성 여부이다. 다중상태 평형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규범의 확산이 기존의 지배적인 규범을 대체할 수 있는데, 이는 생활양식 선호가 변화할 수 있음을 가정한다. 반면, 하킴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선호의 안정성을 가정한다. 즉, 하킴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중심적 여성과 가정-중심적 여성은 각각 20% 정도를 차지하고 적응적 여성은 60%를 차지한다고 가 정하는데, 이는 여성의 선호는 상당 부분 고정된 것이며 변화 가능성이 낮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의 선호의 형성에는 다양한 구조 적, 규범적 요인들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McRae, 2003; Tomlinson, 2006), 이는 생애 과정을 통해서 선호가 변화할 수 있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선호 집단의 분포가 다를 수 있음을 함의한다.
선호이론의 또 다른 약점은 선호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이다.
생활양식 선호가 개인의 고유한 기질의 한 측면이라면, 이러한 가정은 유 지될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의 행동이 선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 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Crompton and Harris, 1998). 즉, 개인의 노 동시장 참가 경험, 가족 형성 경험, 출산 경험 등이 생활양식 선호의 형성 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역인과성 (reverse causality)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생활양식 선호가 출산 및 경제활동 참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우회하기 위해서 이 연구는 생활양식 선호 자체가 아 니라 선호실현(preference realization)에 주목하고자 한다. 생활양식 선호에 대한 측정은 개인의 성향뿐만 아니라 생애 과정의 경험을 반영하 기 때문에 이를 표본조사 자료를 통해서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밖 에 없다. 그렇지만, 선호실현은 이보다 측정이 용이하다. 예를 들어, 표본
조사를 통해서 일-중심적 여성으로 구분된 여성은 몇 가지 척도에서 가정 보다 직업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여성이다. 이 여성은 일-중심적인 성향을 갖고 있을 수도 있고, 본래 성향은 가정-중심적이지만 여러 가지 환경의 영향에 의해서 경제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성향이 바뀌거나 자신의 성향을 잘못 인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표본조사 자료를 통해서 이들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여성의 선 호실현 정도는 현재 혹은 생애 과정을 통한 경제활동 경험을 통해서 비교 적 용이하게 측정할 수 있다. 현재 직업을 갖고 있는 일-중심적인 여성은 자신의 선호를 실현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반대로 전업주부인 일 -중심적인 여성은 자신의 선호실현에 실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생 활양식 선호와 경제활동 참가 형태를 교차시킴으로써 선호실현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표 3-1>은 이와 같은 유형화를 보여준다(김영 미, 계봉오, 2015). 주대각선에 위치하는 유형은 생활양식 선호와 경제활 동 참가가 일치하는 경우이며, 반대의 경우는 둘 간에 괴리가 있는 경우 이다. 이러한 유형 구분을 활용하여 생활양식 선호실현과 출산율 간의 관 계를 검토함으로써 선호이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표 3-1〉 생활양식 선호실현 유형
생활양식 선호 경제활동 참가 여부
경제활동 참가 경제활동 비참가
일-중심적 선호실현 선호비실현
가정-중심적 선호비실현 선호실현
또한, 선호실현을 활용하는 것은 다중상태 평형이론을 검증에도 매우 유용하다. 우선, 선호실현의 상대적 비중은 성평등주의의 확산을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경험적인 지표로 활용될 수 있다. 김영미, 계봉오(2015)
는 <표 3-1>의 유형과 2012 ISSP 자료를 활용하여 국가 간 여성의 선호 실현 정도 차이를 비교했는데, 스웨덴, 미국 등 북유럽 및 북미 국가들은 선호실현 정도가 높고 한국, 스페인, 체코 등 동아시아,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의 선호실현 정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생활양식 선호의 실현 정도가 성평등주의의 확산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김영미, 계봉오(2015)는 국가 수준에서 측정한 선호실현도와 합계 출산율 상관관계 경제활동 참가율 등 다른 변수를 통제한 이후에도 긍정 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다중상태 평형이론에서 제시 하는 성평등주의의 확산과 출산율 간의 관계를 경험적으로 보여주는 예 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연구에서는 보다 엄밀한 미시-거시 연계를 위한 다 수준 분석을 활용하여 이와 같은 접근을 확장하여 다중상태 평형이론과 선호이론을 결합한 모형이 한국의 출산율 변화와 국가 간 출산율의 차이 를 설명하는 데 어느 정도 유용한지를 확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