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지역성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지역방송의 관점에서 지역성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학 분야에서 지역성 개념은 신문보다는 방송 분야에서 많이 논의되 고 다루어져 왔다. 그동안 지역방송과 관련하여 지역성을 다룬 연구들은 지역방송이 지역성을 구현한 방식에 관한 연구(강승묵, 2007; 양선희, 2013; 윤석민⋅김희진⋅윤상길⋅문태준, 2004; 조성호⋅송민정, 2000; 주정민⋅박복길, 2007; 최영재, 2007), 지역성 개념의 변화에 관한 연구(강명현, 2013; 강명현⋅홍석 민, 2005; 김송희⋅유종원, 2012; 이근용, 2012; 임영호, 2002; 조항제, 2006; 한선⋅이오현, 2012), 지역성 구현을 위한 제도 환경 및 지원에 관한 연구(김응숙, 2002; 이진로, 2004: 문종대⋅이강형, 2005; 김병선, 2008)들이 있어 왔다. 지역성의 개념 정의나 강조하는 측면은 조금씩 다르지만, 지역성을 지역 미디어가 구현해야 할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점은 모두 같다.
그러나 지역방송의 지역성 개념은 아직 학자들 간의 일치된 정의가 도출되지 않고 있다. 지역성이 오래 동안 커뮤니케이션 정책의 핵심 원칙으로 자리잡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제척인 의미와 목적이 규 정되지 않은 채 일관성 없이 모호하고 불확실하게 개념이 적용되어 왔다(Napoli, 2001; Cowling, 2005).
아마도 그 이유는 지역방송의 지역성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이나 방송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지역성을 공간적 개념으로 보느냐 아니면 사회적 개 념으로 보느냐에 따라 정의가 달라질 수도 있고, 또 시청자의 관점에서 보느냐 방송인의 관점에서 보느 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그 결과 지역성 개념은 지역 방송사와 지역 방송인의 상황인식에 따라 서 다양한 형태로 폭넓게 정의되고 있다.
방송에서 초기의 지역성 개념은 전파가 도달하는 범위 내에 있는 지역사회의 독특한 요구와 이해
를 반영한다는 것으로 규정했다(Napoli, 2001). 즉, 초기의 지역성은 방송 전파의 도달범위를 행정구역으 로 나누는 지리적 개념에서 출발했다(김미애, 2014).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위성방송이 도입되면서 그 동안 지역 지상파 방송사들이 갖고 있던 배타적 방송권역의 의미가 퇴색되기 시작했다. 즉, 미디어 기술 의 발전으로 통신망과 무선망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 지리적 지역성에 기반 한 방송권역이라는 말이 무색해졌으며, 지역성 가치도 과거에 비해서 첨차 평가 절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Bollier, 2005).
이처럼 방송 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리적 지역성 개념이 퇴색해지기 시작하자 지역성과 관련한 연 구들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들이 제기되어 오고 있다. 시대와 사회적 변화 환경에 맞춰 새로운 지역성 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Stavitsky, 1994). 즉, 지역방송의 지역성 연구는 지리적 지 역성에서 탈피하고, 지역민들의 사회적 관계 망 속에서 지역사회와 협력 및 유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임영호(2002)는 공간 이론을 통해 본 한국 방송학의 정체성 문제라는 연구에서 방송의 지역성을 언급하면서 지역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인 관 계에 기반 한 사회적 공간(social space)으로서 지역성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지리적, 기술적, 규범적인 지역성 개념 대신에 ‘공유된 문화’나 ‘사회적 연대감’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지역성 개념으로 바 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이후 지역언론의 지역성 연구에서 지리적 공간 개념을 탈피하고 사회 문화적 지역성 개념이 정립될 수 있는 이론적 주춧돌 역할을 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한선·이 오현, 2012).
조항제(2006)도 지역방송이 지역의 관점과 시각을 갖고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며, 지역민들의 참여 를 적극 독려하는 것이 바로 지역성 구현을 실현하는 길이라며 사회적 지역성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 다. 주정민과 배윤정(2009)도 사회적 관계와 지역 공동체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구성주의적 관점의 지역 성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로빈슨(Robinson, 2012)도 로컬리즘은 지역기관들과 지 역언론 간 밀접한 협력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연구자의 관점이나 연구의 목적에 따라서 지역 성의 개념과 적용범위는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선행연구에서 공통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역이 더 이상 닫힌 공간이 아니라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 발전해 가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성이 평면적인 개념이 아니라 입체적 개념이며,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되는 개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지역성이 지리적 공간 개념을 탈피해 사회 문화적 개념으로 바뀔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 다도 물리적인 지역을 초월할 수 있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등장 때문이다. 즉, 인터넷이나 위성TV,
DMB, SNS 등이 등장하고 확산되면서 시공간의 원격화를 초래하고(Giddens, 1990), 그 결과 장소, 공간, 문화가 하나의 공동체였던 근대적 지역성이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조항제, 2006). 따라서 이제 지역 언론에서 다루어야 하는 지역성은 공간의 크기에 따라 세분화될 수 있는 다양한 지역성들의 교집합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지리적 지역성이나 사회문화적 지역성은 여전히 지역의 내부에만 머물러 있다는 한계를 갖 는다. 이처럼 지역성이 지역의 내부 관계에만 머물러 있게 되면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지 못하고, 지역을 폐쇄적이고 닫힌 공간으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게 될 우려가 있다. 최근에는 신 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역 내부의 요소들보다는 지역 외부와 세계에서 지역성 조건을 찾 을 필요가 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과 세계가 직접 교류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한선·이오현, 2012). 즉,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지역 언론들도 신 지역주의의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아가 지역언론은 지역의 세계화 전략인 글로컬리즘 전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컬리즘은 지역 간의 공통된 이해와 관심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세계적 보편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임종수·김영수, 2013). 종합하면, 이제 지역 언론의 지역성은 지리적 공간적 지역성은 물론, 사회 문화적 지역성과 작은 규모의 마을 단위에서 온라인 뉴스 또는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하이퍼로컬, 개인과 지역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신지역주의, 글로벌 지역성으로 대표되는 글로컬리즘에 대해서 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표 1> 방송 매체별 구역과 채널의 지역성
구분 방송구역 채널
지상파 방송 지역성 대부분 프로그램: 전국성
일부분 프로그램: 지역성
케이블 TV 지역성 다수 일반채널: 전국성
소수 지역채널: 지역성
위성방송 전국성(국제성) 전국성(국제성)
자료: “국경을 초월한 방송시대 방송권역과 지역성,” 김대호, 2001, 『한국언론학회 2001년 심포지엄 발제문』, 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