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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족상전(同族相戰)에 대한 철저한 반성

Ⅳ . 현대사 기술 분석과 그 문제점

3. 동족상전(同族相戰)에 대한 철저한 반성

환웅이 지상에 내려온 이유는 바로 홍익인간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였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널리 이롭게 한다’라는 말과 ‘사람’이라는 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한 다.”는 뜻이다.74)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 서 살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기 위한 이익집단 간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위에서 살펴본 국학의 관점에 따라 민족사를 서술한다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것 으로 본다. 한국사 교교과서 관련 논란은 이성호, 위의 논문, 참조.

72) 규원사화를 중심으로 한 현대 보성운동은 신운용, 규원사화의 연구성과와 과제」, 󰡔국학의 성과와 방향󰡕(제30회 사단법인 국학원 정기학술회의), 사단 법인 국학원, 2014 참조.

73) 식민사학의 뿌리는 특히 상고사의 기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현행 교과서 는 한민족의 기원을 단군조선으로 보기보다 위만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는 기술이 지배적이다.

74) 이에 대해서는 신운용,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와 한국말의 개념문제」, 󰡔선도 문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출판부, 2011, 334쪽 참조.

북애는 민족을 핵심으로 하는 국학의 관점에서 한민족을 늘 괴롭 혔던 한족(漢族)에 대해 일본과 청국이 함께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규원사화󰡕에서 펼쳤다. 또한 근대 대표적인 국학자 나철도 서양세 력의 동양침략을 막기 위해 동양평화론을 제창하였다.75)

이러한 국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6.25 전쟁은 바로 국학의 핵심사 상인 홍익인간과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한민족 최대의 비극이 었다. 이러한 시각에서 6.25 전쟁의 반역사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

6.25 전쟁에 대한 교과서들의 평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교학사 교과서에는 6. 25전쟁의 원인을 “소련의 한반도 적화 전략에 따른 중국의 지원과 김일성의 오판으로 일어났다.”76)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6.25 전쟁의 결과에 대해 “6.25 전쟁을 통하여 미국은 자 유 민주주의 세계의 수호자적 위치를 확실히 하였다. 일본은 전쟁 특 수를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마련하였다. 중국은 북한과 결속을 강화하는 전기를 마련하였지만,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감당 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주역이었던 소련은 모험주의적인 세력 확 장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77)”설명하면서 “미국을 대한민국 수호자 로,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주장 하고 있다.78) 결국 전쟁의 비극을 기술하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국가주의 사관에 따라 미국의 존재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인한 것이 바로 6.25 전쟁이라는 논리이다. 전후 복구도 미국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다고 기술하여 미국의 ‘은혜론’을 강조하였다.

이에 반해, 금성출판사의 교과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다」라 는 제목 아래 ‘6.25 전쟁 무렵 국내외 정세’⋅‘북한 정권의 전쟁준비’⋅

75) 황현 저⋅김준 역, 「日皇에게 보낸 李沂등의 상서」, 󰡔完譯 梅泉野錄󰡕, 교문 사, 1994, 608쪽.

76) 교학사, 위의 책, 310-311쪽.

77) 교학사, 위의 책, 313쪽.

78) 교학사, 위의 책, 315쪽.

‘6.25 전쟁의 발발’⋅‘유엔군의 참전과 전세의 역전’⋅‘중국군의 개입’

⋅‘전선의 교착’을 소제목으로 6.25 전쟁의 모든 과정을 설명하였다.79) 이어서 금성출판사 교과서 집필진은 6.25 전쟁의 국내의 영향에 대해 “남한과 북한의 집권 세력은 정쟁을 거치면서 권력 기반을 확 대해 나갔다. 이승만 정부는 반동주의를 내세워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거나 정권의 부패와 무능함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탄압하였 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권력이 더욱 강화되었다. 김일성 유일지배 체제가 자리 잡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80)라고 기술하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금성출판사 현대사 저자는 6.25 전쟁을 남북 정치 세력 의 권력기반 강화 계기로 평가하였다.

또한 금성출판사 교과서 집필자는 6. 25 전쟁의 국제적 영향으로 냉 전의 심화와 일본 경제발전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기술하였다.81) 그리 고 전후 복구에 대해 교학사 측의 판단과 달리, 남한은 미국 ‘의존경 제’이었고 북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고 표현 하였다.82) 여기서 보듯이 이 두 교과서는 6.25 전쟁에 대한 시각을 달 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83)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을 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에 대해 모든 교고서가 ‘6.25 전쟁’

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지침에 따른 것이다.

79) 금성출판사, 위의 책, 377-379쪽.

80) 금성출판사, 위의 책, 380쪽. 이러한 기술은 대체로 공통적인 기술이다. 다만 교학사 교과서는 이 부분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81) 금성출판사, 위의 책, 381쪽.

82) 이러한 기술은 비상교육(359-360쪽) 천재교육(316-319쪽), 두산동아(284- 286 쪽) 등에서도 보인다.

83) 다른 교과서들도 대체로 금성출판사의 논조와 같은 양상을 보인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과서는 6.25 전쟁(한민족파괴전쟁)이 끼친 결과로 남북한의 대립 과 증오심 심화를 들고 있지만 그 전쟁의 본질적인 성과 치유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

6.25 전쟁에 대해 북한은 ‘조국해방전쟁’, 미국은 ‘한국전쟁’,84) 중 국은 ‘항미원조전쟁’, 일본은 ‘조선전쟁’라고 각각 그들의 시각에 따라 기록하고 있다. 이는 6.25 전쟁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국학의 관점에서 6.25 전쟁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전쟁도 조 국해방전쟁도 아니었다. 이는 ‘한민족파괴전쟁’이었다고 정의해야 한 다. 따라서 6.25 전쟁이라고 기술하기보다 ‘한민족파괴전쟁’이라고 기 록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아울러 국학 관점에서 보면 6.25 전쟁은 분단구조와 6.25 전쟁의 배후인 외세와 그 추종세력의 권력쟁취를 위한 ‘칼부림’이었으며 한 민족의 본성에서 벗어나 자민족이 자민족을 학살한 민족자살극이었 다고 규정할 수 있다. 문제는 교과서에서 그 원인을 “평화를 사랑하 는 우리민족의 본성을 잃은, 보성(保性)하지 못한 민족전체의 문제”

로 접근하지 않고 국제역학관계 또한 김일성의 오판에서 찾고 있다 는 데 있다. 이러한 기술은 결국 치유 불가능한 증오심을 민족전체에 심어주는 원인이 될 소지가 농후하다. 따라서 국학의 관점에서 6.25 전쟁의 원인을 북애의 지적대로 실성(失性)에서 찾는 기술이 필요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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