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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거부와 투쟁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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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스 세계의 영웅 캐릭터는 모험을 떠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점차 성장 해 간다. 그들은 소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들이 속한 세계 또한 성장한 그들의 도움을 요구한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는 대다수의 MMORPG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반드시 성장해야 하며 세계와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은 게 임 시스템에서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성장을 거부함으로써 투쟁 서사를 창출하 기도 한다. 바츠 해방전쟁 또한 시스템 차원에서 장려하는 약육강식에 대한 부당함을 고발하는 플레이어들에 의해 출발했다. 게임 내 플레이어 간 충돌서 사 중 우발적인 경우는 이처럼 플레이어들의 의견과 가치관 차이에 의해 투쟁 의 형태로 나타난다.

플레이어들이 역할수행 게임의 본질인 성장을 거부하는 것은 업데이트에 의 해 그동안 노력해서 얻은 보상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플레이어들이 그동안 의 수고와 투자에 대한 상실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에서 업데 이트가 적용되면 플레이어는 세계 속에 새롭게 나타난 더 강한 몬스터가 제공 하는 더 효율적인 아이템을 얻기 위해 플레이를 진행해야 한다. 이때 플레이 를 추동하는 것은 이전보다 상향된 보상이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업데이트는 새로운 대상을 생성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기존 월드에 추가 콘텐츠가 녹아드는 상향 지향적 계단 구조로 이뤄진다.66)

그러나 새로 추가되는 콘텐츠에서 보상은 쉽게 얻어지지 않으며, 설사 공략 에 성공했다 할지라도 파티에 참여한 모든 플레이어가 원하는 아이템을 얻을 수는 없다. 따라서 업데이트가 발생하면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언젠가는 아 이템을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반복적으로 던전 공략에 참여하지만,

66) 이진, 앞의 논문, pp.30-47.

새로운 콘텐츠로 추가된 아이템의 한 세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십 차례의 참여가 요구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플레이어 중 일부는 성장을 거부하고, 세계의 흐름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성장을 거부하는 플레이어들은 성장을 지향하는 플레이어들과 충돌 을 빚게 된다. 이때 충돌은 진영 간 대립이 아닌, 게임 내 캐릭터 레벨의 차 이에 따라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발생한다.

이러한 충돌 서사는 대개 진영 단위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종족효과 등에 의 해 발생한다. 같은 진영에 속한 성장거부 플레이어의 이익 추구 행위는 곧 진 영의 세력 강화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성장지향 플레이어에게는 핸디캡의 적 용이라는 피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쟁 서사는 특정 행동이 유발할 수 있는 향상과 악화의 양면성에 의해 초래된다. 서사의 등장인물이 갖는 행위의 양면성은 브레몽이 말한 기본연속의 결합 구조의 양태 중 하나인 일관적 연속결합 구조로 설명된다.

그림 10. 서사 가능성의 일관적 연속결합 구조67)

일관적 연속 결합은 기본연속의 진행으로 서사가 발생할 때 서사 주체의 상 황은 항상 긍정적이거나 항상 부정적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상승이나 하락을 보여주지 않으며, 향상과 악화의

67) Bremond, Claude, 앞의 책, pp.211-212.

국면은 번갈아가면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어떠한 향상의 목표를 달 성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 즉 악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플레이어 간의 투쟁 서사는 이러한 일관적 연속결합과 또 다른 형 태의 복합연속 구조들이 혼합되면서 점차 그 규모가 확장된다.

세력비 관련 충돌은 <아이온>의 공성전 콘텐츠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이를 먼저 살피고자 한다. 공성전은 같은 세계에서 공존하는 3개의 진영이 서로 요 새를 점령하고자 정해진 시간에 서로 충돌하는 전쟁 시스템이다. 요새 점령은 곧 세력비의 확장, 그리고 세력비의 확장은 곧 세율의 감소를 뜻한다. 따라서 특정 진영이 서버 내에 점령한 요새의 수가 많아지면 해당 진영의 세금은 줄어 들고 상대 진영 플레이어들은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세금은 주로 상점, 지역이동 및 공간이동 비용, 경매에서의 수수료, 인스턴스 던전의 입장료 등으로 부여되는데 이는 게임 플레이 전반에서 꾸준히 지출되는 것으로 플레이어들은 더 많은 요새를 점령하여 그 불이익을 피하고자 한다.

그림 11. <아이온>의 세력비 정보

이와 같은 세율 적용 시스템은 특정 진영의 세력이 특히 강해질수록 반대 진영에 속한 플레이어들의 게임 플레이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세력비 차이가 극심한 수준으로 오래 지속될 경우 플레이어들은 서버를 옮기 거나 게임을 이탈하기도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게임 접속률을 하락시키므로

개발사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서버 이전에 제한을 두거나, 종족 버프를 부여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아이온>에서는 표 8과 같이 진영 간 세력비 차이 에 따라 열세 진영에 PvP 관련 종족 버프를 부여하여 그들이 다시 세력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적용 조건(단위 %) 버프 효과

71≤우세진영 세력비≤75 상대 진영 PC는 우세 진영 캐릭터를 공격할 때 10%의 추가 대미지를 얻음

76≤우세진영 세력비≤80 상대 진영 PC는 우세 진영 캐릭터를 공격할 때 15%의 추가 대미지를 얻음

81≤우세진영 세력비≤100 상대 진영 PC는 우세 진영 캐릭터를 공격할 때 20%의 추가 대미지를 얻음

표 8. <아이온> 종족버프 적용조건 및 효과

바로 이러한 종족버프 시스템에서 투쟁 서사가 시작된다. 성장을 거부하는 플레이어들은 새로 추가되는 콘텐츠를 거부하기 때문에 업데이트 이전의 최고 레벨 지역에 머무른다. 이들은 최고레벨 상승 이후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참 여하지 않게 된 저레벨 지역의 요새전을 주도한다. 요새 점령에 따른 세력비 의 확장 및 종족버프의 적용은 해당 요새의 레벨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되 기 때문에, 만약 A진영에 속한 성장거부 플레이어들이 요새를 다수 점령할 경 우 B진영 플레이어들에게는 종족버프가 적용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B진영에 종족 버프가 발현되면, 그것은 다시 A진영에게는 핸디캡이 적용되는 것과 같 다. 즉 요새를 점령했다는 향상의 결과는 핸디캡의 적용이라는 악화의 가능성 이 되고, 이러한 악화는 PvP에서 A진영의 플레이어들이 패배할 가능성을 높인 다. 이는 A진영 플레이어들이 숙명 서사에서 언급했던 던전 출입 경쟁에서 패 배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결과로 연결된다.

이 지점에서 같은 진영에 속한 성장거부 플레이어와 성장지향 플레이어들의 충돌이 발생한다. 상대 종족의 버프 때문에 성장에 방해를 받는 플레이어들은

핸디캡을 삭제하기 위해서 같은 진영의 성장거부 플레이어들이 요새를 점령하 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거부 플레이어들에게 이는 플레 이 방식의 차이 또는 소비 방식의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요새 점령 요청은 수용되지 않는다. 이로써 같은 진영에 속한 성장지향 플레이어들과 성장거부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채팅 등을 통해 충돌하고 대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관적 연속결합과 대위결합, 포괄결합을 모두 포함하는 형태의 서사 구조를 갖는다.

그림 12. 투쟁 서사의 결합 구조

플레이어 간 우발적 충돌 서사는 진영을 넘어 서버를 공유하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2015년 1월 <아이온>에서는 사용자가 적은 몇몇 서버를 통합하여 거대 서버를 만드는 패치가 진행된 바 있다. 이는 몇몇 플레 이어에게 있어서는 긍정적인 조치였을 수 있다. 왜냐하면 MMORPG 특성 상 서 버에 사람이 많을수록 PvP나 공성전 등의 컨텐츠가 활발하게 진행되기 마련이 며 인스턴스 던전을 이용할 때에도 통합 서버에서 오랜 시간 파티원을 구할 필요 없이 서버 내에서 인원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서버 내 플 레이어 간 결속을 다지고 커뮤니티를 안정화한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적은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그곳을 떠나 사용자가 많은 서버로 이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게임사는 여러 개의 서버를 통 합하여 하나의 서버를 만든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재미, 새로운 커 뮤니티, 활발한 상호작용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이러한 조치는 또 다른 누군가 에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즉 성장거부 플레이어들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서사적 기능이 갖는 양면성과 이중성에 의해 패치를 반대하는 플레이어들의 투쟁 서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 계급 시스템에 의해 총사령관, 사령관, 대장군, 장군 등의 사회적 지위를 갖는다. 이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서 플레이어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모한다. 또한 높은 계급의 플레이어일수록 지위에 맞는 능력 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게임사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강화 아이템을 구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버 통합에 의해 플레이어 중 일부가 그동안 획득한 지위를 잃 고 계급 하락을 경험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상실감과 허탈감을 제공할 수 있 다. 이러한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인 변화인 패치가 같은 서버의 또 다 른 누군가에게는 상황의 악화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투쟁이 확산될 경우 플레이어들은 게임사를 상대로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 기도 한다.68)

투쟁 서사의 결합구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투쟁 서사의 진행은 일관적 연속 결합과 대위 결합에 의해 주로 추진된다. 투쟁 서사는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을 충돌의 참여자로 만든다. 이로써 우발적 충돌서사는 충돌의 규모를 넓히고 그 정도를 심화하여 궁극적으로는 게임 외로 충돌이 전이되 도록 한다. 숙명 서사가 포괄결합을 바탕으로 플레이어를 끊임없는 충돌의 순환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과 달리, 투쟁 서사는 충돌의 전염에 기여하는 것이다.

68)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사실조사보고서」 사건번호 2015-00197, 2015-00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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