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제안사항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을 문화재로 등록하고자 부의하오니 검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 제안사유
ㅇ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에 대하여 관계전문가 현지조사(‘16.12.22.)를 실시하고, 문화재 등록 여부를 검토하고자 하는 사항임
다. 주요내용
(1) 신 청 인 : ㅇㅇㅇ (2) 대상문화재
유물명 수량 규격 제작
년대 제작자 재질 소유자 소재지 비고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1구
상 높이 48.5cm, 어깨 폭 36.5cm, 발원문 64.0*39.0cm
1928년 문성 흙에
도금 ㅇㅇㅇ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산로 249-21 (3) 검토사항 : 문화재 등록 검토
라. 등록조사보고서 종합의견(요약) : 상세내용 붙임1 참조
<관계전문가 현지조사(’17.1.12.)>
ㅇ ㅇㅇㅇ
- 제작자와 제작연도를 알 수 있으나, 제작자의 대표작으로 보기 어렵고 제작 기법과 조형적 특징에서도 근대성을 찾아보기 어려움.
ㅇ ㅇㅇㅇ
- 불화를 주로 제작하였던 화승 보응문성(畵僧 普應文性)이 제작한 흔치 않은 불상으로서, 복장발원문을 통해 정확한 제작 경위, 시기, 그리고 조각가의 이름이 밝혀져 있어서, 근대기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할 가치가 있다.
ㅇ ㅇㅇㅇ
- 정읍 약수암의 소조관음보살좌상은 계보가 분명한 조각승 보응 문성의 조각 작품으로 도상, 형식, 양식 면에서도 시대양식을 대변할만한 분명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 좌상은 등록문화재로서 보존 및 활용 가치가 크다고 보며, 이에 등록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마. 의결사항 ㅇ 보류
- 추가조사 후 재심의 ㅇ 출석 8명, 원안가결 8명
<붙임 1〉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조사보고서
1. 명 칭 :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 2. 소 재 지 :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산로 249-21
3. 소 유 자 : ㅇㅇㅇ 4. 조사자 의견
<ㅇㅇㅇ>
1) 현상
ㅇ 높이 48.5cm의 불좌상으로 무릎에 얹은 왼손에는 지물이 있었던 흔적이 있으나 현재는 망실되었음. 전체적으로 표면을 종이로 감싸고 금박을 입혔으나 현재는 대부분 금박이 벗겨진 상태이며 이목구비가 채색되어 있음. 불상의 바닥에 복장 물을 넣기 위해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서 상의 내부를 일부 확인할 수 있는데, 목심에 흙으로 상을 제작한 것으로 판단됨. 복장물을 통해 제작연도 1928년과 제작자 普應文性을 확인할 수 있음.
2) 내용 및 특징
ㅇ 제작연도와 제작자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으나 제작자 문성은 불상보다는 불화 제작 전문가로 이름이 있으며 작품의 규모로 그의 대표작으로 보기 어려움.
ㅇ 불상의 제작기법인 목심에 찰흙을 붙인 소조불은 전통적인 제작방식이며 조형적 특징에서도 근대성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근대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는 크지 않다고 판단됨.
3) 기타(동일 유형 기 등록 문화재와의 가치 비교․검토)
ㅇ 현재 근대불상 중에서 등록문화재로는 김제 금산사의 석고미륵여래상(619호)이 있다. 이 상은 규모가 약 11.5m로 매우 클 뿐만 아니라, 근대기의 대표적 조각가인 김복진의 작품이며 재료도 한국 근대조각의 대표적인 재료인 석고로 제작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있으며 김복진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ㅇ 이와 비교해서 ‘정읍 약수암 소조관음보살좌상’은 제작자의 대표작으로 보기 어려우며 불상 제작기법이나 조형적 특징에서 근대성을 찾아보기 어려움.
4) 종합의견
ㅇ 제작자와 제작연도를 알 수 있으나, 제작자의 대표작으로 보기 어렵고 제작기법과 조형적 특징에서도 근대성을 찾아보기 어려움.
<ㅇㅇㅇ>
1) 현상
ㅇ 흙, 종이, 漆, 塗金, 채색(금색)의 순으로 제작되었는데, 가장 바깥의 금색 채색은 보수할 때 도금층 위에 시행된 것으로 안료의 성분은 미상이다.
ㅇ 왼손바닥 위에 뚫린 깊이 0.5cm, 폭 0.5cm의 구멍은 보주 또는 정병이 안치되었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ㅇ 결가부좌하고 촉지인을 결하였으며, 머리에는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 가슴 높이 까지 승기지를 착용하고 있으며, 겉에 착용한 가사(대의)는 조선시대 불상의 전통을 이어 매우 두껍게 표현되었다. 왼손은 배 앞에 두었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두었는데, 촉지인을 표현하려 한 것으로 추정된다.
ㅇ 갸름하고 살집이 없는 얼굴과 밋밋하여 양감이 없는 가슴 등은 조선시대의 전통이 보이지만, 왼손의 모델링은 매우 훌륭하게 표현되어 대조를 이룬다.
ㅇ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관음보살상의 도상적 특징을 그대로 잇고 있으며, 두꺼운 옷과 양감 없는 신체 등의 양식적 특징도 계승되었다. 그러나 배 부분의 화형 장식물이나 왼손 위의 지물(추정) 표현, 앞 가슴 양쪽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 등 작가 개인의 창작 부분도 합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 문헌자료
ㅇ 井邑 藥水庵 塑造觀音菩薩坐像 造成發願文 9) 1928년 5월 10일, 白紙紅書, 64.0×39.0cm
9) 2016.12.22. 조사. 송은석 석문.
昭和
佛紀二九五五三年無盡陰午月十日此觀音菩薩造成 於益山郡崇林寺十王補缺羅漢改彩時移安于任 實郡聖照庵云爾 證明朗應世經
誦呪月庵錫柱 造成金魚普應文性 改金金魚震音尙旿 化主性潭祥玉 施主韓氏 子河俊鎬
*바닥 봉인용 다라니:
令 律 如 急 急
令 律 如 急 急 옴 急 急 如 律 令 急
急 如 律 令
急急如律令: 빨리 율령대로 시행하라는 뜻. 원래 중국의 漢代 공문서에 쓰였던 문구 이나 도교, 무속, (불교)의 부적 등에서 잡귀를 몰아내는 데 쓰이는 주문으로 사용됨.
*陀羅尼: 총8매
a) 七俱胝佛母心大準提陀羅尼(2행)+六字大明王眞言(1행) 1매 b) 眞心種子(3행) 1매
c) 七俱胝佛母心大準提陀羅尼(3행) 1매
d) 入悉地(1행)+秘密悉地(1행)+出悉地(1행) 3매 e) 미상(1행) 2매
3) 기타(소장 경위 등)
ㅇ 1928년 익산 崇林寺에서 제작되어 임실 聖照庵에 봉안되었다. 연대 미상의 해에 임실 운수사로 이안되었다가 2006년 정읍 약수암으로 이안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4) 종합의견
ㅇ 불화를 주로 제작하였던 畵僧 普應文性이 제작한 흔치 않은 불상으로서, 복장발
석성, 우일 등과 함께 조성한 서울 안양암 아미타삼존불(1936년 제작)과 천오백
안건번호 근대 2017-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