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Ⅴ. 요약 및 결론
‘행정지도가 개입된 카르텔’에 대한 법적 판단의 쟁점은 개별 산업 규제 영역에서의 사실적 구속력이 있는 행정지도와 공정거래법상의 카 르텔 금지규정이 충돌할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해결 을 위해 입법론적 접근과 해석론적 접근이 있다. 입법론적 접근은 개별 산업규제 행정기관과 공정거래위원회 간의 상호 협조를 위한 법제를 개 선하여 양 기관 간의 모순된 목소리의 표출로 인한 사업자들의 혼란을 최소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입법이라도 양 기 관의 서로 다른 정책기조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고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되는 행정지도를 입법형식으로 완전하게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입법적 개선노력이 개별 산업규제 영역에서의 행정지도와 공정거래 법상의 카르텔 금지규정 간의 충돌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줄 수는 있겠 지만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사업자들은 바로 이러한 한계선상에서 서 로 다른 행정기관의 목소리 중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를 선택해야만 하 는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치국가적 한계에 그대로 노출되 며 사업자들의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침해받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법치국가적 한계를 메워 주며 산업정책과 경쟁정책 간의 충돌로부터 사 업자들의 법적 안정성을 담보해 주는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해석 론의 기능이다. 해석론은 구성요건 단계, 위법성 단계, 책임 단계로 전 개된다.
구성요건 단계에서 행정지도에 따른 공동행위를 아예 독점금지법
제19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카르텔 금지규정, 즉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카르텔은 사업자 간의‘합의’에 의한 공동행위가 있어야 하며 사업자 간의 자율적 의사를 전제로 한다. 그런 데 사실적 강제력을 수반하는 행정지도에 따라 사업자 간 합의를 하였 을 경우에는 자율적 의사에 기초한 합의가 아니므로 제19조상의‘합의’
에 해당하지 않아 제19조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이론구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제되는 경우는 행정청이 구체적으로 특정 내용에 대해 사업자 간에 합의할 것을 행정지도하기 보다는 행정지도를 통해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해 주고 구체적 내용은 사업자들의 합의를 통해 확정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합의가 전적으로 사업자 간의 자 율적 의사에 기초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19조상의‘합의’가 없었 다고 판단하기도 무리이다. 법원도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경 우 구성요건상의 합의를 인정하고 공정거래법 제58조 적용에 따른 위법 성 조각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공정거래법 제58조에서는 개별 산업규제 법률과 그‘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카르텔 금지의 예외를 인 정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행정지도가 개입된 카르텔의 정당성 판단은
① 행정지도가 제58조상의‘법률에 의한 명령’에 해당하는지, ② 만일 해당한다면 다시‘정당한 행위’라고 볼 수 있는지라는 두 부분의 법리해 석에 의해 결정된다.
①은 행정지도의 본질과 관련된 것으로 행정법학의 영역이다. 지금 까지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은 법률에 형식적 근거를 두지 않은 행정지
도는 제58조상의‘법률에 의한 명령’에 해당할 수 없다고 보며 이러한 행정지도에 따라 형성된 공동행위를 금지해 왔다. 그러나 행정지도의 구속력, 행정지도와 법률유보, 행정지도와 협력적 행정 등에 관한 현대 행정법학의 논의를 검토해 보면 구체적 상황에서 행정지도가‘법률에 의한 명령’에 해당할 수 있는 경우는 많을 것이다.
②는 개별 산업규제법상 허용되는 행위가 일반 경쟁법에서 금지되 고 있는 경우 이것을 어떻게 조화롭게 해석할 것인가와 관련된 경제법 영역이다. 여기서는 우리나라 공정거래법 제58조 해석에 영향을 준 미 국 법원의 묵시적 적용제외(implied exemptions) 이론의 최근 동향을 살 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묵시적 적용제외 이론의 핵심은 경쟁을 촉진시 키는 수단으로 활용 가능한 개별 산업영역에서의 규제(regulation)와 일 반 경쟁법(antitrust)간의 상대적 효율성을 고려한 최적 조화점을 찾아 내는 것이다. 이러한 조화점의 모색은 다음과 같은 틀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우선‘계약적 경쟁개념’(contractual competition)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기반으로 이러한 계약적 경쟁이 이루어지는 영역에 반트러스트 법을 잘못 적용할 경우 발생하는‘오판비용’(error cost)을 한 축으로 설 정한다. 그리고 개별 규제법 영역에서의 기회주의적 행동인‘규제 게임 (regulatory gaming)의 위험성’을 또 다른 축으로 설정한다. 그리고 구체 적으로 개별 산업규제법과 일반 경쟁법 간의 법적 충돌이 발생한 경우 분쟁이 발생한 개별 산업영역의 특징과 개별 규제법의 체계를 고려하 고, 개별 산업규제법과 일반 경쟁법 중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며 경쟁법 의 적용제외를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묵시적 해석과정에서 항상 전제되어야 할 사실은 개 별 산업규제법과 일반 경쟁법 간의 충돌로 발생하는 규범적 부조화의 부담을 경제주체들에게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정지도→
법률에 의한 명령→정당한 행위→공정거래법 적용제외’로 전개되는 일련의 논리과정에서 만일 행정지도가‘법률에 의한 명령’으로 규범적 판단을 받지 못한 경우, 또는 받았더라도‘정당한 행위’에 해당하지 못 한다고 판단된 경우, 궁극적으로는 행정지도에 따른 행위가 공정거래법 상의 적용제외에 해당하지 않게 되어 위법하다고 평가받게 되는 경우에 도 행위주체의 책임성 판단 단계에서 책임의 면제나 감경 여부를 적극 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규범적으로는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위법한 행위로 평가받았지만 사업자들이 행정지도에 따르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정도에 이르렀다면 사업자의 책임을 면 제하고, 기대 불가능한 정도까지 이르지 않았다면 적정한 정도로 책임 을 감경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행정지도가 개입된 카르텔 제재의 법치국가적 한계를 확 보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제19조상의 부당공동행위가 성립하기 위 한 구성요건, 위법성, 책임의 각각의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법적 평가에 행정지도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제재조치가 적절한지를 법리적으로 꼼꼼히 검토해야만 할 것이다. 특히 행정지도가 개입된 카르텔이 구성요건과 위법성 단계를 모두 통과해 사회적으로 위 법한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그 비난 가능성이 행정지도 없이 개별 사업 자들 간 자율적으로 이루어진 공동행위와는 분명히 다르므로 책임의 감
면이나 감경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며, 과징금보다는 시정조치를 통 해 위법한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행정지도가 개입된 카르텔 제재 개선을 위한 입법론적・해석론적 개선노력은 결국 개별 산업정책과 일반 경쟁정책 간의 충돌로 인해 발 생할 수 있는 사업자들의 법적 안정성 훼손의 치유와 카르텔 제재의 법 치국가적 한계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경쟁촉진을 위한 경쟁정책은 우리나라에서 포기해서도 포기할 수도 없는 정책이다. 이러한 경쟁정책을 훼손하는 개별 산업규제 영역에서의 행정지도는 분명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행정지도의 관행을 그대로 둔 채 이에 따른 개별 사업자들의 처벌을 통해 개선하려는 것은 행정의 단일성과 법치행정을 통해 담보되는 법치국가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 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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