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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와 재정의 경기조절기능

문서에서 한국의 외환위기 10 년 ( 상 ) (페이지 120-131)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재정정책은 경기조절수단으로 사용되지 않 은 편이었다. 대부분의 재정지출이 재정투융자 성격을 가진 지출이 었기에 재정정책은 경기조절보다 장기 경제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강조되었다. 선진국과 달리 사회보장성 지출이 적은 것 또한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을 제한하는 요인이었다. 정부 역시 재정적자 증가를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워 했었기 때문에 재정의 경기조절보다 건전재 정원칙을 우선시하여 왔다.8) 그 결과 대부분의 국제비교 연구에서 한국은 자동안정장치의 크기 및 재정의 경기조절기능 효율성 면에서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을 형성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박기백·박 형수, 2002; 김우철, 2004; 성태윤·이 영, 2004).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하게 된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금융시장의 마비로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1999년 이후 경기회복 과정에서도 환율이 중요 정책목표가

되다보니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운용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경기 조절수단으로서 재정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전개되었다. 이 절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재정정책의 경기조절기 능을 시기별로 나누어 보다 자세히 분석하여 보자.

외환위기 직후 재정정책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IMF 의 안정화 프로그램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IMF의 주도하에 추진된 재정정책에 대해서는 몇 가지 오해가 존재하는 듯하다. <표 2>는 한

8) 건전재정을 강조해 온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앞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정부는 통 합재정수지에 포함되지 않는 기금과 공기업의 준재정활동을 선호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국정부와 IMF가 1997년 12월 처음 발표한 IMF 프로그램 합의안과 그 이후 1998년 5월까지 수정된 내용을 요약해 보여 준다. IMF 프로그 램은 550억 달러의 IMF 조건부 대출(conditional loan)의 지급조건으로 약속되었으며,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은 단기 총수요조절정책과 중장기 구조조정정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 <표 2>는 재정, 통화정 책과 관련된 거시경제 운용지표만을 보여 주고 있는데, 운용지표의 중장기 목표치도 프로그램에는 명시되어 있었으나 표를 간략히 만 들기 위해 1998년 목표치만을 포함시켰다.

1997년 12월 프로그램을 보면 1998년 경제성장률을 3%로 예상하 고 있으며 재정수지는 균형 또는 소폭 흑자를 유지하도록 작성되어 있어 외환위기 직후 IMF와 정부가 긴축재정을 추구한 것처럼 보인 다. 그 뒤 1998년 5월까지 경기침체가 예상 밖으로 심화되자 합의안 은 1998년 경제성장률을 -1%까지 하향조정하였으며 GDP 대비 재정 적자 폭도 -1.75%까지 늘린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75%의 재정 적자 수준은 과거 수준과 비교해 보아도 큰 폭의 재정적자로 볼 수 없는 규모였다. 이로 인해 국내외에서 IMF가 아시아 외환위기와 중 남미 외환위기를 구별하지 못하고 긴축재정을 강조하는 남미형 처 방을 한국에도 고집함으로써 오히려 경기침체를 가속시켰다는 비난 이 고조되었다(Radelet and Sachs, 1998; 정 운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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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IMF 안정화 프로그램 합의안

구 분 1997년 12월 1차 수정 (1998. 1. 8)

2차 수정 (1998. 2. 17)

3차 수정 (1998. 5 .6)

외환보유고 354억 달러 391억 달러 410억 달러

본원통화 증가율 9% 1/4분기: 15.2%

2/4분기: 15.7% 2/4분기: 13.5%

재정수지 균형 또는

소폭 흑자 유지 적자 용인 -0.8% -1.75%

성장률 3% 1-2% 1% -1%

(추가 하락 가능)

물가상승률 5% 이내 9% 9%대 한자릿수

경상수지 43억 달러 흑자 30억 달러

내외 흑자 80억 달러 흑자 210~30억 달러 흑자

실업률 3.9% 4.7% 5-6% 6.4%

IMF 프로그램이 균형 또는 소폭의 적자재정을 강조한 논리를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외환위기에 빠진 국가들은, 구조적 요인은 상 이하지만 모두 외환 고갈로 대외거래 정지의 위험에 처했다는 점에 서 공통적이다. 따라서 IMF는 우선적으로 총수요조절정책을 통해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한 뒤 중장기적으로 구조조정문제를 해결하고 자 하였다. 그런데 대외균형을 회복하고 해외투자자의 신뢰를 회복 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일정량의 외환보유고를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향후 일정기간 경상수지 흑자를 발생시켜 외 채상환 능력이 있음을 가시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경상수지 흑자는 저축과 투자의 차이에 의해 결정되므로 목표한 경상수지 흑자를 달 성하기 위해서는 저축이 증가하거나 투자가 감소해야 한다. 또한 저

축은 민간저축과 정부저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경기침체가 심화된 상태에서 민간저축을 늘리기는 쉽지 않으므로 정부저축을 늘리기 위해 단기적으로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실시하기 어렵다는 논리이다. 이와 함께 IMF가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침체 정도를 과소평가한 것 또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던 주요 이유로 볼 수 있다.

<표 2>에서 볼 수 있듯이 1998년 5월 수정안에서도 IMF는 1998년 성장률을 -1.75%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1998년 경제성장률 은 -6.8%로서 예상치를 크게 벗어난 바 있다.

이와 같이 비록 IMF 프로그램이 경기침체에 대응하여 적극적으로 팽창적인 재정정책을 추구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외환위기 직후 재정정책을 긴축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이러한 오 해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의 통합재정수지 계산방식이 국 제적으로 인정되는 측정방식과 다른 데서 기인한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과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정부는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를 통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한 바 있다. 1998년에만 해도 두 기 관이 발행한 정부보증채는 39조 원에 달하는데 이는 그해 발행된 국 채의 두 배, 예산의 5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1998년부터 2000년 사이에 발행된 정부보증채의 규모는 102조 원 규모인데, 이들 공적자금 지출액은 IMF 프로그램에 나타난 통합재정수지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정도 국가보증채를 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이 긴축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한국의 통합재정수지 측정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긴 오해로 볼 수 있다. 만일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자 금 조달액을 모두 포함시켜 통합재정수지 적자규모를 재 추정해 보면 1998년 재정적자 규모는 4%가 아니라 15%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급팽창한 재정규모를 두고 IMF 프로그램의 재정기조가 긴축적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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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또한 이 기간 중에는 국가보증채뿐만 아니라 국채와 외평채 발행 또한 증가했기 때문에 긴축통화정책으로 크게 높아진 이자율이 더 욱 상승하였다. 국채 및 정부보증채 발행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늘 어난 이자부담으로 인해 재정건전성 기조가 악화되지 않도록 정부 와 IMF는 정부보증채에 대한 이자부담만큼은 일반회계에서 조달하 도록 결정하였다. 따라서 이자부담만큼 일반회계 지출을 줄일 수밖 에 없어 IMF 프로그램의 통합재정수지가 긴축적으로 보이게 된 것 이다. 그러나 통합재정수지만 보지 말고 실제로 공적자금 투입액 등 을 포함시켜 보면 IMF 재정 프로그램은 남미에서의 처방과 달리 상 당한 정도 재정팽창을 용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98년 이후에도 1999년 대우사태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 2001년 소비대출 부실화에 따른 은행 및 신용카드사 부실화 등으로 경기가 침체함에 따라 재정정책에 대한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이 기간 중 추가경정예산의 편성 수 증가를 보아도 잘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재정의 경기조절기능을 높이기 위해 추가경 정예산제도와 재정의 조기집행이 주요 정책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 추가경정예산이란 본예산 편성 후 예상치 못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국회의 동의를 받아 연중에 추가적인 예산편성을 허용함으로써 재정의 신축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이다. 추가경정예산의 역사적 추 이를 보면 그 규모가 연도별로 변동이 심한 편이나 70년 이후 수정 예산 대비 6% 내외의 규모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감 소 추세를 보이던 추가경정예산의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그 규모가 증가하였으며 편성횟수 역시 잦아지는 추세를 보인 바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2회 이상 추경이 편성되었던 연도가 평균 7년에 한 번 정

도였으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평균 2년에 한 번씩 2회 이상 추경이 편 성된 것을 보면 이 기간 중 정부가 경기조절을 위해 재정정책을 적 극적으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9)

계량분석의 결과도 외환위기 이후 재정정책이 경기조절수단으로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Lee, Rhee, and Sung(2006)은경 기변동에 대한 재정흑자의 반응도를 분석하기 위해 다음의 식 (1)을 국제비교 한 바 있다.

               (1)

식 (1)에서 Zit는  국의

t

기의 재정흑자를 나타낸다. GDP와 재정 흑자 변수에서 추세치를 제거하고 경기변동 부분만을 추정하기 위해 식 (1)은 두 변수의 추세치를 시간변수를 이용해 추정하였다. 변수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위 식을 1차 차분하고 연도 효과를 더하면 식 (2) 를 구할 수 있다.

 ∆







 (2)

식 (2)에서 Di 는 국의 국가더미변수이고, 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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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의 연도 더

9) 추경제도는 재정지출 규모가 국회에 의해 사전적으로 확정되어야 하는 한국과 일 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제도이다. 재정규모를 확정함으로써 재정건전성을 추 구하는 이 제도는 오히려 의도하지 않게 재정적자를 구조적으로 지속시키는 부작 용을 가질 수 있다. 본 예산에서 추정한 것보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불가피하게 추 경편성을 통해 국채 발행을 허용해야 하는 반면, 예상 밖으로 흑자가 발생하면 증가 된 세계잉여금을 추경을 통해 지출하고자 하는 유인이 생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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