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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적 자본인가?

1960년대 초까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 중 하나였다. 1950 년에 발생한 3년 간의 6․25 전쟁으로 전 국토가 파괴되고 국가 재정이 고 갈되어 해외 원조가 아니면 나라살림 꾸리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절대적 으로 부족했던 식량과 만성적인 실업, GDP 성장률을 훨씬 상회하는 물가 상승률, 높은 인구 증가율 등으로 국가의 장래는 지극히 비관적이었다.1

그러나 19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 다. 1960∼70년대의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8∼10%를 유지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7∼8% 수준을 유지하였다.

1965년도에 미화 10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05년도에 16,306달러에 도달했고, 1965년도에 미화 1억 8천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 은 2005년도에 2,890억 달러를 달성하여 세계 12위의 교역국으로 등장하 게 되었다. 1995년 한국은 OECD 회원국이 됨으로써 경제 선진국들과 어 깨를 나란히 하였다.

1 1953∼1958년 기간 중 해외 원조는 GNP의 15%였으며, 1954∼61기간 중 연평 균 GNP 성장률은 4.4%, 도매물가 상승률은 22.1%, 인구성장률은 2.9%로 나타 나고 있다(경제기획원 1982).

서 론 1

어떻게 한국은 세계 최빈국 수준에서 불과 40년 만에 경제발전의 선발 주자이면서 자원과 자본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국가들을 제치고 세계 경제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사 회발전은 많은 서구 학자들에게 학문적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이들 은 동아시아 국가의 생활 방식과 사회구조, 삶에 대한 가치관 등을 연구하 고 동아시아인들의 독특한 가족구조와 생활 방식, 사회구조, 삶에 대한 가 치관 속에는 성공을 촉진하는 남다른 요소가 작용한다고 보고 이를 사회적 자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해석하고자 했다.

콜만(Coleman 1988)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이주민 가족의 아이들 이 높은 교육적 성과를 얻는 것은 가족 내에 형성된 사회적 자본의 결과라 고 주장한다. 그는 아시아계 이주자 가족의 대부분은 부모들이 집에서 자 녀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재를 두 권씩 사고 있는 현상에 유의하고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이들의 교육 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퍼트남(Putnam 1993)은 동아시아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들 사회의 조 밀한 사회적 연결망(social network)에 있음에 유의하고 이를 연결망 자본 주의로 설명하고자 한다. 즉, 연결망으로 형성된 혈연공동체, 작은 사회조 직 및 집단의 구성원은 상호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상업활동에서 거래비용 을 낮추고 정보와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경제성장을 위한 재정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을 비롯한 일련의 학자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니고 있는 독 특한 정치와 사회체제, 문화, 법률, 관습 등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 요인이라고 보았다. 세계은행(World Bank 1993)은 동아시아 국가의 기 적(The East Asian Miracle: Economic Growth and Public Policy)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하여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중앙 정부의 적절한 시장 간섭 과 조정이 정부 공공부문과 사기업 간의 협동을 이끌어 내어 높은 경제성 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1981년도에 말레이시아 수상에 취임한 마하티르(Mahathir bin Mohamad)

는 취임 6개월 후에 ‘동방 주시 정책(Look East Policy)’이라는 다소 생소한 정책을 제시했다. 마하티르의 동방 주시 정책은 동아시아에서 고도성장을 이룩한 일본과 한국 및 대만 국민의 성실한 노동윤리, 사회 가치관, 경영체제 및 기술 등을 배워 말레이시아의 경제⋅사회발전을 도모하자는 내용을 핵심 으로 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가 일본이나 한국과 같이 고도 경제성장을 이 룩하자면 과학기술만을 배워 가지고는 안 되며 이들 국가의 국민이 지니고 있는 정신적 가치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하티르 수상의 동방 주시 정책에 따라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학생과 노 동자를 일본과 한국, 대만의 대학과 기업에 보내 이들 3국 국민의 노동윤리, 도덕관, 기업경영, 기업 운영체제는 물론 생활 관습에 이르기까지 국가와 사 회 구성원 사이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 가치를 배워 오도록 하였다.

마하티르 수상은 동방 주시 정책 이외에도 말레이시아의 발전을 위해서 는 말레이시아인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을을 길러 주는 애국가를 작곡하여 텔레비전에 방송하도록 하 고, 국기에 대한 존경심을 키우도록 하며 출퇴근 시간 지키기 운동과 같은 기초적인 규범 준수 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방 주시 정책을 실시한 지 20년 후, 말레이시아는 한국에 버금가는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아시아의 신 흥공업국으로 부상했다. 2003년 11월, 마하티르 수상은 말레이시아를 고도 성장의 반석 위에 올려놓고 명예롭게 퇴임하였다.

공교롭게도 1960년대까지 한국보다 부유한 국가였던 아시아의 여러 국가 들은 경제성장을 위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선진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 을 이전받아 경제성장을 추구했지만 말레이시아와 타일랜드를 제외하면 아직 도 많은 국가들이 빈곤과 민족 간의 갈등, 부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2

2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은 물론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 가의 경제적 여건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보다 더 열악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국이 신생공업국가(NICs) 중에서도 아시아의 경제발전을 이끄는 4마리의 용 중에서 선두 주자로 부각되 었다. 1960년대까지 필리핀은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이끄는 선두 주자였으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인도, 파키스탄 등은 한국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이 동방 주시 정책을 통하여 추구하고자 했 던 동아시아 국가의 정신적 가치는 결국 이들 동아시아 국가 사회체제 속 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자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한국 과 일본의 사회체제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규범과 신뢰, 협동심, 사회적 연결 망 등 사회적 자본을 말레이시아 사회체제 속에 도입하여 경제성장과 사회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