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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성에 대한 미술사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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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났다. 그러한 변화는 크게 ‘1960∼70년대’와 ‘1990년대 이후’에 두 시기로 구분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작품의 주제로서 사용되던 인간의 ‘신체’가 작업의 재료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와 70년대는 신체를 이용한 미술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신체를 매체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즉 회화에서의 물감과 붓이 예술가의 신체로 대체된 것이다. 1960년대의 해프닝과 퍼포먼스에 있어서 신체 자체나 신체의 움직임을 이용했던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햄은 당시 예술가의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60년 이브 클랭(Yves Klein)은 파리의 국제 현대 미술관 관장인 모리스 다르퀴앙 (Maurice d'Arquian)과 협업하여 수백 명의 예술계 주요 인사들에게 <인체측정> 회화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는 몸이 육체적, 감각적, 정신적 힘의 중심이라는 믿음 하에, 신체에 물감을 직접 바르는 새로운 회화 기법을 창조하였다.

몸이 ‘살아있는 붓’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푸른색의 물감을 온몸에 잔뜩 묻힌 나체 모델들을 지휘하면서 커다란 종이 위에 자신의 몸을 찍어 흔적을 남기도록 했다. 이러한 획기적이고 연극적인 측면은 회화 자체가 작가 혹은 작가가 지휘하는 몸들의 행위로 초점을 이동했다는 점이다. 이때 예술가는 예술적인 지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개개인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지휘가가 되었다.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동안 음악가 그룹은 클랭이 작곡한 <단조 교향악>을 연주했다. 또한 사진 작가들을 고용하여 이러한 행위들을 기록하였다.70)

피에르 만조니(Piero Manzoni)는 1961년 누드 모델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한 <살아 있는 조각(Living Sculpture)>이라는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신체 자체를 예술작품으로 변용 하였다.

20세기 미술에서 신체 담론의 또 다른 큰 변화는 1990년대 이후에 나타났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예술에서의 ‘신체’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예술가는 이러한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신체를 인공적으로 변형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인간 중심 가치의 상실에 따라 자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그것을 정신분열적 문화현상으로 나타냈던 포스트모던 미술과 새로운 인간 이해에 따른 포스트휴먼적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준 미술표현들이다.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인간 ‘이후’의 인간이되 여러 기술의 도움으로 인간의 약점을 극복하고 벗어나지만

70) 트레이시 워,『예술가의 몸』, 심철웅 역, 미메시스, 2007, p.54 참고.

여전히 인간 실존의 변화의 연속성 안에 인간의 의미를 지닌다. 다른 한편으로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으로 사고해온 이성적, 이상적 인간 주체에 대한 반성적 의미도 암시하고 있다.71)

1990년대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 보급의 기술적 변화는 21세기에 이르러 생물학과 관련된 첨단 바이오 기술로 패러다임이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영상 의학의 발달로 인간신체의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것과 휴먼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단백질과 DNA의 서열을 분석하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72) 이러한 변화는 신체미술에 있어서 기술의 문제를 항상 고려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신체를 다루었던 과거의 미술가들이 신체를 재현하거나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를 하는 ‘미술의 주체’였다면, 최근 신체를 다루는 미술가들은 실험하는

‘연구자-학자-미술가’의 태도를 갖게 되었다. 20세기 미술가들이 물감이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벗어나 사진, 비디오 컴퓨터를 매체로 작업한 것처럼, 21세기의 미술가들은 DNA, 혈액 등의 생물학적 요소들을 매체로 이용함으로써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73)

이처럼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신체를 변형하고자 하는 시도 외에도, 가상과 실재를 연결하는 신체로서 ‘디지털 신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따라서 이에 대한 논의도 중요해지고 있다. ‘디지털 신체’는 오늘날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가상의 정체성을 가진 독립된 신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실재와 가상 사이, 혹은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속성인 가상이라는 가능성과 잠재성을 드러낸다.74)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디지털 신체의 개념은 단순히 인간을 기계주의적인 사이보그로 연장하여 인간의 신체를 대체,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이라는 존재론적인 정체성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벗어나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신체와 기계 인터페이스를 통한 사람과 테크놀로지 장치간의 전자적인 상호작용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내는

71) 전혜숙, 『포스트휴먼 시대의 미술-신체변형 미술과 비디오아트(ebook)』, p.8.

72) Ibid.

73) Ibid., p.100 참고.

74) 김용진, 「디지털 테크놀로지 환경에서의 신체성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p.52.

비물질적인 시 공간, 혹은 개념 안에서 인간은 가상의 사실적인 정체성을 가진 가상 신체로 변환되어 가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75)

이처럼 미술사에서 ‘신체’에 대한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으며, 오늘날까지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신체성 담론이 급격히 변화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신체’는 복잡하게 구성된 것으로서, 다양한 의미를 가진 장소이자 변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기술과 결합한 미디어 퍼포먼스에서 신체는 세계와 지각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로서 실험적 역할을 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바로 앞서 언급한 디지털 신체성이라는 개념이 미디어 퍼포먼스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확장되는지 세 가지 사례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75) 김용진, op. cit., p.52.

제2절 신체성이 강조된 미디어 퍼포먼스에 대한 사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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