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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를 규정하는 용어들

문서에서 사회통합을 위한 바른 용어 (페이지 62-79)

(1) 자본주의와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용어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

용어 사용에 있어 가장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분야가 시장경제를 규정하는 용어들에서이 다. 이런 유형에 속하는 용어는, 시장경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관점이 내재되어 있고 그래서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에서 가장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경제를 규정하 는 가장 일반적인 용어들로는 자본주의가 있다. 자본주의라는 용어 자체는 시장경제를 비판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비판적 관점에서 자본은 흔히 노동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은 이 관점에 따르면 서로 투쟁하고 자 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착취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마치 이 사회체제 아래에서는 자본을 중시하고 노동을 경시하 는 듯한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다. 이 점을 우려하여 최근에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라 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 대표적인 자유시장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는 이 용어가 자본축적의 중요성을 포착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특히 자본재의 사적 소유를 금지한 사회주의(socialism)에 대비해서 자본재의 사적 소유와 거래를 허용하는 체제를 자본주의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적절한 명 명일 수 있다. 자본축적은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물고기를 잡는 노동은 창과 결합될 수도 있고 그물과 결합될 수도 있다. 그물은 자본축적의 결과 만들어진 생산수 단인 자본재이다. 그물을 사용할 때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므로 고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더 나아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자본축적은 필수적이다.

더구나 자본재의 사적 소유와 그 거래가 허용되지 않으면 특정 자본재들에 대한 가격이 형성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가격들이 없으므로 자본재들을 고용하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다양한 여러 생산방법들 가운데 어느 방법이 경제적인 방법인지 계산할 수 없게 된다. 미제 스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소위 합리적 경제계산의 불가능성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현재 우리는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식정보 경제 혹은 지식정보 사회 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지식이나 정보가 실제 적용되기 위해서 자본이 필요 하다. 비록 그물을 짜는 기술을 알고 있더라도 그물을 짤 동안 고기잡이를 할 수 없으므로 당장 물고기로 허기를 채워야 한다면, 그물이 만들어질 수 없다. 자본축적은 인류의 번영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자유시장경제는 개인들의 저축과 상속을 통한 자본의 축적이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미제스가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수용한 것은 바로 이런 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 다. 그래서 이런 미제스의 논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라는 말이 전혀 어색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자본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기피할 것이 아니라, 노동과 대립되어 이해할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자본이 노동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임을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일반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자본을 중시하고 노동을 경시하는 체제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감안할 때 자본주의라는 용어 대신 시장경제라는 용어로 대체될 수 있는 경우에는 굳이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고집할 필 요는 없다고 본다.

사실 자본주의라는 용어 자체보다도 문제가 많은 것은 그 앞에 여러 수식어가 붙는 oooo 자본주의와 같이 자본주의를 잘못 규정하고 있는 용어들이다. 특히 문제가 많은 실제 사례들 로서는 약육강식 자본주의, 정글자본주의, 승자독식(winner-takes-all) 자본주의, 부패 자본주의, 약탈 자본주의, 천민(賤民)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등이 있다. 시장경제 아래에서의 경쟁이 극단적으로 일어난다고 가정한 목 따기 경쟁(cut-throat competition) 과 같은 용어도 자본주의 자체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일어나는 경쟁과정을 잘못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현재의 자본주의를 더 나은 유형의 자본주의로 변혁시킬 필요성을 암시하는 용어들, 예를 들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따뜻한 자본주의와 같은 용어들도 재검토가 필요한 용어들이다. 자본주의를 잘못 규정하는 이런 용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학문적 연구 보다는 주로 시장경제에 비판적인 언론에서 사용되고 이를 여타 언론에서도 무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중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오히려 더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논의한 oooo 자본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어 자본주의를 잘못 규정하는

용어가 아니지만 시장경제의 속성을 왜곡된 의미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번역어도 있다. 예 를 들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시장경제의 본질적 속성에 대해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많은 번역 가운데 하나가 laissez-faire의 번역어인 자유방임주의이다.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를 규정하는 용어들에 대해 검토하기 전에 우선 이 번역어를 검토하고 대체 적인 번역어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Laissez-faire는 보통 자유방임주의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 번역은 마치 개인들이 책임 은 지지 않고 자유만을 누리려는 주장인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많다. 방임이라는 말이 무책 임성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자유주의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 는 것이기에 이 번역용어에 문제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자유방임주의에서 방임 이라는 말을 방종에서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 간섭하지 않고 “완전히” 맡긴다는 뜻으로 해석 한다면 다른 번역어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방임주의라는 용어가 주는 인상은 개인들에게 완전히 맡긴다는 정도까지 그 의미가 전달되는지 모르지만 그 책임을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한 주체가 진다는 의미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liberalism이 경제활동의 자유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약을 가하고자 하는 반면 성-매매나 낙태와 같은 개인적 자유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개인들의 선택을 존중하 는 태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변질됨에 따라 이 liberalism이란 용어는 미국에서 과거 유럽에서 의미하던 liberalism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유럽에서의 전통적 의미의 자유주의를 지칭하기 위해 liberalism 앞에 classical이라는 형 용사가 붙어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라고 불리기도 하였고 흔히 자유지상주 의로 번역되는 libertarianism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사례에서처럼 우리도 자유방임주의라는 번역어 대신 다른 번역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체 번역어의 하나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방임 대신 책임을 넣은 자유책임 주의를 고려해 볼 수도 있고, 혹은 정부의 경제개입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이를 반(反)간섭주의 등과 같은 다른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직 자유방임주의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자유방임주의라고 표시한 후 괄호를 해서 반간섭주의 등을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나 사회교과서에서 자유방임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면서 곧바로 자유방임주

의이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정부가 개인에게 간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했던 것은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자유방임주의는 학생들에게 무의식 적인 가치판단을 주입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자유책임주의는 조 어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반(反)간섭주의 정도가 적당하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과도기적 으로 자유방임주의 뒤에 괄호를 넣어 반간섭주의라고 표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

약육강식 자본주의, 정글자본주의,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경제

시장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정글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시장경제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일반적으로 대통령 선거와 같은 중요한 정치행 사에서 높은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시장경제의 결과를 더 많은 득표를 위해 재분배해 주기 위해서는 현재의 결과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전제가 필요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대선에서 한 대통령 후보는 시장경제가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 라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약육강식은 동물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이다. 대부분의 자연애호가들은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동물들의 경우 단지 생존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이것이 비도덕적이라든지 하는 개념을 적용할 수 없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일부는 이런 약육강식은 더 강한 유전인자가 살아남도록 하는 자연스런 질서라고 설명한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시장경제를 약육강식의 세계로 묘사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 비유가 아니지만, 흥미로운 것은 사회비평가들이 시장경제를 정글 속 약육강식에 비유할 때 약육강식을 사악한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시장 체제를 유지한 덕분에 획기적인 생산증 대로 우리 인간들은 짐승과 다른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고, 약육강식이라는 벌거벗은 생존 경쟁으로부터 비켜나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 비평가가 시장경쟁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정도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기에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고 다른 사람들은 더 적은 돈을 벌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라면, 약육강식이라는 것은 잘못된 비유이다. 자원이 희소하지 않으면 그 어떤 사회체제를 선택하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자원이 희소하므로 어떤 방식으 로든 이 희소한 자원들을 개인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경쟁의 발생 은 필연적이다.

이를 배분하는 방식에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그 누구든 사람들이 소비자들의 자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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