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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시범사업 단계와 외환위기 시기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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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시범사업 단계와 외환위기 시기의 의미

1996년부터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실시되기까지 약 5년간은 우리 나라 자활지원사업의 내적 열기가 가장 충만했던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동 안 철거민운동을 통해 발전해 온 빈민지역운동의 열정, 노동자 생산협동조 합의 가치 그리고 빈민지역에 뿌리내리려는 활동가 집단들이 헌신성이 결 합되어 빈곤층의 자활지원이라는 새로운 사업으로 모인 셈이었다. 때마침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그동안의 취약한 사회안전망이 가진 문제가 폭발했고, 사회전체가 공공근로다 실업대책이다 우왕좌왕할 때 자활지원사업은 새로 운 희망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살포식으로 전개될 뻔 했던 대규모 공 공근로사업들이 그래도 자활지원사업의 경험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 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다.

또 이때는 민간이 제기한 생산공동체 ‘운동’을 정부가 수용하고 발전시 키는 소중한 경험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사회운동 차원에서 시작된 사업을 정부가 시범사업 형태로 지원하게 되었으며, 이어서 특별취로사업과 창업지 원, 공공근로의 일자리 지원 등 다양한 형태로 자활지원사업이 정착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보호된 고용, 보 호된 시장, 사회적 일자리 등의 다양한 개념으로 자활지원사업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우선 빈곤층의 자활지원을 위해서 일정기간 사회가 임금을 지원하는 ‘보 호된 고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특별취로사업 등을 통해 수용되었다. 이는 이후 취약계층의 고용유지와 자활공동체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는 일정기 간 사회가 임금을 지원해야 한다는 차원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자활공동체가 생산하는 상품 또는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반 민간 시장과 달리 취급해야 된다는 ‘보호된 시장’ 논의도 활발히 진행된다. 종전

‘보호된 시장’이란 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정도만 인정되었던 점을 감안하 면, 그만큼 빈곤층의 자활, 자립을 위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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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보호된 고용’, ‘보호된 시장’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만 시장에 의해 공급되지 않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를 뜻하는 ‘사회적 일자리’ 개념으로 확대된다. 특히 빈곤층에 대한 보육, 간병, 가사도우미, 급식서비스 등을 무상으로 제공함으로써, 수혜계층에게는 복지를 늘리고 이 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후 이 는 우리 사회정책의 중요 영역으로 발전하게 된다.

나아가 공동체뿐만 아니라 개인 창업지원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도 자활 지원사업을 계기로 활성화되었다. 특히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사업 중 에는 창업지원을 위한 상담, 기술지원, 판로지원 외에도 창업자금 지원도 포함되었다. 또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외국 사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마이크로 크레딧, 즉 무보증·무담보 소액 신용대출 사업을 도 입하자는 취지에서 ‘자활지원금고’에 대한 논의도 시작되었다. 이는 나중에 민간차원의 ‘사회연대은행’ 설립으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노벨 평화상 수상 자인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사례를 통해 더욱 확산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미소재단’ 등으로 더 강화되기도 했다.

결국 이 시기는 우리나라 자활지원사업의 원형이 갖춰진 때로, 이미 근 로빈곤 문제가 확산되던 시점에 터진 외환위기와 함께 자활지원사업의 개 념, 사업방식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되고 또한 정착되어 갔다. 더구나 이때는 빈민지역에서 활동해 온 민간과 복지부를 포함한 지자체들이 처음 으로 협력을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물론 조직논리와 경험의 간극이 워낙 컸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실험이기도 했지만, 우리 민관 협력의 역사에서는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워낙 취약한 공공사회안전망으로 인해 민간의 활력과 참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점에서 민관협 력의 새로운 가버넌스를 만드는 과정이었다고 할 것이다. 1999년 말 대통 령 비서실 ‘삶의 질 향상기획단’이 발간한 최초의 정부차원 자활지원사업 기조 보고서의 제목이 「공동체와 함께 하는 자활지원사업」이라는 것은 상 징적인 의미가 있다. 즉, 빈곤층의 자활지원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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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참여와 지원이 전제가 되며, 나아가 사회적 연대가 바탕에 놓여야 한 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빈곤층의 사회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자활지원사업은 완전히 다른 방향의 변형을 겪 게 된다. 즉, 자활지원사업이 그 토대로부터 갖춰야 할 연대와 공동체 지원 이 부각된 것이 아니라, 근로능력을 가진 기초보장 수급자들에 대한 조건부 과 차원에서 자활지원사업이 제도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다음 항에서 살 펴보자.

4.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이후의 자활지원제도 가.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과 자활지원사업의 위상 변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은 우리나라 사회안전망 나아가 사회정책사에 있어 일대 사건이었다. 1960년대 이래 고도성장 과정에서 ‘성장이 곧 빈곤 극복’이라는 사회적 믿음 하에서 변변한 사회안전망조차 구축하지 않은 상 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외환위기가 초래한 실업대란은 곧바로 빈곤과 사회 양극화로 이어졌으며, 이는 한국 사회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 이었다. 당시 생활보호법은 기본적으로 근로능력을 가진 가구원이 있는 경 우에 대해서는 극히 제한적인 공공부조만 제공하는 체제였기에, 일할 의지 도 있고 또 실제 일에도 참여하지만 빈곤상황에 놓인 이들 새로운 빈곤층 에게는 거의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1998년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거쳐 1999년 입법에 성공한 기 초생활보장제도는 당시까지 우리나라 사회안전망 체제를 짓누르던 두 개의 장벽을 넘어서게 된다. 즉, 공공부조는 사회가 제공하는 ‘시혜’라는 점과 근로능력자가 포함된 가구에는 현금급여를 하지 않는다는 장벽이 그것이다.

우선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층이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즉 ‘수급권’

을 명문화했다. 물론 실제 운용에 있어서 ‘권리’로서의 성격이 당장 큰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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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가져오기 어려웠지만, 공공부조를 권리로 인정한 것은 우리 사회정책 의 이념과 철학 발전에서 큰 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다음으로 기초생활보 장제도는 근로능력자에 대해서도 공공부조의 모든 혜택을 제공할 수 있도 록 한다. “일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남아있던 사회에 서 근로능력자에게도 완전한 공공부조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은 일대 사 건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이는 ‘권리’를 인정하는 문제보다 더 큰 장벽 을 넘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능력자에게도 공공부조를 제공하는 일에는 두 가지 핵심 전 제 내지 안전장치가 요구되었다. 우선 소득(정확히는 자산까지 소득으로 환 산한 소득인정액)과 빈곤선의 차액을 지원하는 보충급여의 원칙이었다. 이 것이 전제가 되어야, 비록 일정한 소득이 있더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근로능력이 있는 수 급자가 일에 참여하지 않고 있을 경우, 근로에 참여하고 또 궁극적으로는 수급에서 탈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었다. 이른바 근로능력자의 공 공부조 의존을 막고, 서구 복지국가들이 경험했다고 하는 ‘복지병’을 예방 하기 위해서는 근로참여를 조건으로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근로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도 생계급여를 지원하는 데 대한 안전장치이자 사회적 타협책으로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당시 이미 상당한 검 증을 거친 자활지원센터의 다양한 사업들은 이들의 근로활동 참여와 자활 촉진 인프라로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최저생활을 보장한다는 공공부조제도와 근로능력자의 조건부 수 급을 연계한 일은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가졌다는 것 이 곧 드러나게 된다. 무엇보다 근로참여를 게을리 했다고 최저생계 보장을 중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계, 교육, 의료, 주거 등 각 급여를 하나의 틀로 묶어둔 마당에, 근로참여를 하지 않았다고 이를 모두 중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근로능력을 가진 당사자는 그렇다 치더 라도 그 부양가족은 어찌할 것인가? 서구 복지국가들이 근로연계형 복지를 강화한다고 할 때, 이는 기본적으로 최저생계비와 연동된 것이 아니라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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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 실업부조와 연계된 제도이다. 미국의 TANF 제도가 기초보장제도의 조 건부과와 유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근로능력자에 대한

분 실업부조와 연계된 제도이다. 미국의 TANF 제도가 기초보장제도의 조 건부과와 유사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에서는 근로능력자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