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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외환위기와 자활지원사업의 성장

그러나 이들 초기단계 사업이 성공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정부가 센터운영비를 지원하기는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 취약한 노동력들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력 있는 생산공동체를 정착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창 업자금을 구하기 어렵기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1990년대 초부터 생산공동 체 운동을 벌여왔던 창설 멤버들과 달리 1997년 이후 지정기관들 중에는 사업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곳들이 많았다.

이에 1998년 초, 자활지원센터협회 준비위원회에서는 자활지원사업에 참 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한시적인 특별취로사업 지원을 요구하게 된다. 특별 취로사업은 생산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준비기간(직업능력 개발, 판로개척 등에 필요한 견습기간) 동안 임금지원을 통해 기초자금(손익분기점에 도달 할 때까지의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또 이를 계기로 빈곤 층 자활지원을 위해서는 보호된 시장과 고용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성화 되기도 했다.

다. 외환위기와 자활지원사업의 성장

1998년 초까지의 자활지원센터 활동은 종전의 생산공동체 모델을 기초 로, 참여자의 헌신성과 노력만으로 성공사례를 만들려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이유로 자활지원사업이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성공적이었던 일부 지역의 모델을 복제하기 위 해 노력했지만 시장여건은 결코 간단치 않았던 것이다. 이에 자활지원센터 협회 차원에서 특별취로지원사업을 요구했는데 이는 때마침 불어 닥친 외 환위기 대책을 계기로 대폭 수용된다. 즉, 건강하고 기능수준이 높은 사람 들까지 심각한 실업난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누적된 빈곤과 불안정 노동을 겪은 사람들의 자활을 위해서는 사회적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수용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공익적으로 필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공급되기 어려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3의 영역(제3섹터)에 대한 논의도 활성화된다. 이에 따라 자활지원센터는 특별취로사업을 이용하여 무료 청소·도배사업이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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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거쳐 1998년부터는 자활공동체 사업도 활성화되기 시작한 다. 이는 무엇보다 자활공동체들이 특별취로사업과 공공근로 민간위탁사업 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건비 지원을 활용한 사업경쟁력 확보가 가능 했기 때문이다. 공공근로사업의 경우 1998년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확대되 었는데, 사업의 발굴과 인력관리가 논란꺼리였기 때문에 기존의 자활지원센 터는 ‘검증’된 민간 수탁조직으로 인기가 있었다. 또한 정부나 공공기관 외 에도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가 1998년부터 연간 수십~수백 억 원 규모로 실업극복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중 상당수를 자활지원센터에 위탁하게 된 다. 또한 자활지원센터에 생업자금융자 대상자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이 부 여됨으로써 자활공동체 창업자금 확보도 수월하게 된다. 그만큼 자활지원센 터들 간의 정보교류와 경험공유가 활성화된 것은 물론이다(표 2-5 참조).

〈표 2-5〉2000년 초까지 자활지원센터의 자활공동체 현황

사업분야 시행센터 (사업체명)

봉제 관악(나눔물산), 노원(실과 바늘, 우리품새), 대전(솜씨 공동체), 성북 (들무새), 부산동구(MC어패럴)

청소용역 관악(푸른환경), 노원·성북·울산북구(늘푸른 사람들), 부산사상(다솔용역)

건설

관악(비젼, CNH), 노원(나눔건설), 마포(그림같은 집), 성북(두레건 축), 천안(성노건축), 부산사상(창조하는 사람들), 대구북구(녹색마을, 풀비), 대구남구(일구건축), 인천(다산건설)

헌옷 재활용 성북(늘푸른 마을), 울산북구(자린고비) 음식물 재활용 전주(되살림사업단), 성북(음식물재활용 사업단)

일반 재활용 관악(재활용센터), 광주남구(재활용센터)

간병인 마포(약손엄마회), 노원(나눔간병인), 인천동구(한마음도우미), 광명(베 이비시터)

세탁 마포(아름다운 세탁나라)

먹거리 마포(오곡나눔, 맛을 만드는 사람들), 천안(늘푸른 식품)

자료: 김승오(2009: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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