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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복지국가 형성과정에서의 연대와 보편주의

본 보고서에서는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과정을 네 단계-응급구조 시기, 개발국가 시기, 민주화 시기, 외환위기 이후 시기-로 구분하여 각 단계에 서의 연대, 시민권과 보편주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과 그 경로의존적 결과들을 기술하고자 하였다. 먼저, 응급구조 시기는 한국 전쟁과 분단이

라는 특수 상황으로 인하여 서구 복지국가에서 권력 자원 동원에 중추적 인 역할을 담당했던 ‘계급’ 자체가 실종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 결과 초 기 노동계급의 형성 단계부터 연대의 억제와 억압에 직면함으로써 연대 의 실질화 결과인 복지국가 지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외원과 민간 중심의 복지공급체계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최근까지 민간 복지공급자의 강한 정책네트워크 구축과 영향력이라는 정책적 유산으로 이어지게 된 다.

개발주의 시기 복지제도의 특성과 그 영향은 첫째, 경제개발 중심으로 국가 기능이 편재되고 국가의 복지 제공 기능은 주변화 됨으로써 현재까 지도 국가의 역할에 대한 전도된 인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둘째, 권위 주의적 개발국가에 의해 도입된 복지제도의 보수적, 최소주의적 성격과 성장주의적 관점 또한 오늘날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와 같은 문제들을 야 기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셋째, 권위주의적 정권의 성격으로 인해 사회복지나 복지국가를 둘러싼 민주적 정책 아레나가 형성되지 못함으로 써 시민사회가 복지국가에 대한 학습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민주화 이후 이는 크게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국가중심적 접근은 유효하다. 마 지막으로, 초기 사회복지제도의 형성은 정권의 정당성 확보나 산업화 필 요성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이로 인해 정작 ‘안정’의 기제가 필요한 불안정 계층보다는 비교적 고소득의 안정적 계층부터 사회복지제도가 적 용되었다. 그 영향은 사각지대의 편재와 분절화라는 형태로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외환위기 전까지 4대 사회보험의 도입과 확대, 사회서비 스 관련법의 제정, 최저임금제도 도입 등 사회복지와 관련 제도의 도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개발주의가 소멸되기보다는 권위주의적 개발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로 그 형태와 성격을 바

꾼 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쳤다. ‘성장 중심’과 ‘시장 중심’성으로 인해

‘저부담․저복지’의 기조가 강화되었으며,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전체 예산 에서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전보다 오히려 감소하거나 정체되었 다. 또한, 하향식 사회보험 확대로 인한 한계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사실상 사회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하층의 상당수는 사회보험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배제되었고 이는 이후 전 국민에게로 사회보험이 확 대된 이후까지 ‘빈 허리’의 문제를 남겨놓게 된다.

외환위기는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산업구조조정, 사회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의 문제점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됨으로써 사회복지 확대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또한 진보 적 성격의 정권이 연이어 집권한 것도 이 시기 사회복지의 급격한 확대와 복지국가로의 도약의 주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사회복지 발달사에서 ‘결정적 시기’라 칭해질 수 있을 만큼 사회복지의 제도적 확 대, 새로운 제도들의 도입, 국내총생산에서 공적 사회지출이 차지하는 비 중의 급격한 증가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복지국가 발달 과정에서 의 경로의존적 한계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는 그 당시의 경제위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복지에 대한 잔여주의, 선별주 의, 워크페어적 성격을 드러냈으며, 실제로도 3대 사회보험의 형식적 개 보험화 이외에 구휼적 성격의 생활보호제도를 현대적인 국민기초생활보 장제도로 전면 개편한 것 외에 두드러진 복지국가로의 전환 의지를 찾기 는 어렵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의 사회투자국가는 이전 정부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관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근로장려세제의 도입과 사회 서비스 확대 과정 등에서 비춰지는 친시장중심성을 통해 볼 때, 개발주의 유산이 전략적 선택과 선택적 투과성의 범주를 여전히 제약하고 있었다 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시기 사회보험의 개보험화가 이루어졌음에

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정 근로자와 영세 자영자의 상당수는 사회보험 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게 된다. 두루누리 지원사업 등 이들 불안정 근로 계층을 위한 지원사업이 확대되어 왔지만 사회보험의 ‘빈 허리’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산업화 전략과 일자리 창 출을 강조함으로써 민간 공급체계를 주도로 사회서비스가 급속하게 확대 됨으로써 공공성과 서비스의 질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한계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2014년을 기점으로 국내총생산의 10% 이상을 공적 사회 지출로 사용하고 있으며, 형식적으로는 상병급여를 제외하고 선진 복지 국가에서 갖추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복지제도들을 구비하고 있다. 단기 간의 복지 확대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지만, 하향식 복지 확대의 한계로 인한 ‘빈 허리’ 문제, ‘공공성이 결여된 보편주의’의 문제, 여전히 지배적인 성장중심적 개발주의 인식의 유산 등이 극복해야 할 문 제로 남아 있다.

4. 결론

지금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한국 복지국가는 지난 20여 년, 좀 더 확 장해서 30여 년간 도약에 가까운 발전을 거듭해 왔다. 하지만 그동안 확 대되어 온 사회복지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시장의 불안정성이 우리를 엄 습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금까지의 복지 확대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많은 복지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복지국가’에 대한 사회적 학습을 필요로 한다.

먼저, 개발주의적인 유산을 극복하고 좀 더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균형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성장중심주의, 경쟁주의적 교육, 가족 이기주의의 ‘마음의 습속’은 여전히 한국의 정책결정자와 시민 모두의 의 식을 지배하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인 것’ 못지않게 ‘사회적

인 것’이 강조되는 학교교육과 시민교육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다.

둘째, 복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빈 허리’의 문제는 향후 우리가 해결해 야할 가장 중요한 숙제이다. 가장 불안정한 집단들—저소득의 불안정한 비정규직, 영세자영자, 미취업 여성 등—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제’로서의 복지국가의 기능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노 동시장의 이중구조화, ‘늦은 출발과 이른 조정’으로 인해 이 문제가 더 심 각한 상황이다. 소득보장에 있어 좀 더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 다.

마지막으로,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확보는 늦었지만 서둘러야 할 과제 이다. 사회서비스의 급속한 확대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서비스 본연 의 공공성과 질 문제는 소홀하게 다루어진 감이 없지 않다. 또한 경로의 존적 유산과 시장친화적 접근으로 인한 민간 중심의 공급체계 양산은 그

‘득’만큼이나 ‘실’도 적지 않다. 사회서비스가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면 국가의 높은 재정 투입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여 기에 더해 보편적 서비스와 무상 서비스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한 재정리 가 필요하다. 또한 현금급여와 사회서비스의 ‘재균형화’ 필요성도 제기된 다.

*주요용어: 한국형 복지모형, 복지국가, 연대, 시민권, 보편주의, 노인빈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