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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의 시민권론과 복지국가의 형성

제2절 사회적 위험과 시민권의 형성

2. 마샬의 시민권론과 복지국가의 형성

가. 시민권론의 주요 내용

그렇다면 자본주의 경제의 탄생과 국민국가의 형성이 어떻게 복지국가

1) 이러한 의미에서 아담스(Adams)는 리스크를 ‘세계최대의 산업’이라고 칭하고, 리스크는 더 이상 자연재해 혹은 외적 위협요소에 한정되지 않으며, 그 원천은 사회적 변화, 경제 적 힘, 과학발달, 기술변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리스크의 관리가 보험계리학에서 사 용되는 통계학의 탄생으로 가능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Adams, 1995, p.31;

Kemshall, 2002 재인용).

를 견인했을까? 이와 관련해서 스타인 로칸(Stein Rokkan, 1921-1979)의 국민국가 형성과 발전 과정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서구에서의 국민국가 성립과 발전 과정을 네 단계로 구분한다. 먼저, 국 가형성(State Formation) 단계로 재정적, 군사적 국가의 발달 국면이다.

이 단계는 엘리트 수준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통일, 자원의 동원 을 위한 조직의 창출(조세관료), 국경의 공고화(군대) 그리고 내적 질서유 지(경찰과 군대) 등을 포함한다. 두 번째 단계는 국민국가건설(Nation Building), 즉 국민국가의 구축 혹은 성장 단계이다. 이 단계는 징집, 학 교, 매스미디어, 종교적․언어적 표준화를 통해 엘리트와 주변인구 부문들 간에 직접적 계약이 형성되는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참여 (Participation), 즉 정치권의 평등화를 통한 대중민주주의 발달과 시민 권의 구축 단계이다. 이 단계는 주변인구의 참여 증가, 시민권 및 정치권 의 제도화(참정권, 의회), 그리고 정치정당의 창출을 포함한다. 마지막으 로 네 번째 단계는 재분배(Redistribution), 즉 자원, 재화, 급여의 재분 배를 통한 복지국가 발달과 사회적 시민권의 발달 단계로, 이 단계는 누 진조세와 이전급부를 통한 공공복지체계(사회보장, 보건, 교육, 주택)의 창출과 경제적 조건의 평등화를 위한 공공정책을 포함한다(Rokkan, 1968; Flora and Alber, 1981, 제2장 재인용).

로칸의 단계설에 의하면, 복지국가는 국민국가의 형태적, 실질적 통일 과 더불어 대중 민주주의가 발현된 이후에야 가능하다. 이는 피터 알코크 (Alcock, 2016, p.24)에 의해 유사하게 주장된다. 그에 의하면 복지자본 주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선진경제를 지배하는 정치경제학이었으며, 이 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네 가지 핵심적인 제도적 혁신에 의해 가 능했다. 완전한 민주주의, 복지국가, 현대적 노사관계, 그리고 교육의 권 리와 현대적인 대중교육체계가 그것이다.

이러한 논의의 바탕에는 토머스 험프리 마샬(T. H. Marshall, 1893-1981)의 시민권론(Citizenship and social class, 1950)이 존재 한다. 마샬에 의하면 국민국가 구축을 둘러싼 투쟁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는 누구를 시민으로 간주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초기 국가형성 단계에서 시민은 조세를 낼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되는 귀족이나 부르주 아계급에 한정되었다. 시민권은 전형적으로 재산을 소유한 그리고 자신 들의 부(富)에 기반하여 정치적 과정을 지배하는 소규모 집단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후 참정권의 확대와 함께 시민권은 남성 노동자계급으로 확대 되었다. 참정권의 확대는 1주1표의 자본주의 경제시장 공간에서 노동자 권리의 제약을 보상받는 방법으로 1인 1표의 정치적 아레나를 이용할 수 있는 여지, 즉 국가에 의한 노동의 보호와 사회적 임금(social wages) 확 보 가능성을 확장했다. 이는 노동권, 복지권과 같은 사회권 강화를 견인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사회권의 확대와 함께 시민권 은 여성을 포함한 전 국민으로 확대되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마샬의 시민권은 공민권(자유권), 정치권과 사회권 으로 구성되는데 이 세 가지 권리는 앞서 로칸의 국민국가형성의 역사적 단계와 대략적으로 일치한다. 자본주의적 시장관계와 빈곤, 부적절한 교 육 등은 공민권과 정치권을 형식적인 권리로 전락시키는 주범으로서 사 회정책의 필요성을 창출하는 모순들이다. 그러므로 국가형성의 마지막 단계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평등을 시민으로서 빠짐없이 모두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게끔 보장하는 사회프 로그램을 발전시키는 것이다(Van Kersbergen & Vis, 2017, pp.106-107). 마샬에 의하면 사회적 시민권은 복지국가와 현대적 사회 입법이 출현했던 20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Marshall, 1977). 또한 사회적 시민권의 핵심에 복지의 권리가 위치하

며, 이 권리는 다양한 제도들의 존재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특히 시민적 평등의 기초 위에서 이 같은 권리를 제공할 수 있는 관료제, 국가의 사회 복지 실천을 위한 재정적 수단으로서의 조세체계, 부의 생산을 위한 주된 메커니즘으로서의 자유시장경제의 지속 그리고 기본적인 평생 교육체계 로서의 다양한 교육제도 등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Marshall, 1950).

필자는 마샬의 세 가지 시민권 개념인 공민권, 참정권, 사회권이 복지 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개인의 자유화, 정치화, 연대화 과정을 보여준다 고 주장한 바 있다(여유진, 2017b, p.463). 이는 대중이 중세 봉건제 사 회의 인신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지만 ‘빈곤한’ 개인으로, 자신의 노 동을 판매함으로써만이 생존 가능한 노동자계급으로, 그리고 보편적 의 무과 권리를 공유하는 시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정 치화 과정 다음에 연대화 과정을 위치 지은 것은, 익명의 개인 간에—권리 와 의무에 대한—암묵적 계약을 통해 사회적 위험에 대해 실질적인 보장 을 제공받는 것을 ‘연대의 실질화’로 보았기 때문이다.2) 이러한 점에서 알코크(Alcock, 2016, p.22)는 사회권을 “세금과 보험 기여금을 통해 집 합적 자원에 대해 기여한 데 대한 보상으로 국가의 집합적 자원을 요구할 권리를 시민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사회권은 모두를 위 해 제공되는 집합적 헌신에 의존하고, 우리 모두는 이로부터 혜택을 누리 는 데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서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 시민권론의 의의와 한계

복지국가에서 시민권 개념이 갖는 의미는 “잔여적 급여 형태에 반대되

2) 이는 뒤에서 논의될 복지국가 형성의 기반으로서의 연대의 형성과는 다른 차원이다.

는 것으로서 제도적 급여 형태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준다는 것”이다(미 쉬라, 1981, p.64).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포괄적이며 권리로서 주어지는 사회적 급여는 어떤 형태로든지 그것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 는 작업이 필요하며, 시민권 개념은 바로 그러한 정당성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셜의 시민권론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논의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민주적 복지자본주의에서 사회권이 경제적 공민(자유)권, 정치적 참정권과 동등한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는 권리인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쉬라는 “사회권은 공민권이나 정치권처럼 자본주의사회 에 그렇게 굳게 뿌리를 내릴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고 주장한다(미쉬라, 1981, pp.66-67). 사회권은 공민권이나 정치권과 같은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도 서구 민주주의사회에서 공민권이나 정치권의 경우 그 본질이 무엇인 가에 대한 것이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회권은 모든 나라에서 정치적 논쟁의 원인이자 실질적 내용을 형성하고 있다. 공민권 과 정치권이 게임의 규칙과 관련된 것이라면 사회권은 사회적 생산물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근본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 한 이유로 사회권은 두 개의 다른 권리와 동일한 종류의 규범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미쉬라, 1981, pp.60-61). 유사한 맥락에서 카우프만 (Kaufmann, 2013, pp.3-4)은 민주적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요소들 중 ‘복지(국가)’ 요소는 다른 두 개, 민주주의와 시장보다는 논쟁적인 요 소라고 주장한다. ‘사회적인 것’을 확인하는 문제, 즉 ‘사회적인 것’이 경 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구분되어서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오늘날 분명 치 않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복지국가에 대한 정치이론에서 사회권이 공민권과 정치권에 비해 그 정당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사회권이 끊임

없는 논쟁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시민권론의 또 다른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은 그것이 자유주의에 기반 을 둔 논의라는 점이다.3) 마샬은 복지국가가 평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는 것을 인식한 최초의 사회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사회서비스의 확 장이 소득의 평등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며, 그것은 사회정책의 다른 분과 에 속한 문제”라고 보았다. 또한 사회복지에서 소득 재분배와 삶의 기회 재분배는 수직적(계급 간) 재분배라기보다는 수평적(계급 내) 재분배라는 점에서 복지의 제공은 ‘불평등의 구조가 건설될 수 있는 토대로서 평등’

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arshall, 1963; 미쉬라, 1981, p.54 재인용). 실제로 마샬의 시민권론은—그의 모국인—영국적인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는 논의이다. 영국에서 빈민법 전개와 극복의 역사적 흐름은 18세기 시장화, 19세기 민주화, 20세기 복지국가화라는 근대적인 민주 적 복지자본주의 형성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권리로서의 복 지와 보편주의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최저보장과 정액기여․정액급여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요소가 깊게 배어 있는 베버리지보고서의 구상과

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Marshall, 1963; 미쉬라, 1981, p.54 재인용). 실제로 마샬의 시민권론은—그의 모국인—영국적인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는 논의이다. 영국에서 빈민법 전개와 극복의 역사적 흐름은 18세기 시장화, 19세기 민주화, 20세기 복지국가화라는 근대적인 민주 적 복지자본주의 형성 과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권리로서의 복 지와 보편주의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최저보장과 정액기여․정액급여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요소가 깊게 배어 있는 베버리지보고서의 구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