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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복지국가 성장 과정에서의 연대의 실질화

1. ‘연대주의’의 탄생

그렇다면 18세기 공민권과 자유권에 머물렀던 시민의 권리가 어떻게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권리의 확대로 귀결될 수 있었는가? 즉, 20세기 복지국가 탄생 기저의 추동력은 무엇인가?

복지국가 발달의 추동력을 설명하기 위해 산업화이론, 구조적 맑시즘, 권력자원동원이론, 사회민주주의이론, 국가중심이론 등 다양한 이론적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산업화이론과 구조적 맑시즘은 경제중심적 관점, 권력자원동원이론과 사회민주주의이론은 정치중심적 관점, 국가중심이 론은 국가중심적 관점에서 복지국가의 탄생과 발전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와는 또 다른 흐름으로 복지국가의 사상적 기초를 형성하는 연대 (solidarity) 이념에 대한 논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연대 이념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복지국가 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연대(solidarity)라는 용어는 19세기 초를 전후하여 정치적으로 사용 되고 19세기 후반에 비로소 사회학 분야의 학술적 용어로 재규정되기 시 작하였다. 정치적으로 연대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기에 로베스피에르 가 국민의회에서 처음 사용한 ‘자유, 평등, 우애’ 중 우애(fraternity)의 개념에 기반하여 발전한 개념이다(Takuji, 2014; 서유석, 2010; 강수택, 2012). 낭만주의적인 개념인 우애를 대신하여 과학적 개념인 연대 개념 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 전후로 알려져 있다.4) 프랑스 정치 사상가이며 생-시몽의 제자인 피에르 르루가 연대 개념을 사용한 것을 계 기로 정치사상에 도입된 것이다. 이후 레옹 부르주아의 『연대』(1896)를 통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그렇다면 정치사상으로서의 연대 개념과 연대주의가 왜 프랑스를 중심 으로 탄생하고 발전하였을까? 이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절 대군주제에서 공화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혁명과 반혁명을 거듭했던 프랑스의 역사와 깊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와 실용주 의에 기반하여 무혈혁명5)으로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영국의 경우 구체제 의 귀족 세력과 신진 부르주아 세력이 일정 정도 중복되면서 정치엘리트 를 구성하였고, 이들 정치엘리트들이 국민국가 형성을 주도하였다. 이는 1900년 노동당이 형성되기 이전에 토리당으로 불리던 보수당과 휘그당 으로 불리던 자유당이 정치의 중심 세력이었던 데서도 추정가능하다. 독

4) 연대라는 용어는 원래 프랑스어 solidritè에서 나왔으며, 연대보증을 뜻하는 법률용어로 출현했다고 한다. 연대 개념이 이러한 법률적 의미를 넘어 도덕적․정치적 의미를 띠는 용 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라는 것이 강수택(2012, pp.

33-24)의 설명이다. 특히 1948년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연대이념이 채택되면서 우애(형 제애) 이념을 점점 대체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강수택, 2012, p.36).

5) 1688년 명예혁명을 말한다.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을 입헌군주제와 의회민주주의의 시발점 으로 본다.

일의 경우 철혈재상이라 불리던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1815-1898)를 필두로 한 지방 호족인 융커(Junker)가 프로 이센 통일과 후발 산업화의 과업을 동시에 수행할 주도적인 세력으로 등 장하였다. 즉, 영국의 경우 자유주의적 엘리트가, 독일의 경우 기독교 보 호주의(partenalism)적인 색채가 강한 지방귀족 엘리트가 국민국가 형 성(nation state building)의 과업을 수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전자는 일차적으로 빈민법의 발전을 통해, 후자는 사회보험의 시행을 통해 산업 화 과정에서의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대혁명으로 구체제(앙시엥레짐, ancien régime)가 일시에 붕괴 하고 공화주의자들에 의해 의회가 장악되었다. 혼란기 동안 기존 질서는 무너졌지만 새로운 질서는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화주의자들은 그들 의 지지기반을 민중으로부터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입헌군주제 영 국과 제국 독일의 지배엘리트들과 달리 그들의 정당성을 민중에서 찾았 던 프랑스의 공화주의자들에게 이질적이고 흩어져 있던 민중의 소속감과 결속력을 다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정치 선동적 용어로서 자유, 평등과 함께 ‘우애’의 구호를 등장시켰 다. 이 중 우애가 후에 ‘연대’의 구호와 연대주의로 재탄생하게 된 것은 주지한 바와 같다.6)

이러한 연유로 초기에 연대라는 용어는 학술적인 용어보다는 정치사상 적 용어로 더 빈번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연대에 대한 다양한 정의에서도 드러난다. 윌트(A. Wildt)는 연대를 “가치 있고 정당한 것인

6) 다쿠지(Takuji, 2014, p.25)는 연대주의를 “제2제정기부터 제3공화정 초기까지 활동했던 공화주의 철학자 샤를 르누비에와 알프레드 푸예, 앙리 마리옹 등이 1848년의 우애 사상 을 비판하는 가운데 형성되고, 제3공화정 중기에는 급진공화파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 로 기능하면서 레옹 부르주아, 페르디낭 뷔송 등으로 이어졌으며, 학계에서는 에밀 뒤르 켐, 셀레스텡 부글레 등이 체계화한 폭넓은 사상적 조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 다.

데도 위협받고 있다고 간주되는 공동의 목표 또는 다른 사람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태도, 특히 불의와 같은 위협에 맞선 투쟁에 동참 하는 것. 광의로는 단결, 사회적 결속, 공통 소속감. 일상적 의미 내지 협 의로는 불의에 맞선 투쟁같이 공동의 목적을 위한 실천적, 정서적 참 여”(Wildt, 1999; 서유석, 2013, pp.387-388 재인용)로 정의하고 있다.

마슨(A. Mason)은 연대를 “그 구성원들이 집합적 의사결정 과정의 결과 를 스스로 따르는 경우, 또는 자신에게 피해가 되더라도 다른 구성원의 복지 증진을 위해 나서는 경우”(Mason, 1998; 서유석, 2013, p.387 재 인용)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를 종합해 보면, 연대는 공동선 또는 공동 의 목표에 대한 의식적 인지, 이러한 인지에 기반한 사람들 간의 소속감 과 유대감,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적 헌신을 요소로 한다.

요컨대, 연대 또는 연대주의는 프랑스 혁명기 공화주의자들이 국가를 공화주의 이상의 실현태로 만들기 위해 대중의 유대와 결속을 다지고 정 치화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이념으로 제시한 정치철학적 용어로 처 음 등장하였으며, 이후 사회학적 담론으로, 나아가 복지국가 제도에 융해 되어 있는 이념으로 그 용도가 확장되었다.

2. ‘연대’의 개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대는 제3공화정 중기에 레옹 부르주아의 『연 대』(1896)라는 저술을 통해 대중에게 보급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뒤르켐 이 이를 사회학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하면서 사회학적 용어로도 자리 잡 게 되었다(Takuji, 2014, p.170).

사실 연대 개념은 뒤르켐 이전에 사회학의 창시자인 콩트(Auguste Comte, 1798-1857)에 의해 먼저 체계화되었다. 콩트는 경제적 개인주

의에 기반한 자유방임주의와 집합주의에 기반한 공산주의 이념 모두를 거부하면서, 질서와 진보의 유기적 통합을 추구하였다. 그는 특히 사회유 기체를 통합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로서 연속성과 연대성을 제시하였다.

이때 연속성이란 전 세대들과의 관계를, 연대성이란 동시대인들 간의 관 계를 가리키며 이 두 원리 모두가 ‘인간사회의 질서를 안정화시키는 가장 중요한 원리’라고 주장했다. 또한 산업사회에서 분업은 연대를 탄생시켰 지만 동시에 사회해체의 원인도 될 수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뒤르켐의 연 대 개념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Comte, 1973; Comte, 2001; 강수택, 2012, p.42-43 재인용).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 1858~1917)은 막스, 베버와 함께 고 전 사회학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오늘날 연대 논의에 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이다. 그는 연대 사상을 정치(精緻)한 이론으 로 다듬어 학문적 주제로 자리매김한 인물이다(Takuji, 2014, p.201).

그의 학문적 주 관심사가 전산업사회와 산업사회에서의 연대의 차이와 특성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주저 중 하나인 『자살론』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뒤르켐은 산업화 과정에서의 사회해체, 분열, 아노 미에 관심을 가졌으며, 어떻게 하면 전근대적 결속이 현저히 약화된 산업 사회에서 사회통합이 가능할 것인가에 골몰했다. 이에 그도 콩트와 마찬 가지로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양자를 모두 거부하고 연대 논의를 출발점 으로 새로운 사회질서의 원리를 규정하고자 하였다(Durkheim, 1984;

강수택, 2012, pp.48-49 재인용).

특히 뒤르켐은 1883년 저작인 『사회분업론』에서 기계적 연대와 유기 적 연대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기계적 연대란 전자본주의 사회에서 유 사성과 공통의 신념, 감상 체계에 토대를 둔 연대를 의미한다. 기계적 연 대는 산업사회에서 분업의 확대로 인해 근본적 변화가 발생한다. 즉, 분

업과 개인적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집합의식에 기반한 연대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이 때 분업은 이전의 기계적 연대를 약화시키 는 주요 원인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출현하게 만드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고도로 전문화된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 협동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로 인해 형성된 연대, 즉 ‘차이점을 기초로 형성 된 연대’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유기적 연대라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

업과 개인적 활동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집합의식에 기반한 연대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게 된다. 이 때 분업은 이전의 기계적 연대를 약화시키 는 주요 원인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출현하게 만드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고도로 전문화된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서로 협동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로 인해 형성된 연대, 즉 ‘차이점을 기초로 형성 된 연대’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유기적 연대라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