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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이론적 고찰

한 나라의 미래를 예측하기도 어려운데 두 나라의 미래를 예 측하고, 두 나라의 국제관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 일이 더욱 어려운 것 은, 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정반대의 분석을 하는 경우가 가능하 기 때문이다. 예로서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후 미중 관계를 분석한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는데 어떤 전문가는 오바마 대통 령이 중국의 부상에 대해 아주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며 칭찬 하는가 하면1) 또 다른 분석가는 오바마 때문에 미국이 정말 몰 락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오바마의 대중 정책을 비판한다.2) 같은 현상을 분석한 책들이지만 저자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처럼 전혀 다른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사회과학자들 특히 국 제 정치학자들의 연구하는 대상은 그럴 수밖에 없는 연구 대상 일지도 모른다.

본 연구 역시 완벽한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이다. 필자는 국제정치학의 여러 가지 이론 및 사상적 계열에서 한 가지 특정 계열을 지지하는 학자이며 이 책도 그 같은 관점

1) Jeffrey A. Bader, Obama and China’s Rise: An Insider’s Account of America’s Asia Strategy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012)

2) Bruce Herschensohn, Obama’s Globe: A President’s Abandonment of U.S. Allies Around the World (New York: Beaufort Books, 2012); 브렛 M. 데커, 윌리엄 C. 트리플렛 2세(저), 조연수(역) 「중국 패권의 위험」 (서 울: 갈라북스, 2012) 등을 참조.

아래 작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에서 제시하 는 주장과 분석만이 정확하고 타당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학자가 그러하듯이 필자도 스스로 국제 정치라는 험난한 세상을 분석하는 여러 가지 시각 중에 가장 유 용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 책에서 필자는 미 중 관계를 분석하는데 가장 유용하다고 믿고 있는 관점에 대해 미리 설명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미중 관계의 미래

우선 본 연구는 국제정치의 두 가지 사상적 계열, 이상주의 (Idealism)와 현실주의(Realism) 두 가지 중에서 후자 즉 현실주의 적 관점을 택한다.3) 이상주의자들은 국제정치에서 국가들의 협 력 관계는 가능하며 훌륭한 국제법, 국제기구, 상호이해, 훌륭한 외교 등을 통해 국가들은 전쟁과 갈등을 회피할 수 있고, 평화 와 번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을 필두 로 1차 대전 직후 국제정치학이 독립된 학문 분야로 태동, 발전 하고 있을 무렵 대다수의 학자와 정치가들이 취했던 태도가 바 로 이상주의적 관점이다.

현실주의 혹은 현실주의자들이란 국제정치를 ‘현실적’으로 보 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국제정치학에서 현실주의자란

‘모든 국가들은 자국의 국가이익(national interest)을 위해서 노력

3)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분석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이춘근, 「현실주의 국제 정치학」 (서울: 나남, 2007)를 참조.

한다’는 관점을 취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는 국제사회라는 영역은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 있는 조 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정부상태’(anarchy)라고 가정 한다. 어느 나라든지 국가는 최고이며 독립적인 권리, 즉 주권 (sovereign)을 갖는다.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국가보다 상위의 권 위 있는 조직은 국제정치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상태가 무 정부상태이며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정치의 영역을 무정부상태라 고 가정하는 것이다.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가 없기 때문에 국가들 사이의 갈 등을 해결하는 궁극적 방법은 각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힘이 다. 도덕이나 국제법이 아닌 것이다. 국가들이 갈등을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국제정치는 ‘전쟁상태(state of war)’라 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국제정치 체제가 전쟁상태라면 전쟁이란 늘 일어나는 정상적인 국가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 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이처럼 전쟁상태인 무정부상태 속에 삶을 살고 있는 지구의 모든 국가들은 궁극적으로 자국의 생존을 위 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가정한다.

마치 개인들이 생명과 건강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것 처럼 국가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국가이익은 국가안보 (national security)인 것이다. 특히 국제정치는 개인들이 살고 있는 법치사회와 판이한 곳이기 때문에 국가안보는 더 중요하다.

전쟁 발발 가능성이 상존하는 국제정치 영역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국가들은 무장(武裝)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안보 문제가 해결된 후 국가들은 힘(power), 번영(prosperity), 영광(prestige)

의 가치를 추구하는데 이들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들 사이에 갈등이 야기될 수 있으며 심각한 갈등은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통해 해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4)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어떤 나라는 좋은 나라 어떤 나라는 나쁜 나라라는 감정적 태도를 지양(止揚)한다. 현실주의자들이 보기에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주의적 관점에 의하면 국 가들이란 무정부상태의 국제정치 상황 아래 자국의 생존과 번 영을 위해 쩔쩔매는 정치적 단위들일 뿐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가 이익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하고 궁극적인 수단은 스스로 보유한 힘(power)뿐이다. 결국 국제정치란 국가들의 힘이 충돌 하는 권력정치(power politics)의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5)

현실주의는 2차 대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제정치학의 패 러다임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국제정치학 이론 영역에서 막강 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제정치의 다양한 현상 중에 현실 주의 국제정치적 관점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적 대안들 이 제시되었지만 국가들이 사활 혹은 존망을 놓고 경쟁을 벌리는 분야를 설명하는데 있어 현실주의를 능가하는 이론은 없다. 미국

4) 예로서 작금 한일 간 영토분쟁중인 독도 문제가 평화적인 합의에 의해 해 결될 가능성이 있을까? 중국과 일본이 센가쿠/댜오위다오 분쟁을 평화적인 수단만으로 ‘완전’ 해결할 수 있을까? 2012년 9월 22∼28일자 Economist는 표지 기사에서 센가쿠 열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중국 사이에 전쟁도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5) 이춘근, Op. Cit. 참조.

과 중국이 향후 패권 경쟁을 벌인다면 그것은 두 나라가 국가의 사활과 존망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며 이는 당연히 현실주의 시각 에서 보아야 정확히 볼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이론도 점차 진화되고 있다. 1948년 간 행된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uah) 교수의

Politics Among Nations

을 필두로 1978년 간행된 케네스 월츠(Kenneth N. Waltz) 교수의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 그리고 2000년 간행된 미어셰이머(John J. Mearsheimer) 교수의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에 이르기까지 국제정치 현실주의는 3단계에 걸 쳐 진보해왔다.

1950년대를 풍미한 모겐소 교수의 현실주의를 고전적 현실주 의(classical realism)라고 말한다면, 1970년대 후반 케네스 월츠 교 수를 대표로 하는 신현실주의(neo-realism)라는 새로운 시각이 풍

미했었고, 2000년 이후 미어셰이머 교수의 공격적 현실주의

(offensive realism)라는 또 다른 현실주의 시각이 제시되었다. 모겐소 교수는 국가이익을 국가안보, 권력의 증진, 경제력의 향상, 자존심의 확대 등으로 설정하고, 이 같은 국가이익을 확보 하기 위해 국가들은 권력()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국가들이 힘을 증강시키는 행위는 사악한 행위가 아니라 당연한 행위다.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는 세상은 국가들로 하여금 힘을 증강시키 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아주 피곤한 곳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고전적 현실주의는 국가 및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들에게서 국력 추구는 거의 본능적인 일이라고 본다. 즉 국가나 개인은 누구나 권력을 증강시키려고 노력하는데 어느 수준에서 만족하

기보다는 국가들은 가능한 한 최고, 최대의 권력을 확보하기 위 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들 사이의 상호관계가 국제정치를 규정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고전적 현실주의를 비판하는 다양한 학설이 제시되었지만 1978년에 출간된 케네스 월츠 교수의 저서는 모겐소 교수의 고 전적 현실주의를 가장 체계적으로 비판하며 그 한계를 극복하 기 위한 시도라고 평가될 수 있다. 월츠의 신현실주의는 국제정 치학 발달사에서 구조적 현실주의 혹은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신현실주의)이라고 불린다.

우선 구조적 현실주의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처럼 국가들의 행동의 원천이 되는 것을 국제구조(international structure)라고 본 다. 국가들은 무정부상태라는 양호하지 못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에 모두들 힘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보는 것이 다. 모겐소 교수 등 고전적 현실주의자들이 국가가 힘을 추구하 는 것을 본능에서 찾고 있는 것과 다른 부분이다.

권력의 추구가 본능적이라면 국가들의 권력추구에는 한계가 없다. 본능에 한계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구조적 현실주 의에 의하면 국가들의 권력 추구에는 한계가 있다. 국가들이 권 력을 추구하는 이유 자체가 국제구조의 불리한 상황에서 연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리한 구조가 해소될 무렵, 즉 국가들 사 이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위협을 덜 느 끼게 될 무렵, 국가들은 힘의 추구를 중지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이다. 구조적 현실주의자들이 세력균형이론(Balance of Power

Theory)을 국제정치의 유일하고 고유한 이론으로 신주단지 모시

듯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과연 국가들의 힘의 추구가 상대방과의 균형을 이룩 하는 데서 만족하고, 적대적인 국가와 균형 상태에 도달한 경우 국가들은 더 이상 힘의 추구를 그만두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구조적 현실주의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국가들이 균형을 이룩한 후 더 이상 국력 추구 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시 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이론이 바로 제3세대 현실주의 이론 인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이론이다.

2001년 간행된 미어셰이머 교수의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6) 은 고전적 현실주의, 신현실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설 명하기 위해 새로운 현실주의를 제시한 책이다. 미어셰이머 교 수는 자신의 현실주의 이론을 공격적 현실주의라고 명명했다. 그는 특히 역사상 나타났던 모든 강대국들은 상대방과 균형을 이루는 수준에서 국력 증강 노력을 멈추기는커녕 거의 ‘무한한’ 힘의 증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국가들은 모두 힘을 증강시키려고 노력하며, 어느 정도 힘이 증강된 후 그 힘의 증강을 멈추려 하는 나라들은 없다는 말이다. 미어셰이 머 교수는 결국 이 세상 어떤 강대국들도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패권국(Hegemon)’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 증하기 위해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서 제시했다.

6) John J. Mearsheimer, 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 (New York:

Norton, 2001); 이춘근 (역)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서울: 나남출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