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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1. 문제의 제기

독일통일 과정에서 동서독간 장기간 지속된 교류협력은 국가통일로 가는 민족 통일의 토대가 되었다. 독일분단이 동서냉전의 산물이라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다름 아닌 교류협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독일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Der Wandel durch Annährung)’에 의한 동․서 긴장완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서독의 통일전략은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신뢰를 쌓아 민족공동체를 건설해나가면서 정치 통합의 기반을 조성해 나가는 방안이었다. 이는 결코 서두르지 않은 ‘작은 걸음의 정책(Die Politik der kleinen Schritte)’으로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에 의한 통합방안 이었다.

동서독간 교류협력에 있어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내독무역’이라 일컫는 경제교류이다. 이와 아울러 인적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분단으로 인한 고통 을 완화하기 위해 적극 추진했던 상호방문에 의한 인적교류는 민족통일로 가는 사회통합의 촉매제 역할을 다하였다. 1964년 동독정부가 연금생활자에게 서독 방 문을 허용함으로써 공식화된 인적교류와 이주정책은 동서독 관계의 획기적인 전 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독일인들은 각기 다른 체제 내에서 생활하면 서도 언론매체 특히, TV의 ‘공유 아닌 공유’를 통한 상호이해와 인적교류를 통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민족통일의 당위성을 도출할 수 있었다.

서독은 청소년 교류를 적극 추진하여 분단의 고착화를 방지하고 통일 후 사회 통합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였다. 활발한 교류협력을 유지했던 독일도 통일 이후 구동서독 주민들간 통일 후유증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통합하기에는 얼마나 어려움이 있는가를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 을 완충하고 해결하는데 있어, 통일 전 교류일원으로 참가했던 청소년들은 상호이 해와 확장된 민족공동체의식으로 그들의 역할과 임무를 다하리라 본다.

하지만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은 반세기 넘게 독자적 정체성으로 서 로 적대와 반목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 남북한 정치주체들은 통일을 향 한 많은 방안이나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그것들이 결코 현실적으로 접근을 위한 구심점은 되지 못했다. 세계사적 전환기를 맞이한 21세기, 한반도의 분단을 규정했 던 냉전질서는 어느 정도 해체되었지만 새로운 세계질서에 따른 한반도 내 평화 정착과 화해 분위기는 아직 구축되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교류협력에 의한 사회 통합의 장치가 마련되기 전에 정치적 합의나 물리적 방법 등에 의한 통합형식의 통일이 한반도 내에 이루어진다면, 반세기 동안 적대적 관계 속에 단절된 사회와 문화의 통합에는 또 지난한 기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물론 남북한 통합문제에 서 규범적이고 제도 중심적 접근방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남북한간 정치통합이라는 실제상황이 제기될 경우에는 오히려 효율적 제도형성 의 문제가 가장 시급한 당면과제로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치통합이라 는 실제 상황에 대비하여 제도적으로 효용성 있는 통일정책이 주도면밀하게 추진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내적 통합까지 자동적으로 포괄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1)

김대중 정부는 대북 창구 단일화 정책에서 벗어나 정경분리원칙을 내세우며, 남 북한간 교류협력을 대북 정책의 핵심수단 또는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했다.2) 이 에 남북한 교역 및 협력사업이 활발해 지고 있는 가운데, 1998년 11월부터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어 2003년 2월부터는 육로를 통한 금강산관광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한편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 개발 등으로 인하여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분단과 전쟁 이후 한반도에는 지루하리 만큼 정치, 군사적 으로 교착상태와 첨예한 대립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통일이 단시일 내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같은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물리적인 제압 이나 흡수에 의한 방법일 것이며, 이는 것 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이어지게 될 것 이다. 따라서 통일의 당위성은 영토회복이 아닌 민족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한 수단

1) 강광석(2002), “남북한 문화공동체의 지속과 변동: 그 연구의 방향과 과제”, 교육인적자 원부, p.4.

2) 통일부 교류협력국(1998), “남북 교류협력 추진 현황”, p.18.

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통일은 민족의 화해와 동질성의 회복을 기점으로 이루어 져야 하는데, 이에 우선적으로 사회적 통합의 여건을 위해 남북한 쌍방향 다각적 인 교류협력의 확대만이 긴장감 및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남북한간 교류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교류협력과 병행하여 제주도 대북 지원과 교류협력사업의 성과에서 보듯이 민간 및 지방자치단체 차원 의 교류협력 확대와 청소년 교류를 포함한 인적교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또한 남북한간 문화적 동질성에 주안점을 둔 문화 및 학술교류를 추진함으로써 반세기 동안 단절로 인해 훼손된 단일 민족문화를 복구해야 한다. 인적교류에 초점을 맞 춘 교류협력 채널 다양화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한간 교류협력의 영역에서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적교 류야 말로 사회적, 문화적 통합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둘째,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이 확대된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정부 차원의 대화와 협력으로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협력은 한반도 내 법적 제도적 통일 후 그에 따 른 지역갈등을 해소하고 역할분담을 건실하게 해나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남북한 교류협력은 아직까지도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고, 북쪽을 향한 일방적 ‘퍼 주기’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투명하지 않은 점도 많다. 이산가족문제 접근방 법만 보더라도 고통의 완화 차원인 인도주의적 입장이 아닌, 정치적 의도 등에 의 한 미봉책으로 간헐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있다. 이산가족문제 가 획기적인 타결방법을 찾지 못하고 지금껏 이루어져 왔던 단발성 상봉이벤트 등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이산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들은 가족들 을 생전에 만나지 못하고 이산의 고통을 안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절박함에 봉착 해 있다. 또한 우리 청소년들에게 막연히 “우리는 만나야 한다”라는 감정적 당위 성만을 내세워 가르친다면, 이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영향을 받아 일관 성 없이 이루어져 왔던 체제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했던 통일교육과 다를 바 없다.

김대중 정부 이후 인적교류를 포함한 남북한 교류협력이 제한된 범위이긴 하지

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사례가 시사하는 바를 고찰하여 남북한 교류협 력 활성화 방향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에 독일통일 과정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교류협력 특히, 인적교류가 독일 통일의 기반과 과정이었음을 밝혀, 이를 우리 청소년들에게 미래지향적 민족공동 체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통일교육의 구체적 자료로 제시하고, 인적교류를 비롯한 다각적인 교류협력이 한반도 내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