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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통일이 이루어지던 1990년대 남한에서는 북한도 자체 붕괴할 가능성이 있 다고 생각했다. 동독과 북한을 비교해 보면 이러한 예측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 다. 동독은 내부사회의 저항을 받고 무너졌다. 다시 말해, 동독에서는 공산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 ‘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을 지향점으로 하는 내부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독일통일 당시 동독 일인당 국민소득은 1만 달러가 넘었지만, 서 독의 40%가량에 불과하였다.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인적교류와 TV 등의 ‘공유 아 닌 공유’로 인해 동독주민들은 서독주민들이 누리고 있던 경제적 안정감, 정치적 자유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혜택 등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동독주민들 은 체제에 대한 피로감과 사적이익에 대한 동서독간 비교과정이 누적되면서 상대 적으로 심각한 피해의식에 빠지게 되었고, 이는 대규모 탈출현상과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표출되었다.

동독 내부사회의 변화에 의한 독일통일은 교류협력이라는 접근방법에 의해 기 능망이 절정에 달하게 되면 침투확산효과가 경제적 영역에서 정치적 영역으로 확 산됨을 보여준 예가 된다. 이는 서독의 기능주의적 접근전략으로 추진된 장기간 지속된 교류협력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시작된 접 근에 의한 변화 전략은 적극적인 동서독간 교류협력으로 민족 동질성을 유지하면 서 정치, 경제적으로 동독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내부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우선하였다. 그 추진방법은 시냇물이 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가듯이 인도주의 차원의 이산가족문제 해결부터 시작하여 포괄적 사회 전 분야로 그 기 능망을 서서히 확장하는 점진적 접근방법이었다. 이에 따른 직간접 경제적 부담은 서독의 강력한 국가경제력과 국민적 합의로 도출할 수 있었고, 동독정부도 체제유 지 차원에서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북한에는 동독과 같은 내부사회가 형성되지 않았고 정권에 저항한 사건 도 없다. 북한의 고립적 폐쇄주의 통치는 내부사회의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는 남

한 및 국제사회와의 접촉 및 교류협력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동독과 북한 간에는 이와 같은 엄격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들은 북한 붕괴와 한반도 통일의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막연하게 믿었다. 심지어 북한이 경제난으로 내부 붕괴하거나 붕괴에 직면하여 무력도발을 할 수 있다는 하드 랜딩 (hard-landing)의 위험성까지 있다고 보았다. 만약 북한이 내부 붕괴과정을 겪거나 전쟁을 도발하였다면 이를 수용하고 대처할 능력을 미처 축적하지 못한 남한에 끼칠 파장과 피해는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남한은 대북정책의 목표를 통일보다는 남북 공존에 두어야 한다. 북한은 현재의 상황에서 남한의 모든 통일론을 흡수통일론으로 해석하고 위협을 느끼고 있다. 서 독은 통일 이전에 통일정책을 가진 적이 없다. 서독에는 ‘양독 관계성’은 있었지만

‘통일부’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독은 독일통일이 통일정책에 의해 단시간 내에 이 루어질 수 없다는 인식으로 교류협력이라는 상호작용에 의해 동질성 유지 및 기 능적 이익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통일전략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독일통일은 동독 에 대한 서독의 간섭이나 무력에 의해서가 아닌, 교류협력에 의해 형성된 상호의 존관계에 따른 통합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동독 내부사회의 욕구에 의해 실현되 었다. 다시 말해 독일통일은 교류협력이라는 기능주의적 전략에 의해 동독주민들 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내셔널리즘에서 합리적인 자유민주의식과 시장경 제체제 지향성 의식으로 변화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후를 대비하기 위하여 남북한간 교류협력을 장기 적 관점에 적극 추진해야 한다. 교류협력은 일차적으로 한반도 내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 민족동질성 유지 및 민족공동체의식 회복을 목표로 추진하되, 남북한 공 동이익 가능영역을 창출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북한에게 절대이익과 그에 따 른 남한의 상대이익을 연계하는 전략과 북한의 대남 적대능력 제고가 아니라 연 착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제반 교류협력을 추진함에 있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인적교류를 우선 염두에 두고 추진해야 한다. 인적교류야 말로 서로간 동질성을 확인하며 통일의 물꼬를 트는 일차기반이 될 것이다. 인적교류의 실천적 방안으로 인도지원 및 교류협력사 업의 일환으로 지방자치단체간 교류협력을 추진함도 바람직하다. 이는 정부차원의

교류협력에 따른 한계성을 상호보완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자체 차원의 교류가 확대된다면 자연스럽게 정부 차원의 대화협력으로 이어질 것이며, 통일 후 지역역할분담 장치를 사전에 조정, 마련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남북한간 문화 적 동질성에 주안점을 둔 문화 및 학술교류를 추진함으로써 반세기 동안 단절로 인해 훼손된 단일 민족문화를 복구해야 한다.

미래지향적 통일과업으로 청소년 교류를 실천 가능한 부분에서부터 추진해야 한다. 청소년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분단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한반 도에는 또 다른 조국이 있으며 언젠가는 통일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통일의 당위 성과 민족공동체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남북한간 교류협력은 북한의 태도가 항상 문제가 되어 왔지만, 상대이익 추구에 연연하지 않고 인내력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실천 가능한 부분부터 상호성, 투명성, 효율성에 입각하여 추진해야 한다. 또한 교류협력에 따른 국민적 합의와 참여의 기반 확대가 중요하다. 교류협력을 주도적, 자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 다도 우리 자체 내부에서부터 통일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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