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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집단과 공정거래정책

문서에서 공정거래정책 공정한가 (페이지 64-73)

3.1 독점인가 효율인가?

기업집단의 소유형태, 다각화된 사업구조, 높은 내부거래 비율 등은 한국 기 업집단의 고유한(idiosyncratic) 형태이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이런 행태를 ‘기형 적’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미국식 시장구조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비표준적인 경영관행'은 전부 독과점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76)

이러한 개성적인 우리의 경영관행에 대한 경제학계의 비우호적인 태도는 우 리 나라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일찍이 코우즈Coase(1972)는 새로운 거 래관행에 대한 학자들의 비우호적 태도(inhospitality)를 정확히 지적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기업관행을 발견하면 이 를 독점적 의도를 지닌 것으로 평가하는 버릇이 있다(코우즈Coase, 197 277)).

경제학자들은 대개 “비시장적 혹은 준시장적non-market or quasi-market”인 거래형태에 대해서는 아예 분석조차 않거나 시장실패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 다.78) 그러나 기업집단의 계열관계나 프랜차이즈계약 등 非표준적 거래관행은 3 장 기업의 본질에서 설명하였듯이 시장의 실패나 독점의 결과가 아니라 거래비용 을 낮추기 위한 기업의 효율추구 관행일 수 있다.

거래비용 이론의 핵심은 기업의 조직이나 형태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거래비 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시장거래, 내부조직, 혹은 계열형 태의 準내부조직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조직은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한 조직적응 의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76). 이규억․이성순(1985), 이규억․이재형(1990), 최정표(1993), 기업구조연구회(1995)

77). If an economist finds something- a business practice of one sort or another- that he does not understand, he looks for a monopoly explanation.. Coase(1972) 67면

78). 일본의 기업집단 관행, 즉 주거래은행 시스템, 종신고용제도, 내부거래가 많은 계열회사제도 등 을 하나의 효율적인 기업지배구조로 분석한 아오끼Aoki(1990)의 연구 등은 비우호적인 전통의 예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조직과 관련된 많은 관행들이 "독점력monopoly power"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경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적으로 보이는 새로운 기업조직이나 거래형태는 독점을 추구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업의 "효율efficiency"을 추구하기 위한 조직상의 기술진보라는 것이다.79)

이런 관점은 기존의 독점규제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윌리암슨 (1985)은 다양한 형태의 계약이나 기업관행을 보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지렛대(leverage), 가격차별, 진입장벽, 전략적 행동 논 의들은 대부분 기업의 행위를 독점화를 관철하기 위한 관행으로 인식한다. 예를 들면 두 기업이 결합하는 경우 피결합기업이 모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이용하여 경 쟁을 제한하거나 가격차별을 이용하여 경쟁자를 축출하는 것 등 경쟁제한의 의도 가 기업결합의 주요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거래비용경제학에서 주로 논의하는 재산권이론(property right), 대리 인이론(agency), 지배구조이론(governance), 측정이론(measurement) 등은 대개 기업의 거래관행을 效率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특징이 있다. 재산권의 재분배는 기업의 경영자나 소유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인센티브를 변화시킴으로써 기업의 효율성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기업을 재산권의 집합(set of property rights)으로 파악하면 기업의 통합이 잔여청구권 변화를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인센티브 구조 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분석하는 등 기업조직의 변화가 기업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할 수 있다.80) 대리인 이론이나 측정이론 등도 정보구조, 대리인 구조, 상품특성 등을 분석함으로써 기업조직 변화가 기업 효율성에 미치 는 영향을 분석하는데 유용하다. 결국 이러한 접근법은 기업조직의 변화를 독점 의 요인으로만 해석하는 전통적인 견해와는 달리 기업조직의 변화를 한층 미시적 으로 분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79). Chandler(1962), Williamson(1985), Aoki(1990) 등 많은 기업사 연구자들은 기업조직의 변화를 연구하면서 사업부제(M형 조직), 혼합기업(C형 조직), 지주회사조직(H형), 다국적 기업(MNE), 일 본식 기업집단조직(J형 조직) 등을 기업의 내부환경과 외부환경의 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상 의 기술진보 organizational innovation”라고 설명하고 있다.

80). 예를 들어 부품회사가 독립되어 있는 경우 부품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 항상 거래거절, 계약 불이행, 품질불량, 일방적 거래중단 등의 위험요소가 높아진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부품회사를 통합할 수 있으나 그 이후부터는 다른 유형의 대리인비용이 발생한다. 즉 기 업결합으로 잔여청구권(residual claims)을 상실한 부품회사의 소유주는 경영자(manager)로 변신 하게 되고 사실상 경영에 대한 인센티브가 달라진다. 즉 더 이상 소유주가 아니기 때문에 태만하 거나 관료화되는 현상 등 비효율의 요소가 발생할 수 있으며 대리인의 노력과 성과를 측정 (measure), 감시(monitor)하거나 통제하는 문제도 새로운 비용으로 부각된다.

<그림 14> 독점과 효율의 이분법적 접근(Williamson,1985)

대리인문제

측정문제 전략적 행동 재산권

지배구조 지렛대 효과

가격차별 진입장벽

효율 독점

경쟁업체 고객

인센티브

거래비용

기업조직의 변화는 이처럼 이해관계자들의 인센티브 구조의 변화, 조직관리비 용의 변화, 기술적 변화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거래비용의 차이를 야기한다. 이 러한 거래비용을 가장 절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거래방식, 조직형태가 변모해 가 는 것이며 이러한 변화는 효율을 증진시키는 위한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기업결합, 기업집단의 계열관계 등 기업조직의 변화를 시장독점력을 높이기 위한 행위로만 파악한다면 당연히 효율의 측면을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업조직 변화를 시장지배력가설로만 파악한다면 독점규제 정 책은 초기 미국의 반독점금지(antitrust)정책에서처럼 엄격하게 기업결합을 규제 하거나 기업조직의 선택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도 독점규제정책 (antitrust policy)을 개정하면서 점차 거래비용 관점과 효율의 관점을 반영하려는 노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결합지침도 과거보다 전향적으로 기업결합을 허용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추세이다.81) 거래비용적 관점과 효율의 측면을 감 안하여 평가한다면 독점의 의도로만 평가할 때 보다 기업결합의 금지대상이 축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1982년 기업결합지침에서는 거래비용적 논

거를 수용하여 기업결합을 금지하는 경우를 보다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81). Williamson(1985) 99-102면

3.2 재벌구조의 경쟁제한효과: 비판과 反비판

한국의 기업집단에 대한 정책적 개입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과 도한 경제력집중이 사회적 권력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회정책적 규제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집단 자체가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경쟁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정책적 차원에서의 규제라고 할 수 있다.

기업집단이 과연 공정거래법으로 30대 기업집단을 규제할 만큼 일반적인 경 제력 집중이 심화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엇갈린 주장들이 있다.82) 일반집중지표 라는 것이 집중화된 권력(power) 내지 지배력으로 타당한 것인가?

일반집중 지표를 경제력집중의 정도로 평가하는 경우 지표측정이나 개념에 있어 기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선 기업집단을 소속된 모든 계열사의 자산이나 매 출액들을 합산한 다음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하여 일반집중도로 계 산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집단의 계열사에 소속된 경우라 하더라도 이른바 단일 경영체제(unified management)하에서처럼 지배주주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독립경영을 하는 경우 라도 친족 등 특수관계인이라는 이유로 기업집단에 편입시키는 등 기업집단의 범 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어 기업집단의 위력을 실제이상으로 가공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집중은 개념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있다. 대개 경제전체에서 상 위 기업집단의 총매출액이나 총자산의 비중이 높으면 일반집중이 과도하다는 평 가를 하지만 이때의 매출액 규모나 자산규모는 경제적 지배력의 결과가 아니라 사실은 주력업종의 규모의 경제scale economy를 나타내는 것이다. 자동차, 전자, 반도체, 중화학산업 등 기술특성상 큰 규모의 기업이 불가피한 경우 이를 두고 과도한 경제력집중으로 규제한다면 규모의 경제 자체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83)

한편 권력power의 관점에서 기업집단이 보유하는 권력의 정도를 논의해 보 자. 만약 기업집단의 권력이 존재한다면 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권력은 과연 존재하는가? 경제적 권력은 본질적으로 기 업의 시장지배력에서 파생되는 것이나 실제로 기업이 가격을 통제할만한 시장지

82). 이규억(1985), 서동원(1996)이 경제력집중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킬 정도로 심각하다고 보는 반면 황인학(1996) 등은 경제력집중은 더 이상 심화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문제될 정도는 아니 다라고 주장한다.

83). Benston(1980, 59-60면)은 이런 경향을 일반집중적용의 개념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거대한 자 동차기업의 규모를 들어 경제력집중을 문제로 삼는다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포기하고 걸어다니라 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배력을 가질 수 있는 시장환경은 점점 발견하기 어렵다. 기업집단의 계열사라 하 더라도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시장개방, 진입장벽 철폐 등의 영향으로 기업 이 가격결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크게 축소되고 있다. 가격 뿐만 아니라 생산량 통제도 어려우며 아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수요와 경쟁기업의 존재가 시 장지배력 남용을 제약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경제력집중은 의사결정의 중앙집중화 현상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문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집단이 성장하면서 과연 사회전체적으로 독 립적인 의사결정 단위를 줄였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대기업집단의 성장 못지 않게 빠른 속도로 중소기업들도 숫자 나 규모 면에서 증가해 왔기 때문이다. 기업집단이 성장하면서 독립적 의사결정 의 단위가 감소한다는 제로․섬 게임적(zero-sum game) 발상은 실증적 자료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84) 경제적 권력을 가장 강력하게 제 어할 수 있는 것은 경쟁이며, 기업집단간의 치열한 경쟁은 기업집단의 권력을 상 쇄시키는 기능을 한다.

특히 우리 나라는 일반집중뿐만 아니라 업종다각화가 문제가 되며 다각화된 혼합기업이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고 기업의 경제적 권력을 강화시킨다는 주 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평가와 달리 다각화된 기업구조가 오히려 기업의 정치활 동이나 권력남용에 대한 자동조절장치 기능을 하기도 한다. 다각화될수록 좁은 범위에서의 기업 이해관계보다는 공공의 광범위한 이해관계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즉 업종의 다양성 때문에 특정업종에 유리하게 로비를 하는 경우 다른 분야에서 역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체재(substitute) 관계에 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을 가지고 있는 기업 집단의 경우 로비를 통해 한쪽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한다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 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권력을 입법과정이나 기존 법률의 시행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힘 으로 정의한다면 기업집단을 얼마나 강력한 정치적 이해집단으로 평가할 수 있을 까? 정치적 권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치조직과의 권력의 상대적 크기를 비교해 보아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집단은 다수결원리에 입각한 민주주주 체제하에서라면 어느 나라나 예외 없이 투표권의 영향력행사에 있어서 어느 집단 보다 강력한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다른 권력집단, 예를 들면 노조나 노조지도자도 기업집단의 경영자보다 훨씬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평 가할 수 있다.85) 또한 정부의 관료들도 사실상 정책결정 과정에서 막강한 재량권

84). 미국의 사례이긴 하지만 경제학자 엡스타인Epstein(1979)은 “지금까지 기업이 정치적․사회적 권력을 제어할 정도로 크다는 신뢰할만한 연구가 없다”고 주장한다. Benston (1980)에서 재인용.

85). 96년 말과 97년 초에 걸친 노동법 개정 파동시에 재계와 노동계와의 갈등과 해결과정을 살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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