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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체제의 위기구조와 대응방식

문서에서 김정일 체제의 연구 (페이지 56-62)

Ⅳ. 김정일 체제의 위기구조와 안정성 분석

1. 김정일 체제의 위기구조와 대응방식

1. 김정일 체제의 위기구조와 대응방식

1) 위기구조

(1) 경제위기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후 김정일 체제가 직면한 위기의 일차적인 근원은 경제난 심화에 있다. 북한경제는 1990년대에 들어 계속적으로 침체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 다. 북한은 1993년 12월 9일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6기 제21차 회의에서 1987∼1993년 의 제3차 7개년 계획이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와 방위력 강화”로 인해 실패했음을 공 식 인정하고, 2∼3년간의 완충기를 설정하여 ‘농업‧경공업‧무역제일주의’라는 3대 제일 주의 관철 및 석탄‧전력‧철도운수‧금속공업발전 등을 추진하였으나,61) 1998년 현재까 지 새로운 경제계획을 수립하지 못할 정도로 경제가 악화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북한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지표로 1995년 북한의 GNP는 남한의 1/20인 223억 달러, 1인당 GNP는 1/10인 957달러로 추산되며,62) 1990년 -3.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이 래 1994년의 경우 다소 호전되기도 하였으나, 1995년과 1996년의 수재에 따른 곡물생산 감소와 사회 기반시설 낙후 등으로 다시 악화되어 7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북한의 연평균 경제성장률 추이> (단위 %)

1971-75 1976-80 1981-85 1986-90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0.4 4.1 3.7 1.4 -3.7 -5.2 -7.6 -4.3 -1.7 -4.6 -3.0

자료:「內外通信」,제1054호(1997.4.24).

북한이 처한 경제난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주민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계된 식량 난이며, 이는 체제위기의 결정적인 변수이다. 북한의 곡물생산은 비효율적인 협동농장 제도, 영농 장비와 기술의 낙후, 열악한 자연환경, 농산물의 품종개량 및 재배방법 미숙

61) “제3차 7개년(1987∼1993)계획 수행정형에 대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도”

로동신문 , (1993.12.9).

62) 韓國銀行(1996.6), 1995년∼北韓 GNP 推定結果 .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감소추세를 보여왔다. 북한의 식량수요는 연간 650∼680만톤 정 도로 추정되나, 실질 생산량은 1991년 443만톤, 1992년 427만톤, 1993년 388만톤, 1994 년 413만톤, 1995년 345만톤, 1996년에는 369만톤으로 매년 약 200만톤 이상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은 식량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1991년 129만톤, 1992년 83만톤, 1993년 109만톤을 수입하였으나, 외화부족으로 1994년부터는 50만톤 이하로 감소하였고, 부족 분을 외부 로부터의 식량원조로 충당하고 있다.

*북한의 식량공급 상태 (단위:백만톤) 년도

구분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생 산 량 4.43 4.27 3.88 4.13 3.45 3.69 수 입 량 1.29 0.83 1.09 0.49 0.96 1.07

총공급량 5.72 5.10 4.97 4.62 4.41 4.76

자료:「內外通信」,제1054호(1997.4.24).

1995년과 1996년 여름의 수재로 인해 북한의 식량난은 가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의 ‘큰물피해 대책위원회’는 1997년 2윌 3일, 1996년 말 식량재고는 24만 6천톤이 며, 연간 곡물수요는 784만톤으로 이중 식량으로 필요한 양은 482만톤이라고 밝히고 국 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였다.63) 이러한 북한의 식량난은 결국 1997년 신년공동 사설에 나타난 “풀죽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으로 대변된다.64) 더욱이 김정일은 1996 년 12월 비공식 연설을 통해 북한체제의 위기상황은 식량문제로 인해 ‘무정부상태’가 조성되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다.65)

이러한 식량난과 함께 생필품 부족현상은 계속 심화되고 있으며, 에너지와 생산 원자 재 공급 역시 심각한 부족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석탄생산 및 원유도입량의 대폭 감소 등으로 에너지 공급난은 계속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조업부문의 공장가동 률은 30%미만인 것으로 평가된다.

63) 東亞日報 , (1997.2.4).

64) 위대한 당의 령도따라 내나라 내조국을 더욱 부강하게 건설해 나가자 , 로동신문 , (1997.1.1).

65) 조선일보 , (1997.3.20), 중앙일보 , (1997.3.20).

이와 함께 1995년 현재 북한의 외채 총액은 약 118억 3천만달러로 추정되고, 북한의 총외채 대비 GNP 비율은 50%가 넘고 있어서, 외채 상환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총외 채에 대한 수출비율은 1,600%를 초과하여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그 결과 대외신용도는 세계 170개국 중 167위를 기록하고, 이는 경제회생에 필수적인 외부로부터의 자문과 기술의 도입을 저해하고 있다. 또한 대외무역도 1990년대에 들어 계속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995년도 북한의 대외무역 총액은 20.5억 달러로 1994 년도는 21.1억 달러에 비해 2.7% 감소하였다.

한편 1991년 12월 ‘자유경제무역지대’ 선포 이후 외국인 직접투자 실적은 1996년 중 반까지 49개 대상에 3억 5천만달러의 투자계약이 체결되었으며, 이 중 22건이 계약 이 행단계에 들어가 3천 4백만 달러가 투자되었다. 이러한 외자유치 실적은 매우 저조한 상태이며, 투자 실행율 역시 9.7%에 지나지 않는 상황이다.66)

(2) 정당성의 위기

이러한 경제위기와 함께 김정일 체제는 업적 부족으로 인해 정통성 위기에 봉착해 있다. 김정일로의 권력이양은 봉건적 정치문화로 인해 수용되는 측면이 있고, 권력승 계과정에서 권력투쟁의 발생이라는 리더쉽 위기를 초래하지는 않았다.67)

그러나 김정일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김일성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한 점에 있다. 카 리스마는 다른 사람이 소지하지 않는 독특한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며, 그 렇지 못한 경우 소멸되는 것으로 계승 또는 전이될 수 없는 것이다.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을 정통성의 기반으로 활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주개혁, 생 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 등을 통해 사회주의 건설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면서 각종 정 치적 상징조작을 활용하여 카리스마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김정일은 후계자로 등장한 이후,68) 주체사상의 논리적 체계를 발전시키는 한편, 사상통제와 인민생활 향상 66) 內外通信 , 第1054號, (1997.4.24).

67) 全賢俊(1994). 金正日 리더쉽 硏究 , 민족통일연구원, p.33.

68) 김정일은 1973년 2월부터 착수된 ‘3대혁명소조운동’의 책임을 맡은 바 있으며, 동년 9월 당중앙위 원회 비서로 선출된데 이어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김일성의 후계자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당시 김정일은 ‘당중앙’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였을 뿐 이 러한 내용이 공개된 것은 아니었다. 김정일은 1980년 10월 개최된 제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 회 정위원(서열 4위), 당 정치국과 상무위원회 위원, 비서국 비서, 당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 되어 북한의 권력서열에서 제2인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김일성의 후계자로서 공식적으로 등 장하였다.

을 동시에 달성하려는 정책을 전개하였으나 그 결과가 북한 체제의 총체적 위기로 귀 착됨으로써 카리스마 및 치적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즉, 김일성이 지나치게 카리스마화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김정일은 모든 측면에서 왜 소한 이미지를 줄 수밖에 없어서 김정일 체제는 김일성 체제에 비해 정통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근본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통성 위기는 심화될 경우 리더 쉽 위기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신봉 하고 있는 북한에게 이데올로기 위기의 가능성과 함께 국제적 고립이라는 위기를 산출 하는 요인이 되었다. 북한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①주체사상을 구현하고 있는 인민대중 중심의 사회주의, ②인민대중에게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마련해주는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 ③수령‧당‧대중이 일심단결된 불패의 사회주의로 규정하여 다른 사회주의 국 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69)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이데올로기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대외차원에서 김정일 체제가 당면한 위기는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국제적 고 립의 심화와 함께 남한과의 국력 격차가 커짐에 따라 남한에게 흡수당할 가능성이 증 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대외차원에서 김정일 체제의 핵심과제는 국제적 고 립에서 탈피하고, 남한으로의 흡수통일을 배제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해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난이라는 체제위기의 근원과 함께 정통성 문제 등 북한이 처한 위기상황의 구체 적 표출은 탈북자의 급격한 증가현상과 함께 1997년 2월 황장엽 당비서의 망명이라고 볼 수 있다. 탈북자 증가현상과 관련하여 1997년 현재 해외체류 탈북자는 1천∼3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남한으로 이주한 탈북자는 1990∼1993년 24명이었으나, 김일 성 사후 급증하여 1994년 52명, 1995년 40명, 1996년 51명, 1997년 8월 현재 55명에 이 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70) 1997년 5월 12일에는 북한주민 두 가족 14명이 선박을 이용하여 서해상을 통해 남한으로 귀순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황장엽의 망명은 김정일 체제의 총체적 위기상황과 함께 북한 권력핵심부의 동요를 표출하는 사건임에는 틀림 없다.

69) 김정일,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는 필승 불패이다 , 로동신문 , (1991.5.27.) 70) 동용승, 탈북자 증가현상에 대한 분석 , 삼성경제 , 통권 제57호(1997.2), p.130 ; 內外新 聞 第1068號(1997.10.9).

한편 북한 내부적으로는 각종 조직 및 사상교양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난 심화, 특히 1990년 이후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는 경제상 황은 ‘기대수준의 상승과 좌절’이라는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는 한편, 외부정보 유입에 따라 주민의식이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구체적으로는 주민의 체제비판 의식 또는 반 김정일 정서가 점증하고 있고, 암시장 등 불법적인 사적 경제부문이 확장되는가 하면,71) 뇌물수수행위, 물질주의의 확산과 절 도행위 등 사회적 일탈행위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사상학습 및 조직생활 이완, 노동규

구체적으로는 주민의 체제비판 의식 또는 반 김정일 정서가 점증하고 있고, 암시장 등 불법적인 사적 경제부문이 확장되는가 하면,71) 뇌물수수행위, 물질주의의 확산과 절 도행위 등 사회적 일탈행위도 증가하고 있다. 또한 사상학습 및 조직생활 이완, 노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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