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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기업 구조조정 추진과정의 문제점

IV. 결론

1. 금융기관‧기업 구조조정 추진과정의 문제점

현재까지 구조조정 과정에서 미흡했던 측면으로는 경제의 기본적 운영체제가 변화하지 않은 것(정부주도적 경제운영체제에서 시장체제로의 이행, 금융기관 및 기업의 책임경영체제 확립 등)과 외형적 구조조정에 치우쳐 내실이 부족했던 점 등이다. 경제운영체제의 변혁이나 실질적인 경제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구조조정 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점진적인 개선을 기대해야 하나, 이들 목 표는 구조조정의 각 단계에서 성과가 누적되어야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 조정 추진현황을 궁극적 목적과의 정합성(整合性)을 중심으로 점검하고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다.

(1) 공정한 책임분담원칙 미확립

지금까지 경제의 구조조정은 대부분 정부의 주도 또는 개입에 의해 이루어졌 다. 이는 정부가 과거 국가운영 전반에 걸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민간 경제주체들이 시장에서 경쟁과 협상을 통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나 여건을 갖추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이나, 구조조정은 정부의 통 제나 계획이 아닌 시장기능에 의해 이루어질 때 효율적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 된다.

구조조정이 시장기능에 의해 자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직접적 이유는 공정 한 책임분담 원칙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의 구조 조정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누군가 부실에 따른 손실을 부담해야 하나 우리 나 라는 구조조정의 경험이 적어 관련 경제주체들의 책임규명과 이에 따른 손실분담

에 관해 쉽게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결국 구 조조정 주체들은 모두 손실을 적게 부담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공 정하게 책임을 분담한 이후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기는 매우 어 려운 현실이다.

공정한 책임분담원칙을 도출하지 못했거나 지키지 못한 사례로는 정부가 부실 정도가 심한 서울, 제일은행을 퇴출 대신 출자를 통해 생존시키고, 이들 두 은행 과 종금사의 부실채권을 1998년 우선적으로 매입하였으며,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 부실에 대한 문책에 소극적이고, 부도유예, 협조융자 등을 통해 경제성을 상실한 기업의 정리를 지연시킨 것 등이다. 또한 부실 금융기관이나 기업 경영자의 책임 부담원칙이 명확하지 않고, 5개 퇴출은행과 한남투신의 신탁계정의 원금 또는 이 자를 보전하기 위한 배려를 하였으며, 현대자동차와 경영정상화계획이 조건부승 인된 은행들의 고용조정에 관한 당초의 방침이 지켜지지 않은 점도 지적할 수 있 다.

공정한 책임분담원칙이 확립되지 않으면 앞에 지적한 것처럼 구조조정이 지연 될 뿐 아니라, 책임을 과소 부담한 경제주체의 도덕적해이(moral hazard)와 과다 부담한 주체의 불만을 야기한다. 결국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음이 전례(前例)가 되 어 경제주체들의 성과제고 동기가 왜곡되고, 합리적 경제 원칙보다는 정치적 힘 의 논리가 우선하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집단은 불만세력으로 남아 사회적 통합 을 어렵게 할 것이다. 특히 정치적 요인에 의해 공정한 책임분담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우리 나라 경제 전반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구조개혁은 요원하다.

(2) 외형에 치중한 피상적 구조조정

구조조정의 목적은 위기를 수습하고 효율성 제고를 통해 경제성장기조를 회복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부실금융기관 정리, 은행 합병, 기업의 부채비율 및 채무 보증 축소, 사업구조 조정 및 지배구조 개선 등 다양한 실천방안들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실천방안들은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은 아니므로 항상 궁극적 목적인 경제적 효율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진행되고 있는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방식은 관료적 통제에 의해 국가를 운영하는 타 성 때문에, 외형적인 추진실적에 집착하여 궁극적 목적 달성에는 상대적으로 소 홀한 실정이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부실정리, 퇴출 및 합병, 책임경영체제 구축과

선진 경영/금융기법 도입 등을 통해 금융기능을 정상화하고 금융산업의 효율성과 건전성을 제고할 것을 목적으로 하나, 정부는 BIS기준 충족, 퇴출, 합병에 의한 대형화 등 단기적 실천목표 달성에 치중하여 이들 정책수단들이 과연 장기적으로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에는 미흡했다. 즉 금융산업 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은행의 대형화 등 외형적 발전보다는 책임경영체제 구축, 경영효율성 제고 등이 필요하나 이런 구조적이고 실질적인 개혁은 목표설 정, 추진방안 선택, 실적 점검 등이 쉽지 않아 상대적으로 등한시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궁극적 목적인 경제적 효율성 제고보 다는 부채비율 축소, 상호채무보증 해소, 사업축소 등 실천방안 달성에 치중하고 있다. 상호채무보증을 해소하여 기업 구조조정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고, 사업 규모 와 영역을 조정하며, 재무적 안정성을 제고하는 것 등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수 습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고 일반적‧보편적 목적은 아니므로, 항상 목적달성에 기 여하고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수정해야 한다.

(3) 불확실성 지속

우리 나라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외환위기의 재발가능성, 연쇄도산과 대량실업, 세계적 경제침체 조짐 등으로 미래 경제여건이 매우 불확실한 상황에서 정부 정 책도 (과거와 유사하게) 일관성과 경험부족, 고식적(姑息的) 대응 등의 문제를 드 러내고 있어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소 비감소, 투자위축이 심화되고 있다.

미시적 차원에서도 금융기관이나 기업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심각하다. 금융기 관 부실자산 실상이 명백히 공개하지 않아 예금자, 채권자 뿐 아니라 외국 투자 자들이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기업 부문에서는 정부의 기업정책이나 개별 기업 의 구조조정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워 투자자나 거래관계 를 가진 기업들이 미래의 예측이나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4) 경제회복과 구조조정의 상충 가능성

구조조정은 보편적으로 금융경색, 수요위축 등 경기침체를 수반한다. 이에 따 라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은 서로 대체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정책적 선 택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천적 차원에서는 구조조정과 경기유지 양자가 단순히 대체적인 관계 를 가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구조조정이 적절히 이루어지면 그 결과 경제가 회 복될 것이고 오히려 목전의 어려움 때문에 구조조정을 지연 또는 포기한다면 구 조적 문제에 기인한 경제위기가 반복 발생할 수 있으므로 장기적으로 양자는 서 로 상충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조정 기간 중 금융경색과 경기침체가 악화되어 기업들이 일시적 경영난으로 대량도산하면 향후 경제회복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으므로 단기적 경기침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정부의 정책기조는 우선 구조조정을 달성한 후 경기부양, 투자확대, 외자유치 등을 통해 장기적 성장기조를 회복하려는 것이었다. 금융부문에서는 먼 저 금융기관의 자기자본규제 강화, 퇴출 및 합병, 고용조정 등을 통해 안정성과 수익성을 제고하고 장기적으로 금융중개기능을 정상화하려는 정책을 추구하였으 며, 기업부문에서도 부채비율 축소, 상호채무보증 해소, 사업구조 조정, 지배구조 개선 등을 선결과제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선(先) 구조조정‧후(後) 경제회복의 정책기조는 금융경색과 경 기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조달, 인수‧합병, 자산‧계열사 매각 등이 용이하지 않은 현실적인 벽에 직면하였다. 또한 러시아의 경제위기, 아 시아 금융‧외환위기 재발가능성 등도 장기적 경제침체 우려를 가중시켰으며, 국 제통화기금(IMF)은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 고금리, 긴축정책이 실패하였음 을 지적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책기조를 구조조정에서 경기유지로 전환하여 금융과 기업의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는 1998년 9월 말 이후 재정적자를 수반한 경 기유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에 관한 정책적 판단에 있어 양자를 단순히 상충 또는 선‧후관계를 가진 것으로 파악할 수는 없으며, 양자는 적절히 조합되어야 한다. 즉 당장 생존할 수 없는 경우 구조조정은 무의미하고 또한 불가능하므로 경기유지, 사회안전망 확충 등이 병행되어야 하나, 경기부양이 일부계층만의 이익 을 가져와 공정한 게임(game)의 규칙을 훼손한다면 구조조정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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