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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근대적 자녀 가치의 분출

근대적 자녀가치란 자녀가 가족의 종속성을 벗어나 독립적 인격체로서 인식되고 자녀 고유의 독립적 가치를 형성한 것을 말한다. 아리에스 (2003)는 현대의 ‘아동’에 대한 관념은 중세이후 근대에 새롭게 형성된 것 이라고 주장한다. 일상적으로 어른들 틈에서 성장하던 중세와 달리, 근대 들어 어른으로부터 학교로 격리되어 근대적 교육의 대상이 됨으로써, 이 제 아동기라는 특정 인생과정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에서도 근대적 아동의 발견은 근대적 교육체 계의 발전과 시기를 같이 할 것이다. 즉 일제 식민지배를 거치면서 우리 도 아동에 대한 근대적 인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전 후 근대화 과정에서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 이유는 가족계획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아 동과 자녀에 대한 의미부여가 분출되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 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도 자녀에 대한 근대적 의미부여는 다양 한 측면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전통적 자녀가치와 다른 새로운 담론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우선 자녀를 키우는 재미에 대

한 언급이 언론에도 등장하였다.

1979년 한 조사에서 자녀의 의미에 대한 인식 중, ‘자녀를 키우는 재 미’가 등장하고, 노후의탁이라는 개념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리고 효도를 받지 않겠다는 태도가 매우 강하게 나타남으로써 노후의탁의 측 면과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냈다. 다른 한편, ‘키우는 재미’가 ‘삶의 전부’

라는 주장보다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자녀의 존재가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주부가 44.4%, ‘키우는 재미’가 53.7%로 재미있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무자식 상팔자’가 1%로 ‘있어 도 좋고 없어도 좋다’가 0.9%로 자녀에 대한 거부반응도 있었다.

부모의 학력이 높을수록 그리고 나이가 젊을수록 ‘키우는 재미’로 생각하 는 경향이 짙었는데, 자녀에 대한 관점이 종래의 ‘절대적 존재’에서 산업발 달과 함께 서서히 변화해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효도를 받고자 하는 부모는 6.1% 밖에 안 돼 자녀들에게 노후생활을 맡기지 않겠다는 의도와 함께 자녀가 독립해서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이 오늘의 부모심리임을 스스로 표현하고 있다(경향신문, 1979년 12월 13일, 주부교실 중앙회서 조사한 어 머니들의 자녀양육 태도)

자녀는 단지 가계를 계승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그자체로서 즐거움 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키우는 재미’는 물론이고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라는 의미 역시 필요에 따른 접근이며, 자녀에 대한 실용적 인 태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Hoffman & Hoffman(1973)은 그들의 연구에서 자녀가치에 대한 이론적 모델로서 자녀가치의 9개 범주 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① 성인 지위와 사회 정체성, ② 자기의 확장, ③ 도덕성, ④ 준거집단과 연계, ⑤ 즐거움, ⑥ 성취감, ⑦ 영향, ⑧ 사회적 비 교,⑨ 경제적 효용이다. 이와 같이 자녀에게 독립적 가치를 부여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태도는 근대적인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가족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처음부터 의미의 증폭 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계획사업의 취지에서 자녀가 많을 때보다 적을 때 키우는 재미를 크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딸 아이 키우 는 재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자녀 키우기의 즐거움도 더불어 강조되고 있었다.

인생은 생활에 쫒기면서도 역시 아이 기르는 재미는 있어야겠는데 많아서 허덕이는 것이나 전혀 없는 것보다는 조절을 해서 하나 둘쯤을 슬하에 두 는 것이 우리네 형편으로는 알맞을 만한 일이라고 요새는 생각 된다(가정 의 벗, 73년 11월 p.26, 서글픈 찬양)

딸 아들을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알뜰하게 기르고 교육시켜 시집 장가보내 는 재미로 살자’고 「두자녀가족회」는 또 한번 강조한다(동아일보, 1972년 6월 26일, 폐습(20) 아들제일주의)

애를 키워보니 딸 키우는 재미가 역시 잔 재미가 있어요. 남자아인 좀 극성스 럽고 말썽을 많이 부린다고 할까요(가정의 벗, 76년 1월 p.8, 딸이 더 좋아).

딸만으로도 만족입니다. 딸 키우는 재미가 아들보다 나아요(가정의 벗, 76 년 3월, 방문 좀 합시다: 딸 키우는 재미에 산다)

자녀의 근대적 가치는 더욱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낭만적 사랑 자체가 근대적 감정이라는 점에서(아리에스 & 뒤비 2002), 한국 사회에서도 자 녀에 대한 정서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근대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때 자녀는 정서적 만족을 주는 사랑의 대상이고, 가정의 행복을 매개해 주는 실질적인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자녀를 가짐으로써 얻는 가장 큰 이득은 무어라고 생각 하는가’에 대해 우 리나라 도시중류층에서는 ‘가정이 행복해진다’고 42%가 대답한 반면 도시 하류층과 농촌에서는 각각 37%, 30%가 ‘재미있다’고 답하고 있다(동아일 보, 1975년 7월 3일, 행복한 가정의 촉매 「부모의 자녀관 국제연구」결과).

이와 같은 태도는 1975년 한 연구(한남제 1979)에서도 발견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자녀에 대한 태도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한 것이

‘자녀가 있어야 가정생활에 의미가 있다’는 태도다. ‘노후 의탁’은 6.7%

만이 그렇다고 답했을 뿐이다. 물론 조상의 제사나, 집안 계승 같은 부분 이 20%를 차지하는 등 2번째로 높은 비율이 나타났으나, ‘가정생활에 의 미’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 3-2〉 자녀에 대한 태도

(단위: %, 명)

주: ‘첫 번째 중요한 이유’ 응답 재구성

자료: 한남제(1976). 한국 도시가족의 자녀출산ㆍ양육기능에 관한 연구. 경대논문집. 28.

구분

자녀는 부모들에게 감정적 만족을 준다 7.2( 20) 9.3( 28) 8.3( 48) 자녀가 없으면 허전할 것 같고 자녀는

부모에게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17.9( 50) 15.9( 48) 16.9( 98) 자녀가 있어야 부부관계가 좋아진다 9.3( 26) 9.3( 28) 9.3( 54) 자녀가 있어야 가정생활에 의미가 있다 37.6(105) 36.5(110) 37.1(215) 자녀가 있어야 노후에 의지할 수 있다 5.0( 14) 8.3( 25) 6.7( 39) 자녀가 있어야 집안의 대를 이을 수 있다 19.7( 55) 19.3( 58) 19.5(113) 자녀가 있어야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다 0.7( 2) 0.3( 1) 0.5( 3) 기타 2.5( 7) 1.0( 3) 1.7( 10) 100.0(279) 100.0(301) 100.0(580)

자녀의 사랑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보면 여기에도 맥락이 조금씩 다르 게 나타난다. 우선 자녀에 대한 사랑을 충분히 보장하려면 자녀수가 많아 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가족계획의 맥락에서 사 용되고 있다. 이런 주장이 실질적 사랑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 만, 가족계획의 맥락에서 의도적으로, 또는 수사적 표현으로써 자녀에 대 한 사랑을 강조한 것은 분명하다.

나는 사남매 중에서 셋째인데 항상 다른 형제보다 사랑을 덜 받는 다는 피 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가끔 앞날을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자녀는 꼭 둘 만 낳겠다고 다짐했었다(가정의 벗, 85년 11월, p. 15, 셋째의 피해의식).

정말 나부터 적게 낳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렇게도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자녀를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부담스러운 존재로 만들지 않아야 한 다(가정의 벗, 76년 2월, p.33, 한 자녀만 둔 우리 집의 경우)

가족계획사업의 궁극 목표는 단순히 출산 자녀수를 줄이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참사랑의 실천에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무턱대고 아기를 낳아 가지고서는 나와 내 가족(자녀), 내 고장과 내 이웃들을 사랑하기 어려워지고 애국애족하기 힘들게 되고 나아가서는 인류복지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없 게 되기 때문이다(가정의 벗, 79년 1월, p.9, 기미년을 참사랑의 해로)

아이들 사랑하는 데는 우리나라 부모님들도 굉장해요. 그러나 무조건 사랑 보다는 알맞게 낳아 사랑해주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아요(가정의 벗, 76년 2월, p.50, 아이 수보다 아이 키우는 정성이 더 중요)

가족계획의 맥락이 아니라 자녀에 대한 사랑을 궁극의 의미로 사용하기 도 하였다. 예를 들어 “아빠 저는 크고 좋은 집보다 아빠가 사랑해 주는 것 이 더 좋아요”라는 표현이 그러하다(가정의 벗, 78년 1월, p.52, 아빠 더

큰 사랑을 주세요). 그리고 자녀를 돌보거나 양육할 때, 또는 교육의 차원 에서도 사랑이라는 요소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근대적 개 념이라는 사랑에 대한 표현은 70년대 후반들어 두드러지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자녀들은 역시 부모의 따뜻한 품속에서 사랑과 정성어린 손길 에서 자라야 훌륭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가정의 벗, 79년 11월, p.31, 아기를 훌륭하게 키우려면)

자녀의 가치에서 가장 근대적인 특징은 교육과 투자의 대상으로 등장 하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근대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우 선 국가적 차원에서는 국민의 양성이라는 의미와 질 좋은 노동력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또한 가족의 차원에서 자녀는 빈곤과 산업화라 는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 가족을 중심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부와 권력을 쌓아(장경섭 2009), 그 가족의 부흥을 위해 지속적으로 세대를 전승해 나 가야 하는 존재였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를 교육적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근대에 들어 시작되었고 점차 이런 관점이 강화되기 시작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지 않던가? 힘에 벅차게 낳아서 먹이지 도 입히지도 못한다면 숫제 아니 낳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말이다...자식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워야 하는 것이다 (가정의 벗, 73년 11월, p.24, 무자식 상팔자의 윤리).

부모의 육아방식이라든지 가정생활을 통한 학습경험 등이 중요한 문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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