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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문화의 구성요소와 이론적 쟁점

3. 규범의 영역

문화의 또 다른 구성요소는 규범적 측면이다. 본 연구에서 출산과 자녀 양육을 둘러싼 문화적 환경 분석을 위해 규범적 측면을 크게 가족규범,

젠더규범, 노동규범 세가지로 구분하였다. 이 세 영역의 규범이 출산과 양육 활동에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다. 우선 가족규범은 여러 가지 가 공존할 수도 있다. 전통적 규범에서 현대적 규범으로, 또 현대적 규범 내에서도 다양한 종류가 공존할 수 있고, 또는 새로운 규범이 형성되기도 할 것이다.

장경섭(2009)은 한국의 가족이념을 유교적 가족이념, 도구주의적 가족 이념, 서정주의적 가족이념, 개인주의 가족이념으로 구분하고, 이 이념들 이 급격한 사회변동의 결과로 우발적으로 공존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 를 우발적 다원성으로 칭하였다. 여기서 가족이념을 본 연구에서는 가족 규범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장경섭에 따르면, 유교적 가족이념이란 조선 시대의 전통적 가족 가치관과 규범으로써 현대까지 유지되는 것이다. 유 교적이란 삼강오륜의 기본질서를 강조하는 규범들을 말한다. 도구주의적 가족이념은 가족관계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생존과 성공을 추구하는 행 태를 말한다. 이는 식민통치, 전쟁, 절대빈곤, 산업화 등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 가족을 중심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부와 권력을 쌓아 나가는 가운 데 생겨난 일종의 생존철학이다. 서정주의 가족이념은 노동자 가장의 소 득이 안정되면서 가족성원에 대한 정서적 보호기능을 중심으로 대두된 새로운 가족상을 말한다. 개인주의 가족이념은 결혼, 출산, 이혼 등에 대 한 적극적인 선택의식을 기반으로 가족의 존재이유를 개인의 안녕과 발 전에 두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개인성의 강화추세와 소비자본주의 확 산에 따른 가정의 상업적 소비공간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

본 연구에서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자녀의 출산과 양육행위에 영향 을 미치는 주요 가족규범을 살펴볼 것이다. 우선 혼인의 필요성이나 혼인 상태 유지의 의무 규범을 볼 수 있으며, 혼인 이후의 부부관계의 질서규 범도 가족규범의 일부가 된다. 다음은 부모자녀관계와 자녀양육 및 교육

에 관한 부모역할 규범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젠더규범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불평등한 성별의 위계가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 차원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차가 본질 적인 차원을 넘어서, 사회ㆍ문화적 과정을 통해 구성된다는 관점의 문제 인 것이다(이재경 외 2007). 성차이가 불평등하게 구성되는 과정에서 가 치와 규범이 작동하여 젠더 규범으로 고착되면, 이후 이 규범은 견고한 사회구조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젠더규범은 성역할 구분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좀 더 근본적으로 는 모성에 대한 규범에 함축되어 있다. 성역할과 관련한 기존 논의를 살 펴보면 남녀의 성차이가 생물학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인가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성차는 생물학적 특성이 아 닌 사회화 과정과 연관된다. 성차는 특정 사회의 언어, 매체, 교육 등이 만들어 내는 성역할 메세지와 그것이 가진 사회적 보상과 처벌에서 나온 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성차를 위계적으로 만드는 것은 생물학이 아 니라 권력인 것이다(이재경 외 2007).

또한 젠더 규범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원리 중 하나가 모성담론 (motherhood discourses)이다. 모성담론은 좋은 엄마를 위한 규칙이 확립되는 과정이다(Smart 1996). 이 담론들은 어머니에 대한 사회의 메 타언어이고, 이 메타 언어 안에서 사실에 대한 다양한 재현, 서술, 은유는 무엇이 정상인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집합적 이해를 만들어낸다. 모성의 시기는 좋은 어머니 되기와 이상적인 여성 생애주기에 대한 관념을 형성하게 된다(Ellingsaeter et. al. 2013).

실제로 많은 유럽국가에서 자녀의 양육은 어머니의 역할이 되어왔고, 이것은 20세기 중반 확산된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에 따른 ‘좋은 어머니’라 는 사회적 규범과 연계되어 있었다. 어머니들이 점차 유급노동에 관여하

면서 아동양육에 대한 사회 규범도 점차 변해왔다(Ellingsaeter et. al.

2013).

모성과 함께 부성에 대한 논의도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 어 노르딕 국가에서 부성담론은 지난 10년간 정치적 논쟁에서 핵심이 되 었고, 부성은 가족생계부양에서 돌봄으로 재정의 되기도 하였다. 존재, 정서적 개입, 실질적 참여를 강조하는 새로운 부성 담론은 자녀를 갖는 것 또는 갖지 않는 것을 위한 남성의 동기와 그것에 대한 근거를 위한 새 로운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Ellingsaeter et. al. 2013).

출산 및 양육의 사회ㆍ문화적 환경을 구성하는 규범적 측면에서 마지 막으로 살펴볼 것은 노동규범이다. 노동규범은 작업장에서 통용되는 행 위 규범으로써 노동자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을 말한다. 이와 같은 노동규범은 언어체계를 통해 형성 유포되며, 규범의 강제성으로 인해 작 업장에서는 노동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김왕배 2001). 노동규범은 작업장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우리의 행동이 작업장과 작업장 밖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 어 출근시간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무관하게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것이 이상적인 노동규범으로 작동한다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이 노동규범에 의해서 크게 영향 받을 것이다.

박해광(1999)의 한국기업의 경영담론 연구에 따르면, 모범적 노동자 상을 제시하고자 하는 영웅 이야기가 경영담론에서 주요하게 작동하며, 의미와 상징의 관리를 통해 선한 주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경영담론이 형 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언어적 실천이 순응적인 주체의 구성에 맞 추어져 있는 것이다. 기업 신년사의 언어적 배열구조를 보면, 과제와 임 무의 제시가 부각되고 이것에 대한 논증이 결핍됨으로써, 전체가 강한 지 시와 명령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전체의 담론 구조는 과

제의 달성, 임무의 성취를 요구하는 권력적 언어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 다. 그리고 노동자 수용의 단계에서 경영담론의 수용문 형식이 친경영자 적 태도가 일관된 결합관계를 나타냄으로써, 노동자들의 실질적 태도변 화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이와 같이 경영담론을 통한 사업장 내의 노동자상 구축은 그들의 행위 규범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경영담론을 통한 발화단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언어 구조 속에서 친경영자적 태도가 일관되게 관찰되고 있기 때문에, 이는 담론의 수준을 넘어 규범으로 내면 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노동자 상과 관련하여, 실제로 남성의 경직된 전일제 노동이 남성으로 하여금 시간-경직된 가사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 반면 여성에 게 시간제 근로의 의미는 시간-경직적인 가사노동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부모 휴가는 여성에게 집에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는 사회적 의미를 나타내며, 남성은 육아휴직을 통해 아이를 돌보고, 가사에 참여할 수 있지만, 핵심적 가사에 전적으로 참여하지는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상적 노동자 규범은 전일제 근무라는 엄격한 구조를 통해서 구현될 수 있다. 특히 현대의 임금 노동자는 가사노동으로부터 방해받지 않아야 한 다는 이념이 구조화되어 있다. 이런 기준이 엄격히 제도화 된 것이 주당 근로시간 체계이다(Hook 2010).

한편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참여와 관련한 규범으로써, 맞벌이 가 족 모델은 일반적 규범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성들은 일 과 가정에 대한 상충하는 의무에 직면해 있다. 여성이 다양한 일과 가족 의 전략을 추구하는 한편, 그들은 여성의 유급노동에 대한 부정적 도덕적 관념에 직면하게 된다. 즉 집에 머무르는 것은 이타주의적 평판을 만들어 내는 반면, 노동에 참여하는 것은 이기주의적 평판을 만들어 내게 된다

(Damaske 2011). 이러한 노동규범 속에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 은 매우 제한적이 되고, 결혼부터 출산 및 양육의 일련의 과정에서 대면 하는 선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Andersen에 따르면, 젠더 평등의 진전 에 주저하면 사회적 불균형이 발생하고, 저출산은 불안한 균형의 주요한 지표라고 주장하였다(Esping-Andersen 2009, pp.10~11). 모순적 노 동규범 속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선택할 어떤 이유를 찾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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