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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書公 10世孫 鴻溪公 李宗赫] 鴻溪公家狀(홍계공가장) 목차

-曾孫(증손) 承雨(승우) 述(술)

【계대(系代)】 ②판서공(判書公) 이양직(李良直) → 1世孫 ①연천현감공(璉川縣監 公) 사강(思剛) → 2世孫 ②연와공(蓮窩公) 말손(末孫) → 3世孫 유경(有慶) → 4世 孫 ①선공감공(繕工監公) 순년(舜年) → 5世孫 ②화남공(華南公) 여격(汝格) → 6世 孫 ▢系子동지중추부사공(同知中樞府事公) 춘영(春榮) → 7世孫 ①인담공(林潭公) 희백 (希白) → 8世孫 ②쌍오당공(雙梧堂公) 처인(處仁) → 9世孫 ①임덕공(林德公) 동윤

(東尹) → 10世孫 ①홍계공(鴻溪公) 종혁(宗赫)

公姓李諱宗赫字和仲號鴻溪慶州人羅初有開國功臣諱謁平爲上祖麗季有月城君諱之 秀爲遠祖國朝以來簪組襲世八傳有縣監諱汝格寔公五代祖也高祖諱春榮贈右尹曾祖諱 希白參奉祖諱處仁號雙梧以德行著也考諱東尹妣全州崔氏瑞來女公生于龍城西林里幼 而異凡性賦乎天德治乎人平日修齊之道必以孝爲先事父母孜孜之誠非人所及旣丁外憂 哀號盡禮誠克廬墓制闋後忽遇鬱攸之變守藏蕩燼生活艱窶即移于鴻西余改水村奉母夫 人誠孝之心彌切彌篤承順而養志供旨而適口菽水無資或漁弋或采樵安貧自適不改顔氏 之樂侍側誾如輒恩閔子之行得一美味不先入口如有不安節夙夜靡懈如有恐色終日侍立 起敬起孝悅而後退孝親之心及于愛人居常以溫雅正直爲特身孰莫不敬仰士流齊禀累至 鄕薦里婦街兒咸稱李孝子家府宰金公某聞聲諮訪致敬而歸饋遺以魚肉米藿之屬有書慰 之曰昔聞董生今見李某且近地有占金者以販牛生業也器盛十斤肉來獻公即欲報償占金 曰小人亦人也遠慕生員主誠孝之純篤獻玆一時需矣以若報償則何處不賣而至此固辭而 去如是者累度公從後送價者亦數矣如彼蜀賤亦感孝之爲貴者固其彝性之所同也其後內 艱哀毀踰節盡誠如禮遠近親疎皆賻奠稱頌然則公之實行以孝感天以德服人而拜廟躳自 掃庭遇忌務得精潔雖在燕閒之中卑身篤行無不盡善於日用之間爲一世之標準也以 景墓 癸卯十月初五日生 正廟辛亥十一月十二日卒葬于金莊鰲山乙坐原配晉州姜氏馹著女生 五男一女長諱光運次諱光澤次諱光潤次諱光國次諱光植女適驪州尹致寬光運號松齋以 孝友八薦光澤男景達號農隱又以孝行著世世稱三孝者是也松齋農隱二公事蹟俱載譜牒 及諸公撰誌中今不必盡詳而公之德蔭振覆于子若孫乎三世一行余非以文墨圖繪但追述 先蹟以俟君子之立言而至於內外孫曾玄總五十餘人己略墓誌姑不悉彦

●[판서공 10세손 홍계공 이종혁] 홍계공가장(鴻溪公家狀) 역문(譯文)

-증손(曾孫) 승우(承雨) 술(述)

공은 성은 이씨(李氏)요, 휘는 종혁(宗赫)이며 자는 화중(和仲)이요, 호는 홍계(鴻溪)니 경 주인(慶州人)이라. 신라(新羅) 개국공신(開國功臣) 휘 알평(謁平)이 시조(始祖)가 되고 고려 (高麗) 말에 월성군(月城君) 휘 지수(之秀)가 원조(遠祖)가 된다.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대대 로 끊어지지 않으니 여덟 번 전(傳)해 현감(縣監) 휘 여격(汝格)이 공의 5대조가 되고 고조 의 휘는 춘영(春榮)이니 증우윤(贈右尹)이요, 증조의 휘는 희백(希白)이니 참봉(參奉)이고 조 의 휘는 처인(處仁)이며 호는 쌍오(雙梧)니 덕행(德行)으로 세상에 드러났고 고의 휘는 동윤 (東尹)이요, 비(妣)는 전주최씨(全州崔氏) 서래(瑞來)의 따님으로 용성(龍城) 서림리(西林里) 에서 공을 낳으시다.

공은 어릴 적부터 윗사람과 달라 하늘이 낸 착한 성품과 사람에 입힌 후한 인덕으로 몸

을 닦고 집을 다스리는데 반드시 효(孝)로 근본으로 삼아 부모를 섬기는데 쏟은 정성은 다 른 사람의 따를 바가 아니듯이 부친상을 당하여 예(禮)에 넘치게 애통하고 시묘(侍墓)도 정 성으로 끝마치고 복(服)을 벗은 뒤 우연히 불우지변(不虞之變)을 당하여 가장 지물이 잿더 미가 되니 생활이 날로 어려워 홍서(鴻西) 땅으로 이사하여 모친을 봉양하는데 효성(孝誠) 이 지극하여 유순하게 뜻을 착실히 받들고 입에 맞는 음식을 대접하자니 집이 가난하여 살 수가 없어서 냇가에 가서 고기를 잡고 산에 가서 사냥도 하여 봉양을 게을리 않고 가난을 능히 극복하여 안씨(安氏)의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며 화한 태도로 부모님 곁을 모실세 민자 (閔子)의 효행을 생각하고 좋은 음식이 생기면 먼저 먹는 일이 없었고 병환이 나시면 밤낮 으로 정성껏 시병(侍病)하고 부모님이 성낸 기색이 보이면 종일 곁에 모시고 가서 공경과 효성을 다하여 즐기시는 것을 보고 물러나며 부모에 효도하는 마음을 타인에게 미루어 사 랑하고 거(居)할 때는 항상 온아하고 정직으로 몸을 가지니 뉘 공경하고 흠향하지 않으리 오.

사류(士流)와 유림(儒林)에서 일제히 효자로 추천하니 남녀노소 없이 모두가 효자라 부르 니 부사(府使) 김공(金公) 모씨(某氏)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예대(禮待)를 하고 돌아가서 고기와 쌀과 미역을 보내주고 편지를 주어 일으되, ‘옛날에 동생(董生)의 효를 들었으니 이 제 이 효자를 보았다’ 했고 점금(占金)이란 사람이 있어 소고기 파는 것으로 업을 하더니 소고기 열 근을 가져왔거늘 소고깃값을 보상코자 하니 점금(占金)이 이르되 ‘소인도 사람이 라 생원(生員)님의 효성에 감동되어 약간의 고기를 드렸거늘 만일 값을 받는다면 그 고기를 어디 가서 못 팔아서 여기 가져왔으리까’ 하고 사양하고 고기를 여러 번 하니 공이 값을 보내주기도 몇 차례나 했다. 저와 같은 천민(賤民)도 효도의 귀중한 것을 아니 성품이 타고 난 것은 귀천이 일반이라 그 뒤 모친의 상을 당하여 성의 다하여 예절에 맞도록 하니 원근 (遠近)에 사는 친척들이 모두 칭송이 자자하니 공의 실행은 효성으로 하늘을 감동하게 했고 덕행으로 세상 사람을 감복시킴이로다. 사당에도 몸소 청소하고 제삿날을 당하면 정결하고 엄숙함을 당하니 한세상 표준인물로 되었다. 경종(景宗) 계묘(癸卯) 10월 초 5일 출생하여 정조(正祖) 신해(辛亥) 11월 12일에 졸하니 금장오산(金莊鰲山) 을좌(乙坐)에 장사지내다.

배(配)는 진주강씨(晉州姜氏) 일저(馹著)의 따님이니 5남 1녀를 두다. 장남에 휘는 광운 (光運)이요, 둘째는 광택(光澤)이며 셋째는 광윤(光潤)이고 넷째는 광국(光國)이고 다섯째는 광식(光植)이며 딸은 여주(驪州) 윤치관(尹致寬)에 출가했다. 광운(光運)의 호는 송재(松齋) 니 효우(孝友)로 추천을 받았고 광택(光澤)의 남 경달(景達)은 호가 농은(農隱)이니 또 효행 (孝行)으로 세상에 알렸으니 세상에서 삼효자(三孝者)라 칭한 것이 이분들을 말함이다. 송재 공(松齋公)·농은공(農隱公) 두 분의 사적(事蹟)이 보첩(譜牒)과 제공(諸公)들의 지은 글 속에 들어있으니 이제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는 없으나 공의 음덕(蔭德)이 자손에까지 미처 삼대 효행(三代孝行)을 내가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요. 다만, 선적(先蹟)을 기록하여 후일 군자 (君子)의 증언을 기다리고 내외(內外) 증현손(曾玄孫)이 50여 인으로 공의 묘지에 대략 기록 되었으므로 여기는 다 기록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