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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천군 17세손 농은공 이중현] 찬양문(讚揚文) 역문(譯文) 목차

본사(本社)에서 공자사당(孔子祠堂)을 받들어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이어서 명륜록(明 倫錄)을 발간하니 각 지방에서 초안이 속속 들려오던 중 충남 유림(儒林)에서 추천한 초안 을 살펴보니 부여군(扶餘郡) 규암면(窺巖面) 신성리(新城里) 효자(孝子) 이중현(李重鉉)은 경 주이씨(慶州李氏)로 계천군(鷄川君) 휘 종직(從直)의 후손이다.

성품이 일정하고 모양이 단정하며 그 효성이 하늘에서 낸 바다. 부모를 섬기는 데 힘을 다하여 뜻에 맞고 몸에 좋도록 봉양 트니 모친이 단독(丹毒) 병에 걸렸을 때 얼음을 깨고 물거머리를 잡아다 쓰니 병환이 쾌차하였고 부친의 병환이 위중할 때 눈 속에 잉어를 잡아 달여 드려 3년을 더 살게 하였고 다음에는 바람병이 들어 심히 위중할 때 천지신명께 자기 몸으로 대신해 달라고 기도하였으니 꿈에 신인이 현몽(現夢)하여 이르기를 조상 묘소에 투 장(偸葬)이 들었다고 알려주어 파서 옮겼더니 3일간이나 더 살았었다. 부모상을 당해서는 초종장례(初終葬禮)를 유감없이 치렀고 3년 동안 눈물로 지내며 주육(酒肉)을 입에 넣지 않 고 맞추었으니 장하다. 순실(純實)한 그 효심이 종시(終始) 변함이 없어 무너져가는 삼강오 륜(三綱五倫)을 붙들만하니 마땅히 세상에 천양(闡揚)할 일이나 시대가 고금이 달라서 지금 껏 숨겨서 있었으니 애석한 일이다. 본사에서 그 정상을 살펴 감동한 바 있으니 의리상 묵 묵히 있을 수 없어 먼저 찬양문(讚揚文)을 인쇄하고 비(碑)를 세워 천주(天主)에 전하여 아 름다운 행적(行蹟)을 사해팔방(四海八方)에 널리 알려 영구히 전하도록 유림(儒林)에서 우선 표창부터 한다.

공부자탄강 2410년 월 일(孔夫子誕降 二千四百十年 月 日)

유회포창사(儒會褒彰社) 사장(社長)

참판(參判) 이병관(李炳觀)

찬성장(贊成長)

참판(參判) 이익호(李翼鎬) 참판(參判) 권익상(權益相) 참판(參判) 박희명(朴喜明) 승지(承旨) 김병흥(金炳興) 승지(承旨) 조중욱(趙重旭)

찬의장(贊議長)

군수(郡守) 신명호(申命䊀) 참령(參領) 김면조(金冕朝) 정자(正字) 한희원(韓熙元) 진사(進士) 조학원(趙學元) 진사(進士) 안종한(安鍾翰) 진사(進士) 허응(許應)

도유사(都有司) 신현설(申鉉卨) 마무(麻務) 송재영(宋在英) 정광석(鄭光錫)

사원(社員) 오경용(吳敬鏞) 장두홍(張斗泓)

정명훈(鄭明薰)

경기도도유사(京畿道都有司) 성낙면(成樂冕) 전라도도유사(全羅道都有司) 이민세(李敏世) 충청도도유사(忠淸道都有司) 권영만(權寧萬) 경상도도유사(慶尙道都有司) 이선(李璇) 평안도도유사(平安道都有司) 서재희(徐載禧) 함경도도유사(咸鏡道都有司) 이달훈(李達勳) 황해도도유사(黃海道都有司) 우관명(禹觀命) 강원도도유사(江原道都有司) 류흥식(柳興軾)

孔夫子誕降二千四百九十五年甲申十月日

李氏卓異之行溯古論今罕見其儀故一鄕士林齊會校宮將欲回文於各郡文廟儒林收其 贊揚之答以爲本家之珍藏矣自當署有沮止之論未得遂意只以本郡多士之文褒而義之可 勝歎哉

□[鷄川君 17世孫 農隱公 李重鉉] 讚揚文(찬양문)

목차

右文爲讚揚事竊惟靈芝生於凡卉之間而其香遠聞仙鶴立於群鶴之列而其彩特殊孝子 出於象人之中而其行卓異者不失其天賦之性而盡於事親者也本郡窺巖面新城里士人李 重鉉籍慶州鷄川君 諱從直之后裔也性本根孝晨昏之節志體之養一無睽違而其在萱闈之 丹毒氷天水蛭躬捉多數吮血除毒乃見奏效而脛膚凍裂終無苦意又在春堂之風崇延至三 禩暫不離側而臘天雪鯉斧斫求煎進見差而鬚縣冰稼口不能言履雪鳴蛙步不素正而其 聯凍形不使親知又從山靈之聯指掘其偷塚自告當署署亦感其孝而恕其罪不幸以天年終 也築壇禱天延壽三日及其丁憂饘粥之節哭泣之哀至有吊悅而巾巾至不脫侍奠如儀心志之 奉口體之養有似乎曾子氷天水蛭臘冬氷鯉無愧乎王祥禱天延壽掘塚病愈不下於黔婁豈 不韙哉亦不美哉噫欲觀其人之善必先觀其人之孝欲知其孝之實必先觀天感物感人之如 何爾王氏之孝當天寒而有躍鯉之異哉朱夫子載書而稱揚之董生之孝惟天知而降狗乳鷄 哺之實故韓文公作行而嗟嘆之此皆卓異之孝足以爲天之感物之感人之感者也今此李生 之孝有似乎數子感天感物感人實而不侫䓁之筆不及於朱韓二公載書作行之讚何然忘其 猥越記其實蹟錄其事由粧成一冊付之後續瞭爲十目之圖畵傳爲萬世之柯則爲因爲之辭 曰

孝矣哉李氏子曾養黔禱董天知三禩一千八十日日日侍側暫不離 于嗟汝水蛭兮誰敎汝 集孝子足皆凍寒冰脛膚敗裂無若毒 于嗟汝氷鯉兮誰敎汝登孝子斫履蛙鬚稼不步言凍形 誡使親知莫 于嗟乎夢嫗兮感何來指偷入塚私自掘署亦恕可知天賦彜倫同 于嗟彼蒼天 兮感何壽延孝子父築壇稽類誠爲至所以乃借三日當 哀哀兮父兮母兮天年不與孝心長衣 衾棺槨無遺憾孝巾至孝巾禮貌常 夫孝大則足以動天地感人神微則足以孚草木格禽戰爲則 人人皆可爲孝非專屬一家有 綱殘倫悖兮此其易得乎欣然爲賀吾扶餘扶餘父老居隣美有 子有孫可得如 惟我不侫諸章甫特書孝字傳後續堪令不孝身不孝口愧着人衣食人糓 孝 矣哉孝矣哉李氏子孝矣哉上無旌典雖堪嘆此文亦足以千秋不杇哉

昭和十九年十一月 日

扶餘文廟直員

趙凞昌 鄭化敏

掌議

鄭泰錫 崔恒植 黃洽 柳寅還 兪鎭晟 閔泳男 權炳允 林聖洙

著述人前直員 李時榮 兪益濬

發起人

申鉉德 金在夏

前直員

柳基雨 權泰衡 金三鉉 鄭泰鉉 閔泳冑 趙凞斗 兪鎭卨 尹暎培

儒林

金箕洪 金徽貞 黃烈周 閔丙善 李載旭 韓麟洙 鄭雲台 金永立 韓德洙

탁이(卓異) 행적(行蹟)은 가(可)히 인륜(人倫)을 붙들고 기강(紀綱)을 바를 것이니 이미 유 림(儒林)의 추천(推薦)이 있어 잠잠함을 머금는 것을 용납(容納)하기 어려운 고(故)로 먼저 이 찬양(讚揚)

●[계천군 17세손 농은공 이중현] 찬양문(讚揚文) 역문(譯文)

목차

오른쪽 글의 찬양(讚揚)한 일을 그윽이 생각한 건데 영지(靈芝)가 범훼(凡卉) 사이에 나서 그 향기(香氣)가 멀리 들리고 선학(仙鶴)이 군학(群鶴)의 열(列)에서도 그 채색(彩色)이 특수 (特殊)한 것처럼 효자(孝子)가 뭇사람 가운데에 나서 그 행한 것이 탁이(卓異)한 것은 그 하 늘에서 타고난 성품을 잃지 않아 어버이 섬기기를 다하기 때문이다.

본군(本郡) 규암면(窺巖面) 신성리(新城里) 사인(士人) 이중현(李重鉉)은 적(籍)을 경주(慶 州) 계천군(鷄川君) 휘 종직(從直)의 후예(后裔)다.

성품이 본시 효(孝)에 근본하여 신혼(晨昏)의 예절(禮節)과 뜻과 몸을 봉양(奉養)함이 하나 도 어긋남이 없었고 그 훤당모친(萱堂母親)께서 단독(丹毒)을 앓았을 때 얼음이 언 추운 겨 울에 물거머리를 몸소 많이 잡아 피를 빨게 하여 독(毒)을 제(除)해서 이에 주효(奏效)를 보 았으나 정강이 살이 얼어 찢어지되 마침내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또한 춘당(春堂)의 풍증 (風症)이 3년이나 연장(延長)함에 이르렀으되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납천(臘天)에 설 리(雪鯉)를 부○(斧) 하여 얼음을 쪼개고 구하여 달여 드려 차도를 보았으되 수염에 고드 름이 얼고 입으로 능히 말을 못 하고 신은 눈을 밟아 개구리가 울고 걸음을 바로 걷지 못 하되 그 동형(凍形)을 어버이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고 또한 산령(山靈)의 가르친 바를 쫓아 그 투총(偷塚)을 파서 스스로 관서(官署)에 고하니 관서(官署)에서도 또한 그 효(孝)에 감동되어 그 죄를 용서하였다. 불행(不幸)히 천년(天年)으로 임종 때 단(壇)을 쌓아 하늘에 빌어 수(壽)를 3일을 연장하였으며 그 상고(喪故)를 당함에 미쳐서 죽을 먹는 절차와 곡읍 (哭泣)하는 슬픔을 적상(吊喪)하는 이가 기뻐하는데 이르고 건(巾)과 수질(首絰)을 벗지 아니 하고 전(奠)을 모시기를 의례(儀禮)와 같이하여 마음과 뜻을 받드는 것과 구체(口體)를 봉양 (奉養)하는 것은 증자(曾子)와 같은 것이고 빙천(氷天)의 수질(水蛭)과 납동(臘冬)의 빙리(氷 鯉)는 왕상(王祥)에 부끄러움이 없고 도천(禱天)하고 연수(延壽)하며 굴총(掘塚)하여 병(病) 이 낳은 것은 검루(黔婁)에 못지아니하니 어찌 옳지 않으며 또한 아름답지 않으리오.

아! 그 사람의 착한 것을 보고자 할진대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효(孝)한 것을 볼 것이오, 그 효(孝)의 실상을 알고자 할진대 반드시 먼저 하늘이 감동하고 물건이 감동하고 사람이 감동하는 어떠함을 보는 것이니 왕씨(王氏)의 효(孝)는 천한(天寒)을 당하여 이어(鯉漁)가 뛰 는 이적(異蹟)이 있는 고(故)로 주부자(朱夫子)께서 글을 실어 칭양(稱揚)하셨고 동생(董生) 의 효(孝)는 오직 하늘이 알아 구유(狗乳)와 계포(鷄哺)의 실상을 내린 고(故)로 한문공(韓文 公)이 글을 지어 차탄(嗟嘆)하시니 이것은 탁이(卓異)한 효(孝)가 족히 써 하늘과 물건과 사 람을 감동케한 것이다.

이제 이 이생(李生)의 효(孝)는 수자(數子)의 감천(感天)하고 감물(感物)하고 감인(感人)한 실상과 같은 것이 있으되 재주 없는 사람등(자기自己를 겸칭謙稱한 말)의 붓이 주한이공(朱 韓二公)의 재서(載書)하고 작행(作行)하여 찬양(讚揚)하는데 미치지 못하는데 어찌하리오.

그러나 그 외람(猥濫)하고 참월(僭越)함을 잊고 그 실적(實蹟)을 기록하고 그 사유를 기록하 여 꾸미어 한 책을 이루어 후속(後續)에 부쳐 요연히 십목(十目)의 도서(圖畵)가 되고 전하 여 만세(萬世)의 가칙(柯則)이 될 것이로다. 인하여 사(辭)를 하여 가로되

효(孝)하다, 이씨(李氏)여! 증자의 봉양(奉養)함과 검루(黔婁)의 석도(析禱)와 동소남(董邵 南)이 하늘이 아는 것이로다. 3년 1천 80일에 날마다 곁에 모시어 잠시도 떠나지 않았도다.

아! 슬프도다, 너 수질(水蛭)이여! 누가 너로 하여금 효자(孝子)의 밭에 모이게 하였는가?

효자(孝子)의 발이 찬 얼음에 얼어 정강이 살이 패렬(敗裂)하여도 고독(苦毒)함이 없도다.

아! 슬프도다, 더 빙리(氷鯉)여! 누가 너로 하여금 효자(孝子)의 찍는데 오르게 하였는가?

신에 개구리가 울고 수염에 고드름이 얼고 걷고 말하지 못하니 언형상(形象)을 경계(警戒) 하여 어버이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도다. 아! 슬프도다. 꿈의 노자(老姿)여! 무엇에 감 동하여 와서 투입(偷入)한 무덤을 지적하였는가. 사사로 파서 옮겼으되 관서(官署)에서 용서 하니 가히 하늘이 준 떳떳한 이륜(彜倫) 같은 것을 알겠도다. 아! 슬프도다. 저 푸른 하늘이 여! 무엇에 감동하여 효자(孝子)의 아버지의 수(壽)를 연장하게 하였는가. 단(壇)을 쌓아 이 마를 조아리고 정성을 지극히 하였더니 써 이에 3일의 늦춤을 빌린 바로다. 슬프다, 아버지 어머니여! 천년(天年)이 효심(孝心)에 비하여 길지 않았도다. 의금(衣衾)과 관곽(棺槨)이 유 감(遺憾)이 없으며 효○효건(孝巾至孝巾)에 예모(禮貌)가 떳떳함이라. 무릇 효(孝)가 크면 족히 천지(天地)를 움직이고 인신(人神)을 감동하게 하며 적으며 족히 써 초목(草木)에 믿게 하고 금수(禽獸)에 이르나니 사람마다 법 받을지니 효(孝)는 일가(一家)에만 있는 것이 아니로다.

강상(綱常)이 애잔(哀殘)하고 윤리(倫理)가 퇴패(頹悖)함이여! 이 그 쉽게 얻으리오. 흔연 (欣然)히 우리 부여(夫餘)를 축하하노라. 부여(夫餘)의 부노(父老)가 이곳에 아름답게 여기는 도다. 아들과 손주를 가히 얻는다면 이와 같을지니라. 오직 우리 불녕(不侫)한 모든 장포(章 甫)가 효자(孝子)라고 특서(特書)하여 후속(後續)에게 전할 것이로다. 견디어 불효(不孝)로 하여금 몸에 사람의 옷을 입고 입으로 사람의 곡식을 먹는 것이 부끄럽지 않겠는가? 효(孝) 하고 효(孝)하도다. 이씨(李氏)의 아들이여! 위에 정전(旌典)이 없으니 누가 견디어 탄식지 않으리오. 이 글이 또한 족히 천추(千秋)에 썩지 않으리로다.

소화 19년 11월 일(昭和十九年十一月 日)

부여문묘직원(扶餘文廟直員) 조희창(趙凞昌) 정화민(鄭化敏)

장의(掌議)

정태석(鄭泰錫) 최항식(崔恒植) 황흡(黃洽) 유인환(柳寅還) 유진성(兪鎭晟) 민영남(閔泳男) 권병윤(權炳允) 임성수(林聖洙)

저술인전직원(著述人前直員) 이시영(李時榮) 유익준(兪益濬) 발기인(發起人)

신현덕(申鉉德) 김재하(金在夏)

전직원(前直員)

유기우(柳基雨) 권태형(權泰衡) 김삼현(金三鉉) 정태현(鄭泰鉉) 민영주(閔泳冑) 조희두(趙凞斗) 유진설(兪鎭卨) 윤영배(尹暎培)

유림(儒林)

김기홍(金箕洪) 김휘정(金徽貞) 황렬주(黃烈周) 민병선(閔丙善) 이재욱(李載旭) 한인수(韓麟洙) 정운태(鄭雲台) 김영립(金永立) 한덕수(韓德洙)

□[鷄川君 1世孫 襄平公 李陽生] 襄平公慶州李公諱陽生祭壇碑銘(양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