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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2. 도시체계와 시장 네트워크

3. 평성·순천·청진의 도시적 특성

가. 함경북도 청진시

(북한 최대의 중공업도시에서 시장도시로의 변화)

청진시는 2008년 인구센서스 당시 약 67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함경 북도의 도 소재지이다. 북한 27개 도시 중 인구 규모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는 도시이다. 청진시는 해방 이후 북한 최대의 함흥시와 함께 중공업 도시라는 위상을 독보적으로 누려왔다. 또한 바다를 끼고 있어 수산기지가 발달했으며, 다수의 중요 군수공장 및 군사시설, 군부대가 입지하여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도시이다. 1990년대 이후 경제난 을 겪으며 대부분의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면서 최대 중공업 도시라는 과거의 영광이 퇴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진시는 아직까지 북한

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청진시가 북한의 대표적 중공업도시이자 제3의 도시로서 위상을 갖 게 된 데에는 역사적으로 일제 강점기의 도시 개발 전략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북한의 도시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도시들이 일제 강점기 대륙침략 및 수탈체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도시형성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청진 역시 이런 도시형성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청진시는 1차 청일전쟁(1894~1895년) 이전에는 약 100여 채의 집이 있는 작은 어 촌에 불과했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년)을 수행하며 병력과 군 수물자의 출입항으로 청진을 개발하였다.51 또한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해 청진에서 회령까지 90㎞에 이르는 청회선을 1906년 건설하였다.

청진시는 북한 북부지역 및 만주지역의 산림에서 생산되는 목재와 자원 을 운반하기 위한 항구였으며 해산물 운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일제는 현재 청진의 일부인 나남구역을 1907년 군사기지화했다.52 1930년대에 들어서는 배후지의 무산철산(茂山鐵山)의 개발과 더불 어 1940년대에는 제강소, 제철소를 비롯하여 방직, 기계, 유지, 통조림 등의 각종 공장이 건설되어 중공업 도시로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51_청진은 1910년대부터 만주 쪽 콩과 공업원료를 한데 모아 일본 쪽에 실어 나르는

무역항으로 발전하면서 1930년대 인구 20만에 달하는 조선 굴지의 항구 도시가 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인공 계획 도시의 원조는 청진과 지척인 수성평야 남쪽의 군사 도시 나남이라고 할 수 있다. 1900년을 전후해 30가구도 채 안 되는 작은 촌락이었던 이곳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군은 대륙 진출의 보루인 군사행정 도시로 키웠다. 남쪽의 진해가 일본 해군이 만든 인공 도시라면 북쪽의 나남은 일본 육군이 조선의 거점으로 만든 인공 도시였다. 이곳에 만주 관동군과 함께 대륙 진출 의 첨병을 자임하던 조선 주둔군 19사단이 주둔했고 사단 본부도 자리 잡았다. 국내 최초의 근대방사형 계획 도시로 육성된 나남은 용산과 더불어 조선 내 일본 육군 무력의 핵심 거점이었던 셈이다. 1940년대 초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진에 편입되면서 나남의 독자적인 도시 발전사는 끝난다. 노형석, 󰡔한국 근대사의 풍경󰡕 (서울: 생각의 나무, 2005), pp. 147~152.

52_윤정섭, 󰡔도시계획사 개론󰡕 (서울: 문우당, 1987), pp. 127~128.

이런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도시 형성의 초기조건으로 인해 해방 이후 에도 북한은 청진시를 최대의 중공업 도시로 육성하는 전략을 채택하 였다. 이런 육성 전략에 따라 청진시에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를 필두 로 철강업과 금속공업이 발달했다. 그 외에 청진제강소, 제2금속건설 연합기업소 등 제철, 제강으로 유명한 도시로 발달했다. 북한은 청진시 를 일명 ‘북방의 대야금기지’라고 명명하고 있으며, 그만큼 김책제철연 합기업소는 철 생산량에서 아직까지 독보적인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53 그 외 나남탄광기계공장, 청진조선소, 청진철도공장, 청진화학섬유 공장, 나남제약공장, 청진고무공장, 청진스레트공장 등이 있다. 또한 부윤구역에는 니켈광산이 있고 송평구역에는 시설 용량 15㎾의 청진 화력발전소가 입지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의 경제난 때문에 청진제강소를 비롯하여 많은 공장·기업소들이 조업을 중단하거나 용 도변경 혹은 해체 및 철거 중에 있다.

53_김익성 외, 󰡔조선지리전서: 공업지리󰡕, pp. 310~311.

그림 Ⅱ-4 청진시의 시장 네트워크

출처: 필자가 북한이탈주민 면담 내용을 통해 그래픽으로 재구성.

청진시는 산악지형에 둘러싸여 수성평야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농 토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데다 인구의 대부분이 배급에 의존하는 공 장·기업소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대규모 아사를 경험한 아픈 상처를 지니고 있다.

청진시는 과거에 가졌던 중공업 도시로서의 면모가 위축된 반면

1990년대 이후 시장의 번성으로 인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현재 청

진시에는 공식적인 시장만 18개에 이를 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그 수 와 비중에서 압도적인 시장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수남구역에 위치한 수남시장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도매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북·중 접경도시(혜산, 회령, 온성)와 동해안 도시축(나선-김책- 함흥-원산)을 연결하는 북한 내 시장 네트워크에서 중요 거점 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대외 시장 네 트워크상에서도 중요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대북경제 제재가 있기 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과 중국을 연결하는 중계무역기 지로서도 명성을 날린 바 있다. 이렇게 시장이 번성하면서 청진시는 경제난의 여파로 퇴색해 가던 중공업 도시에서 시장을 통해 새롭게 도 시의 역동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나. 평안남도 순천시

(지하자원과 시멘트 시장으로 생존해 가는 도시)

인구 29만 7천 명(2008년 인구센서스)의 순천시는 북한 전체 도시

중 인구 규모로는 10위에 해당하는 도시이다. 북한 27개 도시 중 중상 위권 인구 규모를 지니고 있다. 순천시는 1983년이 되어서야 시로 승 격된 도시로, 사실 역사는 매우 짧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농촌이었던 순천 지역은 전쟁 후 공업도시로 새롭게 형성된 신생 도시 중 하나이다. 해방 이후 북한은 자원 수탈과 대륙침략 목적으로 동서 해안을 따라 도시를 개발한 일제의 왜곡된 도시 개발전략을 수정하는 차원에서 내륙도시 성장전략을 취한 바 있다. 순천은 이런 내륙도시 성장전략 차원에서 새롭게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

순천시가 공업도시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은 시로 승격되기 이전인

1958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북한에서 천리마 운동이 한참

이던 때로 사회주의경제건설에 필요한 자원이 절실하던 때였다. 특히 무연탄 매장지, 석회석 매장지로 북한 당국의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들 자원을 활용한 대규모 공장·기업소를 건설하고 인구 를 이주시키면서 공업도시로 급속하게 성장한 도시이다. 순천시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전까지 석탄(신창·영대·천성·청년·직동광산),

시멘트(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 비날론(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화력 발전소(12화력연합기업소), 석회질소비료공장, 뜨락또르공장, 순천제 약공장 등이 입지하여 공업기반이 상대적으로 다른 도시에 비해 유리 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공업도시의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공장에 필요한 인력을 대규모로 배치하면서 급속하게 인구 유입 이 이루어져 인구 구성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도 시에 속했다.

특히 순천시의 중요성은 평양시에 필요한 전력을 생산하는 동평양 화력발전소에 석탄(무연탄)을 공급하는 공급원이라는 점에서 크다. 평 양시 전력 공급을 맡고 있는 화력발전소에 석탄을 대는 곳은 평안남도 의 순천시, 개천시, 덕천시 3곳이 주요하다. 이 중 순천시가 가장 중요 한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평양시와는 경제적 교환 관계의 측면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점에서 평양시와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순천시는 평 성시와 더불어 평양의 위성도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이 두 도시는 평양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도시 생존전략의 차원에서 보면 차 이가 있다. 평성시가 평양의 인구를 분산시키고 행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 평안남도의 도 소재지로 기능하는 행정·교육도시라면, 순천시는 평양에 필요한 에너지와 건설 자재를 공급하는 평양의 산업 적 배후지로서 자원 공급도시의 성격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순천과 평성의 생존전략 에도 영향을 미쳐 왔다고 볼 수 있다. 산업적 기반이 없는 평성시가 ‘시 장’을 통해 물자와 화폐의 유통 중심도시로 생존을 모색해 왔다면, 순 천시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시장에 공급하는 자원 의존적 생존을 해 왔다는 점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도시 형성 배경, 산업적 기반, 평 양이라는 도시와의 관계 측면에서 이 두 도시가 갖는 차이는 1990년대 이후 ‘시장화’의 수준과 내용에도 ‘차이’를 만들어 낸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순천은 상대적으로 넓은 평지를 확보하고 있어 평성에 비해 도 시화 지역이 넓게 분포한다. 평야가 발달했다는 점에서 원래 농업에 적당한 지대적 특성을 갖고 있다.54 황해도의 재령벌, 평안남도 숙천벌, 그리고 순천벌을 북한의 3대 평야로 부를 만큼 순천시는 넓은 평야지 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지대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풍부한 석 회석을 이용할 수 있는 시멘트 공장은 물론 1989년 대규모 비날론 공 장단지를 순천에 건설함으로써 순천은 공업도시로 빠르게 변모하게 되었다. 사실상 순천시를 대표하는 순천시멘트연합기업소와 순천비날 론연합기업소를 통해 도시의 성격이 변화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경 작지가 부족한 북한의 입장에서 농업 경작지에 대규모 공장 건설을 결 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전체 면적에서 도시 화 지역보다는 농업 지역의 면적이 큰 도시이다.

종합화학공장인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는 건설 당시 연간 비날론

10만 톤, 카바이트 100만 톤, 메탄올 25만 톤, 질소비료 90만 톤, 염화

비닐 25만 톤, 가성소다 25만 톤, 탄산소다 40만 톤, 단백질 사료 30만

54_순천시의 도시화 지역은 전체에서 13.9%, 농업 지역은 69.5%, 산지는 16.6%를 차지 하고 있다. 임동우·라파엘 루나, 󰡔북한 도시 읽기󰡕, p. 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