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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나. 도시의 시장 시스템으로 진화

3. 도시시장 발달의 경제지리

가. 도시시장 활성화와 도매시장 형성의 경제지리

도시시장은 상품의 생산자나 수입상으로부터 많은 상품을 구입하여 판매하는 상업 활동이 도시 인구를 상대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으 로, 그 기능은 도시적이며, 도시를 거점으로 집적한다.75 따라서 도시 와 시장은 상호 구성적인 측면이 있으며 시장은 도시의 기능과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도시성(urbanity)’에 시 장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경우 과거에는 계획경제 시스템과 경제노선이 한 도시의 도 시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계획경제 시스템이나 경제 정책에 따라 각 도시의 기능과 역할이 부여되어 왔기 때문이다. 가령 중공업 우선노선으로 인해 각 도시의 산업적·경제적 비중은 중공업 입 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측면이 강했다. 또한 중공업 우선 노선은 중 공업 부문 투여를 최대화하기 위해 여타 부문과 지방에 대한 투여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대형 중공업 단지가 입지한 도 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시들은 각 도시 간 연계성보다는 자족성에 입각해 자력갱생식 지역자립체계로 운영되었다.76

그러나 2000년대 초 시장이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각 도시에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시장은 도시의 기능과 성격에 보다 많이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되었다. 시장은 인구가 상대적으로 밀집된 도시를 거점으로 발 달하며 도시의 여러 기능과 결합되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성장해가 기 마련이다. 시장은 도시와 함께 커 간다고 할 수 있다.77 도시 자체의 생존에서 시장의 중요성이 커졌으며 도시 속으로 시장이 스며들면서 도시 자체가 하나의 시장 시스템화 되어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시장 시스템으로서 도시와 도매시장

북한에서 도시가 하나의 시장 시스템으로 진화하는 데 있어 특히 주

75_한주성, 󰡔유통지리학󰡕 (파주: 한울아카데미, 2003), pp. 85~86.

76_김병로, 󰡔북한의 지역자립체계󰡕 (서울: 통일연구원, 1999), pp. 7~10.

77_페르낭 브로델, 주경철 역,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Ⅱ-1 - 교환의 세계 上󰡕 (서울:

까치, 1996), p. 27.

목할 부분은 각 도시에 있는 도매시장의 역할이다. 북한 각 도시의 도 매시장은 생산자와 수입상으로부터 대량의 상품을 구입하여 판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도매시장의 기능은 다양한 상품 및 물자를 수집하 는 집하기능, 이렇게 수집된 상품과 물자를 여러 다른 지역으로 분산시 키는 분산기능, 유통 단계별로 상품과 물자의 흐름을 중개하는 중개기 능 등을 수행한다. 사실상 도매시장이 상품과 화폐를 빨아들이고 밀어 내는 ‘펌프’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에 있는 도매시 장은 전국적인 시장 네트워크의 형성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심 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도매시장은 전국적인 유통 망의 핵심적 동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제한적이고 초보적이지만 생산 을 유도하고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에서 도시시장은 이제 일정부분 입지산업이자 지역산업의 역할을 하고 있 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도시시장의 활성화와 도매시장의 입지는 도시 사이의 계층 및 위계를 만들어 내는 측면이 있다. 도시시장의 활성화 수준과 도매시장 의 역할을 통해 형성되는 각 도시 사이의 위계는 도시시장의 연간판매 액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다.78 그러나 북한 도시시장의 판매액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한의 경우 공시적으로 허용된 시장으로부터 거둬들이는 장세의 총액을 통해 확인하는 간접적인 방 법이 있다.79 이를 위해서는 각 시장의 물리적 규모와 매대수를 세고

78_위의 책, p. 87.

79_2007년 12월 부정 축재사건으로 수남시장 시장관리소 소장이 공개재판을 받고 처벌

을 받은 바 있는데, 당시 사건을 전했던 소식통은 수남시장 하루 장세 수입을 700만 원 정도로 전한 바 있다. 당시 쌀값 기준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현재는 3배인 2,000만 원 이상의 장세 수입을 올리고 있다고 거칠게나마 추정해 볼 수 있다. 사단법인 좋은 벗들 북한연구소 엮음, 󰡔오늘의 북한소식󰡕, 107호 (2008.1.30.) p. 6. 한편 2007년 당시 수남시장 1m 매대의 가격은 100~150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매대수에 따른 장세의 총액을 추정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시장의 크기를 측정하고 매대수를 추 정하는 방식만으로는 도시시장의 활성화 수준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합법적 시장의 물리적인 사이즈도 중요하지만 그 주변과 도시 전체가 하나의 시장 시스템을 이루며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동하는가 의 측면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령 A시장의 물리적 사

이즈가 B시장의 사이즈보다 작음에도 불구하고 A시장이 도매시장으

로서의 역할과 전국적인 비중이 큰 경우가 있다. 또한 북한이라는 특 성상 시장의 물리적인 사이즈는 제한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장터를 벗어나 주변과 도시 전체로 도매시장 기능이 연장돼 작동하는 경우이 다. 각종 개인 주택과 창고, 골목, 거리 등으로 연장된 도매시장 기능을 포함하면 한 도시가 갖는 도시시장의 활성화 수준과 도매시장의 역할 은 단순히 울타리가 쳐진 시장의 물리적 사이즈만으로는 측정이 불가 능하다. 따라서 우선 각 도시에 있는 도매시장의 입지를 분석하는 것 이 필요하다.

하루 장세 수입뿐만 아니라 매대 사용비 수입도 상당한 액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당시 수남시장 도매장사꾼의 하루 매상이 보통 30~40만 원 정도였기 때문 에 수남시장을 통해 움직이는 화폐 유통량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현재 북한 시장에서의 장세는 상품의 종류나 매대의 크기에 따라 500원, 1,000원, 1,500원으로 구분되고 길에서 장사를 하는 장사꾼들은 상품 종류에 따라 장세를 내 고 있다. 너비가 보통 1.5m 정도의 매대를 이용하는 음식 장사나 생선 장사는 500원,

매대가 2.5m로 비교적 큰 매대를 사용하고 있는 공업품 장사나 가전제품 장사는

가장 비싼 1,500원의 장세를 낸다. 음식 매대와 공업품 매대의 중간 크기의 잡화(생 필품)나 담배, 쌀 매대는 1,000원을 내야한다. 시장에서 매대가 늘어나면 그 만큼 장세도 많이 걷을 수 있어 당국의 수입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장세가 일괄적으로 동일했지만 현재는 크기뿐 아니라 이익을 많이 내는 매대는 장세를 더 받고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지난 몇 년간 시장에서의 장사 통제가 거의 없어서 시장 매대가 늘었고 또 길거리 장사꾼들도 많이 늘어난 상태이다. “北장세, 매대크기·상품에 따라 차등 공산품 매대 1500원,” 󰡔데일리NK󰡕, 2015.10.6.

(2) 도매시장의 입지조건과 상권의 구성요소

평성, 순천, 청진의 도시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도매시장의 입지 조 건과 상권 구성요소를 파악해 보면, 우선 도시시장의 활성화와 도매시 장의 입지는 도시의 인구분포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구가 많을수록 도시시장이 활성화되고 도매시장 역할이 클 가 능성이 높다. 북한을 대표하는 도매시장이 입지한 청진과 평성은 인구 규모에서 3위(66만 8천 명), 11위(27만 9천 명)에 해당한다. 청진시는 대도시에 속하고 평성시는 중간규모에 속한다. 청진시의 경우 인구 규 모가 크다는 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도시시장의 활성화 조건에 부합 한다. 그런데 중간규모인 평성에 북한 최대의 도매시장이 입지하고 있 는 점은 인구 규모와 시장 활성화가 비례한다는 위의 조건에 잘 부합 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고려해야할 점은 평성시가 평 양시의 위성도시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평양시와 경계를 함께하고 있 다는 점에서 평성의 시장들은 사실상 평양시를 비롯한 평안남도 인구 의 소비 수요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자금 조달과 화폐 흐름의 원활함과 용이성이다. 도시시장 의 활성화와 도매시장의 입지는 대량의 물자를 들여오는 데 필요한 자 금의 조달이 얼마나 원활한가가 중요하다. 그만큼 물자를 생산자 또는 해외로부터 구매해서 들여올 자금 확보가 필요한데, 지속적인 상업자 본의 축적과 유통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북한에서는 국가나 금융기관 의 담보를 통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간의 상업자본을 통 한 물자 구매가 기본이 된다.80 평성이나 청진 등 도매시장이 발달한

80_금융 관련하여 최근에 북한에서 모종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부분도 있다. 가령 지방은행의 출현이다. 노동신문은 2015년 12월 14일 제3차 전국재정은행 일꾼대회 소식을 전하면서 “함경북도은행 총재 리광호가 토론자로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도시의 경우 시장이 발달하면서 시중의 민간자본 규모도 점차 증가해 왔다. 민간자본의 축적은 시장을 보다 활성화하고 시장의 활성화는 자 본의 축적을 강화하는 선순환을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원도매-중간 도매-최종도매-소매-가계 등으로 이어지는 유통 단계에 따라 도시들 이 연결되면서 자본축적과 소득분배가 유통망을 따라 확산되는 효과 를 가져왔다. 이렇게 각 유통단계에서 발생한 이익은 일정한 자본 형 태로 도시의 건설시장, 노동시장, 자본시장 등에 투여되면서 자본 축적 을 초보적이나마 안정적으로 유도하는 밑거름 역할을 해 왔다. 이 과 정에서 소매업을 통한 수익, 시장 관련 서비스업, 고용을 통한 임금 등 이 가계 소득으로 이전되고 소비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시킴으로써 시 장을 보다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 북한에 도매시장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이런 자금 조달과 화폐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교통의 편리성이다. 주지하고 있듯이 교통은 시장 네트워 크의 기초가 된다. 교통망을 통해 다양한 물자, 에너지, 화폐, 정보 등 이 교환되기 때문이다. 청진과 평성처럼 도매시장이 활성화된 도시들

또한 2016년 1월 4일 북한 평양방송에서 ‘자강도은행’이란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다.

보통 조선중앙은행 지방 지점들은 ‘중앙은행 ○○○ 지점’ 등으로 불리는 점을 미뤄볼 때 ‘함경북도은행’은 중앙은행의 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지방은행 조직으로 추정된다.

직함 역시 중앙은행 지점 간부들과 달리 ‘총재’라는 직함을 사용하여 상당한 독립성 을 인정받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지방은행들은 중앙은행으로부터 독립했거나 독 립하지 않았더라도 업무의 상당 부분을 중앙으로부터 넘겨받아 지방은행의 구색을 갖췄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함경북도 청진에 있는 청진국제호텔에 중국 등 외국과의 금융거래가 가능한, 합영은행을 모체로 하는 지방은행이 세워졌다”고 밝힌 바 있다. 외환거래가 불가능한 일반은행과 달리 외환 거래를 할 수 있는 지방은행이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방에 외환거래가 가능한 은행창구를 개설해 외화벌이기관이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을 끌어들이거나 국경도시 에서의 비공식적인 환전거래를 당국이 관리하겠다는 취지로도 볼 수 있다. “북한에

‘지방은행’ 속속 등장 … 中 개혁개방 초기와 유사,” 󰡔연합뉴스󰡕, 201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