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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적 자기탐색과정으로서의 예술경험

III. 자기 이해와 예술경험

2. 통합적 자기탐색과정으로서의 예술경험

그렇다면 공감 능력의 발달을 논할 때, 왜 이처럼 내면적으로 상상하 는 과정을 수반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연구의 논의와 관련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타인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들을 향해 도덕적 행위를 하게 되는 것과 우리의 내면에서 그들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이 된 것처럼 ‘상상’해보는 것을 통해 도덕적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은 어떠한 차이를 가지는가? 그리고 이와 같은 차이점은 우리가 도덕적 인 간이 되는 데에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우선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우리들 각자의 내면적인 이해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이때의 ‘공감’은 우리 자신으 로부터 출발하는 진정한 ‘공감’이 될 공산이 적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대할 때의 태도가 자신을 투사하지 않은 공감적 태도에서 비롯된다면, 에 닿거나 뾰족한 것이 나를 찌르거나 의식이 희미해질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태’를 경험적으로 상상해볼 수도 있다. 즉 지금 현재 있지 않은 사실을 머 리에 떠올린다는 점에서 두 가지 인지작용 모두 상상작용이라고 할 수 있으 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직접 겪지 않은 것에 대해 상상할 때에는 주로 어떠한 영상을 떠올리거나 명제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경험에서 작동하 는 상상력은, 예컨대 우리가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을 때 고문을 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긴장이 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과 같이 마치 내가 그 상 황에 처한 것처럼 그 사람의 느낄 법한 감정이나 정서를 상상해볼 수 있는데 이러한 상상력을 경험적 상상력(experimental imagination), 혹은 정서적 상 상력(affective imagination)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태도는 자신보다 사정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 베푸는 시혜적 태도 정도에 머물거나 한편으로는 “강한 동료의식에 자신을 양보함으로써 일 종의 ‘타인 안으로 흘러들어가기’로서의 공감(Johnson, 1993, p. 399)”적 태도가 되기 쉽다.

그런데 이 같은 표면적인 감정에 치우친 공감적 태도가 더 문제가 되 는 것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도덕적 문제, 즉 “타인을 목적 자체로 대우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구체적인 방식으로도 알 수 없는 (Johnson, 1993, p. 399)”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직접 겪 지 않은 사항에 대한 경험이나 느낌, 의도, 욕망을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상상할 능력이 없이는, 즉 그 상황에 대한 자기 이해 없이는 자기를 넘 어선 것에 대한 존중이 무엇을 요구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적 태도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앞서 우리의 윤리적 상황에 서 결정적인 문제로 지적되었던 이성과 느낌을 분리하고 단절하는 문제, 즉 마음과 몸을 분리하는 문제로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자신을 투사해서 여러 가능성을 탐색해보는 숙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강한 동료 의식과 같은 느낌에 의존하여 ‘공감’을 이해하는 것은, 공감의 문제를 이 성의 문제에서 분리하여 어떠한 맹목적 이끌림에 의해 타인에게 동조하 고 베풀어야 하는 문제로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도덕 이론들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도덕적 능력, 즉 감정이입 능력을 대부분 무시해왔다. 흄이 ‘공감’ 또는 ‘동료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에 관한 논의는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타인의 경험으로의 상 상적인 감정이입적 투사의 핵심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극단적 사례로 서 그것은 과거와 미래의 상이한 상황과 조건 안에서 우리 자신을 상 상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타인의 입장에 서 보는 능력이나, 타인의 경 험과의 상상적 대면을 통해 우리의 시각을 확장하는 능력을 갖지 않는 한, 또한 우리의 가치와 이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의심하는 능력을 갖 지 않는 한, 우리는 도덕적 감수성을 가질 수 없다.14) 따라서 흄은 공 감을 도덕성의 근거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옳았다.…

… 여기에서 흄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타인의 평안을 향한 느낌을 넘어서서 그들의 경험을 상상적으로 취해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Johnson, 1993, p. 397).

“우리가 타인의 평안을 향한 느낌을 넘어서서(ibid., p. 397)” 그 조건 안에 자신이 있다고 상상하는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맹목적인 느낌에 이 끌려 행동하는 것을 넘어 합리적이고 신중한 사유를 요구한다. 여기서 합리적이고 신중한 사유란 그 상황에 자신이 처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숙고’의 과정과 관계될 수 있다. 숙고하게 되는 까닭은 우리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상황뿐만 아니라 그 선택과 엮인 여러 가지 상황과 맥 락 등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 리가 숙고해야 할 대상이 영원한 것, 즉 수학적 원리나 별자리의 운동과 같이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는 운동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린 것,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들이라고 말한다(아리스토텔레스, 1894, pp. 89-93).

그러므로 예술경험을 통해 우리가 공감하는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다 고 말할 때, 그 능력이 느낌이나 낭만적인 연민 정도에 머무는 공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보다 의식적인 숙고의 과정, 즉 우리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여러 가능성에 대한 탐색적 활동을 수반할 수 있어야 할 것이 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행위에서 분리되지 않는 ‘과정적인 자아’로서 도 덕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 즉 언제나 정체되지 않고 다른 상태로 변화할 가능성을 담지할 수 있다.

진화적인 정체성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들, 우리가 구성하는 관계들, 그 리고 타인들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들 안에서 창발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 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더듬거리며 찾아가는데, 그것은 결코 고정되거나 14) 인용문의 강조체는 연구자가 해당 문장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

이다.

완결된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정체성들과 어느 정도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시간 속에서 변화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흔히 우리가 누구 인가, 우리는 왜 지금 이 일을 하는가,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Johnson, 1993, p. 305).

우리는 각자의 삶 안에서 스스로의 신념과 이를 통해 가능한 행위를

‘탐색’하는 동안 결코 정체되어 있지 않다. 일상을 습관적으로 살지 않고, 기본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탐색하려 한다는 것은 의식적으 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도덕적인 자아가 되기 위해 사유하며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원천은 상황 속에 ‘놓여진’ 존재로서 동시 에 그 삶을 ‘구성’해내며 살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근본적 욕구와 닿아있 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경험은 우리에게 탐색의 구체적인 장(場)을 제공할 수 있다. 탐색의 장 안에서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어렵고 소외된 삶, 혹은 극한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이 제시될 때 그러한 가능성 안에 놓인 자신의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장(場)에서 삶의 다양한 ‘목표’의 형태들, 더 미세한 설명으로 풍부해지는 관계의 ‘양 상’들, 그리고 다양하고 섬세하게 드러날 수 있는 타인을 대하는 ‘방식’들 속에 자신을 투사해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처럼 예술경험을 통해 구체적 인 탐색의 기회를 가지며 이때의 탐색은 ‘마치 그 상황이 자신에게 벌어 진 것처럼’ 느끼는 생생한 탐색이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우리의 핵심적 열망과 집착에 의해 구성된 주체들, 항상 수정된 자기 이해의 관점에서 성장과 변형을 향해 열려 있으며, 사실상 그것들에 민감한 주체들 (Sandel, 1982, 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 ustice, p. 172, Johnson.

1993, p. 307 재인용)”이기 때문에 예술가들의 감각은 우리의 민감함을 자극할 수 있다.

이처럼 ‘항상 수정된 자기 이해의 관점에서 성장과 변형을 향해 열려’

있는 자아로서 예술경험이 구체적 탐색의 장이 된다면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투사해볼 수 있는 사유틀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 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자기 이해의 과정에서 예술경험은 하 나의 유용한 상호작용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예술경험이 ‘교육적’이 기 위해서는, 즉 예술경험을 하는 이로 하여금 확장된 자기 이해를 통해

‘성장’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 자체의 수준 및 내용 이 어느 정도 ‘교육’될 만한 요소가 있어야하며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 는 개인이 진지하게 그 작품에 반응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하겠다.

이러한 탐색적 활동이 각 개인의 일상으로 연장된다면 삶의 복잡한 맥락과 반복적인 경험 속에서도 좀 더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 식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태도는 곧 지속적으로 자신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이 처럼 특정 상황에서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탐색의 과정을 통해 이전보 다 더 잘 상상하고 더 잘 느끼며 더 많은 가능성을 투사할 수 있는 인 간,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자신을 넘어선 것에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을 ‘도 덕적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누스바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러한 도덕적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 해 지각과 감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세계 안의 우연한 사건들 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 보다는 그것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결 과를 기다리고 당혹스러워하는 것, 즉 기다리고 흔들리며 적극적으로 수 동적이 되는 것(Nussbaum, 1990, p. 184)”이 가능한 사람이다. 이와 같 이 구체적인 상황 안에서 자신이 겪게 될 고통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도 능동적으로 숙고하고 선택을 고려하는 자기 탐색 과정을 토대로, “품성 과 상황에 대한 인식을 정교화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감정 이입적 상상력을 계발(Johnson, 1993, p. 396)”할 수 있어야 우리 자신으 로부터 출발하는 ‘공감’이 가능한 자아, 즉 이성과 느낌이 분리되지 않고 느끼는 동시에 사고하고 사유할 수 있는 통합된 자아로서의 도덕적 인간 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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