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감정 교육과 도덕적 상상력
2. 감정 교육과 도덕적 상상력
우리는 앞서 감정이 후천적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토대로 감정 교육을 논하였으며,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내재된 감정 체계의 자동 적 기제 외에 각 개인이 경험을 통해 감정을 학습하게 된 까닭은 인간의 조건 상 점점 더 복잡해진 환경에서 이 상황들을 조절하고 통제하기 위 한 것이었다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그런데 여기서 논의되는 예술경험을 통한 ‘교육된 감정’의 특성은, 개 인의 일생을 통해 일반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의도적이고 정 제된’ 성격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의도적이고 정제된 성격의 감 정이란 작가에 의해 특별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미묘한 삶의 감각과 관련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술경험을 통해 ‘의도적’으로 감정을 교육하는
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윤리적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감정적 스펙트럼이 확대되고 다양해지는 것 없이도 우리는 평소에 가지고 있는 일반 적인 감정 체계로 매 상황에 반응하고 행동할 수 있겠지만, 감정의 더 많은 목록과 세밀한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만큼 인간관계에서 취하는 자신의 행동을 더 조절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역량’을 가진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 을 것이다. 연구자는 바로 이러한 감정으로서의 ‘역량’이 여기서 논하고자 하 는 민감한 ‘도덕적 상상력’ 혹은 ‘도덕적 감수성’으로 대응될 수 있다고 본다.
것을 겨냥할 때 그 학습 효과는, 주변 상황을 지각할 때 일반적으로 지 각하는 것보다 ‘좀 더’ 나은 형태로, 즉 이전보다 민감하고 세심하게 지 각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물론 예술경험을 통해 이러한 인지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주장 은 기본적으로 그 예술경험 속에 ‘교육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 다. 여기서 ‘교육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앞서 제시한 감정 교육의 측면에 서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앞서 주지하다시피 예술작품의 주제와 내용이 교육적이라기보다는 그것을 감상하는 동안 통속적이지 않 은 감정의 새로움과 미묘함을 느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감 상자에게 어떠한 감정의 새로움과 미묘함을 느끼게 할 가능성은 각 개인 의 수용 능력을 논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그 작품을 창작한 작가의 감 각과 표현 능력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가 예술경험을 통해 감정을 ‘교육’할 수 있다면, 교육의 의미에 합치할 수 있는 작품을 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 선정의 중요성은 그것이 예술경험이 가진 특성상 신체적 인 자극을 동반하면서 강렬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 때문에 더 욱 부각될 것이다. 예술가들이 무엇인가를 창작할 때 자신의 작품을 타 인과 소통하기 위해서 제작한다면, 그들이 타인에게 호소하기 위해 사용 하는 방식은 주로 감상자로 하여금 그들의 감각을 자극하고 지각적 변화 에 집중하도록 하며 때로는 강한 감정을 일으키려고 하는 등 신체적 자 극을 주는 것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 유발시키는 감정이 감정적 스펙트럼의 확대나 도덕적 상상력의 발달과 관련되려면 그것은 여기서 말하는 ‘교육적’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 ‘교육적’인 감정이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신체적 자극과 반응에 국한되는 편협하고 눈 먼 감정이 아니라 보다 명료해지는 ‘삶의 감각’과 관련된 감정을 말한다. 예컨대 나치즘의 프로파간다 역할을 한 것으로 잘 알려진 레니 리펜슈탈(Leni Riefenstahl, 1902~2003)의 <의지의 승리(Triumph Of The Will, 1934)>
라는 영화는 그것의 시각적 예술성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예술 장르가 가진 영상의 미학을 이용하여 나치즘의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전하려 한다고 비판을 받으면서 예술의 위험성에 대해 주의를 집중시킨 대표작 중에 하나이다. 예술경험이 우리의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신체에 각인되 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특성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신념이나 판단을 왜 곡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할 위험성을 전제하고 있기도 한 것 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작품에서 표현된 감정을 느끼고 그로부터 감정이 ‘교육’된다고 말하려면, 그 감정들이 우리의 깨어있는 삶에 영향 을 미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깨어있는 삶과 관계될 수 있는 감정은 작품에서 구 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술경험을 통해 감 정적으로 섬세해지는 것으로부터 도덕적 상상력 및 도덕적 감수성을 발 달시킬 수 있으려면 이때의 작품이 갖춘 특징이란 어떠한 것인가?
도덕성이라는 작용은 도덕 법칙이나 도덕 원리를 파악함으로써 이루어지 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는 상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식별함으로 써 이루어진다. 즉 그것은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 며, 다른 사람들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그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며, 우리의 행위는 어떤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다양하 게 조망된 행위 방향에서 어떤 결과가 비롯될 수 있는지를 식별하는 문 제다(Johnson, 1993, p. 417).22)
마크 존슨에 따르면, ‘우리가 특정 상황에서 도덕적 상상력을 잘 발휘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우리가 그 상황을 얼마나 잘 ‘지각’하고 ‘식별’하 느냐’의 문제로 바꾸어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논 의를 통해 볼 때, 예술경험을 통해 교육된 감정이 실제적인 상황에서 발 휘될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지각 및 식별력’의 능력과 관계된
22) 인용문의 강조체는 연구자가 사용한 것이다.
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누스바움 역시 유사한 주장을 제기한다.
도덕적인 지식은…명제들에 대한 지적 이해가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지적 이해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지각(perception)이 다. 그것은 복합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을 고도로 명료하고 풍부하게 반응 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상력과 느낌을 통해 현전하는 것들에 참여하는 것이다(Nussbaum, 1990, p. 152, Johnson, 1993, p. 416 재인용)23)
따라서 이들의 논의를 종합해볼 때, 우리의 도덕성은 ‘지각’을 통해 나 타나며 이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실천적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혹 은 ‘도덕적 상상력’의 폭과 깊이에 영향을 주는 ‘식별력(discernment)’으 로 말해질 수 있다(누스바움, 1990, p. 85). 그러나 이러한 지각 및 식별 력 자체가 구체적으로 우리 삶의 맥락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떠올리기 에는 우리가 바로 그 상황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즉 우리의 상황이 수많은 목적 및 수단으로 얽혀있어 자신이 처한 상황에 거리를 두고 바 라보기 어렵기 때문에, 스스로의 행위 속에 드러나고 있는 지각의 양상 을 분별해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누스바움은 우리가 소설 속의 인물들을 통해서 바로 이 식별 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예술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가 감상자로 하여금 도덕적 식별력을 길러주기 위한 목적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 지식은 그것의 특질상 소설에서와 같이 구 체적인 상황과 인물의 묘사를 통해 가장 적절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소설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24)와 아리
23) 인용문의 강조체는 연구자가 사용한 것이다.
24)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는 마크 트웨인(Mark Twain)과 함께 19세기 후반 최고의 미국 작가로 꼽힌다. 제임스는 국제적인 주제들, 다시 말 해 순진한 미국인과 국제적 사고를 지닌 유럽인과의 복잡한 관계를 그린 작
스토텔레스의 병치점이 바로 이 식별력의 강조에 있다고 말한다 (Nussbaum, 1990, p. 85). 헨리 제임스는 인간이 각각의 개별적 상황에 서 행동할 때 그 상황이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반복적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시 일어나는 일을 다루듯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식별 력으로서의 지각, 즉 ‘직관(intuition)’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잘 묘 사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각 및 식별력의 양상은 예술작품 속에서 더 특별하고 밀도 있게 제시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이나 타인의 행위를 지각할 때 직접적인 현실이 아닌 예술작품에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예술가의 특별한 감각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감상하는 모든 작 품이 감상자와의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경험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작품을 경험할 때마다 매번 특별한 지각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 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서 로빈슨의 주장을 통해서 소설에서의 감정 표 현이 통속적인 우리의 일반적 감정 표현을 넘어선 것이라는 점을 살펴본 바 있다. 이렇듯 예술작품에서 보이는 삶의 내용은 예술가들에 의해 ‘기 획’된 삶의 감각과 경험의 축약이다. 이때 드러나는 식별력은 예술가의 특별한 감각에 의해 구성되고 표현된다. 여기서의 특별한 감각이란 “도 덕적으로 민감해지는 데 절대적으로 기본적인 섬세한 판별력”으로 이것 가로 한때 예술, 특히 문학은 "삶을 만들고 관심을 만들고 중요성을 만든다"
라고 쓴 적이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인포피디아 USA, 2004, 미국 국 무부 |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 그는 리얼리즘으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심리적 리얼리즘'이라고 이르는 신국면을 개척하여 인간 행위를 내면적인 동기에 의하여 세밀하게 분석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어느 부인의 초 상〉(1881)이 그 대표작이다. 누스바움은 문학을 통해 우리의 감정 및 신념이 교육되는 가능성을 언급할 때, 헨리 제임스의 작품을 예로 들거나 및 문학과 삶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통찰을 자주 인용한다. 연구자가 보기에 그것은, 앞 서 사실주의 소설을 통한 감정교육을 제시하기 위해 로빈슨이 소개한 이디스 워튼과 마찬가지로 헨리 제임스 역시 인간이 자신의 주어진 상황에 대해 가 질 수 있는 복잡한 심리에 대해 최대한 섬세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고 간주했기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