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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교육의 가능성 탐색과 적용

IV. 감정 교육과 도덕적 상상력

1. 감정 교육의 가능성 탐색과 적용

우리는 앞 장에서 예술경험이 자기 이해를 확장할 수 있는 유용한 방 안이 될 수 있는 요건으로서 그것이 다른 경험에 비해 소재적 특성상 신 체적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호소하기 때문에 각 개인의 사정과 맥락에서 개별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에 용이하다는 점을 들었고, 그러면서도 삶 의 구체적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상상할 수 있 게 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우리 자신을 넘어선 것 을 통해, 즉 예술작품에 드러난 다른 사람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스스로를 그 확대 된 시각에 투사하여 이해하는 단계를 거쳐야 했고, 이것은 기본적으로 먼저 각 개인이 주목하고 몰입할 만한 신체적인 자극과 이에 대한 개인 적인 수용 및 반응을 요구하였다.

이와 같이 자기 이해의 방식이 신체적 자극을 수반한다고 할 때, 즉 예술경험이 다른 경험에 비해 우리의 신체에 좀 더 직접적으로 호소할 때 우리를 건드리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우리의 ‘감정(Emotion)’일 것이다. 예컨대 뭉크의 <절규>를 보고 있을 때 전해지던 생생한 두려움 과 공포감,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현대인의 고독감과 쓸쓸 함, <안나 카레리나>를 떠올리면 그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내 안에서 전개되던 가슴 아픈 안타까움, 베토벤의 <월광곡>을 듣는 동안 온 몸을 휘감는 것 같은 비장함 등은 우리가 그 작품을 떠올릴 때마다 자연스럽 게 그 작품에 연루되는 감정적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이 우 리에게 강렬하게 남는 까닭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우리의 유기체적이고 생물학적인 특성과 관련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리가 감정에 대해 생각할 때 보통 떠올리는 것들은 ‘두려움, 혐오, 놀람, 슬픔, 행복’ 등으로 열거될 수 있을 것이다. 뇌와 감정, 느낌의 생 물학적 기제와 현상을 연구한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에

따르면, 우리가 이와 같은 감정들을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까닭은 이러한 감정들이 모든 문화에 속한 인간에게서 쉽게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 라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의 동물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Damasio, 2003, p. 59). 그리고 이와 같은 감정들을 인간을 비롯한 동물 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정서(emotion)혹은 감정’이라는 것이 “뇌와 마음이 생명체 내부와 외부의 환경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적 응해 나갈 수 있는 자연적 도구를 제공”(Damasio, 2003, p. 69)할 때 바 로 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다마지오의 이러한 가설은 신체 표지 가설(somatic-marker hypothesis)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가설에서 핵심적인 사항은 우리의 ‘감 정’적 신호가 적절한 ‘추론’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로 하여금 생 물학적으로 유리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마치 재앙 을 가져올 만한 선택을 즉각적으로 거부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회에 즉각적으로 달려드는 본능적인 직감(gut feeling)과 같은 것은 그 자체로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행동을 하게 함으로써 합리성, 혹은 합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성적 추 론이기 이전에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메커니즘과 관 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Damasio, 2003, pp. 170-177). 즉 어떠한 사건 으로 인해 우리의 직감이나 감정을 불러일으켜질 때 그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방어하거나 안정감과 만족에 합치되 는 것을 추구하는 유기체적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생물학적 반응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경험이 우리에게 유발하는 감정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생 명을 위협하거나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충족감을 주는 종류의 것은 아니 다. 그렇다면 예술경험 속에서 작동하는 감정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삶은 일차적으로 대사의 균형, 욕구, 정서 등과 같은 자연적이고

자동적인 항상성 기구를 통해 조절된다. 그것은 바로 살아 있는 모든 생 물들에게 그 자신의 복잡성의 정도와 그를 둘러싼 환경의 복잡성에 맞추 어 삶의 기본적 문제들을 다루는 데 필요한 자동적 해법에 접근할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인기에 이른 우리 인간의 삶을 관 리하는 데에는 이러한 자동적인 해결책 이상의 것이 관여한다.……(중 략)…… 우리는 물론 유전자에 따른 타고난 행동 기구 없이 살아갈 수 없 다. 그러나 농경이 시작된 이후 1만 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인간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의 생존과 안녕은 분명히 사회 및 문화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또 다른 종류의 비자동적인통제에 의존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일반적인 추론이나 의사 결정의 자유와 관련된 것이다. 요지는, 우리 인간은 단순히 보노보나 다른 종의 동물들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동료에게 연민을 보일 뿐만 아니라 우리 는 우리가 연민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결과로 애초에 그와 같은 정서와 느낌을 불러일으킨 사건의 이면에 있 는 상황에 대해서 어떤 행동을 해왔을 것이다(Damasio, 1994, pp.

195-196).15)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감정과 이를 통한 사회적 행동, 연민 등이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 자동적 통제 기제라고 설명하면서도 인간은 이를 넘어서서 더 복잡한 자신의 환경에서 살아남 을 수 있도록 비자동적인 통제 기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지능이 스스로 그러한 정서와 느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수준까지 발달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정서와 느낌을 알고 기억하 고 있다는 것은 타인 역시 그러한 정서와 느낌을 가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어느 정 도는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15) 인용문의 강조체는 연구자가 감정이 후천적으로 습득된다는 측면을 부각시 키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우리가 보이는 신비로운 정서적 반응은 이것만이 아니다. 무의식적 기원 을 갖고 있으며 개인의 발달과정에서의 학습에 따라 형성되는 또 다른 종류의 반응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신중하게 습득하는 사람, 집단, 사물, 활동, 장소 등에 대한 호감 또는 혐오감의 인식 및 표현이 그것이 다. 흥미롭게도 비의도적이고 무의식적인 이 두 종류―하나는 선천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학습된―의 반응은 우리의 무의식이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Damasio, 2003, pp. 62-63).16)

우리는 사회적 행동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감정 및 지능을 가진 동물 들 중 하나이지만 “특정 대상과 특정 정서 간의 관계를 자각하고 어떤 대상과 상황을 우리의 환경에 허락하느냐, 그리고 어떤 대상과 환경에 우리의 시간과 관심을 쏟아 붓느냐를 결정함으로써, 고의로 자신의 정서 를 조절하고자 노력(Damasio, 2003, p. 65)”할 수 있다. 연구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앞에서 제기한 물음, 즉 예술이 실질적으로 우리 생존의 위 협이나 안녕의 충족감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지 않는 감정을 일으키더 라도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의 단서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선천적으로 감정의 기제를 타고나기도 하지만 더 섬세하고 복잡한 감정의 반응은 개인의 학습된 경험에 의존한 다는 것이며 이 학습된 경험 중에 하나가 예술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다.

따라서 우리의 일생에서 개인적으로 학습되는 감정적 반응의 영역에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감정 경험을 끼워 넣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17)

16) 인용문의 강조체는 연구자가 감정이 후천적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을 강 조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17)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우리가 정서적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실 제로 발달 단계의 핵심적인 교육 목표 중 하나는 정서를 유발하는 대상과 정 서적 반응 사이에 의식적인 평가 단계를 끼워 넣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로써 “우리는 자연스러운 정서적 반응의 형태를 주어진 문화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구성(Damasio, 2003, p. 69)”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마지

다시 말해 후천적으로 학습되는 감정적 반응은 예술경험에 의해서 좀 더 민감하고 정제된 형태로 습득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은 다마지오의 용 어로 표현하면, ‘우리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의식적 심연에서 선천적인 정서적 반응과 서로 관계를 맺으며’ 우리에게 신체적으로 각인이 될 것 이다.

이러한 후천적인 감정의 학습과 이미 각인된 것들의 통합을 우리의

‘이해’라는 측면에서 투사해보면, 이것은 곧 ‘이해의 재구성’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처해진 여러 가지 조건, 즉 다른 동 물보다 뛰어난 인간의 지능 및 복잡한 환경을 조절할 필요성 등으로 인 하여 “개인의 역사 및 경험”에 의해서도 스스로 어느 정도의 감정을 학 습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역사적·문화적·사회적으로 우리에게 축적되어 온 ‘신체화된 이해’가 정체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재구 성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이해는 단지 인지적인 재구성 을 넘어 신체에 각인되는 종류의 것을 포함하기 때문에 유사한 환경에 노출될 때 우리는 이성에 의한 추론작용보다 더 본능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정서, 혹은 감정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이 일부 학습될 수 있다는 특성으로 인해 우리는 예술경험을 통해 어떠한 감정이 일으켜질 때 그 감정의 다층적인 스펙트 럼을 우리 신체에 각인시킬 가능성,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의 신체화된 이해를 보다 풍부하게 재구성할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혹자는 예술경험에서 느끼는 감정도 신체적으로 각인될 만한 종류의 것인지 의 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감정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존 본능과 관계된 것인데 예술경험에서 느끼는 감정 역시 우리의 신체에 각 인될 정도의 강렬함을 가지고 있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은 우리의 ‘감 정’이 지닌 또 다른 특성에 의해 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오의 주장은 예술을 통한 경험이 정서를 동반한다는 전제하에 우리의 정서적 반응의 형태를 정제된 형태로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제안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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