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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여성의 공간

불안한 심리상태를 시각화하기 위하여 연구자는 공간적 요소를 작업으로 끌어들였다. 이 공간은 지극히 ‘개인적 공간’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심리적 보호장치이자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 고 싶어 하는 행위, 도피의 공간까지 의미한다. 작업을 통해 연구자 는 사회로부터 도피와 합류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사회부적응 심 리, 은둔 심리, 불안 심리를 ‘개인적 공간’에 담고자 했다. 연구자의 작품에서 공간은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이나 숨겨두고 싶은 재물을 담는 기능이 아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소망 의 본능을 함축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소망은 절대 자유와 갈망의 원인인 불안이 소멸된 완벽한 성취의 귀환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탈 레스는 예술은 필연성의 현실에서 가능성의 세계를 창조한다고 했 으며, 매튜 아놀드(Matthew Arnold)는 예술은 현실세계에서 이상세 계를 그린다고 언급했다. 결국 예술은 굴곡지고 억압된 삶의 현실 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심리적 마취상태를 제공한다.111)

연구자의 작품 속 개인적 공간은 유토피아적 공간이 되며 현실세 계의 존재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상징적 공간이 된다. 이러한 상징적 공간은 현실과 이상, 억압과 자유, 결핍과 부조리한 위계구조를 극 복하고 승화의 단계를 거치면서 두려운 대상과 작금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을 담고 있다. 불안한 자아를 보호하

111) 이경재,『프로이드와 종교를 말한다.』, 집문당, 2007, p.306.

기 위해 만들어진 이러한 초현실적인 공간은 공격의 대상을 파괴하 지 않으면서도 심리적 안정과 평화적 쾌감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균형을 지켜내는 대안의 공간이 된다.

‘합(盒)’ 시리즈의 작품들은 연구자가 바라본 불안의 대상과 연구 자를 지켜보는 감시의 대상에게 의문을 제기한다. 바라보는 행위는 연구자를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상처주는 물리적 행위보다 더 초조 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심리적 파괴행위로 다가왔다. 연구자는 감시 의 시선을 피하고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지극히 사적인 공간, 아무 도 찾을 수 없는 도피의 공간을 필요로 했다. 타자의 시선과 연구자 의 시선은 이제 상대방을 감시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감시하며 적의 공격으로부터 혹은 내부의 자아로부터 지속적인 통제와 탈출을 시 도한다. 연약한 존재이자 제2의 성(性)인 여성을 향한 감시는 눈과 눈동자의 형태로 작품에 표현했다. 나를 숨기고 남을 엿볼 수 있는 눈동자는 연구자에게, 그녀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었으며 타자로 부터 도망가고 스스로를 폐쇄시키는 불안감과 공격성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게 만들었다.

이번 장에서 연구자는 자아와 현대인 즉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관음증적 시선과 불안, 공격성을 이용해 작업을 진행하였다. 주변의 상황과 일상의 사건들을 토대로 관찰자의 시선이 자아이면서 동시 에 타자로 끊임없이 변주한다. 눈동자의 시선은 주체와 객체를 오가 며 강박적 불안과 공포, 방어본능을 극대화하였다. 연구자는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길 바라며 투명인간이 되길 바란 적이 있었다. 친구들의 시선도 동네 아주머니들의 시선도 연구 자는 동정의 대상이면서 회자거리였기 때문에 나는 늘 피해 다니고 숨고 소리 죽여 울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안에만 있어도 나를

찾아내고 상처주며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초조하고 긴장된다.

과도한 관심과 시선은 감시가 되어 생각과 행동을 구속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 그리고 연구자는 본인이 원하던 원하 지 않던 간에 우리 주변에 설치된 CCTV나 타인의 카메라에 모습이 노출되고 저장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많은 정보가 공개 적으로 혹은 비공개적으로 수집되고 빼앗기면서 타인을 훔쳐보고 또는 나를 노출시키면서 비정상적인 정보화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매체의 공개와 정보 노출은 스스로 혹은 타자로 인해 주체 와 객체를 넘나들면서 자기노출과 관음증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는 나르시시즘적 시선과 타자로 인해 관찰 되고 쾌락이나 감시의 목적으로 악용되는 타자의 시선은 이제 모두 가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현 사회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심은 개인의 정서와 생활을 구 속하고 자유를 박탈하며 일상을 공격한다.

연구자에게 억압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시선은 감시가 되고 구속이 된다. 타인을 향한 경계는 자아를 불안하게 만 들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공격적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감시 의 효과는 미셀 푸코(Michel Foucault)가『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 생(1975)』에서 제시한 판옵티콘의 모델로 설명이 가능하다. 규율권 력의 사회는 규율에 의해서 개인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통제하는 감 시사회이다. 푸코는 이러한 감시사회의 도래(到來)를 직시하면서 군 주권력이 규율권력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판옵티콘(Panopticon:다 본 다는 의미)으로 설명한다. 판옵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 미 벤담(Jeremy Bentham)이 고안한 이론이다. 판옵티콘은 개인을 권력의 기능적 장치로 훈련시키고 순응하게 만들면서 생산력을 증

가시키고,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더 많은 권력을 창출하게 만드는 기계이다. 현대사회는 모든 개인들의 생각과 행동이 무차별 적으로 기록됨으로써, 개인에 대한 관찰과 감시의 일상화가 이루어 지고 있다.112)

관음증(voyeurism)은 지그문트 프로이드에 따르면 성기를 보고 싶어 하는 본능에서 나온 심리적 성향이다. 다른 사람의 성적인 행 동을 바라보는 쾌락적 행위와 충동적 성질을 포함하며 어떤 것은 정상으로 취급되며 때로는 도착으로 분류된다. 기본적으로 관음증은 직·간접적으로 성적 대상이나 성행위를 보고 싶어 하는 본능을 의미 하지만 도착적 관음증은 만족을 모르는 욕구와 강박적인 충동과 관 련이 있다. 바라보는 행동 그 자체가 가학적 의미를 갖기도 하는데, 이는 극심한 불안 · 죄책감 · 피학적 행동 등을 불러일으킨다. 바라 보기는 자신을 타자의 행동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 능을 하는 행위이다. 눈을 통해서 본능적 충동을 해소하는 과정은 과학적 호기심, 예술 창조 등으로 승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시각 적 본능에 과잉된 집중은 예술가, 체스 선수, 사상가, 수학자들에게 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직관적 인식능력과 상징적 표현능력은 일반적인 관음증과 매우 유사하다.113)

나는 타인이 바라보는 시선과 스스로가 자신을 구속하는 윤리적 감시 속에서 매번 상처받고 위축되며 현실을 부정해 왔다. 자아를 비판하고 구속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환상의 공간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가상의 자아를 찾아 연극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상상의 또 다른 자아를 찾아 대화하고 눈물

112) 미셸푸코 지음, 오생근 역,『감시와 처벌』, 나남, 2016, pp.12-13.

113) 정신분석용어사전, “관음증” 검색, https://terms.naver.com.

흘리며 심리적 위안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었다. 어른이 되어버 린 지금의 나에게 거울과도 같은 위안의 공간이 필요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당당한 모습 뒤에 사실은 슬픔의 핏덩어리가 숨겨져 있다 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비밀의 공간 속에 숨기고 싶었다.

20세기의 중요한 미술가 중 하나인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설치미술가이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그녀의 어린 시절 아버지로 인해 불행했던 가정환경에 대한 상처는 고스란히 그녀의 작품세계로 표현되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파리의 유명한 태피스트리(tapestry) 작업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절대군주 같은 가부장적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는 행복한 유년시 절을 보내지 못했다. 자신의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말하는 그 녀에게 아버지와 관련된 불우한 유년시절의 성장과 가정사는 작품 의 주요한 주제로 귀결된다. 아들을 원하던 집안에 셋째 딸로 태어 나 환영받지 못한 존재로 치부되었던 그녀는 결국 남자아이의 이름 을 물려받는다. 루이즈 부르주아의 유년시절에는 두 명의 중요한 여 성이 등장한다. 그녀의 가정교사이자 아버지의 정부인 세이디와 그 녀의 어머니이다. 이 둘은 아버지의 공통의 짝이면서 동시에 그 자 리를 지키기 위해 루이즈 부르주아를 이용하는 치명적 존재였다. 가 정교사인 세이디는 그녀의 가정을 위협하는 불손한 존재이자 아버 지에게 가기 위한 통로로 어린 루이즈 부르주아를 이용하는 교활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도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사회적 위 치를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의 정부인 세이디와 불편한 동거를 묵인 하는 욕망의 인물로 그녀의 인식체계를 괴롭힌다. 때로는 냉혹하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자식들을 훈육함으로써 어머니는 그녀의 가족체 계를 존속시켰다. 유년기의 기억과 상처는 그녀의 모든 작품들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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