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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식물과 여성

식물은 많은 창작자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준다. 회화, 조각, 공예, 디자인, 소설, 영화 등 예술영역 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영역 등에서도 끊임없이 연구되고 소재로 활용되며 재탄생한다. 특히 여 성 창작자가 식물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섬세하고 성(性)적이며 자 아를 투영시키는 경우가 많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는 그녀의 전 생애를 자연 속에서 지냈으며 자연을 모티브로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 하였다. 그녀는 식물 모티브를 유기적으로 단순화하며 자연의 생명 력과 리듬감을 표현했다. 특히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꽃의 이미지는 확대, 반복되면서 화려한 색채로 다양하게 표출되었고 조지아 오키 프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주는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적 시각과 그녀의 남성관계로 인해 참된 가치보다는 꽃에서 느껴지는 섹슈얼러티(sexuality)와 성적 차별화로 왜곡된 해석과 비평을 받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녀의 작품은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86) 조지아 오키프는 20세기 초 미국의 모더니즘 미술계에서 남성 중심의 제도권 아래 타자로 취급되는 여성 예술가들이 창조의 주체로서 자신의 조형언 어를 개발하고 여성 자신의 특수성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

86) 이윤주,「조지아 오키프 繪畵에 나타난 페미니즘的 特性 硏究」, 전남대학교 대 학원 석사학위논문, 1997, p.1.

장했다. 조지아 오키프가 바라본 ‘여성-몸’의 시선은, 남성중심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인 자신을 타자화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자연물과 꽃을 대상화하였다.

[그림 11] 조지아 오키프, <검은 붓꽃(Black Iris Ⅲ) 1969>, <붉은 칸나 1924>,

<여름날(Summer Days) 1936>

[그림 12] 알폰스 무어, <아르누보 양식 포스터> / 르네 랄리크, <아르누보 쥬얼리>

/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우디 건축물의 내부>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 대표적인 디자인양식으로 아르누보(Art Nouveau)가 있다. 아르누보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으로 만들어

진 공장의 물건들을 비판하며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중세장인을 동 경하는 수공예 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양식이다. 아르누보를 ‘여성 예술’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는 식물과 꽃 등을 주제로 내용을 구 성하는 방식이 매우 여성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르누보에서 보이는 꽃무늬와 자유로운 곡선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에 걸친 억 제되지 않는 자유분방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87) 아르누보 예술가 들은 관념적으로 혐오와 불쾌감의 대상들을 유혹적인 미(美)로 변형 시키고 상징화하였다. 아르누보의 모티브는 동·식물의 형태나 인간 의 모습 등에서 영감을 얻고 유기적인 패턴들을 장식적으로 표현하 면서 꿈틀대는 생명력을 담고 있다.88)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평생 동안 자신이 겪어 왔던 외부적 상처와 내적인 슬픔을 자신의 예술작품에 담아내고 기 록함으로써 육체적 고통과 삶의 고독을 예술로서 극복한 화가이다.

그녀의 작품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자화상에는 그녀 인생의 이야기 와 고통, 인간 존재의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 다. 그녀의 자화상 속에 담겨 있는 인체의 민낯과 해부학적인 표현 에서는 극심한 고통과 당시의 솔직한 심경이 생생하게 표출된다. 프 리다 칼로의 그림은 충격적이면서 처절하다.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그녀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외적 외침이자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강박적인 수단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47년 의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척추성 소아마비, 전차 충돌사고, 사 고 후유증으로 인해 서른 두 번의 수술, 세 번의 유산과 낙태, 남편

87) 송부경,「식물이미지로 표현된 자연의 생명성: 본인작품 <Infinite>시리즈를 중 심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p.23.

88) 윤성희,「아르누보양식을 응용한 복식디자인 연구: 꽃과 유기적인 곡선을 중심 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p.19.

의 끊임없는 외도, 다리 절단 등 생의 전반에 걸쳐 잔인한 고통과 죽음의 공포, 절박함에 시달려야만 했다.89) 그녀가 선택한 미술행위 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 선택한 절박한 보상이자 투쟁이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삶의 의미와 내면적 이야기를 담아냈고 자신의 처절함을 고백했으며 죽음과 싸워왔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 에는 현실을 간접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묘사하기 위하여 초현실 주의 기법과 환상적인 요소가 곳곳에 담겨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 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그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개인 적 고통과 삶의 처절함이 지극히 인간적인 보편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마와 죽음, 탄생과 소멸, 자연과 신화, 사랑과 여성 등의 이야기가 그녀의 작품에 심층적으로 녹아 있다. 그녀의 미술행위는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기록이기에 마치 일기와도 같다. 그녀가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많은 고통과 좌절은 그녀의 그림 속에서 강 박적으로 치밀하고 반복적인 이미지와 상징으로 표출되며, 이는 궁 극적으로 인간 성숙의 자기실현과 심적 치유를 통한 예술로서 승화 되고 발전되었다.

프리다 칼로는 1925년 9월 17일 그녀의 나이 18세에 버스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녀가 타고 가던 버스가 도심 경전철과 부딪치면서 쇠로 된 버스 손잡이 기둥이 그녀를 관통했다. 오른다리에 11군데 골절, 오른발 탈골, 요추, 골반, 쇄골, 갈비뼈 골절상 등 그녀는 사고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 받는 나날을 보내게 된다.90) [그림 13]의 고 통 받는 육신은 항상 보정기구를 착용해야 했던 그녀의 만성적인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 13]은 1946년 대규모 허리

89) 강미화,「미술치료 관점에서 본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작품세계」,『美術 治療硏究』, 제14권 No.2, 한국미술치료학회, 2007, p.350.

90) 클라우디아 바우어, 정연진 역,『프리다 칼로』, 예경, 2007, p.50.

수술을 받아야만 했던 그녀를 위해 그린 ‘용기’라는 작품이다. 그림 속의 그녀는 ‘희망의 나무여, 용기를 잃지 말기를’이란 문구가 적힌 깃발을 상징적으로 들고 있다. 그녀는 삶이 주는 고초와 슬픔, 역경 속에서도 그녀 특유의 낙천적 사고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을 통해 본인이 겪고 있는 불안과 상처, 고통을 표현하 고 있으며, 이러한 행위가 그녀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14]에서는 프리다 칼로가 항상 그리워했던 고국과 자신을 뿌리로 연결하고 있으며 자신이 고국과 하나로 이어져있음을 묘사 한다. 프리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녀의 육체적인 고 통과 병마로 인한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남편의 끊임없는 애정 행각과 외도로 그녀는 남편인 디에고와 이혼, 재결합 그리고 또 다 시 결별 등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프리다 칼로는 그녀의 짧은 일 생을 통해 극도의 불안과 아픔으로 괴로워했으며 이별의 고통을 그 림으로 표현했다.

[그림 13] 프리다 칼로, <고통 받는 육신>, <용기>

[그림 14] 프리다 칼로, <페데그랄의 용암지대 위에 누워있는 프리다의 자화상>

[그림 15]의 Body Ornament는 미적 기능을 갖는 동시에 어깨와 허리를 고정하는 척추용 장신구이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도한 작 업량으로 연구자의 건강이 매우 나빠졌을 때 수술한 허리를 보호하 기 위한 제작한 허리보조기구이다. 병원에서 나눠주는 신체 밀착형 허리디스크 보조도구는 너무 답답하고 딱딱했으며, 옷 속에 숨어있 어 나의 아픔을 상대방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게 때문에 아무 도 연구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도리어 젊은 나이에 그 정도의 고통도 참지 못하느냐는 질문으로 연구자를 비웃었다.

<아름다운 족쇄>는 연구자의 신체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에 게 공격적인 형태로 접근을 금지한다. <아름다운 족쇄>장신구는 사 이즈가 크고 화려해서 타인의 눈에 잘 띄고 상대방이 쉽게 다가서 기 어렵기 때문에 연구자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방 어용 어깨 장신구의 역할을 한다.

[그림 16]의 <검게 피어오르는 웨딩반지>는 2009년에 제작한 어

깨장신구 작품이다.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못한 연구자의 불안과 고 통, 불편함을 대변하고 있다. 한 여인이 결혼반지를 착용한 순간 검 은 물결이 그녀의 몸을 뒤덮고 가시로 돌변하여 강렬하게 집어삼킬 듯 신체를 압박한다. 그녀가 원하던 결혼은 어느덧 덫이 되어 그녀 를 가두고 공격한다.

[그림 15] 윤상희, <아름다운 족쇄 : 허리 교정기(waist brace) 2014-2017>

[그림 16] 윤상희, <검게 피어오르는 웨딩반지 2009>

한강(Han Kang, 1970~현재)의 소설에서는 남성중심의 가족관계 와 가부장적인 폭력으로 인해 타자화 되어버린 여성이 자연 속 식 물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은 스스 로가 혹은 타인으로 인하여 자신의 무의식 속에 있는 욕망을 발견 하고 현실을 탈피하고자 하는 저항 의식이 담겨있다.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땅 속으로 파고들었 어, 끝없이 끝없이····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없어, 물이 필요한데....

- 한 강, 『채식주의자(2007)』 (內) 나무 불꽃, p.180.

아내의 희끗한 입술이 오므라들며 신음에 가까운 외마디가 새어 나왔다.

나는 홀린 듯이 싱크대로 달려갔다. 플라스틱 대야에 넘치도록 물을 받았다.

··· 그것을 아내의 가슴에 끼얹는 순간, 그녀의 몸이 거대한 식물의 잎사귀 처럼 파들거리며 살아났다.

- 한 강, 『내 여자의 열매(2000)』, p,234.

『채식주의자』의 영혜와『내 여자의 열매』의 아내는 적극적이면 서 평화적으로 남성주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근대문명에 저항 하고 있다. 한강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의 순종적인 육체는 남성의 지배를 벗어나 스스로 대안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공간이 되며 주체 성의 회복을 도모한다.91)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폭력적인 현

91) 주은경,「한강소설에 나타난 에코페미니즘 양상 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2, pp.3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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