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성적 사유와 초현실주의를 통한 미(美)의 창조
3.1. 아이로부터 획득한 타자의 시간성
2장에서 살펴보았듯, 김채원은 진보된 도시의 물질문명, 가부장제에 대 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으며,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통해 그러한 진 보적 도시의 젠더화된 질서의 이면을 폭로하고 질서에 균열을 내고자 했 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적 ‘객관적 우연’의 형식을 통해 김채원 소설을 분 석할 때 알 수 있는 점은, 김채원이 질서를 전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근대 과학에 의해 정립된 직선적 시간관362)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질서와 언어를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객관적 우연은 사랑, 우정, 분신 등으로 나타나는 초현실주의적 양식의 하나로, 사람들이 이따금 예기치 않은 사 람들, 사물들과 마주칠 때 경이감이나 일치 현상을 지각한다면, 그러한 우연한 만남은 숨겨진 욕망이 드러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초현실주 의자들은 주장했다.363) 객관적 우연의 형식은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지점들을 드러내고, 현실 바깥의 현상을 표출함으로써 의식적 현실의 한 계를 폭로한다.364) 그런데, 프로이트식의 심리적 분열이나 데카르트 식의 합리적 대립과 구분되는 초현실주의의 존재 이유는 바로 ‘화해’다.365) 우 연한 만남으로써 인간은 데카르트의 합리적 인간 담론 혹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만들어낸 분열을 극복하고 탈융합 상태를 벗어나 사랑과 삶의 원칙을 선택한다.366)
362) “서구의 근대 과학에 의해 정립된 시간은 동질적이고 분할 가능한 시간이었으 며, 시계라는 척도를 통해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시간이었다. 어떠한 부분시간도 다른 부분시간과 다를 바 없어서 언제든지 수학적으로 합산 가능하다고 인식되 었던 것이다.” (김종욱, 한국 소설의 시간과 공간, 태학사, 2000, 26면.)
363) Breton(1987), p.23.
364) 신현숙, 앞의 책, 105면.
365) 핼 포스터, 앞의 책, 54면.
366) 핼 포스터, 위의 책, 54, 77면.
즉, 김채원 소설에서 고립되어 상상과 환상으로써 질서를 전복하려던 여성 화자들은 사물이나 인간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질 서와 언어를 새로이 확립해나가는데, 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야 했 던 것은 근대 역사학에서 여성 노동자, 빨갱이. 동성애자와 같은 ‘타자 혹은 비정상인’의 서발턴들이 언어를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업화 시기 한국에서는 근대화와 발전에 기여를 하지 못하는 여성, 미성년자, 도시 하층민과 그 자녀를 비정상적이며 이질적인 타자로 간주했으며,367) 이들을 규범에 갇힌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과학적 지식체계와 질서가 동 원되었다.368) 이러한 타자의 존재는 산업화 시기를 지나 2000년대에까지 지속되어, 타자들은 무지하고 불안을 일으키는 공포 대상으로 여겨지며 차별, 배제되었다.369) 김채원 소설의 여성 화자들이 만나는 아이, 분신과 같은 여성,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를 비판하며 고립된 인물은 산업화 사회 의 타자이며, 화자들이 이들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 운 리듬의 언어를 주조하는 것은, 타자들의 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타자 의 언어를 생성하겠다는 의지다.
이 절에서 주목할 점은 미성년자, 아이와의 만남이다. 김채원의 소설에 는 어머니 화자가 등장하며, 아이는 우연한 만남의 한 대상이 된다. 이는
“아이가 딸린 가정생활을 보내는 일은 … 생각하고 있지 않”는 여타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구분되는 지점인데,370) 소설들에서 화자가 아이 를 통해 발견하는 것은 진보의 직선적 시간관을 탈주하는 타자의 시간성 이다. 여성 화자들이 일상에 지쳐가면서도 일상을 초현실주의적으로 바 라봄으로써 자신의 아이와 우연히 조우할 때, 이들은 자신의 과거를 현 재로 끌어올려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새로운 질서로 나아갈 힘과 언 어를 얻는다. 김채원은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닌 아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사회 체계를 새로이 인식하며 어머니의
“지적인 삶”371)을 사는 인물들을 그려냄으로써, 한국 사회의 여성들의
367) 김원,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기억, 사건 그리고 정치, 현실문화, 2011, 412면.
368) 김원, 위의 책, 29-31면.
369) 김원, 위의 책, 111면.
370) 휘트니 챠드윅, 앞의 책, 185면.
371) 사라 러딕, 앞의 책, 51면.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창조적 사유의 가능성을 탐색한다.372)
먼저 김채원의 수필을 살펴보면, 주부의 삶을 초현실주의적으로 승화시 켜서 새로이 바라보고자 하는 김채원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수필에서 김 채원은 일상의 피로한 질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재미있는 요술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논하며, 일상을 초현실주의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 아이를 낳고 1981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칼럼 「주부일기」에서 김 채원은 “주부란 남편과 아이들과 시장거리 동창들 그런 것과만 이어지는 작은 울타리 안의 사람일까”라 의문을 던지는 한편,373) 세상을 아이의 눈으로 본다면 “일상사의 피곤이 하나의 재미있는 요술로 변(강조-인용 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밝힌다.374) 다른 수필에서도, 김채원은 물질 만능의 현실을 아이가 가진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 타개할 수 있다고 논 하며, 아이를 바라보는 모성적 사유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물질주의의 마비된 양심이 자초한 이 사망의 골짜기에서 생명의 줄기인 부엌이 가지는 참 의미는 어느덧 희박해져 버렸다. 따라서 삶의 의미도 희박해져 버린다. 눈 비비고 보면 냉혹한 현실이다.
부엌 속에 아무리 물과 불이 숨겨져 있고 아기자기한 동화의 힘이 있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이 황폐화되어 가는 삶의 모습은 여실히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물과 불, 동화의 힘, 이런 것으로 어떻게 될 수 없겠는가. 그런 것 으로 상쇄시킬 수 없겠는가.
부엌 속에서 어린 시절 맛보던 고향의 맛을 찾아 더듬거린다. 엿기 름을 잘 쓰지도 않으면서 눈에 뜨일 때마다 사들고 온다. 그럴 때 할머니 어머니의 손이 나타나서 위무해 주며 속삭인다.
불을 환하게 밝혀 보아라. 부엌에 딱 발을 붙이고 서 보아라. 새로 운 용기, 살아갈 힘이 그래도 솟지 않니?375) (강조-인용자)
372) 김채원, 「여성운동」.
373) 김채원, 「주부일기」, 조선일보, 1981.12.17.
374) 김채원, 「주부일기」, 조선일보, 1981.11.26.
375) 김채원(1993), 34-35면.
그 놀이야말로 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아름다운 창조물일 것이 다. 거기에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어떤 한계라든가 부자유스러움이 없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자유와 무한히 터진 상상력의 세계가 있 을 뿐일 것이다. 해가 지고 빛이 어스름으로 바뀌는 시간에 내일을 기약하고 돌아서는 소년의 모습에서 우리는 유년 속의 우리의 모습 을 향수할 수 있을 것이다.376) (강조-인용자)
유년의 집이 아득히 보이는 길모퉁이에 서 있는 아이의 손을, 손을 내밀어 잡아보자…그 아이와 손을 잡는 마음을 알고 나면 또 하나 의 다른 손을 잡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나의 손을 잡고 또 다 음의 손을 잡고 또 다른 손을 잡고 보면 우리는 모두 결국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서 하나라는 의미는 모든 것을 획일적으 로 통합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서로 북돋고 위로하고 이해하는 세계, 미지의 세계에서 솟아나는 개인의 꽃봉오리에 대한 존중이 함축되 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우리들의 미래상일까.
단 하나를 찾으려던 유년의 마음은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세계 로 이제 확대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 경험한 충일의 그 순간을 향하여.377) (강조-인용자)
일상을 요술과 같이 바라볼 때, 아이는 “무한히 터진 상상력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고 “유년 속 우리의 모습을 향수”할 수 있게 한다. 그럼으로 써 “아이와 손을 잡는 마음”을 상기하여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다. 즉, 아이를 바라보는 모성적 사유로써 발견한 아이 시절의 기억과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 “물질 만능, 무감각, 마비”의 현실을 “살아갈 힘”과 “새로운 용기”를 지닐 수 있음을 김채원은 강조한다.
김채원이 말하고자 하는 모성적 사유의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김채원이
376) 김채원(1993), 174면.
377) 김채원(1993), 45-46면.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주목해온 시간의식과 관련이 있음을 김채원의 소설로부터 파악할 수 있다. 모성적 사유를 통해 아이를 바라 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질서의 양상은 「가득찬 조용함」(현대문 학, 1983.1.), 「오후의 세계」(문학사상, 1989.2.), 「무언가」(문예중앙, 1989.9.)에서 나타나는데, 이 소설들에서 아이는 직선적 시간관을 부정하 는 새로운 시간성을 담지한다. 소설의 화자들은 아이에 의한 새로운 시 간성의 경험을 통해 결국 진보적 질서를 타개할 시간성과 언어를 정립하 는 데로 나아간다.
먼저 「가득찬 조용함」은 김채원이 ‘시간의 춤’장만을 개작하여 2015년 「 거울 속의 샘물」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김채원 소설 전반의 시간의식이 뚜렷이 나타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가득찬 조용함」은 직선적 시 간관이 부정되며 새로운 시간의식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하는 소설 로, 네 개의 다른 이야기들을 파편적으로 이어붙인 이 소설에는 ‘정오’,
‘어린이 정경’, ‘시간의 춤’이라는 부제들이 등장하며, 아이가 불러일으키 는 새로운 시간의 힘이 그려진다. ‘정오’라는 제목을 한 에피소드에서 여 인은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와 일체감을 느끼고”378)서는, “자신의 어린시 절로 돌아가”379) 본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 시간의 뒤섞임은 “색채의 무 수한 조각”380)을 만들어낸다. 정오가 자기 성찰의 순간으로, 인류가 과거 를 회고하고 미래를 내려다보는 시간성을 의미함을 고려할 때,381) 이 에 피소드는 직선적, 객관적인 시간을 벗어난 시간 개념의 생성 작용과 생 명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어린이 정경’의 에피소드에서는 아이들의 놀이가 여인에게 “삶에 대한 격정”382)을 불러일으킨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이들이 노는 장면이 여인에게는 “이상하게 잊히지 않”으 며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어린이들이 쓰는 단어는 “산뜻한 여운 을 남”긴다383). 아이들의 놀이를 보고 느낀 이러한 감정들로부터 과거에
378) 김채원(1984), 87면.
379) 김채원(1984), 86면.
380) 김채원(1984), 88면.
381) 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 역, 이 사람을 보라 외, 책세상, 2002, 415면.
382) 김채원(1984), 91면.
383) 김채원(1984), 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