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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에서 비롯된 몽상의 감각

2. 초현실주의의 체득과 진보 질서의 균열 시도

2.1. 가족사에서 비롯된 몽상의 감각

이 절에서는 김채원이 전쟁과 분단이라는 유년 시절의 경험과 꿈, 환상 의 모티프가 나타나는 시인 아버지, 소설가 어머니의 문학을 통해서, 현 실을 하나의 고정된 현실이 아닌 신비와 구원이라는 비합리적 요소를 간 직한 초현실주의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음을 논증하고 자 한다. 김채원 소설에 6·25 전쟁기의 사건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점 에서 전쟁의 경험은 김채원의 문학관의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채원의 수필과 소설이나 김채원의 모습이 기록된 글 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김채원은 전쟁으로 아버지 김동환을 상실한 한편, 전후 어머니 최정희를 중심으로 다른 문인들과 새로이 관계를 맺 음으로써 전쟁의 현실로부터 꿈을 꾸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대구 피란 시절, 초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어머니 가 없으면 때로 오후 늦게 석류나무집과 감나무집을 찾아갔다. 벌써 여러 차례 어머니를 따라갔기에 혼자서도 길을 알았던 듯하다. 먼저 석류나무집에 가서 대문 안을 들여다보면 거기 마당에 상 몇 개를 잇대어 붙여놓고 가득 앉아 있는 문인들을 볼 수 있다. … 그 정겹 고 훈훈했던 낭만적 분위기, 이제 뒤돌아보면 전시였기에 가능했던 그야말로 앉은 자리가 꽃자리 되기를 꿈꾸던 사람들 모습이—사진 을 보는 순간 아프다.229) (강조-인용자)

피난지를 “낭만적 분위기”라고 표현하며 “전시였기에” 문인들이 꿈꾸는 것이 가능했음을 강조하는 김채원의 글은, 당시 아이였던 김채원에게 전

229) 김채원, 「사진 한 장」, 현대문학759, 현대문학편집부, 2018.3., 225면.

쟁기가 참혹함 안에 꿈과 낭만이 숨겨진 사건으로 비춰졌음을 의미한다.

특히 전쟁기를 거쳐 1957년까지 살았던 동숭동 집이 묘사된 글들에는 전 쟁을 구원이라는 비밀을 담지한 신비하고 초현실주의적인 것으로 보는 김채원의 시각이 두드러진다.

전쟁을 지나고,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대면서 사철의 변화를 온몸으 로 앓아 가면서 견뎌냈기 때문일까, 그토록 무엇인가를 사람 마음 속에 깊이 새겨주는 힘을 그 집은 가지고 있었다.230)

나는 무언가 속삭여 대는 듯한 속삭임에 의해 그것들을 종이에 끄 적거렸던 것 같다. 그것이 바로 창의의 욕구였던 것을 이제와서 깨 닫는다.

그 속삭임은 이제껏 계속되는데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년에 살던 동숭동 집으로 그 줄은 이어진다. … 계절에 몸을 던져 늘 몸살을 앓던 집, 전쟁을 겪느라고 폭탄에 뒤흔들며 사방이 뒤틀린 집. 여름 이면 꽃사태를 만났고, 비가 오면 산사태에 집이 떠내려 가려 하였 으며 겨울이면 약수가 밖으로 새어나와 결국 마당 전체에 두꺼운 얼음층을 형성하여 얼음 위에 위태롭게 집은 서 있었다.231)

아버지는 그 집에서 인민군에게 잡혀 갔고 어머니는 새벽이면 머 리맡에 불을 켜놓고 엎드려 글을 쓰곤 하였다. 우리집에 놀러 오시 던 분들, 우리가 아저씨, 아줌마라고 따르던 분들은 후에 커서 보니 전부 소설가나 시인, 화가였다.

지금 돌아다보니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이면 누구라도 필연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 길이 찾아지지 않고 등불이 보이 지 않을 때일지라도 글을 쓰는 일로써 찾아보려 애를 써왔던 것 같 다. … 어두운 밤에 떠내려간 길에서 어머니와 우리가 등불을 비추 어 한 소녀를 끌어 올리던 이미지를 나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230) 김채원(1993), 114면.

231) 김채원, 「기수상 작가 문학적 연대기-역으로 승리의 과녁을 맞추는 일」, 304면.

나의 문학은 이 이미지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을까.232) (강조-인용 자)

먼저 수필에서 김채원은 동숭동 집을 전쟁을 겪어 사방이 뒤틀린 채로 사계절을 온몸으로 앓으며 버티고 있는 곳으로 형상화하며, 어머니와 함 께 그 집 앞 도랑에 빠진 여성을 구해낸 일이 자신의 문학을 집약한다고 쓴다. 즉, 아이들과 살아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 “무엇보다도

‘계속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지”233)를 표명하고, “남자가 만든 세계가 멸 망해도 여자는 살아간다”234)는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실천했던 최정희의 삶의 방식에 따라, 김채원에게 전쟁이라는 사건을 참아낸 동숭동 집은 고통의 이미지보다는 “등불을 비추어 한 소녀를 끌어 올리던 이미지”, 글이라는 등불을 간직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것이다.

김채원이 동숭동 집에 대한 인상을 써내려간 소설이라고 밝힌 「얼음집」

(한국문학, 1977.8.)235)에서 전쟁을 겪은 집이 상처를 감수했기 때문에 신비를 간직했다고 씌어지며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그려지는 점은, 김채 원의 전쟁 경험이 김채원이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배태하는 데에 일조 했음을 방증한다. 이 소설은 김채원 자신의 가족사에 기반한 이야기로,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와 두 아이의 고투를 담는다. 생존을 위해 작 가가 된 아내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괴로워한다. 아이들의 작은 실수 에도 울음보를 터뜨리는가 하면, 면도칼로 동맥을 그어버리겠다고 협박 한다. 최정희의 전기에 의하면, 이는 김채원이 경험한 것이다. 최정희는 화가 날 때면 면도칼을 들고 아이들에게 죽겠다며 소동을 부렸고, 김채 원은 그때마다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 같지 않을까 잠을 이루지 못했 다고 한다.236)

232) 김채원, 「기수상 작가 문학적 연대기-역으로 승리의 과녁을 맞추는 일」, 305면.

233) 우에노 치즈코, 「[경계에서 말한다-한일 페미니스트 서신교환6] 우에노 치즈코 의 여섯 번째 편지」, 당대비평25, 생각의 나무, 2004, 60면.

234) 우에노 치즈코, 위의 글, 60면.

235) “훗날 큰 뒤에 <얼음집>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쓰기도 했는데 그 단편은 순전 히 어린 시절에 체험한 그 집에 대한 인상을 적은 것이었다.” (김채원(1993), 113 면.)

236) 서영은, 「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로」, 문학사상139, 문학사상사, 1984.5.,

그러나 최정희가 1990년 타계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아내의 죽음이 라는 서사는 사실과 다르며, 아내의 죽음 뒤 그려지는 집의 모습 역시 최정희가 묘사하는 집들과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김채원의 소설적 상 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아내의 죽음은 분단 현실로 인해 남편을 잃은 개인이 겪었던 어려움의 크기에 대한 김채원의 상상으로 보인다.

서영은이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문학사상에 연재한 최정희의 전기는 최정희가 살아 있을 때의 글로 불확실한 점에 대해서는 최정희와 통화를 해가며 썼다고 서영은이 밝힌다는 점에서,237) 최정희의 삶에 대한 기억 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이 전기에 따르면, 최정희는 한평생 가족 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생계형 글쓰기를 하며 고단했던 듯하다. 삼천 리사 재직 시절부터 돈벌이를 담당했던 최정희238)는 전쟁 이후에도 “살 길이 막막”하여,239) 김채원이 얼음집이라 표현한 그 집에 들어갈 때면

“자질구레한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고 한다.240) 당시 아이들이 “소설이 엄마의 심장을 갉아먹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241) 최정희의 고통은 극심 했다. 최정희는 부엌에 들어가다 현기증을 느껴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이 소설에 나타난 아내의 죽음이라는 서사의 모티 프가 된 것으로 보인다. 「얼음집」의 아내도 현기증을 일으켜 머리를 부 딪친 후 소의 골을 먹고,242) 최정희도 당시 낫기 위해 소의 골을 먹었다

290-291면.

237) 서영은, 강물의 끝, 문학사상사, 1984, 145-146면.

238) “아이의 아버지는 여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는 늘 나가다녀도 일전 한푼 들고 들어오지 못했다. … 그녀는 다시 삼천리사에 복직했다.” (서영은, 「 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로」, 문학사상131, 문학사상사, 1983.9., 240면.) 239) 서영은, 「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로」, 문학사상135, 문학사상사, 1984.1.,

135면.

240) 서영은, 「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로」, 문학사상136, 문학사상사, 1984.2., 289면.

241) 서영은, 「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로」, 문학사상136, 문학사상사, 1984.2., 294면.

242) “그 후 한 달쯤 지나서 아내는 두 아이를 남긴 채 가버렸다. 손목은 곧 나았지 만 워낙 연약했던 몸에 더 약해진 아내는 곧잘 현기증을 일으켰고 물을 긷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얼음판에 넘어졌다. … 사람들이 가르쳐준 대로 머리 아픈 데 에 묘약이라는 소의 골을 푸줏간에 부탁하여 사왔다.”(김채원 외, 먼집 먼 바다

, 전원, 1990, 207면, 205면.)

는 점에서 아내와 최정희는 유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최정희는 하루치 입원비도 없어서 병원에서 도망쳐 집으로 왔다고 하는데, 소식을 들은 동료 문인들이 모금을 하기도 했으나 남의 신세를 지기 싫었던 최정희는 집에 누워 있기를 택한다.243) 당시 최정희의 어려움과 고단함을 엿볼 수 있는 지점으로 김채원 소설에서 최정희와 유사한 경험을 하는 아내가 죽 는 것은, 어려운 생계를 홀로 헤쳐나가며 입원비조차 없어 상처를 참아 야 했던 여성의 고통과 그 고통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공포와 고통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형상화한 결과로 보인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고통 끝 죽음 뒤 전쟁의 폭탄으로 기울어져 허물어 져 가는 이 집이 “음울”, “비밀”, “괴괴한 정적”, “귀신”이라는 비현실적 인 단어들로 표현되는 동시에, 신비와 구원을 간직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는 것이다. 이는 생계를 담당하며 집값을 걱정해야 했던 최정희가 묘사 하는 집과 구분되는 부분이다. 동숭동 집 이전에 살았던 돈암동 집(「흉 가」, 조광, 1937.4.)과 「얼음집」의 소재인 동숭동 집(「탄금의 서」)에 대 한 최정희의 서술과 비교할 때, 김채원이 의도적으로 환상적으로 집을 그리려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아이의 눈으로 전쟁기를 바라보며 음울한 집에서 구원을 발견하는 김채원의 독특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1) 일이 어찌 되노라고 그랬는지 어쨌든 한 삼십분만에 집주름이 데리고 온 집쥔이란 사람은 집세를 한달에 십원씩 석달치 삼십원만 내어주면 당장에 이사를 해도 상관 없다고 허락할 뿐만 아니라 벌 써 육칠년을 두고 지내 본 일이지만, 삼사원짜리 방 한칸을 얻자 해 도 보증금이니 선세니 해가지고 사오십원나마의 돈이 있어야만 하 는 건데 그 집은 방 셋에 부엌 있고 마루 있고 뜰이 넓고 그 위에 경치가 좋고 한데, 보증금도 없고 선세 여러 달치 내라는 말도 없이 직업도 식구도 묻지 않고 그저 수월히 내어주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나는 그보다 집주인 입에 서 내게 불리한 다른 말이 떨어질까 하는 초조한 마음에서 저녁 여

243) 서영은, 「생의 태풍 속을 무구한 노로」, 문학사상136, 문학사상사, 1984.2., 29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