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원의 문학은 ‘소설의 시대’라고 불리우던 1970년대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시작되었다. 작가 동인에 윤후명, 이문열 등과 함께 합류하여, 70 년대를 획일성과 경직성으로 판단하고, 이에 다양성으로 대응하며 작품 창작을 해나간 것이다. 회화를 전공한 김채원이 찾은 다양성이란 초현실 주의였으며, 초현실주의는 특정 주제나 유파에 국한되지 않는 전방위적 미학 방식이었다.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이라는 큰 틀 안에서 김채원은 진 보적 역사관과 젠더화된 도시의 문제를 탐색해나가며, 문제들에 대한 여 성의 대응 방식을 소설에 그려냈다.
이때 세대적으로 이청준(1939), 김승옥(1941), 윤흥길(1942), 황석영 (1943) 등 6.25 전쟁을 유소년기에 체험한 작가군715)에 속하는 김채원의 소설은 성인이 되어 전쟁을 경험한 박완서의 소설716)과도, 동화적이기보 다 점액질의 감각으로 유년기를 그린 윤흥길, 황석영, 오정희의 소설717) 과도 구분된다. 박완서의 전쟁에 대한 소설이 “자신의 경험들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인과율을 지닌 사건으로 재구성하는 과정”718)으로 박완 서가 전쟁 체험을 “‘반복’서사화”719)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슬픔이라는 감 정으로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제공한다면, 유년기에 전쟁을 경험한 김채 원 소설에서 전쟁의 기억은 명확한 서사보다는 단편적인 이미지로 회귀 하며 소설의 화자를 각성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 기억은, 어두운 시공간으로 형상화되는 오정희의 기억과는 달리, 파국과 평화의 양가적 감각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며 소설의 화자로 하여금 전쟁으로부터 폭력
715) 방민호, 「한국 전후문학연구의 방법」, 춘원연구학보 11, 춘원연구학회, 2017, 182면.
716) 김정은, 「박완서 전쟁체험 소설에 나타난 여성 목소리의 의미 연구」, 서울대학 교 석사학위논문, 2015, 19면.
717) 손유경(2012), 332면.
718) 김정은, 위의 글, 22면.
719) 김정은, 위의 글, 16면.
과 구원을 함께 느끼도록 한다. 김채원 소설의 화자들이 기억을 통해 도 달한 곳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취약성에 기반한 만남의 필요 성이었다.
결론적으로, 본고는 김채원이 물질문명과 가부장제라는 거대 질서의 폭 력으로 인한 관계 단절로부터 탈피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 초현 실주의적 인식 체계를 소설에서 내보였으며, 그러한 인식이 가능한 미적 언어, 소설로써 새로운 역사를 쓰려 했음을 밝히고자 했다. 이를 위해, 2 장에서는 먼저 김채원의 소설과 김동환, 최정희의 문학관을 함께 살펴봄 으로써 김채원이 현실을 그 이면에 신비와 구원이라는 비합리적 요소를 내포한 초현실주의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논증하 고자 했다. 김채원은 전쟁으로 아버지 김동환을 상실했으나, 어머니 최정 희를 중심으로 새로이 관계를 맺음으로써 전쟁의 현실로부터 꿈을 꾸는 방법을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1980년대 초반까지의 김채원 소 설들을 읽어봄으로써 김채원 소설을 초현실주의적 이론으로 설명할 근거 역시 찾아보았다. 초기 소설들에서 김채원은 예술가 여성들이 만들어내 는 1)뮤즈로서의 남성 3)파편화된 육체 3)콜라주와 같은 초현실주의적 상상력들이 구체적으로 그려내며 초현실주의적 양식에 대한 경도를 보여 주는 한편, 젠더화된 도시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3장에서는 김채원이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을 통해 진보된 도시의 물질문 명,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보적 시간관을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와 언어를 만들고자 했음을 보이고자 했다. 먼저 주목한 부 분은 김채원이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에 모성적 사유를 결부시킨다는 점이 다. 김채원의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 화자들은 아이를 양육하는 주부의 일상을 초현실주의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아이를 통해 근대 과학이 정립한 직선적 시간관을 탈주하는 시간성을 발견한다. 화자들은 아이를 통해 새 로운 질서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나아가 불통감을 느끼던 여성들 은 자매와 같은 분신과 만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욕망을 지니게 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서로 닮은 여성 인물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생각을 나눔으로써 자기를 되돌아보고 삶과 사랑을 성찰하며, 자매애를
경유해 예술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이로써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해지고, 현대 문명이 부여한 상처 역시 치유된다. 김채원 소설에서 화자들은 우 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간 질서와 예술이라는 언어를 지니게 된다.
4장에서는 김채원이 소설을 통해 현재성의 세계를 구성하고 인간 사이 의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했음을 논증했다. 이를 위해 먼저 역사가 현재 와 과거의 콜라주로 재구성되는 양상과, 이로부터 현재와 미래의 파국을 구원할 사랑이라는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상처받을 수 있 음을 알면서도 사랑에 의해 타자와 연결되고자 할 때, 역사의 파국을 막 고 현재를 구원할 수 있음을 이 소설들은 그려낸다. 1980년대부터 2000 년대까지 씌어진 「환」 연작에 이르러, 독특한 시간의식을 지니면서 타자 와의 연결을 가능케하는 윤리의식을 지닌 미적 언어가 바로 ‘소설’임이 밝혀진다. 진보적 역사관을 부정하고 기억 속 역사의 타자를 소환하는 「 겨울의 환」을 시작으로, 「가을의 환」, 「미친 사랑의 노래-여름의 환」에 서는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언어가 모색된다. 사회 모순 구조의 타자인
‘너’와 적극적으로 씨름하고 관여함으로써 소설이 탄생한다는 결말의 「가 을의 환」에서 진보의 타자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언어가 소설임이 발견 되면서, 언어 모색의 긴 여정이 끝난다. 김채원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함 으로써 사회 구조의 타자까지 포괄하면서도 몽상의 감각을 통해 현실을 전복할 수 있는 소설이야말로 진보만이 답이라고 하는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있음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김채원의 소설이 문학사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민중문화로만 한정짓는 역사에 빈틈을 만드는 한편, 실험적 서사 양식이 현실을 교란하는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내용과 형식이 구분되어 논해지는 연구 방식에도 반기를 든다. 김채원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를 초현실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밝히고자 한 이 연구를 시작으로, 문학에서 몽상이 지 니는 의미가 보다 구체적이고 세분화되어 연구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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