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방안은 수요와 공급이 가격에 반 응하여 움직이는 것이며,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결정된 가격은 자원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과를 생산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올라간다면 이를 반영하여 공급 곡선이 변 화하게 되며, 새로 도출된 공급 곡선과 수요 곡선이 만나는 점에서 시 장 가격이 결정된다. 이를 통해 사과 생산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그 에 합당한 가치를 사과에 부여하고 있는 소비자가 만나 거래가 이뤄 지며, 이 경우 시장의 효율성이 달성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전력 시장은 도매 시장과 소매 시장의 이원화 된 구조적 문제로 인해 가격 기능을 통한 자원의 적절한 배분이라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아래에서는 도매 시 장과 소매 시장 각각의 특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가. 도매 시장
전력은 다른 상품과 달리 저장이 불가능하여 실시간으로 공급과 수 요가 일치해야 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최소의 비용으로 전원을 공급해야 한다는 제약 조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최 적 전원 구성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작업이다. 전원 구성을 산정하는 보편적인 방법은 각 발전기를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한계 비
용에 따라 배열한 후 가장 최소의 비용을 필요로 하는 발전기부터 전 력 생산에 동원하는 방법이 보편적으로 이용된다. 예를 들어, 전력 수 요가 비교적 낮을 때에는 단위당 변동비가 제일 적게 드는 원자력 발 전기만 가동하여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며, 전력 수요가 점차 증가하여 전력 공급을 증가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 다음으로 변동비가 적 게 드는 석탄 발전기를 가동하게 되며,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최적의 비용으로 전력을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최대 전력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기 를 건설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비효율을 야기하게 된다. 계절 및 시간 에 따라 전력 수요의 변동이 큰 상황에서, 최대 전력 수요를 대비하여 발전소를 건설한다면 일부 발전기의 경우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 동 안 발전기를 가동하지 않고 발전 대기 상태로만 있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전력은 다른 상품과 달 리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가 최대에 도달하는 경우 해당 시간대를 대비해 발전기를 건설하여 전력 한 단위를 생산하는 비용이 전력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가치(value of
last laod: VOLL)보다 크다면, 발전기를 추가로 건설하는 것보다 해당
시간대에 한해 전력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효율성을 극대 화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전력 공급을 임의 차단할 경우 전력 수 요의 임의 차단으로 인한 자원 배분 비효율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 므로 강제적인 단전보다는 전력 최대 수요 당시의 전력에 대한 가치 를 반영하여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실제 제도가 설계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의 전력 가격을 scarcity pricing이라 한다. 이론적 으로 scarcity pricing은 VOLL과 일치되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발전
기 건설에 따른 손실을 회피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만약 scarcity pricing이 VOLL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면 발전기 건설 및 운영에 따른 비용을 모두 회수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missing money problem).15)
한편 scarcity pricing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대의 도 매 시장 전력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곳에서 결정이 되는데, 해당 시간대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발전기 중 변 동비가 가장 비싼 발전기의 변동비가 해당 시간대의 도매 시장 전력 가격으로 정해지며 이를 계통 한계 가격(system marginal price: SMP) 이라 칭한다. 계절 혹은 시간별로 전력 수요는 변동성이 매우 큰 편이 며 이에 따라 전력 생산에 동원되는 발전기의 종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SMP는 전력 수급 사정에 의해 큰 폭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데, 평일 낮과 같이 전력 수요가 피크에 도달하는 시간대에는 SMP도 상승하는 게 일반적이며 전력 수요가 최저 수준에 도달하는 심야 시간대 SMP도 하락하게 된다([그림 3-1] 참조). 이러한 패턴은 계절적 요인에 의해 뒤바뀌기도 하는데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겨울철 에는 심야에도 높은 수준의 SMP를 보여 주기도 한다.
나. 소매 시장 가격 규제 및 가격 경직성
전력 수요에 따라 시장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도매 시장과 달리 소매 시장에서의 전력 요금은 변화 폭이 아주 적은 수준이며, 심 한 경우 장기간 변화가 거의 없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15) Missing money 문제가 존재하면 신규 발전기의 투자 유인이 떨어질 수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련 내용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Joskow(2006)을 참고하라.
[그림 3-1] 동/하계 일별 SMP 변화 추이
자료: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시스템.
소매 전력 시장에서 가격은 시장 기능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보다 규제 기관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전력 산업에서의 가격 규 제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 는 현상이다. 가격 규제와 관련한 논리적 근거는 자연독점(natural monopoly)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16) 철도, 가스, 전력과 같이 망 설비를 위한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는 산업의 경우 생산량을 아무리 늘리더라도 평균 비용 곡선이 계속해서 하락하는 형태를 나타낸다. 만 약 이러한 산업에 경쟁이 도입된다면 사업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더 힘들어질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더 손실이 크게 발생하게
16) 정부 규제와 관련한 경제학적 이론적 논의에 대해서는 Viscusi, Harrington and Vermon(2005)를 참고하라.
된다. 따라서 하나의 사업자에게 관련 사업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은 사업자의 행위를 규제할 필요성이 생기게 된다.17)
가장 이상적인(first-best) 규제 가격은 시장에서의 가치를 충실히 반 영하는 한계 비용 수준에서 가격을 설정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marginal-cost pricing). 하지만 한계 비용이 평균 비용보다 낮 을 수밖에 없는 자연독점 산업의 특성에 의해 한계 비용 가격 규제 방 안은 사업자의 정상 이윤을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규제 당국이 자연독점 산업의 한계 비용을 정확히 추정할 수 없다면, 혹은 해당 독 점 기업이 자신의 한계 비용을 허위로 보고한다면 사회적으로 바람직 한 수준에서 가격을 결정하겠다는 원래 의도는 달성되지 못할 가능성 이 커지게 된다. 비용에 연동하여 가격이 설정되는 방식의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는 기업이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유인책을 제공하지 못한 다는 것이다.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생산 비용 을 줄여 자신의 이윤을 증가시키려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비용이 가 격으로 직접 연결되는 구조에서는 개별 기업의 노력에 의한 비용 감 소분이 그대로 가격 인하로 연결되어 이윤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기 에, 피규제 기업은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된다.
이러한 인센티브 문제로 인해 현실에서는 한계 비용 방식이 바람직하 지도 않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는 문제점이 많이 제기되어 왔다.
가격 규제와 관련한 또 하나의 논리는 앞 절에서 언급한 scarcity
17) 자연독점 이론과 관련한 가격규제에 대한 논의는 규제 완화의 바람이 한창 일
었던 1980년대 후반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승철·홍성종
(1994)은 가격규제의 이론적 배경에 대해 잘 정리하고 있으며, 선진국에서 시행
중인 여러 가격규제의 국내 적용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pricing과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에 의해 ‘에너지 단일 시장(energy-only market)’에 대해 그 효율성이 입증되었지만, 캘 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정전 상태를 통해 현실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제도임을 깨닫고, 가격이 너무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도록 가격 상한선(price cap)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리로 인해 소매 시장에서 가격은 규제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하나 언급해야 할 사실은 소매 전력의 가격이 실시간으로 변할 수 없는 구조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시간대별로 전력의 수요는 계 속 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력의 생산 비용은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실시간으로 다른 전력 가격을 책정하기 위해서는 실시간 전력 사용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기술적 지원은 최근에 와서야 진행되고 있으며 보급률 또한 낮다. 게다가 실시 간으로 다른 전력 가격을 고지하고 소비자들이 이에 대해 반응하여 전 력 수요를 줄이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기에 한번 정해 진 전력 판매 요금은 쉽게 변화하지 않는 경직성을 보인다.18)
또한 전력 판매자 입장에서는 소매 요금 가격 체계를 바꿀 인센티 브가 없다. 판매 경쟁이 도입된 환경 하에서는 실시간 요금 체계가 경 쟁을 더 심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며, 이는 판매 사업자의 이윤을 줄 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Chao 2011).
18) Borenstein and Holland(2005)는 전력 소매 부문에 고정요금제가 존재하는 한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달성할 수 없지만, 실시간 요금제를 사용하는 소비 자의 수가 점차 늘어날 경우 효율성 개선 효과가 있음을 보이고 있다. 국내 전 력 시장에서 실시간 전력요금제 도입에 따른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이근대·이유 수(2010)를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