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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지역화의 구도 속에서 법패러다임의 변화

동북아 문화공동체론과 법의 교착점은 크게 세계화와 지역화의 두 가 지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법도 세계화와 지역화의 경향을 나타내 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학문과 실무에서 종종 등장하는 세계 화와 지역화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이 과정에서 법은 어떠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지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가 . 지구촌 세계화의 경향

최근 놀라운 기술의 발전은 세계의 모든 지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 었다. 또한 세계는 WTO의 출현으로 국제교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 빈번 해지게 되었다. 거미줄처럼 얽힌 국제간 항공노선들은 국내교류의 이상으 로 인적, 물적 교류를 확대해왔다. 이러한 국제간의 교류는 결과적으로 지 구촌의 다양한 문화를 교환하는 계기를 만들어 지구촌 문화공동체의 출 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와 같은 오늘날의 국제교류와 생활상태를 두고

사람들은 한마디로 세계화(Globaliza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용어는 산업사회의 수많은 생활영역에서 그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개념내용은 개관 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하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 점에서 사회학적 관점에서 세계화의 차원을 특징지우고 있는 독일의 사회학자 Ulrich

Beck의 이론은 우리에게 세계화 내지 지구촌화5의 개념을 어느 정도 개

관할 수 있게 해준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세계화의 특징으로서, ① 지역공간의 확대, 국제교역의 범위확대와 강도의 밀집성 및 자본시장의 세계적 망의 구축,

② 정보 및 통신기술의 지속적 혁명, ③ 인권의 보편적 관철, ④ 전지구적 문화산업의 확산, ⑤ 다중심적 세계정책(예컨대 정부기구이외의 비정부기 구나 국제기구와 같은 국제적 의사소통주체의 수와 그 권력의 증대현상),

⑥ 지구적 빈곤의 문제제기, ⑦ 지구적인 환경파괴문제의 대두, ⑧ 문화 상호간의 갈등야기 등을 언급하고 있다.6

동북아 문화공동체도 세계화 내지 지구촌 세계화의 특징을 가장 분명 하게 제시해주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동북아 지역국가들, 예컨대 한국, 일본 및 중국에서는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비정 부기구도 지속적인 증대과정에 있으며 그 현실적인 활동영역도 광범위하 게 구축되어 있다. 이 점에서 동북아 문화공동체에서 세계화 내지 지구촌

5‘Globalization’의 우리말 번역과 관련하여 견해가 다양한데, 일반적으로 ‘세계화’

또는 ‘지구촌화’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개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Robertson은 Globalization을 ‘전세계가 하나의 장소에 구체화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Roland Robertson, “Globalization and societal modernisation: a note on japan and japanese religion,” Sociological Analysis, 47, pp. 35-42 참조). 시 말해서 Robertson이 말하는 Globalization이란 사회문화적 차원의 결합이 국경을 초월하여 전 지구촌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Globalization은 ‘지구촌화’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세계화 로 번역하는 경우에는 ‘경제적 관계의 세계체제’ 개념에 상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Globalization은 일반적으로 세계화로 번역되고 있기 때 문에 여기서는 ‘세계화’ 내지 ‘지구촌 세계화’로 번역하여 사용하기로 한다.

6Ulrich Beck, Was ist Globalisierung?: Irrtümer des Globalismus - Antworten auf Globalisierung, 5. Aufl., Suhrkamp․Frankfurt am Main, 1998, p. 29.

세계화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관하여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세계화된 세계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이고 사회적 인 현상들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 . 법의 세계화와 법적 다원주의

세계화 내지 지구촌 세계화는 하나의 변혁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 혁의 과정에서는 한 국가 내에서 통용되는 법문화도 지구촌 세계화의 네 트워크 속으로 편입되게 된다. 세계화의 맥락 속에서 법문화는 국내법의 한계를 탈피하게 하였고, 특히 인권법의 영역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준 화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법은 한 국가의 영토 속에서만 적용된다는 속지주의원칙(Terrritorialprinzip)은 세계화로 인하여 그 한계를 허물어트리고 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국제적 단위의 상거래나 정보통신과 같이, 세계화는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상호 간의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점에서 세계화는 각 법규범 질서를 경쟁 체제에 놓이게 만들고 개별 법규범들은 서로 비교되며, 상호간에 영향 을 미치며, 기존의 법을 적절하게 변화시키고, 생소한 외래의 규범들을 전제 혹은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법의 관찰과 비교의 과정, 법의 적응과 변천의 과정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고, 인간사회의 기 본적 양태이다.

공동체의 삶을 위해 가장 적합한 규범에 대한 지속적인 추구를 위하여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법규범의 수용 및 적응, 변천과정이 있어왔다. 독일 의 로마법계수와 일본, 한국, 터키와 같은 국가들의 독일법의 일부 계수, 영연방의 영국법의 계수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그러한 계수과 정이 새로운 법에 의하여 일방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기존의 법과 새로운 법의 기본 사상들이 융화되는 가운데 새로운 법문화 가 형성된다. 각 국가들은 그렇게 형성된 새로운 법규체제를 통해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과거의 법의 계수과정과 비교해 보면 세계화를 지향

하는 오늘날은 법규범간 경쟁이 다 심화되었고, 그 변화 과정이 매우 빨 라졌으며, 직접 이루어지고, 따라서 비교적 체계적이지 못하다. 더욱이 각 국가의 법은 자국에만 적용된다는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게 되는데, 그 것은 다른 국가의 법이나 혹은 범국가적 또는 비국가적 조직들에 의해 형 성된 법규들을 늘 주시하고, 그러한 법규들은 자국으로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세계화로 인하여 종래에 주권국가의 테두리 속에서 부당하고 불평등한 취급을 받아오던 소수민족의 권리나 복수의 국가로 이루어진 지역적인 이익을 주권국가나 그 집합체로서 국제사회의 테두리 를 넘어선 하나의 지구공동체의 문제로 파악하려고 하는 견해도 확실하 게 퍼지고 있다.7 여기에서는 규범이나 가치관의 통일보다는 오히려 다문 화주의가 기본적인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정치시 스템이나 그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법시스템의 내용이나 구조의 다양성을 승인하는 법적 다원주의(Rechtspluralismus)와도 상응하는 것이라 평가 할 수 있다.

세계화와 다원주의는 법적 관점에서 보면 상호 모순되는 개념이라고 볼수 있는 여지도 있다. 세계화는 법의 통일화 및 동화에 상응하는 개 념인 반면, 법적 다원주의는 법의 통일화 보다는 기존의 법규범이나 법 문화의 승인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두 개념은 상호 모순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복잡한 인간생활 을 규율함에 있어 나타나는, 상호 관점을 달리하는 관련개념이라고 이해 해야 한다.

7서원우, “글로버리제이션과 법,” 저스티스 , 통권 77호(2004. 2), 한국법학원, p. 147.

다 . 법과 제도의 지역화

법의 세계화현상은 이미 국제적으로 진행되었고 아직도 여전히 진행중 에 있는 법규범의 동화현상이나 제도화현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 컨대 국제지적재산권기구(WIPO), 국제노동기구(ITU), 유엔교육과학문화

기구(UNESCO), 세계무역기구(WTO) 등과 같은 국제적 단위의 기구들

이 더 넓은 영역에서 법의 단일화나 인위적 동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 다. 이 점에서 특정한 영역을 규율하기 위하여 국제적 단위의 기구를 창 설하고 운용하는 소위 기구화(Institutionalisierung)는 법동화의 일관성 과 지속성을 위한 시금석이며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또한 최근에 헤이그에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는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한 국제적 단위의 대응전략이 제도화된 가장 전형적인 예라고 평가할 수 있다. 나아가 유럽인권법원이나 국제해상법원 등과 같은 국제 적 단위의 조직과 역할은 법의 세계화의 고착과정에서 결코 과소평가되 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국제적 단위의 제도화 내지 기구들 이외에도 최 근에는 개별 참가국들을 회원국으로 하여 그들 사이의 밀접한 동화를 목 표로 하는 지역간의 기구들도 많이 설립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유럽연 합이다. 유럽연합은 참가회원국들에 의하여 그들의 주권을 일정한 정도로 위임받았으며 독자적인 입법기관과 집행기관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유럽 연합에 의한 법규의 제정은 유럽법원의 통일적인 해석을 통하여 고도의 통일성도 달성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국제사회에서 법은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특징을 나타 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화와 지역간주의(Interregionalismus)의 특성을 나타내주고 있다. 지역화와 지역간주의는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맥 락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동북아 문화공동체가 아직은 동북아 지역 국가들의 연합체제에서 논의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래에 초국가적 결합체 제로 나아가는 경우에는 거대한 연합체 속에서 공통의 평화와 번영을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