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안에서 토론의 문화 자체가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동지”로 지칭하며 다른 조직과 비교하여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노조 내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회의와 토론을 통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노 동조합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조직중심의 실무적인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경험과 지식 중 노동 조합의 방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들만이 논의의 중심이 될 수 있었으며, 조직의 방향에 불필요한 의견들은 깊게 논의되지 못하 였다.
구해근(2003)은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사회운동노조주의로 발전 하지 못하고, 경제노조주의로 전환되었다고 보았다. 경제노조주의로 돌아선 노동조합은 노조원들의 임금 개선에 중점을 둔 운동을 전개 하게 되었다. 즉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의 광범위한 이해 및 도시빈민 에 대한 지원보다는 공장 특유의 문제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경제 노조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은 점차 다른 사회운동에 배타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으며, 한국의 사회운동 안에서 큰 규모 와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회운동과의 교류나 포 용의 측면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이렇듯 조직의 중심적 맥락이 분명한 상황에서 간부들은 조직과 다른 차원의 논의를 드러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노동투쟁이 중심이 되는 노동조합 문화에서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노동교육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다. “교육이 필요하다”는 관점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원 누구나 동의하지만, 노동문제가 상시적으로 발 생하는 상황에서 이슈해결 중심의 투쟁은 끊임없이 요구된다. 이러 한 상황에서 개인의 노동운동 경력마다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이 제공되지 못하였고, 일상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은 노동 조합 사업 안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경향이 있었다.
황주석(2007)은 기존의 사회운동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사 람의 성장과 변화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으며, 시급한 이슈를 중심 으로 제도개선과 상부구조를 개혁해 나가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고 보았다. 이에 비추어볼 때, 기존의 '조직중심 노동교육'이 시급한 이 슈를 중심으로 제도개선과 상부구조 개혁을 위한 기능적 교육에 중 점을 두었다면 ‘지도자과정’으로 대표되는 ‘사람중심 노동교육’은 사 람의 성장에 중점을 둔 교육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도자과정’은 조직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의 교육 프로그램이기 보다는 간부들이 조직에서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주제의 생각들을 교육 프로그램이라는 장치 안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노조 간부들은 노동조합 내에서 생경한 주제들 속에서 던지는 질문과 토 론에 대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발표하는 과정을 겪었고, 이미 자신이 노동조합의 몇 가지 지침과 상당부분 다른 생각을 가 지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냈다. 학습자로서 프로그램에 참석한 각 조 직의 간부들은 조직의 논점이 아닌 “개인적인 생각”들을 두고 토론 하였다. 해당조직의 간부라는 지위에서 꺼내기 어려웠던 조직 변화 의 방안이나, 노동조합과는 큰 관련이 없는 이야기들도 교육 프로그 램 안에서 자유를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조직에서는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며 조언을 구하기도 하였고 삶 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적인 영역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사람중심 노동교육’은 간부들의 경험을 다양한 각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회 인식
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집단인 노동조합에서 삶 을 찾고, 성찰의 경험을 나누고 싶어 했다. 노동조합을 단순한 실무 적 집단으로 본다면 위와 같은 교육은 불필요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사람의 성장과 변화’를 위한 조직으로 볼 수 있 다면, 학습이라는 장면에서 토론의 자율성이 극대화되고,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 를 갖는다.
조직의 학습에 대하여 Argyris(1991)는 방어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조직에 대한 개인적인 몰입도가 높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오 히려 학습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으며, 따라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스스로 방어적인 사고를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중 심 노동교육’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조직의 입장이 아니라 자 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조직의 입장 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기반을 두고 토론하는 학습의 장을 통해 조 직이 중심이 되던 조직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볼 수 있 었다.
‘지도자과정’의 학습자들은 학습소모임의 공통된 학습의 경험을 통 해 ‘사람중심 노동교육’이 제공하는 토론의 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동질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학습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는 점은 ‘사람중심 노동교육’이 조직문화 변화의 가능성을 제공하였다 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 자체에 주목하여 본 다면 노동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한정적인 교육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중심 노동교육’이 학습으로써 자율적인 논 의의 장을 마련하였고 이것이 조직문화 변화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학습의 장 자체가 주는 평생교육 논의의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학습자와 교육관계자들은 투쟁중심의 현재와 같은 노동조합 조직 문화에서는 학습과 성장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 였다. 학습과 성장, 노동자의 삶에 주목할 수 있는 노동조합 조직문 화가 형성된다면, ‘지도자과정’과 같은 ‘사람중심 노동교육’은 일회적 인 시도가 아니라 지속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노동교육으로 존재 할 수 있다. 학습과 사회운동 조직문화의 상호 발전관계에 대한 연 구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