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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쟁소설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기억과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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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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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김영미**

목 차 1. 머리말; 전쟁 재난과 여성

2. 정절에 포획된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기억 3. 가려진 목소리와 복수의 기대심리 4. 맺음말

<국문초록>

재난 서사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전쟁소설 「강도몽유록」, 「최척전」, 「김영철전」,

「박씨전」을 ‘여성’과 ‘기억’의 관점에서 읽어보았다. 전쟁은 남녀 모두에게 참혹한 상처를 남기는 사회재난이지만 그 영향력은 여성에게 더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본 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조선시대 전쟁소설 속에 형상화된 여성의 목소리 를 탐색해 보았다.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여성들이 17세기 전쟁소설 속에서는 어떻 게 형상화되고 있는지, 어떤 여성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 기억의 작동 원리는 무엇 인지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17세기 조선시대 전쟁소설 속에서 여성들의 고통은 전장(戰場)의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변적인 것으로 처리되든지 아니면 ‘열(烈)’이라는 프리 즘을 투과시켜 논의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꿈이라는 틀을 통해 죽어서야 말 할 수 있었던, 그것도 자살로 정절을 지킨 여성들만이 말할 수 있었던 「강도몽유 록」의 귀녀(鬼女)들이나 살아서 정절을 잘 지켜내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최척전」의 옥영 같은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자신의 정

*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과제번호 NRF-2019S1A6A3A01059888)

** 조선대학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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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증명해야 했다. 정절이 증명된 여성들만 기억하고 기려서 15명의 귀녀들처 럼 본인들의 슬픔을 맘껏 통곡할 수 있었고, 옥영처럼 온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 는 자격을 가지게 된다.

또한 남성 중심의 서사 이면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소리죽인 울음으로 견뎌야 했 던 「김영철전」의 아내들이 있었다. 이들의 고통은 문면(文面)에 드러나지 않고 김 영철 뒤에서 침묵해야 했다. 후대 「김영철전」 한글 이본들에서 ‘여성 인물에 대한 서술 확장’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숨어서 고통당하는 아내들의 존재를 찾아내고 그 녀들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새롭게 그녀들을 기억하고자 한 결과이다. 한편 「박씨 전」은 실제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기보다 ‘피화당(避禍堂)’이라는 환상적 공간을 통해 전쟁으로 인한 여성들의 통곡과 울음을 우회적으로 위무하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병자호란 당시 여성을 보호할 ‘피화당’ 같은 유토피아적 공간은 절대 존재하지 않았으며 포로로 잡혀간 수많은 부인네들의 통곡을 상기시킨다.

울음과 통곡만으로 전란의 참혹함 속에서 죽어간 원한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 지만 이런 원한을 조금이나마 삭일 수 있는 것이 자유로운 감정 표출이다. 이런 측면에서 전쟁소설 속에 나타난 여성들의 숨죽인 울음과 대성통곡은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 부분이다.

주제어 : 재난, 전쟁, 전쟁소설, 강도몽유록, 최척전, 김영철전, 박씨전, 여성, 정절, 통곡, 침묵, 기억

1. 머리말; 전쟁 재난과 여성

재난은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1)이라는 의미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에 피해를 주는 자연현상과 사고 및 일정 규모 이상의 피해를 일컫는다. 재 난의 유형이나 분류 및 그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나라나 시대마다 조 금씩 차이가 있지만2) 불가역적인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사후적으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stdict.korean.go.kr/ 2021.01.20.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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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다양한 시대․사회적, 심리적, 과학적, 정치적 각도에서 접근하고 이해 하려고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재난의 결과를 어떻게든지 해석하고자 시 도하게 되는 것이다.

문학적 세계에서도 재난을 기억하고 재해석하고 재맥락화하는 재난 서 사들이 나타난다. 문학에서 대표적으로 재난 서사를 형상화한 것은 전쟁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전쟁소설3)을 ‘여성’과 ‘기억’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 전쟁소설은, 전쟁이라는 대재난 을 어떻게 서사화하는지, 그 속에서 기억의 왜곡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만 들어진 기억 속에 숨겨진 이념의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 전쟁 상황에서 여 성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어떤 양태로 형상화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서사물 들이다.

조선은 1592년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정유재란(1597년), 명나라와 후금의 전투인 만주 심하전투(深河戰鬪, 1619년), 이어서 정묘호란(1627년), 병자 호란(1636년), 그 이후 후금의 파병 요청으로 동원되었던 전쟁까지 언급한 다면 16세기 말에서 17세 중반기까지는 그야말로 전란의 세기였으며 폭력 의 시대였다. 전쟁은 남녀를 막론하고 참혹한 상처를 남기는 사회재난으로, 당면한 모든 사람들에게 가혹하고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전쟁으로 인 한 부상 및 사망, 피난이나 포로 생활로 인한 강제 이주, 살아남은 사람들 의 집단적 트라우마는 누구나 똑같이 겪는다는 측면에서 전쟁 자체의 폭력 성은 남녀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의 영향 력은 사회적으로 이미 공고화된 젠더나 계급, 인종적 불평등에 기대어 증

2)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나누고 있다. 2004년 재난안전법 이 제정되면서부터 재난을 지진, 홍수, 가뭄, 태풍 같은 자연재난, 화재, 폭발, 교통사고, 환경오염 사고 등과 같은 인적 재난, 감염병, 금융위기, 통신 마비, 테러, 전쟁 같은 사회 적 재난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그러다가 2013년에 인적 재난과 사회적 재난을 ‘사회재 난’으로 통합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3) ‘전쟁소설’은 고전소설에서 장르적인 명칭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전쟁을 다루고 있는 소설을 범칭하며 아울러 전쟁 ‘재난’을 강조하기 위한 용어로 차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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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될 수 있다4)는 점에 주의하면 전쟁의 폭력성은 여성에게 더욱 절대적으 로 다가온다. 전쟁 속에서 여성은 그녀들만이 겪는 강간 같은 피해까지 겪 어야 하며 전쟁에 뒤따라오는 사회질서 붕괴의 영향을 남자보다 훨씬 많이 받는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라는 대재난의 서사 속에서 여성들의 고통은 배제되고 망각되는 경향이 강했다. 대부분 남성들에 의해 기록된 전쟁 관련 공식 기록 속에서 여성들은 찾아보기 힘들며 17세기 전쟁소설 속에서도 여 성들의 전쟁 경험은 전장(戰場)의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극히 주변적 이거나 사적인 것, 아니면 이데올로기적인 틀에서 논의되었다. 그야말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으며”6)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 고 할 수 있다.

최근 ‘전쟁과 여성’을 키워드로 공식 역사가 배제하고 소외시켰던 여성들 의 목소리를 복원하고 기록하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쟁 속 여성’

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전쟁을 겪은 여성의 존재나 여성의 아픔을 기억해 내려는 시도이다. 이는 여성을 이데올로기적 시선으로 포획 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며 동시에 재난 속에 방치되었던 여성을 더 이상 망

4) 현재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 모두가 전염병의 숙주가 될 수 있다 는 점에서는 평등할 수 있지만 감염병의 피해는 사회적 불평등에 의해 차등적으로 영향 을 미친다.

5)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여성들이 전쟁이나 자연재난 같은 재난 이후 상황에서 강간과 가정폭력의 수위가 극도로 높아진다는 것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제시한 바 있 다.(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뺷보이지 않는 여자들뺸, 황가한 옮김, 웅진지식하우 스, 2020, 362쪽 참조)

6) 뺷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뺸(박은정 옮김, 문학동네, 2020)는 2015년 노벨문학 상을 수상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다. 이 책은 그동안 전쟁 서사에서 배제 되어 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증언록 형식의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로, “다성악 같은 글쓰기로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아낸 기념비적 문학”(‘2015년 노벨상 선정 이유’ 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200명의 여성들은 한결같이 전쟁과 함께 그녀들의 모든 삶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렸음을 서글픈 목소리로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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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지 않겠다는 기억의 투쟁이기도 하다. 망각되었던 전쟁의 상흔과 존재 들을 헤아리려 보는 작업을 통해 재난에 대한 애도와 치유를 모색하는 담 론의 장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본고는 전쟁 속 여성들의 존재를 상기해보려는 이러한 시도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17세기 우리나라 전쟁소설 속에 형상화된 여성의 목소리를 찾아 전체적으로 정리해 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구체적으로 조선시대 전 쟁에서 잊혀진 혹은 공식기억에서 배제된 여성들을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는지, 그 기억의 작동 원리는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전쟁소 설 속 여성의 형상화’라는 측면을 좀 더 예각화해서 문학이 전쟁과 여성을 기억하는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대상 작품은 「최척전」, 「김영철전」, 「강도몽유록」, 「박씨전」이다.7) 많은 전쟁소설 중에서 연구대상 작품은 ‘전란 소재’와 ‘여성’이라는 화소를 기준으로 선별했다. 먼저 임진왜란 및 병자호란 같은 전란이 서사를 추동하 거나 소설 속 전란이 당대 현실 그 자체를 보여줄 수 있는 ‘전쟁소설’을 선 정하였다. 이들 작품 속에서 전란은 단순한 배경 차원이나 남녀의 애정을 방해하는 장치 차원을 넘어선다.8) 다음으로 이러한 전쟁소설 중에서 전쟁 의 참상을 겪는 여성 인물의 모습이 작품 속에 나타나는 소설로 연구대상

7) 이들 소설들은 장르적으로 애정전기체 혹은 전계소설, 몽유록계 소설, 여성영웅 소설 등으로 서로 다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들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각각 서로 다른, 고유 한 장르적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전제하고 출발한다.

8) 김시습의 「이생규장전」이나 권필의 「주생전」같은 작품들도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남녀의 이별과 고난이 그려지며 그 비극성도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에 드러난 전쟁 소재는 주인공들의 애정을 방해하는 배경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분석대상 작품에서 제외했다. 또한 「최척전」과 비슷하게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부부의 이별과 재회를 다루고 있는 소설로 「정생기우기(鄭生奇遇記)」가 있다. 전쟁으로 인한 부부의 이별과 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언뜻 보면 표면적으로 「최척전」과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생기우기」는 전쟁의 참상이나 전쟁이 개인에게 미치는 폭력적인 실상이 핍진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재난 속에서 개인이 겪어야 하는 참상들 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이별한 여성의 슬픔이 일반적인 ‘규방의 그리움’으로 처리되고 있어 작품 분석에서 제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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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한정하였다.9) 이 작품들 속에는 전쟁이라는 재난과 재난 이후 상황에 대응하는 여러 양태의 여성들 모습이 담겨있는데 이데올로기 속에서 기억 되고 각인되는 여성의 모습뿐만 아니라 남성의 서사 속에 가려진 여성의 모습, 크나큰 상처에 대해 상상의 복수를 꿈꾸는 모습 등도 드러난다.

본고에서 연구대상으로 선정한 개별 작품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 서 상당히 많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다.10)이 중에서 조선시대 전쟁소 설을 ‘여성’이나 ‘기억’의 측면에서 다룬 의미 있는 연구들이 있지만11)이들 은 모두 개별 인물이나 개별 작품에 한정되어 있다. 본고에서는 개별 연구 성과들을 토대로 조선시대 전쟁소설 속의 여성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정리 하고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9) 강로전」이나 「임경업전」 같은 소설은 전쟁과 기억의 문제, 특히 ‘이념적 기억’ 측면에 서 중요하게 다룰 수 있는 작품들이지만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또한 윤계선 (尹繼善)의 「달천몽유록」에도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전쟁의 참상이 집약적으로 잘 나타 나 있지만 이 작품 속에도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렇게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작품들은 전쟁소설이지만 모두 분석대상에서 제외했다.

10) 개별 작품에 대한 연구 성과는 초창기 이본 연구나 주제 의식 및 작가 의식 연구에서부 터 서술방식과 기타 특정 화소나 아젠다 중심의 분석까지 다양하게 축적되어 있다. 다 만 본 연구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연구사 제시는 생략하도록 한다.

11) 현대문학 분야에서나 여성학, 사회학, 역사학, 구술사 등의 분야에서 ‘전쟁과 여성’, ‘전 쟁과 기억’의 문제를 다룬 연구 업적들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본고에 서 연구 대상으로 선정한 작품인 「최척전」, 「김영철전」, 「강도몽류록」, 「박씨전」을 ‘여 성’과 ‘기억’으로 초점화한 논문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김정녀의 「몽유록의 공간 들과 기억」(뺷우리어문학연구뺸 41, 2011, 327~360쪽), 이종필의 뺷조선 중기의 전쟁과 고 소설의 기억뺸(소명출판, 2017), 조혜란의 「여성, 전쟁, 기억 그리고 <박씨전>」(뺷한국고 전여성문학연구뺸 9, 2004, 279~310쪽) 등이다. 또한 본고에서 연구 대상으로 삼은 소설 장르는 아니지만 전쟁과 여성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다룬 정지영의 「‘논개와 계월향’의 죽음을 다시 기억하기: 조선시대 ‘의기’의 탄생과 배제된 기억들」(뺷한국여성학뺸 23권 3 호, 155~187쪽), 정출헌의 「임진왜란의 상처와 여성의 죽음에 대한 기억」(뺷한국고전여 성문학연구뺸 21, 2010, 35~67쪽) 등에서 매우 많은 시사점을 받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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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절에 포획된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기억

사람들은 보통 전쟁을 겪은 이후 전쟁의 폭력적인 참상을 견디고 살아남 은 자와 전쟁의 폭력 속에 죽어간 자로 구분되어 죽은 자에 대해서는 애도 와 추모를, 살아남은 자에 대해서는 그 트라우마를 치유하고자 한다. 그런 데 조선시대 여성의 경우, 전쟁의 가장 가혹한 폭력은 전쟁 속에서 살아남 은 자와 죽은 자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 사회는 정절을 지킨 여자와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자로 이분화하고, 살았건 죽었건 정절을 지킨 여성에 대한 기억만을 공유하고자 했다. 따라서 여성들은 전쟁이라는 생사 를 가르는 참상을 겪으면서도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녀들의 정절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2.1.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귀녀들의 ‘통곡’, 「강도몽유록」의 15 귀녀 전쟁의 참혹한 죽음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몽유록계 작품이 있는 데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작자미상의 한문소설 「강도몽유록」을 대표적 으로 꼽을 수 있다. 「강도몽유록」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 피란 중에 처참 하게 죽은 15명의 ‘여자’ 귀신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며 시작된다. 서술자 청 허선사(淸虛禪師)에 의해 묘사된 「강도몽유록」의 여자 귀신들의 모습을 보면 다음과 같다.

이들 모두는 놀라고 두려워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서글픈 기운을 띠고 있었 다.(중략) 연약한 머리가 한 길 남짓한 밧줄에 묶이거나 한 자쯤 되는 칼날에 붙 어 있는 이도 있고, 으스러진 뼈에서 피가 흐르는 이도 있고, 머리가 모두 부서진 이도 있고 입과 배에 물을 머금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 참혹하고 애처로운 모습 을 차마 볼 수 없었고 이루 다 기록할 수도 없었다.12)

12) 박희병․정길수 편역, 뺷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뺸, 「강도몽유록」, 돌베개, 2007, 83쪽.

이하 원문 인용은 쪽수만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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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서 스스로 목을 매거나 적의 칼에 목이 박혀 거 꾸러진 모습, 절벽이나 강에서 투신하여 온몸이 모두 산산이 부서진 모습 등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것을 작품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다. 유례없는 대전 란 속에서 억울하게 죽은 원혼들의 모습이 흡사 영화 속 집단 좀비들의 모 습을 연상시키는 듯한 묘사이다.

이렇게 「강도몽유록」처럼 전쟁의 기억을 서사화하고 있는 소설에서 전 쟁 현장을 생생하게 표상하는 방법으로 참혹하게 죽은 ‘시신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참혹하게 죽은 ‘시신’의 모습을 적나라 하게 묘사하는 것은 이후 진행되는 등장인물들의 어떤 이야기보다 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컸는지 시각적 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한 컷 의 사진 같은 표상이 전쟁의 폭력적 본질을 순간적으로 더 적확하게 잘 드 러내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전쟁이 지닌 폭력성과 참혹함을 좀 더 사실적 으로 표상하고 기억하게 하고자 하는 전쟁소설 작가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13)

이렇게 「강도몽유록」은 전쟁의 폭력적인 참상을 전제하고 시작되는데 이후 이야기 전개의 핵심은 전후(戰後) ‘절의’에 대한 기억 부분이다. 「강도 몽유록」은 15명의 귀녀를 차례차례 소환하여 다음 2가지 측면에서 전란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키고 있다. 그것은 크게 남성들의 절의와 여성들의 절개 측면에 대한 것이다.

먼저, 남성들의 절의는 병자호란 참패라는 전쟁의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 를 상기시킨다. 작자는 15명의 귀신들이 직접 자신들이 어떻게 죽음에 이르 게 되었는지 설명하게 하는 한편 전쟁 참패의 책임 소재를 추궁하도록 한 다. 이때 특징적인 것은 「강도몽유록」에 등장하는 귀녀들이 그녀들의 입을 통해 자신의 ‘남편’을, 자신의 ‘아들’을, 심지어 자신의 ‘시아버지’에게 전쟁

13) 전쟁 영화 등에서 이야기의 전개와 무관한 전투 장면이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 의 상황을 길게 보여주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오카 마리 지음, 뺷기억 서사뺸, 김병 구 옮김, 소명출판, 2004, 7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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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책임을 물으며 직설적으로 그들의 비겁함과 위선, 무능을 비판하고 있다 는 점이다. 전란의 책임을 1차적으로 남편과 아들, 시아버지의 실정(失政) 에서 찾고 있는 것인데 이는 부모에 대한 효와 남편 공경을 강조하던 조선 시대 유교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설정이다.

그런데 귀녀들의 입을 통해 비판받는 인물들을 면밀히 살펴보자. 비판받 는 남성들은 모두 강화도 방어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이들이거나 후금과 화의(和議)를 주장했던 주화파(主和派) 인물들이다. 특히 화의를 주장했던 이들은 모두 오랑캐에 투항하여 목숨을 구걸한, 절의가 없는 인물로 그려지 고 있다. 그 반대 선상에 있었던 척화신들에 대해서는 그 절의를 무한히 찬 양하고 있다. 윤황(尹煌, 1571~1639) 같은 대표적인 척화신의 절의를 찬양 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윤황의 며느리로 보 이는 귀녀는 자신의 시아버지가 충성심과 선견지명, 강직한 절개로 화의를 배척하였다고 하면서 염라대왕의 입을 빌려 시아버지의 절의를 드높인다.

심지어 자신도 시아버지 덕분에 극락세계에 가고 천당에서 지내다가 환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귀녀들이 아들이나 남편, 시아버지를 비판하는 것은 현실의 아들, 남편, 시아버지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 당시 강화도 방어에 책임을 다하지 않은 대신들과 화의를 추진했던 신료들을 비판하는 것과 다름없다. 몽유(夢 遊)라는 양식을 방어기제로 삼아 차마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던 전쟁 의 책임을 추궁하고 질책한다. 이러한 질책은 ‘죽은 자’들의 하소연이고 더 구나 그 목소리의 주체를 그들의 어머니나 아내, 며느리 같은 최측근 여성 으로 설정하면서 ‘꿈+죽은 자+최측근+여성’이라는 몇 겹의 방어기제를 작 동시켜 정치적 논란에서 빗겨 가고 있다. 즉 우의적으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정치적 비판의 서사 장치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강도몽유록」에서는 여성의 절개에 대한 다양한 환기를 불러 일으킨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는 여성의 피해가 다른 어떤 곳보다 심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도에는 왕실 및 사대부가의 식구들과 여성들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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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피난을 갔는데 함락된 이후 살육과 약탈이 자행되었다. 이때 적에게 죽 임을 당한 여인들도 많았지만, 사대부 여성들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죽어갔다. 많은 여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는데 여성들은 적에게 포로 로 끌려가기 전에 자결해야 정절을 지킨 것으로 간주되어 순절로 이어지게 된다. 혹 포로로 끌려갔다가 살아서 속환되어 오면 정절을 의심받아 문제가 되었다.14)

이 작품에 등장하는 15명의 귀녀들은 모두 병자호란 당시 절개를 지켜 죽은 여성들이다. 14명은 사대부가 여성들이고 마지막 한 명은 기녀인데,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정절을 찬양하고 있다. 특히 열 번째 귀녀는 절개 를 지켜 자결한 것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며 거듭 미화한다. 마지막 열다섯 번째 기녀로 등장하는 귀녀는 ‘여성들의 절개에 하늘이 감동하고 사 람들이 탄복할 것이니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닐 것’이라며 여성의 절개를 총 체적으로 적극 추켜세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강도몽유록」에는 스스로 자결하여 이룬 절개 뿐만 아니라 실절(失節), 강요된 절개, 의심받는 절개 등 정절의 다양한 스 펙트럼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네 번째 귀녀로 등장하는 정백창의 아내는 아 들이 적의 칼날이 닥치기도 전에 자신에게 죽음을 강요하여 자신의 정절이 만들어진 것임을 한탄한다. 열 번째 귀녀는 자신의 동생이 오랑캐에게 귀화 하여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고 힐난한다. “연지로 단장하고 비단옷을 차려 입고 나귀에 올라타 손수 채찍질을 하며 해질녘 봄바람 속에 오랑캐 땅으

14) 전쟁 중에 여성들에게 실절(失節)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결하는 것이었다. 병자호란 이후 정계의 환향녀 논쟁에서 알 수 있듯, 사대부 남성들은 병자호 란 때 포로로 잡혀갔다가 어렵사리 속환되어 온 여성들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계곡 장유(張維)는 1638년(인조 16) 자신의 외아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며느리와 이혼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예조에 청하는 글을 올리기 도 했다. 이미 정절을 잃어 선조의 제사를 받들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대해 당시 조정에서 이혼을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상당수의 신료들이 장유와 같은 생각이었 고 이에 많은 여성들이 가정에서 내침을 당하는 등 전쟁의 이중적인 폭력에 희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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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향했다.”15)고 동생의 실절을 비난하는 것이다. 한편 열두 번째 천하제일 미녀는 자신은 절개를 지켜 바다에 몸을 던져 빠져 죽었는데 남편이 자신 의 절개를 몰라주고 오랑캐 땅으로 들어갔나 의심하는 것을 원통해한다. 여 성의 절개는 죽어서도 의심받는 것이고 죽은 뒤 귀신이 되어서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도몽유록」 마지막 부분에서는 당당한 절개든 의심받는 절개 든 강요된 절개든, 모든 귀녀들이 통곡하며 운다. ‘자결하여 최종적으로 영 예로운 죽음을 택했으니 서글퍼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귀녀들을 위로하자 아이러니하게도 좌중의 귀녀들이 모두 일시에 ‘통곡’한다. 그리고 서술자 청허선사는 “통곡 소리가 너무 참담해서 차마 들을 수 없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절개라는 이념적 단어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참담하고 억울한 죽음의 소리가 바로 이 여인들의 ‘통곡’이다. 「강도몽유록」이 여성들의 입을 통해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작가의 목소리가 덧씌워진 작품16)이라는 평가를 받 고 있는 한편에서 전쟁에 대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 것 도 바로 이 통곡 소리 때문이다.17)여성 귀신 15명이 대거 등장하여 전쟁의 실책이 남성들에게 있음을 이야기하며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전쟁의 참상 을 들려주고 나아가 ‘통곡’을 통해 여성들의 인간 본연의 감정을 우의적으 로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이라는 의견에는 이론 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는 인간의 본연한 감정 인 통곡조차도 ‘정절’이라는 이념적 성취를 이뤄낸 죽음만이 할 수 있도록 포획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

15) 「강도몽유록」, 94쪽.

16) 정충권, 「<강도몽유록>에 나타난 역사적 상처와 형상화 방식」, 뺷한국문학논총뺸 45, 2007, 72쪽.

17) 조혜란은 귀녀들의 통곡을 ‘침묵 속에 갇혔던 절규’라고 논하였다.(조혜란, 앞의 논문, 286쪽)

(12)

없이 많은 여성들이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죽어갔지만 그녀들을 기억해 내 는 매개는 정절을 지켜 스스로 자결했느냐 아니냐의 잣대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맘껏 ‘통곡’할 수 있는 것조차도 스스로 자결해야만 가능하도 록 여성들에게 ‘자격’18)을 부여하고 있다는 혐의를 지니게 된다. 전란 속에 서 적에게 쫓기며 공포와 불안 속에 죽어간 수많은 여성들 중에 실제로 열 녀로 인정받은 여성들은 모두 추후에 그 절개를 증명받아 기억되고 있다.19) 결국 「강도몽유록」 속 ‘통곡’의 목소리는 정절에 포획되어 기억되고 유전되 고 있음을 내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강도몽 유록」은 상대적으로 울 자격조차 가질 수 없었던 많은 강간 피해 여성, 피 로(被虜) 여성들의 모습을 미루어 비추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서사는 더욱 중층적 의미를 파생시키고 있다.

2.2. 가족을 위한 열녀 서사, 「최척전」의 옥영

조위한(趙緯韓, 1567~1649)의 「최척전」은 1621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 되는 소설로, 주인공 최척과 그의 아내 옥영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심하전 투라는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각각 고향 남원을 떠나 중국, 일본, 베트남 등지로 이산하여 떠돌다가 결국에 모든 가족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고향 남원에 돌아와 온전한 가족의 복원을 이루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최척과 옥영, 그리고 그 가족을 통해 전쟁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보통 사람들에 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는지 구체적인 사회 역사적 맥락 속에서 보여주고

18) 자격이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어떤 역할이나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 또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할 자격이 있다/없다’ 같은 자격 담론은 철저히 그 사회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형성된다. 때문에 어떤 자격 조건에는 그 시대 이데올로 기가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다.

19) 광해군 때 편찬한 뺷동국신속삼강행실도뺸 「열녀편」에는 553명의 열녀들이 수록되어 있 는데 이 중 80%인 441명이 임진왜란 때 죽은 여성들이다. 이들 여성들은 여러 형태로 죽었지만 모두 절개를 지켜 죽었다는 점, 그리고 사실 여부를 떠나 그것을 증거할 기록 을 갖추어 기억하게 되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13)

있다. 전쟁이 평범한 한 가족의 삶과 운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즉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전쟁 을 상기하게 해주는 소설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최척전」을 이러한 가치를 전제하고 이 작품을 여성 인물 ‘옥영’

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의미심장한 두 개의 화소가 등장한다. 하나는 옥영의

‘완벽한 남장’ 화소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도 빈번한 옥영의 ‘자살 시도’ 화소 이다. 이 두 화소는 작품의 서사를 추동하여 옥영 중심으로 수렴하고 있다.

이 작품은 ‘최척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표면적으로는 남편 ‘최척’을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소설을 읽어보면 「최척전」은 ‘옥영’ 중심으로 전개 되어 ‘옥영에 의한, 옥영을 위한, 옥영의 서사’라고 일컬을 만하다.20)옥영이 단순히 살아남아서 환향(還鄕)한 여성이 아닌, 온전하게 정절을 지켜 귀향 (歸鄕)한 여성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옥영 중심의 서사가 필요했기 때 문이다.

‘정절 보존’을 위해 가장 단순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되는 것이 남장 화소이다. 옥영이 전란 속에서 포로로 일본, 베트남을 떠돌면서도 정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남장 덕분이다. 옥영의 남장은 남편 최척과 헤어지는 시점에 시작되어 남편과 재회할 때까지 이어진다. 옥영은 정유재 란 때부터 남장을 하였으며 옥영이 왜적 돈우에게 포로로 붙잡혀 일본으로 갔을 때 역시 계속 남장을 하고 있었다. 옥영의 남장은 ‘그 누구도 옥영이 여자인 줄 알지 못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옥영을 포로로 데려갔던 장본인 돈우조차 옥영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옥영을 남자라고 생 각해서 돈우는 “집안에 달리 남자가 없어 옥영을 집에 살게 하되 아내와 딸이 있는 내실에는 출입하지 못하게 했다.”21)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척과

20) 필자는 「최척전」에서 ‘옥영의 서사’를 ‘남장’과 ‘자살 시도’ 속에 숨겨진 ‘열녀 서사’로 탐구한 바 있다.(김영미, 「「최척전」에 나타난 가족 서사의 특징」, 뺷열린정신인문학연구뺸 제20집 3호, 2019, 399~425쪽)

21) 박희병․정길수 편역, 「최척전」, 뺷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뺸, 돌베개, 2007, 32쪽. 이하

(14)

옥영이 안남(베트남)의 한 항구에서 극적으로 상봉했을 때 돈우는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내가 이 사람을 얻은 지 4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이 사람의 단정한 모습과 성실한 성품을 좋아해 친형제 대하듯이 지냈지요.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며 떨 어져 지낸 적이 없건만 이 사람이 여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22)

돈우는 옥영과 친형제처럼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며 4년을 지냈지만 옥 영이 여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옥영이 여자인지 ‘꿈에 도 몰랐다’는 거듭된 진술은 옥영의 훼절(毁節)이나 실절(失節)은 ‘절대 없 었고’ 옥영은 ‘정절을 잘 지켜냈다’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최척전」을 읽다 보면 옥영은 걸핏하면 자살을 시도한다. 먼저 최척 과 혼사장애가 있을 때 시도한다. 다음으로 왜적 돈우에게 포로로 붙잡혀 일본으로 갔을 때 시도하는데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매번 들켜서 자살을 하지 못했다”라는 언술로 보아 이때에는 자살 시도가 빈번했음을 보여준다.

또 남편과 상봉한 후 남편이 다시 후금과 명의 심하전투에 참전하게 되었 을 때 자살을 시도하고, 남편이 출정한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도 죽었으리라 여겨지는 상황에서 다시 자결을 시도한다.

그 이후 남편을 찾아 고향 남원으로 항해하던 중 위기에 몰렸을 때 또다시 자결을 시도한다. 옥영은 매번 서사의 국면이 전환될 때마다 거듭 자살을 시도한다.

그런데 옥영의 자살 시도는 삶을 포기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옥영은 작품 속에서 누구보다 삶의 의지가 강하고 적극적이며 주도적으로 운명을 개척 해 나가는 인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런 그녀가 삶의 포기를 의미하는 ‘자

인용은 쪽수만 표시함.

22) 최척전」, 43쪽.

(15)

살’을 그토록 빈번하게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옥영의 자살 시도는 모 두 남편 최척과 연관된 상황에서만 선택된다는 점이 시사적이다. 최척과 혼 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상황, 남편과 헤어지거나 남편을 다시는 만나 지 못하리라는 절망의 상황에서만 자살 시도가 이루어진다.

특히 옥영의 좌절과 슬픔은 오직 남편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남편 외의 다른 가족들, 예컨대 자신의 어머니나 큰아들 몽석과 헤어져 그들의 생사를 알지 못할 때에는 그녀의 심적 고통이 문면에 전혀 형상화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옥영의 자살 시도는 남편에 대 한, 남편을 위한 ‘절대적 열(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적 장치이며, 정절에 대한 그녀의 결기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옥영의 자살 시도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나 꿈속 장육불의 현시로 극복되는데23) 이는 자살을 시도할 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옥영의 정절을 온전히 지켜 귀 향시키려는 서사적 수식 역할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옥영의 남장이 외적 으로 정절을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옥영의 자살 시도는 옥 영의 내적 정절을 보증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옥영은 남장과 자살 시도를 통해 전쟁 포로 생활 속에서도 온전히 정절 을 지켜내고 고향 남원으로 돌아오면서 국제적으로 이산했던 가족들이 모 두 온전한 재회의 기쁨을 누리며 이야기는 대단원의 결말을 맺게 된다. 가 족의 이산과 만남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 복원의 서사 또는 가족 서 사라고 할 수 있는데 가족 서사의 내면에는 옥영의 ‘열녀 서사’가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24)가족의 복원은 이산했던 가족들이 다 모이기만 한 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살아 돌아와서 ‘환향녀’라는 손가락 질을 받게 된다면 가족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장’과

23) 이에 대해 동아시아적 연대나 불교적 관점에서 논의된 연구들도 있다.(김현양, 「<최척 전>, ‘희망’과 ‘연대’의 서사」, 뺷열상고전연구뺸 24, 2006, 75~100쪽; 정규식, 「<최척전>

에 형상화된 주변 인물의 특징과 작가의식」, 뺷어문론총뺸 64권, 2015, 157~186쪽 참조) 24) 김영미, 앞의 논문, 411~417쪽.

(16)

‘자살’을 통해 옥영은 몸도 마음도 정절을 완벽하게 보존했음을 증명해야 했다. 그녀의 정절이 있었기에 중국이라는 타국에서 가족이 재형성되었 고25)부모님을 포함하여 헤어졌던 가족들이 모두 남원에 다시 모여 가족이 유지될 수 있었다. 전쟁의 엄청난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들이 다시 만나 행 복을 누릴 수 있는, 즉 온전한 가족 복원의 서사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 조건이 바로 옥영의 정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포인트가 하나 있다. 옥영의 개인적 정절 문제가 개인 주체를 넘어 ‘가족’이라는 집단 속에 포섭된다는 점이다.

「최척전」 이전 애정전기소설 속의 열녀들도 정절이 위협받을 때는 망설임 없이 죽음을 선택하곤 했다.26)그러나 이때의 자살은 개인적 차원의 행동 양태로 취급되고 형상화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란을 겪으면서 여성의 순 절은 개인보다는 가족이라는 집단 관계의 질서 안에서 평가받게 된다. 이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다.

「최척전」은 ‘옥영’이 ‘가족’ 속에서 정절의 의미를 찾는 시발점이 되는 작 품이다. 가족의 완벽한 회복과 재건을 서사화하기 위해 여성의 정절이 가족 을 위한 지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정절에 대한 집착이 ‘가족’

과 연계되면서 여성의 성은 그녀 개인의 소유라기 보다 집안 동족의 소유 물이 되는 상황이 가속화된다.27)이에 따라 열녀를 기억하는 방식 역시 가

25) 안남에서 남편을 극적으로 만난 이후 옥영과 최척 부부는 중국 항주에서 함께 살면서 아들 몽선을 낳고 몽선이 장성하여 중국 여성 홍도와 결혼까지 하면서 가족이 재형성된다.

26) 대표적인 애정전기소설인 김시습의 「이생규장전」 여주인공 최랑은 정절이 위협을 당 하자 주저없이 자결을 선택한다. 물론 이러한 뺷열녀전뺸의 입전 인물 같은 행위는 열녀 이데올로기를 통해 정절의 위협 속에서 여성이 취할 수 있는 행동 양태가 ‘자결’이라는 것을 각인시킨 결과이지만, 이때 최랑의 정절은 적어도 가족 차원의 집단의 문제가 아니 라 개인적 차원이었다. 그런데 전란을 겪으면서 여성의 정절은 가족이나 가문이라는 집단 관계의 질서 안에서 평가받게 되면서 「강도몽유록」의 네 번째 귀녀처럼 적이 들이 닥치기도 전에 아들에 의해 죽음을 강요당해 ‘만들어진 여성의 절개’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7) 이종필, 뺷조선 중기의 전쟁과 고소설의 기억뺸, 소명출판, 2017, 94쪽.

(17)

족이나 가문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추승된다. 죽은 여성은 말이 없고 그녀가 열녀로 인정받아 공식적인 기억 속에 자리하게 되는 것은 모두 그녀들의 사후에 그 가족이나 가문이 앞다투어 열(烈)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적인 것은, 정절을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집단의 차원으로 몰 아가면서도 한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전쟁이라는 대재난 속에서 정 절을 지키는 것은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떤 재난 상황에서라도 여성들이 옥영처럼 완벽하게 정절을 지키는 것을 당연 시했고, 그렇지 못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전적으로 그녀들에게 돌 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옥영은 주변인들이 ‘여자인 줄 꿈에도 모를 정도 로’ 완벽하게 남장을 해야 했으며, 그토록 자주 자살을 시도하여 스스로가 정절을 증명해야 했다. 「최척전」이 전란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행복을 꿈 꿀 수 있게 해주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문학적 위안을 대변하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에서 더욱 문제적인 작품으로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가려진 목소리와 복수의 기대심리

3.1. 보이지 않는 아내들, 「김영철전」

「김영철전」28)은 주인공 김영철이 명나라 파병 요청으로 출정한 1619년

28) 김영철전」에 대한 작가와 창작연대, 이본들의 선후 관계에 대해서는 권혁래의 「<김영 철전>의 작가와 작가의식」(뺷고소설연구뺸 22, 2006, 93~128쪽), 양승민․박재연의 「원 작 계열 <김영철전>의 발견과 그 자료적 가치」(뺷고소설연구뺸 18, 2004, 85~110쪽), 서 인석의 「국문본 <김영텰뎐>의 이본적 위상과 특징」(뺷국어국문학뺸 157, 2011, 115~141 쪽), 송하준의 「새로 발견된 한문필사본 <김영철전>의 자료적 가치」(뺷고소설연구뺸 35, 2013, 239~269쪽), 김수영의 「연의소설 <김영철전>의 창작 방법」(뺷국어문학연구뺸 42, 2020, 71~98쪽) 등의 연구가 주목된다. 이들 선행 연구를 간략하게 종합해 보면, 「김영 철전」은 원작자가 김응원으로, 1688년 이후에 지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원작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 형식의 김영철 서사의 효시가 바로 「김영철유사(金英哲遺事)」로, 이는 1716년 혹은 1717년경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권혁래, 98쪽) 뺷유하집뺸에

(18)

심하전투에서 후금의 포로가 되지만 갖은 고생 끝에 명나라로 망명하였다 가 끝내 고향을 잊지 못해 고국에 돌아오는 서사이다. 전쟁과 포로 화소, 귀향 서사까지 언뜻 「최척전」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세계관은 완전 판이하 다. 「최척전」이 귀향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 낭만적 세계관을 보이는 것과 달리 「김영철전」은 영철이 고국에 돌아온 이후 전쟁의 피폐하 고 가난한 삶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비관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조선의 백성이었던 김영철이 전쟁으로 인해, 그것도 남의 나라의 싸움에 병졸로 차출되어 가면서 전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겪게 되는 역경을 보여준다. 영철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는 ‘심하 전투(1619년) 참전- 후금의 땅 건주에서 포로 생활(결혼) - 명나라 땅 등주에서의 삶(결혼) - 천 신만고 끝에 귀향(결혼) - 고향에서의 가난한 삶- 재참전- 자모산성지기로 서 말년의 삶’이 서술되고 있다. 영철을 중심으로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전 쟁이라는 대재난이 평범한 백성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사태인지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김영철전」에는 영철이 당하는 전쟁의 폭력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다. 바로 영철의 아내들이다. 영철은 중국 건주와 등주 에서 각각 한 번씩 결혼을 하고, 고국에 돌아와서 또다시 결혼을 한다.

영철은 오랑캐 장수 아라나의 제수와 첫 번째 결혼을 한다. 영철은 혼인 하지 않은 상태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붙잡혀 오랑캐 장수 아라나를 따라 후금의 땅 건주로 오게 된다. 아라나가 도망치려는 영철의 마음을 돌 리려는 의도로 자신의 제수를 영철과 혼인시키면서 건주의 처는 두 명의

실려있는 홍세태(洪世泰. 1653~1725)의 「김영철전」이나 조원경본의 「김영철전」은 모 두 「김영철유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홍세태의 「김영철전」은 원작을 압축․요약해 놓은 것으로 「김영철유사」가 지어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박증대(朴增大)가 1762년 전후에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한문필사본 「김영철전」(조원경 본)은 내용상 「김영철유사」와 가장 근접한 텍스트로 보인다. 이후 후대 박재연본 같은 재한역본이나 국문본 이 등장하는데 이들 이본에서는 서술적인 확장과 묘사가 나타난 다.(송하준, 247~263쪽)

(19)

아들을 낳고 영철의 아내로 살게 된다.

아내는 술과 고기를 마련해 영철과 함께 먹고 마셨다. 날이 저물자 아내가 문 밖에 나와 영철을 전송하며 손을 잡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출정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 낭군과 헤어져야 하는군요.” 그러고는 술과 고기를 주며 가 져가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29)

위 인용문은 홍세태의 「김영철전」인데 영철이 출정하게 되었을 때 그 아 내가 보인 반응이다. 아라나가 자신의 제수와 영철을 혼인시킨 것은 전략적 인 계산이었지만 그의 아내는 영철을 진정한 남편으로 대우하고 있다. 남편 영철을 위해 술과 고기를 마련하고 출정으로 인해 헤어지게 된 것을 슬퍼 하며 손을 잡고 울고 있는 것이다.

조원경 본 「김영철전」에서 건주 아내는 영철이 자신을 버리고 떠날까 봐 걱정한다. 이에 영철은 그동안 두 번 도망을 친 것은 전적으로 부모님만을 뵙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결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아내가 생기고 두 아들까지 생긴 것은 천명인데 어찌 천명을 어기고 은혜 를 배신하며 도망가겠냐며 변명한다. 하지만 건주의 아내는 영철을 믿지 못 했고30) 결국 영철은 건주 아내를 버리고 미련 없이 건주 땅을 떠난다.

영철에게 그의 아내는 보이지 않는다. 다음은 명나라 사람 전유년이 영철 에게 명나라의 땅 등주로 도망가자는 제안을 우회적으로 하는 장면이다.

전유년이 말했다. “영철이! 자네 또한 부모님이 멀리 조선에 계시긴 하지만

29) 홍세태본을 번역한 박희병․정길수 편역의 「김영철전」(뺷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뺸, 돌 베개, 2014, 74쪽)이다. 홍세태의 「김영철전」을 인용할 경우, 쪽수만 표시함.

30) 英哲曰: “前者再逃, 非專欲見父母, 實欲娶妻. 今蒙主人厚恩, 不惟免死, 至以汝爲 妻, 生此二子, 天也. 豈敢違天而背恩乎?” 妻曰: “女眞稱高麗人爲率巧[胡名鼠狼爲 率巧也-원주], 以多詐也, 子言寧可信也?”(조원경본 「김영철전」, 송하준의 앞의 논문 256쪽에서 원문 재인용, “건주 처와의 대화”)

(20)

자네는 여기에 이미 처자를 두었으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우리들과 는 다르겠지.” 영철이 말했다. “짐승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하 는데 내가 타국에서 얻은 처자식 때문에 부모님을 잊을 리 있겠소? (후략)”31)

영철은 두 아들과 아내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 영철에게 건주 의 아내와 두 아들은 ‘타국에서 얻은 처자식’일 뿐이다. 결국 영철은 아내에 대한 조금의 미안함이나 망설임 없이 명나라 사람인 전유년과 함께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등주 땅으로 도망간다. 후에 1641년 금주 전투에 종군할 때 영철은 건주의 아들 득북을 만났지만 끝내 그 아내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는다.

한편 명나라 등주 땅으로 도망 온 영철은 다시 전유년의 누이동생과 두 번째로 혼인한다. 전유년의 누이는 영철을 배려하여 화공을 불러다가 영철 의 부모님 얼굴을 그리게 하고 거기에 절을 하며 혼례를 치르고 영철의 아 내가 된다. 하지만 조원경본 한문 필사본 「김영철전」을 보면 등주의 아내 역시 건주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영철을 믿지 못하고 첫날밤에 “당신의 부 모는 동국(東國)에 있고 당신의 처자는 북쪽 건주에 있습니다. 지금도 역시 고국의 부모와 오랑캐 땅의 처자를 그리워하시겠지요?”32)라고 하며 영철 의 마음을 의심한다. 이는 건주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영철이 혹시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을 염려하는 말이다.

이미 부부 사이에는 두 아들도 태어나지만 영철은 우연히 조선의 진하사 (進賀使) 일행을 태우고 온 고향 사람인 뱃사공 이연생을 만나 고향 소식 을 듣게 되고 그 기회에 귀국하고자 계획한다.

이듬해 봄, 사신 일행이 북경에서 등주로 다시 돌아와 날이 밝는 대로 조선을

31) 「김영철전」, 75쪽.

32) 조원경본 한문필사본 「김영철전」, 16쪽. “又曰 君之父母在東 君之妻子在北 今亦思 故國之父母與胡地之妻子乎?”(송하준, 「새로 발견된 한문필사본 <김영철전>의 자료 적 가치」, 뺷고소설연구뺸 35집, 2013, 257쪽 재인용)

(21)

향해 출발하려 했다. 이날 밤 영철의 아내는 등불을 환히 켜고 영철과 앉아 이야 기하며 그 눈치를 살폈다. 영철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어.’ 그러나 곁에 있는 아내와 자 식을 돌아보니 차마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마음이 흔들려 어찌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영철은 술을 내오라고 해 몇 잔을 마시고 아내에 게도 술을 권했다. 이윽고 아내가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서 몰래 집을 빠져 나 와 연생의 배로 갔다.33)

영철의 아내는 영철이 혹시 자신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려고 할까 봐 영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래도 영철은 첫 번째 아내를 버리고 떠날 때와는 달리 두 번째 등주 아내를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망설임과 심리적 갈등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술을 권하고 아내가 술에 취해 잠든 틈을 타서 떠나버린다. 영철의 아내는 그런 영철을 마지막까지 붙잡아 보고자 10여 명 의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영철을 찾아보지만 배 갑판 밑바닥에 숨은 영철 을 찾지 못한다.

영철이 조선으로 떠나간 이후에도 영철의 등주 아내는 조선에서 사신이 올 때마다 영철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한다. 그녀는 마침 다시 사신의 일행 을 따라온 연생에게 영철의 소식을 간절히 물으면서 “이 뱃길도 이제부터 는 끊어진다고 하더군요. 제발 한 말씀만 해주시면 제 마음이 풀릴 겁니다.”

라고 한다. 자신을 버리고 간 남편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 등으로 영철을 놓 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철은 조선의 고향 땅에 돌아와 또다시 이 군수 딸과 결혼을 해서 4명의 아들을 두게 되는데 「김영철전」에서 이 세 번째 고국의 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는다. 영철은 가난 속에서 산성 수비를 하면서 늙어가는 데 성 위에 올라가 북쪽으로 건주를, 남쪽으로 등주를 바라보고 2명의 아내

33) 김영철전」, 79~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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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에 딸린 4명의 아들들을 버리고 온 것에 대해 회한에 차서 눈물을 적 시곤 한다. 영철은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처자식을 저버리고 와 두 곳의 처자식들로 하여금 평 생을 슬픔과 한탄 속에서 살게 했으니 지금 내 곤궁함이 이 지경에 이른 게 어찌 하늘이 내린 재앙이 아니겠는가!34)

영철의 자탄처럼 ‘아무 잘못도 없이 버려진 처자식들의 슬픔’을 짐작하게 하지만 기본적인 서사가 영철의 신산한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회한에 찬 남편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세 번째 처의 목소리는 작품 서사 에 전혀 등장하지 못하고 방기되고 있다. 이미 중국에 2명의 아내와 4명의 아들을 둔 남편을 감당해야 하는 세 번째 아내의 삶은 주목하지 않은 것이 다. 영철이 전쟁 포로로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을 겪었다면, 영철에게 버림 받은 중국 건주와 등주 아내는 말할 것도 없이 고국의 아내 역시 망각된 전쟁의 폭력적인 피해자이다.

폭력은 단순한 물리적인 강제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 상황에서 여 성은 물리적인 폭행이나 강간, 죽임을 당하는 것 외에도 전쟁은 표면화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다양하고 깊은 폭력을 행사한다. 영철이 버린 건주와 등 주의 아내가 그런 보이지 않은 폭력의 피해자이며 고국의 아내 역시 간접 적인 전쟁의 피해자이다. 영철은 분명 폭력적인 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 자이다. 영철은 그 누구보다 전쟁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은 인물이며 전쟁 이후의 피폐한 현실을 온몸으로 버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피해자인 영철이 그의 아내들에게는 폭력적 인 가해자가 되고 있다. 영철 스스로의 탄식처럼 ‘아무 잘못도 없는 처자식 을 저버리고 평생 슬픔과 한탄 속에서 살게 한’ 가해자인 셈이다. 영철의

34) 김영철전」, 90쪽.

(23)

아내들과 자식들은 영철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슬픔을 평생 지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서 영철의 아내들에게는 자신들의 억울함 과 한을 직접적으로 토로하는 언어를 부여하지 않는다. 건주의 아내와 등주 의 아내 모두 영철이 자신을 버릴까 봐 걱정한다. 하지만 건주 아내의 슬픔 과 고통은 영철의 행동을 통해 내포적으로 짐작할 뿐이며 등주 아내는 영 철의 심기를 ‘살피려는 시도’를 하지만 침묵할 수밖에 없다. 고국의 처는 존 재 자체에 대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전쟁의 피해는 누구도 피해갈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고통을 토로할 수 있는 언어를 부여해야 치유를 모색할 수 있다. 침묵해야 하는 고통이나 트라우마는 어쩌면 영원히 치유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사점을 남긴다. 이 작품을 통해 재난 현실 속에서 묵묵히 아픔을 견뎌야 했던 여성들, 전쟁에서 ‘보이지 않았고, 주목 받지 못했던 여성들’에 대한 기억을 상기할 수 있다.

「김영철전」은 「김영철유사」 계열인 비교적 이른 시기의 홍세태의 「김영 철전」이나 조원경본을 제외하고도 후대에 여러 종류의 국문 이본들35)도 발견되는데, 이 이본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영철 아내들에 대한 서술 확장 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국문소설 계열인 나손본 「김철전」36)은 더욱 더 소설적으로 등주와 건주 처에 대한 형상화 작업이 덧칠해져 있다. 등주의 처가 등장하여 하소연하는 이야기와 편지, 또 김영철이 건주의 처에게 보 내는 편지와 이야기가 길게 실려있는 등37) 숨겨진 채 고통을 당하는 여성 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후대에 지속적이고 대중적인 「김영철전」

35) 국문본으로는 서인석본인 「김영텰뎐」, 나손본인 「김텰뎐」이 있다.

36) 나손본 「김철전」은 작품의 절반 정도인 앞부분이 떨어져 나간 국문 낙장본이다. 이 작품은 「김영철전」의 후대적인 성격을 보여주는데 내용적인 측면에서 적지 않은 변개 가 이루어졌다. 특히 홍세태의 한문소설 「김영철전」에서는 거의 성격화되지 않았던 등 주와 건주의 처에 대한 그녀들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권혁래, 「나손 본 「김철전」의 사실성과 여성적 시각의 면모」, 뺷고전문학연구뺸 15집, 1999, 114~115쪽.) 37) 권혁래, 앞의 논문,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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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일어나면서 전쟁의 폭력에 가려져 있던 여성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녀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면서 새롭게 그녀들을 기억하고자 한 결과 로 보여진다.

3.2. 상상의 복수를 꿈꾸는 박씨, 「박씨전」

「김영철전」의 아내들처럼 서사의 중요한 내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도38) 거의 형상화되지 않는 여성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서사의 문면에 전면적으 로 등장하는 「박씨전」의 박씨 같은 여성 인물도 있다. 본절에서는 「박씨전」

에서 상기되는 ‘기억’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박씨전」 전반부의 모든 문제적 상황은 박씨의 외모가 너무 추비(醜卑) 하다는 데에서 발생하며 이것이 「박씨전」 후반부 서사를 추동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박씨의 용모는 흉측하여 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서술되 어 있는데 상공(시아버지)과 신랑 이시백이 박씨를 “한번 보매 다시 볼 수 없어 간담이 떨어지는 듯하고 정신이 없어 두 눈이 어두운” 지경에 이른다.

일가친척들이나 장안 대신(大臣) 댁 부인들도 신부를 “한 번 보매 침 뱉으 며 비소하고 수군수군하며” 상공의 부인도 “남도 부끄럽고 집안도 낭패스 러워하고”39)심지어 비복들도 그 추함 때문에 박씨를 박대한다. 그러자 남 편 이시백은 박씨를 내방에 혼자 방치하고 부친의 엄한 꾸지람 때문에 억 지로 내방에 들어가는 날에도 방 한구석에 등 돌리고 앉았다가 나오는 생 활을 이어간다. 이렇게 「박씨전」의 전반부는 추한 외모로 인해 박씨가 박대 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바로 이런 ‘추한 외모’로 인한 박대 때문에 내당에 거처할 수 없다는 논리

38) 김영철전」에서 영철의 ‘결혼’은 2명의 아내와 4명의 아들을 버리고 기필코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철의 귀향 의지를 강조할 수 있는 화소이다. 따라서 영철의 결혼 상대자인 그의 아내들도 중요한 내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9) 김기현 역주, 「박씨전」, 뺷한국고전문학전집뺸 1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95, 15 1~155쪽. 이하 원문 인용은 쪽수만 표시함.

(25)

를 내세워 박씨는 후원에 협실 ‘피화당(避禍堂)’을 만든다. 박씨는 ‘자신의 얼굴이 추비하고 덕행이 없어 군자(남편)에게 뜻을 얻지 못하니 후원에 협 실을 만들어 일신을 감추어 거처하게 하고자 한다’40)고 말한다. 즉 피화당 은 표면적으로 자신의 추한 외모로 인한 화를 피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한 끼에 쌀 한 말을 먹는 범상치 않은 행동 양태, 하룻밤에 시아버지 의 조복(朝服)을 만들어내는 능력, 청룡에게 연적을 얻어 남편 이시백이 과 거시험에 급제하도록 하는 등 박씨의 이인적 면모로 미루어 보아 피화당은 단순히 박씨 자신의 추한 외모를 숨기기 위한 협실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 이 아님은 이미 예견된 사실이다.

「박씨전」 후반부는 ‘피화당’ 공간을 중심으로 주요 서사가 전개된다. ‘화 를 피할 수 있는 당’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말해주듯 피화당은 전쟁을 피하 는 공간으로 활용되며 동시에 상징적으로 복수를 행하는 공간으로써의 역 할을 맡게 된다. 「박씨전」 전반부에서 박씨의 추악한 외모는 피화당을 만드 는 계기로 작용하고 「박씨전」 후반부는 피화당에서의 활약상으로 자연스 럽게 서사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피화당에서 박씨는 크게 세 번의 활약상을 보인다. 첫째 후금의 황후가 조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신인(神人)인 박씨’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며 기홍대라는 자객을 파견했을 때이다. 박씨는 예지력으로 피화당에서 기홍대를 제압하는데 이때의 피화당은 그 자체로 신이한 모습 을 보여준다기보다 박씨의 이인적 능력을 점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후금의 용율대가 피화당에 침입했을 때이다. 후금은 용골대와 용율대 형제를 대장으로 삼아 정병 30만을 거느리고 조선을 침범하여 병자 호란을 일으킨다. 이때 호왕(胡王)의 왕후는 이시백 집 피화당은 침범하지 말라는 명을 내리는데 이를 어기고 용율대가 피화당에 침입한다.

40) 박씨전」, 157쪽.

(26)

이때 율대가 100여 기(騎)를 거느려 우상의 집(박씨의 집)을 범하여 (중략) 후 원에 들어가 살펴보니 온갖 기이한 수목이 좌우에 늘어서 무성하였는지라 율대 가 고이히 여겨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마다 용과 범이 수미를 응하며 가지마다 뱀과 짐승이 되어 천지풍운을 이루며 살기 가득하여 은은한 고각 소리 들리는데 그 가운데 무수한 사람들이 피난하였더라. 율대가 의기양양하여 피화당을 겁칙 하려 달려드니 불의에 하늘이 어두워지며 흑운(黑雲)이 자욱하고 뇌성벽력이 진동하며 좌우 전후에 늘어섰던 나무들이 일시에 변하여 무수한 갑옷 입은 군사 가 되어 점점 에워싸고 가지와 잎이 변하여 기치창검(旗幟槍劍)이 되어 상설(霜 雪) 같으며 함성 소리가 천지진동하는지라 율대가 대경하여 급히 내달아 도망치 려 한즉, 벌써 칼같은 바위가 높기는 천여 장이나 되어 앞을 가리워 겹겹이 둘러 싸이니 전혀 갈 길이 없는지라.41)

피화당에는 일가친척들은 물론 병자호란의 화를 피하기 위해 ‘무수한 사 람들이 피난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율대가 침입하자 피화당 사방에 심은 나무들이 군사가 되어 피화당을 지켜 피화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 사할 수 있었다. 용율대는 사방이 막혀 도망갈 길이 없게 되자 결국 자결하 고 박씨는 용율대의 머리를 베어 피화당 문밖에 걸어 놓는다.

세 번째는 용골대가 동생 율대의 원수를 갚고자 피화당에 침입했을 때이 다. 역시 피화당의 나무들은 신병(神兵)이 되어 오랑캐 장졸들을 모두 엄살 한다. 이에 용골대는 대규모 병사들을 동원하여 일시에 활을 쏘게 하는데 단 한 개도 피화당에 가닿지 못한다. 또한 조선의 도원수 김자점을 불러 피 화당 사방으로 불을 지르게 하지만 박씨 부인은 부채 하나로 앉아서 대적 하여 모든 적병을 물리친다. 이윽고 용골대가 목숨을 구걸하자 살려주는데 아우 용율대의 머리를 수습해서 돌아가기를 간청하는 것에 대해서는 허락 하지 않고 박씨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박씨는 웃으며 일변 꾸짖기를, “그리는 못하리로다. 옛날 조양자(趙襄子)는 41) 박씨전」, 205쪽.

(27)

지백(知伯)의 머리를 칠하여 술잔을 만들어 진양성(晉陽城)의 분함을 씻어 천 추만세에 유전하였으니 이제 우리는 너의 아우 머리를 칠하여 강화성의 분함을 씻으리라.”42)

‘강화성의 분함을 씻고자 한다’는 언술로 볼 때 피화당은 병자호란이라는 대재난을 피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서 여성들에게 자행되었던 참혹한 피해에 대한 ‘분함’을 설욕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병자호란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강화도’에 대 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공간으로, ‘우리에게 피화당 같이 완벽하게 재난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더라면’하는 염원과 회한을 담은 환상적 공간인 것이다. 이 공간을 통해 적장 용율대에게 상상의 복수를 하여 대리만족을 줌으로써 병자호란 당시 엄청난 피해를 겪었던 여성들을 위로하고 있다.

그런데 박씨의 영웅성과 이인성은 남편 등을 통해 간접적이고 제한적인 방식으로 드러나고 오로지 피화당에서만 제한적으로 발휘된다. 이에 대해 박씨는 국가 권력의 차원으로 통제가 가능한 인물이기 때문에 영웅으로 설 정됐다는 분석을 내놓은 연구도 있다.43)또한 ‘여성들’의 피해를 대신 복수 해주고 위로해주는, 동성의 ‘여성’ 영웅의 존재가 필요했지만, 한편으로 공 적 공간을 점유할 수 없었던 여성의 시대적 한계 때문에 복수의 공간은 제 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복수의 상상력도 그 시대적․역사적 사실 범위 내에서 이루어졌 기 때문에 피화당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병자호란이 역사적으로 참패한 전쟁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박씨전」의 복

42) 「박씨전」, 215쪽.

43) 이종필(앞의 책, 161~165쪽)에 의하면, 비록 소설 속 상황이라도 ‘조선의 내부’에서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국가 권력의 차원에서 통제가 불가능했던 홍길동 같은 인물은 용납할 수 없는 반면 박씨의 경우는 대리적 성격으로 인해 서사적 균형을 추구할 수 있었고 국가권력의 차원에서 통제가 가능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굳이 ‘여성 영웅’으로 설정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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