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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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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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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임과 관련된 윤리 문제들 연구

1)김대중*

목 차 1. 서론: 뺷속죄뺸 의 형식과 윤리적 질문들 2. 문학의 창작 의도과 윤리: 소망충족과 통제 욕구 3. 소설과 현실 사이의 사건의 계열화와 윤리 문제들 4. 나가며: 저자의 책임과 속죄

5. 브리오니의 속죄와 책임의 불가능성과 그 윤리적 의미 6. 결론: 브리오니의 선택과 독자의 책임

<국문초록>

본 논문은 이언 매큐언의 뺷속죄뺸에 나타난 저자의 책임과 그것의 윤리적 문제 들에 대해 다룬다. 기존의 윤리 비평들이 주로 문학 작품을 통해 독자의 도덕적 능력의 함양을 꾀했다면 매큐언의 소설은 독자의 비판적 독서를 통한 윤리적 판단 을 요구하고 있다. 뺷속죄뺸는 작품 속 저자인 브리오니의 소설창작 과정을 추적하 면서 그녀가 문학과 현실에서 이루려 하는 소원충족의 꿈과 타인이 배제된 세계의 통제에 대한 욕망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 왜곡을 통해 어떻게 브리오니의 언니인 세실리아와 로비의 욕망을 서사화하는지 보여줌으로써 창작과 정과 현실 속 사건의 계열화가 갖는 윤리적 문제를 다룬다. 또한 뺷속죄뺸는 독자로 하여금 브리오니의 환상을 통한 속죄와 저자로서의 책임 문제가 갖는 윤리적 의미 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게 한다. 브리이니의 저자로서의 책임 문제를 논하기 위해 워렌 부스의 윤리 비평과 자끄 데리다의 ‘책임론’을 이론적으로 다루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를 통해 본 논문은 뺷속죄뺸가 담는 윤리적 문제의 최종적 책임이 독자 * 강원대학교 영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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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있음을 밝혔다.

주제어 : 이언 매큐언, 뺷속죄뺸, 책임, 자끄 데리다, 윤리

1. 서론: 뺷속죄뺸의 형식과 윤리적 질문들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뺷속죄뺸(Atonement)는 실험적인 형식을 통 해 문학과 윤리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들을 담고 있다. 우선 형식에 있어서 뺷속죄뺸는 심리학적 리얼리즘(psychological realism)으로 쓰여졌으면서도 포스트모던 서사 기법인 메타픽션(metafiction) 전통에서 나온 “자기반영 성”(self-reflexivity)을 보여주기도 한다(Albers and Caeners, p.708).1) 뺷속 죄뺸는 여러 인물의 시선과 내면으로부터 가져와 재현된 사건들이 조직된 내러티브들을 모은 다중관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각각의 내러티브들은 소 설 속 인물이자 명시적 저자인 브리오니(Briony)가 각각의 인물로 빙의해 서 그들의 시선을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이 모든 내러티브들은 실제 저자인 매큐언에게 통제되어 있다. 이러한 형식 때문에 뺷속죄뺸는 매큐언이 제시하는 브리오니의 문학에 대한 관점과 브리오니의 비밀에 대한 저자가 제시하는 윤리적 질문을 동시에 담고 있다. 더구나 마지막에 이전까지의 서 사의 일부가 조작이라고 밝히는 노년이 된 브리오니의 독백은 이 질문들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뺷속죄뺸에 대해서는 많은 비평들이 있어왔다. 스테파니 알버스(Stefanie Albers)와 토스턴 캐너스(Torsten Caeners)는 미학과 시학의 측면에서 뺷속 죄뺸를 사실주의와 포스트모던 내러티브의 대결로 분석한다. 브라이언 피니

1) 필라 히달고(Pilar Hidalgo)는 이 작품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전통적인 역사 소설이나 메타픽션의 역사기술적 메타픽션(historiographical metafiction)으로 분석이 될 수 없다 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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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Finney)는 뺷속죄뺸가 브리오니의 창작자로서의 ‘소설쓰기’에 대한 일 종의 메타적 재현이라고 본다. 메리 베르만(Mary Behrman)은 뺷속죄뺸가 갖 고 있는 풍부한 문학적 인유(allusion)들 중에서도 중세 로망스문학과의 연 관성을 논한다. 이언 프레이져(Ian Fraser)는 소설 속 계급의 문제를 톰슨 (E.P. Thompson)의 계급의식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조망하였다. 신시아 퀘리 (Cynthia Quarrie)는 폴 길로이(Paul Gilory)의 ‘포스트제국시대의 멜랑꼴 리아’(Post-imperial melancholia)를 이용해 작품이 지니는 윤리-정치적 (ethico-political) 가능성들을 조명하였다. 소설의 형식과 윤리에 대한 문제 도 여러 방향으로 다루어졌다. 케틀린 단젠로(Kathleen D’angelo)는 독자반 응비평을 통해 매큐언이 “현대 소설에 대한 독자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암 시적 논점을 제시한다”고 본다(p.89). 안드레이 로네스큐(Andrei Lonescu) 는 작품에서의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에 대해 철학적 조망을 보여줌 으로써 작품이 지닌 인식론적, 존재론적 위상을 분석하였다. 로네스큐는 특 히 이 작품이 독자와 저자 사이의 “윤리적 질문들”(ethical questions)을 던 진다고 본다(p.600). 존 리플릿(John Lipplitt)는 뺷속죄뺸에서의 자기-용서 (self-forgiveness)의 안에 숨겨진 자기-비판(self-reproach)을 찾고 이 둘 사이에 형성된 윤리적 균형의 의미를 분석한다.2)

이들 비평가들이 논했듯 뺷속죄뺸는 문학 특히 소설의 목적과 창작과정 자체 에 대한 미학적이고 윤리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들은 문학의 근원과 목적에 대한 질문에서 발원한다. 문학은 한때 도덕 교육을 위한 소재로 이용 되었다. 근대 영국에서 발생한 ‘자유 인문주의’(liberal humanism)가 영문학 을 통해 도덕성과 인간성 함양을 추구한 이후 문학을 통한 도덕교육은 늘 중요하게 여겨져왔다. 가령 문학과 도덕성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지닌 존

2) 국내에서도 다양한 논문들이 나왔다. 가령 김정순은 정신분석학과 윤리를 통해 작품을 분석하였다. 특히 김정순의 영국성을 나타내는 공간에 대한 분석과 안티고네등과의 비 교 연구는 눈여겨 볼만한 논의이다. 또 조미정 역시 키치적 글쓰기와 관련된 윤리적 폭력을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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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John Gardner)는 “진정한 예술은 도덕적이며 삶을 증진시키는 것이 지 삶을 퇴락시키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p.5). 전통적인 윤리적 비평 (ethical criticism)의 또 다른 예로 워렌 부스(Wayne C. Booth)의 뺷친교하기:

소설의 윤리뺸(The Company We Keep: An Ethics of Fiction)를 들 수 있다.

부스는 작품 속 인물(character)에 대한 윤리적 비평뿐 아니라 독자와 “독서 의 윤리”(ethics of reading)나 “덕성”(virtue)으로서의 “내러티브 그 자체에 있는 윤리적 특징”을 찾는다(p.10). 이를 통해 부스는 소설 내용에 대한 윤리 적 판단을 하기보다 저자와 독자가 어떻게 ‘윤리적 기반’(ethos)을 함께 이루 어내는지를 연구한다. 부스가 보기에 소설의 내러티브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삶과 그것에 대한 해석들을 제시하고 독자는 내러티브와 인물에 대한 윤리적 판단과 더불어 자신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낸다.3)

가드너의 문학을 통한 도덕적 교육에 대한 강조와 부스의 문학을 통해 저자와 독자가 함께 획득하는 윤리적 공감에 대한 강조는 문학을 단순히 허구를 통해 독자가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 아니라 윤리적 목적성을 지녔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도덕적 혹은 윤리적 문학 비평은 구닥 다리이거나 교조적인 비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글스톤(Robert Eagle- stone)에 따르면 윤리적 비평은 2차 대전 이후로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데리 다(Jacque Derrida)의 해체주의와 같은 현대 비평이론의 득세 이후 비평에서 불분명한 영역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해체주의 등의 현대 비평이 윤리 적 문제를 간과한 것은 아니며 현대 문학 작품에서 윤리의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뺷윤리적 전환의 지도를 그려보기뺸(Mapping the Ethical Turn)의 저자들이 논하듯 최근 들어 문학에서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질문

3) 부스에게 문학 작품은 일종의 ‘은유’(metaphor)를 가지고 있으며 이 은유를 내러티브 안에 있는 그대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부스가 보기에 저자는 편협하고 악한 이들을 다루면서도 은유를 통해 윤리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부스는 그 예들 중 하나로 플래너리 오커너(Flannery O’connor)의 작품들이 기이하게 제시하는 인물들 이나 사건들이 사실은 윤리적 은유를 위한 장치들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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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윤리적 전환’이라고 불릴 만큼 다시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과거 문학 과 비평은 저자가 제공하는 내러티브에 독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참여하고 이 참여를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돌아보거나 자신의 삶이 갖는 도덕적 가능성들을 탐색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나 많은 현대 작품들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저자가 제공하는 내러티브로부터 ‘이화 (alienation)’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을 통해 내러티브에 비판적으 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작품과 창작이 가진 근원적 윤리 문제들을 고민하게 한다.

뺷속죄뺸는 이러한 새로운 윤리 비평의 적극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단젠 로는 이러한 측면에서 뺷속죄뺸가 독자로 하여금 “비판적 독서의 책임”을 지 도록 한다고 분석한다(95). 뺷속죄뺸는 “브리오니의 행동이 과연 옳았는지 도 덕적으로 옳지 않았는지와 만일 그녀가 옳지 않았다면.... 그녀의 속죄에 대 한 시도는 과연 성공적이었는지 성공적이지 않았는지와 매큐언의 행동 역 시 옳았는지 옳지 않았는지”와 같은 여러 가지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독자들이 비판적으로 해석하게 만든다(Lonescu, p.600). 독자들은 뺷속 죄뺸의 독서를 통해 보다 적극적 동참자로서 소설과 저자 사이의 윤리문제 들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본 논문은 우선 뺷속죄뺸의 중심적 내러티브 를 추적해 가며 문학의 창작 의도와 윤리, 문학창작에서의 내러티브 형성과 정에서의 윤리, 그리고 창작자의 속죄와 책임의 한계와 그 한계의 윤리적 의미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뺷속죄뺸를 통해 매큐언이 제시하는 이러 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문학과 창작이 가지고 있는 본원적 윤리 문제를 데리다의 ‘책임’론을 통해 다루고자 한다.

2. 문학의 창작 의도와 윤리: 소망충족과 통제 욕구

뺷속죄뺸가 던지는 문학에 관련된 첫 번째 윤리적 질문은 문학의 창작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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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서이다. 피니는 뺷속죄뺸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쓰기에 관련한 소설 작품”이라고 규정한다(p.69). 브로이니의 창작과정은 문학 창작의 의도와 목 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창작의도와 목적은 다양하지만 저자 자신의 소망충족을 위해 씌어진다는 관점과 독자들을 대상으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관점으로 압축될 수 있다. 특히 전자의 관점은 작품의 사적 목적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유발한다. 가령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여러 글을 통해 예술은 예술가의 무의식적 욕망을 담고 있으며 예술가는 자신의 욕망과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글을 쓴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창작에 대한 입장은 작품의 비도덕적 혹은 몰도덕적인 목적만을 대변 한다. 때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사회에 대한 공정한 메시지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거나 윤리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창작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비평들은 주로 전자를 전기비평 정도로 인식하고 후자에 주로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 전자는 작가 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려지는 측면이 있다. 가령 뺷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뺸(Alice’s Adventure in Wonderland)가 저자인 루이 스(C.S. Lewis)의 소아성애를 위해 이용되었다는 증언과 이에 대한 연구들은 작품이 갖는 저자의 사적 측면을 드러낸다.4)

뺷속죄뺸 속 브리오니는 작가로서 현실과 문학공간을 서로 반영시키며 자 신의 소망충족과 통제의 꿈을 실현하려 한다. 뺷속죄뺸는 브리오니가 창작한 뺷아라벨라의 수난뺸(The Trials of Arabella)이라는 연극에 대한 그녀의 과 도한 기대와 상상으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오빠인 레온(Leon)이 집에 오는 것에 흥분한 브리오니는 이 극을 올림으로써 오빠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극찬을 받고 싶어 한다. 브리오니는 “이 극은 운율이 있는 서막에 의해 전 달되는 양식에 기반하여 세워지지 않은 사랑은 악운으로 끝난다는 메시지 를 담은 가슴을 울리는 극”이라고 소개한다(p.3).5) 극의 내용에 따르면 어

4) 루이스의 소아성애와 작품의 연계는 다양한 자서전등에서 논의되었다. 뺷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뺸의 펭귄판 소개글에서 휴 호턴은 작품과 루이스의 소아성애를 연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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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여성인 아라벨라(Arabella)는 사악한 외국인 백작에 빠져 그와 함께 해 변가 마을로 가서 살게 된다. 아라벨라는 불행하게도 콜레라에 걸리게 되고 백작이 자신을 버리자 망루에 홀로 갇힌 신세가 된다. 그러나 아라벨라는 의사로 신분을 숨긴 채 몰래 살고 있던 왕자에 의해 치료를 받아 병이 낫게 되어 가족과 재결합한다. 마지막에 아라벨라는 이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

브리오니는 자신의 소망충족을 위해 극을 쓰고 그 극에 생명을 불어넣으려 한다. 여기서 브리오니는 아라벨라가 브리오니 자신이고 의사/왕자는 로비 (Robbie)로 설정하였다.

뺷속죄뺸는 작가가 자신이 만든 허구 세계의 통제에 심취하고 그것을 통제 하여 자신이 갖는 내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작가의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 진다. 브리오니는 허구를 통해 자신만의 환상을 통제하고 현실화시키려는 일종의 피그말리온 증상에 빠져있다. 브리오니에게 “최근에 끝낸 이야기의 페이지들은 그들이 가진 생명으로 그녀의 손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느 껴졌다. 정리되지 않은 세계가 그렇게 정리되니 그녀의 정리에 대한 열정이 충만해졌다”고 고백한다(p.7). 세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뺷폭풍뺸 (The Tempest) 속 프로스페로(Prospero)처럼 브리오니는 자신만의 환상을 현실화시키려 한다. 그러나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 세계에서 그녀의 이 욕망은 충족될 수 없다. 브리오니의 충족되지 않는 이 창조적 꿈의 이면에 는 자신이 속한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은 폭력적인 욕망이 있다. 브 리오니가 창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포기한 갇힌 파리”를 바라보다 자 신의 손가락을 보는 장면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세계를 자신의 몸 처럼 통제하고 싶은 욕망을 보여준다. 브리오니는 세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고 싶어 한다. 브리오니는 자신의 손을 보며 “어떻게 이 움켜쥐는 기 계가, 그녀의 손의 끝에 매달린 살집이 있는 거미가 그녀에게 와서 그녀의 명령을 듣는지”궁금해 한다(p.33). 그러나 브리오니는 곧 손가락이 정말 자

5) 논문에 인용된 뺷속죄뺸의 번역은 본인 번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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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명령을 받는 기계인지 의심한다. 그녀가 손가락을 구부리자 “그 행동 은 그녀의 마음의 어떤 부분에서가 아니라 손가락 그 자체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생각한다(34). 그러면서 브리오니는 다음과 같은 사색 에 빠진다.

언제 그것이 움직일지를 알까, 언제 그녀가 그것을 움직일지 알까? 이것은 양 자택일의 문제이다. 꿰맨 자국도 없고 어떤 솔기도 없지만 이 부드럽고 연속된 천 뒤에는 진짜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영혼일까? 그것 이 더 이상 가장하기를 멈추려는 결정을 하고 마지막 명령을 내렸을까?

When did it know to move, when did she know to move it?.... It was either-or. There was no stitching, no seam, and yet she knew that behind the smooth continuous fabric was the real self—was it her soul?--which took the decision to cease pretending, and gave the final command. (p.34)

브리오니는 그녀의 사유와 의식이 어떻게 이 기계를 통제하는지 궁금해 하면서 과연 손가락이 브리오니의 정신과 의지로 움직이는 기계인지 의문 을 갖는다. 브리오니의 고민은 철학사에서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회 의주의와 상통한다. 데카르트는 철저한 방법적 회의를 통해 자신의 주체와 신과 세계의 존재를 증명한다.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주체’(cogito)와 기계 로서의 몸이 송과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정신이 기계로서의 몸을 조작한 다고 주장했다. 브리오니는 데카르트의 결론과 유사한 결론을 내린다. 브리 오니는 자신의 몸이 정신에 의해 통제되고 움직이는 기계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데카르트와 유사한 브리오니의 생각은 현대 철학에서 반론에 부딪 친다. 가령 모리스 메를로 뽕띠(Maurice Merleau-Ponty)는 뺷지각 현상학뺸 (Phenomenology of Perception)을 통해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한계를 갖는 다고 본다. 주체를 통한 기계론적 몸과 정신의 연결은 지각에 있어서 한계 를 갖는다. 메를로 뽕띠는 지각의 장 속에 있는 인간의 신체는 몸들의 세계 를 구성하는 역사와 사회 안에 실존한다고 주장한다. 지각 현상학은 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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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가 지배하는 세계를 배격한다. 메를로 뽕띠에 따르면 인간 주체란 정신 에 지배되는 기계의 세계가 아니라 지각으로 채워진 타자와의 관계들이 얽 힌 모호함의 세계 속에 있는 신체-주체(body-subject)이다. 손가락은 신체 의 부분이지만 손가락을 포함한 인간의 신체는 사유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 며 주체의 의지로 움직인다고 볼 수 없다. 손가락은 사유 이전에 피아노를 칠 수 있고 의지에 따라 뻗어지기 이전에 날아오는 공을 잡을 수 있다.

브리오니의 자신의 몸에 대한 질문과 해답은 인간의 신체를 통제의 대상 으로 보고 있을 뿐 메를로-뽕띠가 논하는 인간 신체의 실존적 의미를 간과 한다. 이러한 브리오니의 한계는 그녀의 유아독존적 세계관에 기인된다. 브 리오니는 자신의 신체를 의지로 조정하려고만 할 뿐 자신의 지각하는 신체 가 세계 속에서 타자들과 갖는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로네스큐는 브로이니 가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의 이면에는 타자성(alterity)과 상호주체성(intersubjectivity)에 대한 부정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브리오니는 글을 쓰면서도 “더 이상 인물 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D’angelo, p.265). 그녀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이 타자들과의 관계망 속에 있는 세계의 복잡성과 애매함을 인 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브리오니는 자신의 과도한 통제 욕구를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게 되면서 대안으로 문학이라는 허구 속 세계 를 완벽하게 통제하기를 바란다. 사춘기의 브리오니는 자신의 신체와 같이 허구 속 문학세계를 통제함으로써 소망충족을 이루려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러한 소망충족에 대한 욕망은 허구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브리오니는 거꾸로 문학창작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선택적 연결을 통한 내 러티브의 완성을 자신의 현실적 욕망 충족을 위해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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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설과 현실 사이의 사건의 계열화와 윤리 문제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이야기꾼」(“The Storyteller”)에서 논 했듯 소설이 발생하기 전에 이야기를 전하던 이야기꾼은 자신이 겪은 경험 을 기반으로 형성된 이야기를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벤 야민에 따르면 이야기꾼이 공동체에 있는 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인물이었 다면 소설가는 “상담을 받을 수도 없고 다른 이들을 상담할 수도 없이” 자 신의 문학세계에 빠져든 사람이 된다(p.87). 또한 이야기꾼이 민중의 집단 적 경험에 기반하여 자신의 짧고 다양한 변용이 담겨진 기억에서 나온 거 미줄같이 얽힌 이야기를 전달한다면 소설가는 자신의 기억을 조작하고 배 열하는 사람이다. 이야기꾼이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자신의 경험을 후대를 위해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소설가는 인물들을 형성하고 그 인물들 의 내면을 조직하고 사건들을 계열화시키는 인물이다. 브리오니의 통제된 세계에 대한 소망충족을 문학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은 소설이라는 장 르를 통해 인물과 인물의 내면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미적 완성을 이룩하 려는 소설가의 욕망이기도 하다. 다만 허구 속에서의 내러티브 형성과 달리 현실에서는 내러티브의 조직이 끔찍한 비극을 일으키게 된다.

뺷속죄뺸는 소설가의 사건 계열화를 통한 내러티브의 형성과정에서 생겨 나는 오류나 조작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현실에서의 사건의 계열화와 대조함으로써 제기한다. 특히 뺷속죄뺸의 1부에서 브리오니 는 자신이 목격한 하나뿐인 자신의 언니인 세실리아와 하인집 아들인 로비 간에 일어난 명확하지 않은 사건들을 자신의 욕망이 투영되어 계열화된 추 론들을 통해 하나의 내러티브로 연결시킴으로서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추론들은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을 인정할 수 없는 시대적, 계급적 배경에서 나왔다. 뺷속죄뺸 1부의 배경이 되는 탈리스(Tallis)집안은 신흥 부르주와 가문이다. 브리오니의 할아버지는 대장간에서 일하면서 자 물쇠 등에 대한 특허로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켰다.6) 부르주와 계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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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브리오니의 언니 세실리아는 여성의 고등교육이 일반적이지 않던 당시로는 드물게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대학 재학 중 방 학에 집에 들린 세실리아는 7살 때부터 알고 지낸 로비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 사이에 걸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로비는 탈리스댁의 하녀의 아들로서 어린 시절부터 세실리아의 보수적 아버지이자 영국 정부 고위 관료인 탈리 스 씨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케임브리지대학 에 갈 장학금까지 받는다. 로비는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신분을 탈출하는 수단으로 의사가 되려고 한다. 그러나 이 둘의 모 호한 관계는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트리턴(Triton) 분수대에 있던 꽃병을 깨뜨리는 사건으로 세실리아와 로비가 갖고 있는 숨겨진 욕망들이 드러난 다. 로비가 꽃병의 조각을 줍기 위해 물에 들어가려 하자 세실리아는 자신 이 옷을 벗고 들어가 가지고 나온다. 우연히 자기 방 창을 통해 이 장면을 본 브리오니는 처음에는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프로포즈를 한다고 추론한 다. 브리오니의 낭만적 상상 속에서 로비는 가난하지만 성실한 하층민 남성 으로서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세실리아에게 로맨틱한 사랑을 고백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p.36). 하지만 세실리아가 옷을 벗고 분수에 뛰어드는 장 면을 본 브리오니는 이 장면이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로맨틱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갖는다.

브리오니의 추론은 완전히 그릇된 것은 아니다. 로비는 평소에 세실리아를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계급적 차이 때문에 그녀에게 “다다를 수 없 다”(unreachable)고 생각했다(p.75). 그러나 분수대 사건에서 자신의 앞에서 옷을 벗는 세실리아에게 로비는 모욕감을 느낀다(p.75). 마치 흑인 하인의 앞에서 백인 여주인이 옷을 벗는 것이 흑인 남자 하인을 거세시킨 것처럼 느껴지듯이 로비는 세실리아가 자신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벗은

6) 탈리스 집안이 머무는 저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1부의 내용은 영국 소설에서 “시골 저택 소설들”(country house novels)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퀘리는 이러한 측면에서 이 소설을 제인 오스틴(Jane Austen) 등의 소설들과 비교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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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그를 같은 종류의 인간으로 보지 않는 계급적 우월의식에서 나왔다고 여긴다. 로비는 자신이 계급적으로 “거세”(emasculation)되었다고 생각한다 (p.76). 로비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출생배경에서 나왔다. 어린 시절 로비의 아버지인 어네스트는 탈리스 집안의 정원사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사라진다.

로비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로비는 탈리스 가의 아이들과 친구로 지내왔지만 자신이 늘 차별받아왔 다고 느껴왔다. 로비는 세실리아를 사랑할 뿐 아니라 세실리아를 굴복시킴으 로써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돌파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로비의 욕망과 사랑에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있고 이 간극은 문학의 대립적 기능으로 제시된다. 로비의 세계는 리비스 (F. R. Leavis)의 자유인문주의가 제시하는 문학의 고귀한 윤리의식과 프로 이트의 무의식과 욕망 이론에서 논하듯 문학의 목적이 욕망충족이라는 관 점들이 대립된다. 로비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정신의 고양을 위 한 최적의 수단으로 보고 자유 인문주의(liberal humanism)의 초석을 세운 리비스의 인문학 서적에 심취한다. 로비는 자유 인문주의가 주장했듯 문학 과 종교는 인간의 비천함과 고귀함의 구분을 가르친다고 믿는다. 그러나 로 비의 이러한 믿음은 작품을 통해 비판적으로 제시된다. 뺷속죄뺸에서 문학은 로비가 배운 리비스 등의 주장처럼 종교를 대체해 도덕성의 함양을 꾀하기 보다 허구를 통해 저자의 책임을 방기하거나 숨겨진 욕망의 표출 및 충족 을 위해 기능한다. 가령 로비는 세실리아에게 꽃병이 깨진 사건에 대해 사 과를 하는 편지를 쓰려 한다. 그러나 로비는 유명한 해부학 교재인 뺷그레이 의 해부학뺸(Gray’s Anatomy)을 보고 세실리아를 이 해부학 책에 나온 성 적 대상으로 환유하고는 외설적인 단어가 가득한 편지도 몰래 쓴다. 로비는 우연히 만난 브리오니를 통해 사과의 편지를 세실리아에게 전달하려 하지 만 곧 자신이 건넨 것이 외설적 언어가 가득한 편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로 비의 잘못 전달된 편지는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이 말실수로 드러나는 ‘프로 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와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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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전달된 편지의 메시지는 로비의 숨겨진 욕망을 담은 채 사라지지 않고 그것을 읽은 작가지망생인 브리오니의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내러티 브의 기폭제가 된다. 외설적 편지를 읽은 브리오니는 편지 속 내용을 통해 자기가 지금까지 알던 동화 속 명확하고 순수한 세계가 아닌 “어른들의 감 정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한다(p.106). 브리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비의 비밀 을 알고 싶어 하면서 로비가 세실리아를 위협한다고 추론한다. 브리오니는 자신이 쓴 극의 내용과 같이 비열한 악한인 로비로 인한 순수한 세실리아 의 고난이라는 낭만적 내러티브를 창조한다. 여기에는 브리오니가 가진 애 증의 대상으로서의 로비의 처벌이라는 소원의 충족욕구가 숨겨져 있다. 브 리오니가 로비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일부러 물에 빠져 로비의 구원을 받으 려 했을 정도로 사랑했었다. 그러나 로비가 이 고백을 어린아이의 어설픈 장난 정도로 치부하자 브리오니는 로비를 혐오하게 된다. 그로 인해 편지를 읽은 브리오니는 언니에 대한 질투와 더불어 로비가 악당이고 처발받아야 한다는 추론을 사실로 확신한다. 이러한 혐오감에서 로비가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잊고 자신의 언니에게 접근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숨겨져 있다.

사건들은 사건을 경험하지 않고 목격만 한 브리오니의 ‘소망충족’을 위해 해석을 통해 조작되거나 과장된다. 두 번째 사건으로 브리오니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애정행위를 하는 로비와 세실리아를 목격한다. 분수대에서의 첫 번째 사건과 편지로 이미 악당인 로비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언니라는 의미 계열을 만든 브리오니는 이 장면 역시 세실리아가 로비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브리오니는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자신이“보았던 것은 부분적으로... 이미 알았거나... 알았다고 믿었던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다”고 고백한다(p.115). 어머니의 이혼으로 집에 머물던 어린 사촌 쌍둥이들 이 집으로 가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도망가면서 사건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쌍둥이를 찾아 나선 브리오니는 아일랜드 템플에서 어떤 남자가 도망치는 것을 목격하고 그곳에 앉아있는 쌍둥이의 누나인 롤라(Lola)를 만나게 된다.

브리오니는 롤라를 보자마자 도망간 남자가 로비라고 단정짓는다(p.155). 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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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니는 로비의 편지를 경찰과 부모에게 건넨다. 로비가 쌍둥이를 찾아 데리 고 나타나지만 브리오니는 로비가 쌍둥이를 구했다는 것에 기쁘면서도 로비 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p.171). 브리오니는 이러한 단편적 사실들의 파편들을 연결시킨 추론을 통해 “그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내러티브를 만들고 형성시킬 수 있게 된다”(169).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1부에서 브리오니가 추론들을 통해 사건들을 계열화하여 만든 내러티브를 통해 의미 를 이루는 과정은 작가의 창작과정과 유사하다. 소설은 작가가 사건들을 하나 의 계열로 만드는 능력에서 시작된다.7)그러나 소설 속 내러티브의 형성과정 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사건들을 자신의 소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계열화 했을 때 그 결과의 책임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4. 저자의 책임과 속죄

문학에서의 내러티브의 형성 과정과 문학의 욕망충족을 위한 수단화에 대한 문제는 작가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문제와 연결된다. 뺷속죄뺸가 던지는 세 번째 윤리적 질문은 저자의 창작을 통한 현실의 조작과 그 책임에 대해서 이다. 부스는 작품 속 화자들의 목소리들과 청자들의 귀기울임은 상호간에

“응답하고 책임을 지는”(respond to, and thus be responsible to)관계를 가지 게 된다고 논한다(p.126). 소설은 화자의 이야기에 대한 청자의 ‘응답’을 부를 뿐 아니라 ‘응답 가능한’(response-able) 세계로서 화자/작가는 윤리적 책임 의 문제를 갖게 된다. 부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각각의 책임을 논한다. 부스는 저자가 타자와 세상에 대해 어떤 책임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p.128).

저자는 때로 자신의 삶을 기반으로 작품을 완성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자신의 삶과 반대되거나 자신의 삶 속 타인에게 해악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

7) 질 들뢰즈가 뺷의미의 논리뺸(Logic of Sense)에서 루이스 캐롤의 뺷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뺸 를 사건과 의미를 통해 해석하듯 사건들은 계열화를 통해 의미를 가지게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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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다. 저자의 윤리적 책임은 여기에 끝나지 않는다. 부스는 작품 속 인물의 창조를 위하여 실제 인물이 악용되는 경우의 책임도 다룬다. 부스는 또한

“‘진리’에 대한 저자의 책임들은 무엇인지”를 묻는다(p.132). 그러나 부스는 소설가가 가진 책임의 일환으로서의 실제 인물의 삶에 대한 잘못된 재현이나 진실의 조작과 왜곡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뺷속죄뺸는 이 문제들이 쉽게 무시될 수 없음을 브리오니의 창작과 정을 통해 보여준다. 작가지망생인 사춘기의 브리오니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만큼 실제로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실패이다. 그리 고 오직 이야기 속에서만 너는 이들 다른 마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어 떻게 같은 가치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다. 그것이 이야기가 갖 는 유일한 도덕성이다”라고 주장한다(p.38). 브리오니는 문학에 있어서 도 덕성이란 작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실제 삶과 공유된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만드는 역할에만 국한된다고 말한다. 문 학이 없다면 우리는 다른 인종,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없다. 문학은 그럴 기회를 상상을 통해 제공한다. 그러나 브리오니가 간과하는 문제가 있다. 만일 문학이 제공한 실제 세계 속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재현이 편견에 차있고 실제 대상이 되는 실제 세계 속 사람들을 의도 적으로 잘못 재현한 것이라면 과연 윤리적일까? 성인이 된 브리오니는 자 신이 사춘기 시절에 추론으로 형성된 증언으로 로비와 세실리아의 인생을 무너뜨려 버린 경험을 소설 속 이야기로 만들면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속죄를 하려 한다.

브리오니가 쓴 것으로 나오는 소설 내용에 따르면 로비가 감옥에 수감되 었다가 2차대전에 병사로 끌려간다. 로비가 참전한 2차대전의 현장은 지옥 이다. 로비는 경찰에 끌려간 후 색광증이 있다는 판정을 받아 3년 반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다. 감옥에서 로비는 세실리아와 사랑을 이어가며 편 지를 통해 그들이 대학에서 배운 문학 작품들의 예들을 통해 서로간의 은 밀한 대화를 나눈다. ‘편지’는 이 경우에 욕망의 표출뿐 아니라 문학이 갖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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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과 돌봄의 상징도 된다. 로비는 감옥에 나와 6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사회에 나와 있을 때 단 하루 세실리아를 만난다. 1935년 11월 로비가 끌려 간 이후 간호사가 된 세실리아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가족과 완전히 연락을 끊고 산다. 훈련소에서의 훈련이 끝나기 3주 전에 전쟁이 선포되고 로비는 전장으로 끌려간다. 로비는 세실리아의 마지막 주소가 담긴 편지를 가슴에 품고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견디어낸다(190). 로비는 세 실리아를 통해 그 사건 이후 있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듣게 된다. 세실리 아는 브리오니가 대학을 가지 않고 견습간호사가 된 선택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일종의 “속죄”(penance)라고 해석한다(p.199).

프랑스에서 패퇴하면서 독일 전폭기인 스투카 공격(Stuka attack)을 당 하며 로비를 포함한 상당수 병사들은 후퇴하는 분대로부터 이탈한다. 이미 포탄 파편이 박힌 상처를 가진 로비는 같은 낙오병들인 네틀(Nettle)과 메 이스(Mace)와 함께 낙오병이 되어 영국으로 송환되기 위한 집합지인 해변 으로 향한다. 로비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으면서 “죽은 문명, 처음에는 그 자신의 삶이 망가졌고 이제는 다른 모든 것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p.204). 전장은 감옥과도 달랐다. 감옥에서 하늘은 자유와 해방의 상징이지 만 전장에서는 폭격과 죽음의 공포를 의미한다. 로비는 깨끗하게 잘려 나무 에 놓여 있는 아이의 다리와 한 어머니와 소년이 폭격에 흔적도 없이 사라 지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로비와 일행은 드디어 그들이 가려던 해변에 도착한다. 일종의 연옥처럼 해변에는 수많은 낙오병들이 모여 구원의 희망 을 가지고 모여 있다. 로비는 덩케르크 해변에 누워 세실리아의 편지를 품 고 그녀가 쓴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돌아와요”를 부적처럼 지니고 구원을 기다린다(p.246).

부모님이 기대하던 케임브리지대학 진학을 포기한 브리오니는 속죄의 일환으로 언니가 일했던 병원에서 전시 간호사 수련 과정에 들어간다. 그녀 가 있는 병원은 군대식으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드럼몬드 수간호사 (Sister Drummond)의 혹독한 군대식 수련을 통해 브리오니는 자신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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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통제와 질서의 극치를 보고 본받으려 한다. 브리오니는 부상자들이 들 이닥치자 견습기간 중 처음으로 전쟁으로 거의 목숨이 사라져 가는 부상자 들을 만나게 된다. 브리오니는 얼굴이 반쯤 사라진 병사 등을 치료하면서 자신이 어릴 적 갖던 기계론적 인간관을 확장시킨다.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브리오니는 “그녀가 항상 알아왔고 모든 이들이 알았던 한 가지 단순하고 분명한 사실을 배운다. 즉 사람이란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물질적인 존재로 서 쉽게 찢겨지고 쉽게 고쳐지는 존재라는 것을”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p.287). 브리오니에게 인간은 물질적 존재로서 상처받을 뿐 아니라 또한 쉽 게 고쳐지는 존재이다. 그러나 브리오니의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정신적 상 처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다. 인간은 물질적일 존재일 뿐 아니라 정신적 존재로서 정신의 상처는 물질적 상처에 비해 회복되기 어려우며 폭력과 조 작을 통한 타인에 대한 정신적 해악은 되돌릴 수 없다.

브리오니는 육체의 상처가 아물 수 있듯 정신적 상처도 저자가 완벽히 통제하는 창작을 통해 아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소설을 창작한다. 성인이 된 브리오니는 당시 시대적 조류이던 모더니즘 계열의 소설을 쓰면서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피그말리온의 꿈을 잃지 않는다. 자신의 손가락처럼 움직 이는 세계를 창조하려던 브리오니는 지금도“그녀의 창조의 무게를 맨손가 락의 끝들에서”느낀다(p.264). 그녀의 습작 소설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생각들, 지각, 감각”에 관심을 가지고 의식의 흐름을 사용한다(p.265). 또한 인간의 마음을 기계적으로 접근해 “마음으로 들어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 는지 혹은 작동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p.265). 그러나 브리오니 의 첫 습작소설이자 아마도 뺷속죄뺸의 1부에 해당하는 분량으로 이루어진

「분수 옆의 두 인물」은 출판사로부터 출판을 거부당한다. 브리오니의 이 습 작은 삶에 대한 통찰이 배제되어 있고 단지 기교적 완성도에만 초점을 두 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브리오니의 모더니즘적 글들과 그 다음 장에 나오 는 2차대전에서 로비가 겪은 참혹한 전쟁에 대한 사실주의 묘사는 모두 저 자의 미적 완성도를 위해 형성된 예술품이다. 그러나 이 예술품 속에 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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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인물들의 삶이 실제 브리오니의 인생에서 저지른 죄악의 결과로 연옥을 헤매게 되는 로비와 세실리아의 삶을 재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브리오니의 소설이 갖는 미학적 완성도와 별개로 작품에 대한 저자가 가져야 하는 윤 리적 책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브리오니의 통제로 형성된 로비와 세실리 아의 내면의 목소리들은 이미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통제된 의식들이다. 그 리고 이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해결하고 스스로의 속죄를 이루고자 하는 브리오니의 오만함은 과거 이야기꾼이 가지지 못했던 폭력적 조작을 가능 하게 했다. 그러나 브리오니가 창작을 통해 이루려 하는 현실 세계에서의 잘못에 대한 속죄와 책임은 불가능하다. 마지막 장에서 밝혀지듯 로비는 덩 케르크에서 죽었으며 세실리아는 폭격으로 사망했다.

5. 브리오니의 속죄와 책임의 불가능성과 그 윤리적 의미

브리오니는 이제 환상 속에서 세실리아와 로비를 만들어 내고 그들에 대 한 인간적 책임을 소설가로서 다하려 한다. 세실리아를 만나러 베들램으로 향하면서 브리오니는 자신이 “상상 속 혹은 유령 같은 인물”이라고 느낀다 (p.311). 일종의 속죄로서 브리오니는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어떠 한 답도 받지 못한다. 그러다 브리오니는 로비가 있는 영국군이 북부 프랑 스에서 퇴각하고 있다는 뉴스를 본다(p.267). 또한 브리오니는 롤라를 유혹 하던 폴 마샬(Paul Marshall)이 롤라와 결혼한다는 소식 역시 아버지로부 터 받는다(p.268). 이 뉴스를 듣고 브리오니는 롤라를 성폭행한 사람이 폴 마샬이고 로비는 아무런 죄가 없음을 깨닫는다. 브리오니는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소식을 얻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해결책 은 과거의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272). 브리오니는 환상이라는 수단을 통해 로비와의 만남을 통해 과거를 되돌려 속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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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속에서 일어나는 브리오니와 세실리아와 로비의 만남은 기이하고 몽환적이다. 세실리아는 브리오니가 마음을 바꾸어 진술을 바꾼다고 해도 브리오니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나는 절대로 너를 용서할 수 없을 거야”라고 밝힌다(p.318). 간호복을 입은 브리오니 앞에 유령처럼 군복을 입은 로비가 등장한다. 브리오니는 이 모든 일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전쟁 때문이라고 볼 수 없을까요”라고 반문한다(p.321). 로비는 브리오니의 이러한 변명에 분노하면서도 마침내는 세실리아의 중재로 브리오니의 이야기를 받아들인 다. 그리고 로비는 세실리아와 긴 키스를 한다. 진실의 재판정과 같은 이 장면에서 브리오니는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롤라를 강간한 사람이 폴 마샬 임을 밝힌다. 브리오니는 헤어지면서 “정말 죄송해요. 내가 이 모든 무시무 시한 고난을 일으켰어요”라고 사죄한다(p.329). 이 환상 속 장면을 마치며 브리오니는 어린 시절 악몽을 꾸는 브리오니에게 세실리아가 귓속말로 하 던 “돌아와. 이건 악몽일 뿐이야. 브리오니 돌아와”라는 문구를 기억해 낸 다(p.330). 그리고 자신의 책임으로서 속죄를 위한 로비와 세실리아의 행복 한 결말을 담은 “일종의 속죄로서의 새로운 작품을 이제 시작할 준비가 되 었다”라고 밝힌다(p.330). 그러나 브리오니의 환상을 통한 속죄는 불가능하 며 이 불가능성은 데리다가 가졌던 속죄와 책임에 대한 근원적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뺷속죄뺸는 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한 일종의 메타비평의 형식을 통해 서구 의 관점에서 본 ‘책임’(responsibility)의 가능성에 대한 본원적 질문을 던진 다. 자끄 데리다는 뺷죽음의 선물과 비밀 속 문학뺸(The Gift of Death and Literature in Secret)을 통해 책임의 불가능성을 논한다. 데리다는 이 책에 서 유럽의 역사는 책임의 역사이며 “책임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에 연결되 어 있다”라고 논한다(p.7). 체코의 철학자인 파토츠카(Jan Patocka)의 철학 을 통해 데리다는 역사는 서구에서 책임(responsibility)과 신념(faith)과 선 물(gift)로 연결된 개념이라고 논한다(p.7). 데리다는 파토츠카의 논의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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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책임이란 “지식이나 주어진 원칙들과의 단절을 포함한 절대적 결정들의 경험으로서 고로 결정될 수 없는 것의 시련을 통해서만 형성된다”고 주장 한다(p.7). 또한 선물(gift)이란 나를 타자와 초월적 관계로 형성되는 죽음의 선물이라고 해석한다(p.8). 한 예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듯 책임은 스 스로의 죽음을 일종의 선물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책임은 스스로에게 죽음의 책임을 선사하는 희생을 의미한다. 파토츠카의 철학을 통해 죽음과 책임과 비밀과 선물의 연관된 의미를 살핀 데리다는 책임이란 죽음을 직면하며 죽음을 선물로 여기는 불가능한 희생을 가능하게 만드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그러나 데리다는 죽음을 선물로 보는 책임의 관점을 낭만적으로 해석하 지 않는다. 죽음이 선물이 되는 순간 “전쟁은 죽음의 선물이 더 나아간 경 험이 된다”(p.19). 전쟁 속에서 특히 전선에서 적군을 본 인간은 타인들의 죽음을 직면하면서도 자신의 생명을 선물로 바치며 삶을 위해 죽음을 넘어 서는 일종의 책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선물로서의 죽음과 희생의 책임은 로 비가 참전한 전쟁의 예에서처럼 폭력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실로 기 능한다. 파토츠카를 통해 데리다가 주장하듯 플라톤으로부터 시작해서 기 독교로까지 그리고 마침내 현대로까지 이어지는 죽음을 일종의 선물로 여 기는 사유는 희생을 정당화한다. 죽음이 선물인 이유는 선물(gift)이 열리기 전까지 비밀이기 때문이다. 비밀로서 감춰진 선물이 드러나는 순간 ‘선물’

로서의 본질이 사라진다. 죽음은 드러나는 순간까지 의미가 드러나지 못하 는 비밀로 남으면서 인간은 타자에 대한 책임의 무한한 불가능성을 만나게 된다.8) 필멸의 존재인 현존재이든 무한의 타자이건 간에 타인의 죽음은 희

8) 실상 현존재의 본원성은 삶에서보다는 죽음이라는 공간의 비대체성(irreplaceability)를 통해 형성된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논하듯 누구도 나의 죽음의 공간에 위치 할 수는 없다. 서구의 책임과 자유는 바로 이 죽음이라는 공간의 비대체성을 근원으로 한다(p.45). 따라서 데리다가 파토츠카와 하이데거를 통해 논하듯 죽음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의 공간이며 나에게 선물처럼 수여되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타자의 죽음은 ‘선물’의 수여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폭력의 희생이 된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본원적 죽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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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을 전제하게 된다. 따라서 데리다는 “내가 책임을 지니기 때문에 어떤 잘 못이 인정되기 전에도 나는 죄의식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p.52).9)

손아귀에 잡혀 죽음의 선물을 비밀리에 선사하는 초월적 존재는 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 작품 속 인물들 역시 작가의 신적 손아귀 안에 놓여 있다. 저자는 초월적 행위인 창작을 통해 작품 안에 있는 이들에게 죽음의 선물을 선사하고 희생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가의 이러한 절대적 통제 와 지배는 실제 세계에서 지배자들이 전쟁 등을 통해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과 유사하다. 작가의 책임처럼 전쟁을 일으킨 이들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책임을 빌미로 타자들의 희생을 정당화한다. 책임이 라는 측면에서 소설과 현실은 서로를 반조한다. 또한 소설 속 인물은 현실 에서 인간이 인물로 변모되는 과정을 비춘다. 현실 속에서 인간은 소설 속 에서 책임을 지닌 본원적 존재가 아닌 책임을 강요하거나 강요당하는 전형 성을 지닌 인물이 된다. 가령 데리다는 파토츠카의 논의를 빌어 비본원적 죽음의 발생에는 인간의 본원성이 사라지고 소설 속에서처럼 역할로만 인 정되는 인물화(characterization)가 있다고 주장한다.10) 개인이 아닌 사회

대한 비판으로 레비나스의 타자의 죽음을 통한 책임을 예로 든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타자가 필멸의 존재이기에 “나의 책임은 단독적이며 ”양도불가능하다“”고 논했다(p.47). 죽음의 공간이 하이데거에게 현존재의 공간이라면 레비나스에게 ‘나’의 죽 음은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만 본원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철학자들 모두 죽음을 일종의 선물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다.

9) 가령 키에르케고르가 논하고 데리다가 인용하듯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들인 이삭을 희생 시키는 제의를 통해서만 아브라함은 책임을 지닐수 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선물을 받을 자신의 아들의 얼굴로부터 아브라함이 얼굴을 돌림으로써 아들의 목숨에 대한 윤리 적 책임을 지려 하는 아브라함의 선택은 신의 선물이라는 종교적인 책임의 차원에서만 윤리적이다. 초월적 존재를 위해 죽음이라는 선물을 수여받는 타자에 대해 윤리적 ‘고개 돌림’을 하는 행위가 서구의 책임이기에 타자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책임은 타자에 대한 윤리적 ‘응답할 수 없음’을 비밀로 내포한다. 더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과의 비밀을 지키 는 비윤리적 행위를 통해 희생을 정당화한다. ‘비밀’은 성스러움의 근본이고 책임의 핵심 이지만 타자의 희생을 가능하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 결국 플라톤과 기독교를 통해 서구에서의 책임은 타자의 희생에 대해 응답할 수 없는 ‘불가능한 비밀’이 된다.

10) 데리다는 현대 사회에서 미학화(aestheticism)과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통해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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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역할이 된 인간은 본원성을 잃고 기술문명의 도구가 된다. 도구화된 인 간에게 책임이란 가면과 같다. 책임을 빌미로 대량학살이 벌어지고 인권을 빌미로 인권유린이 이루어진다. 브리오니는 실제 독재자처럼 자신의 세계 를 통제하고 창조해 내고 인물의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불가능한 책임을 허구를 통해 실현하려 한다.

브리오니의 작가로서의 책임을 위해 작품 속 인물들의 본원적인 공간인 죽음의 공간이 강제로 수여되기도 하지만 강제로 빼앗기기도 한다. 브리오니 는 자신이 창작을 통해 로비와 세실리아를 살려내는 행위가 죽은 자에게 응답을 기대하는 책임의 행위라고 자위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희생을 대체 할 수는 없다. 더구나 브리오니는 ‘자신의 비밀’을 통해 희생자를 만들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허구의 역할극을 창조해내는 행위를 자신의 윤리적 행위라고 주장하려 한다. 그러나 데리다가 파토츠카를 통해 논하듯 이러한 ‘인물화’는 타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불가능한 책임을 수행하려는 태도로서 비윤리적 인 무책임을 숨기고 있다. 허구를 통한 책임은 비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브리오니는 자신의 비밀을 소설을 통해 밝히려고 하지만 죽은 이들에 대한 책임을 윤리적으로 질머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의 생명의 자리가 대체불 가하듯 타자들의 희생 역시 대체불가하다. 데리다의 책임에 대한 논의에서 보듯 브리오니의 속죄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허구로 이루어진 글로 해피엔 딩을 만든다 하여도 죽은 로비와 세실리아가 되돌아올 수는 없다. 어린 시절 인물들을 대면하지 않고 유리창에서 바라보는 그녀는 비대칭적으로 놓인 타자의 시선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못한다. 타인의 희생을 책임과 문학의 비밀 로 완성하려는 브리오니는 불가능한 책임을 이루려는 헛된 오만으로 책임회 피를 할 뿐이다. 브리오니 역시 어느 정도는 이점을 깨달아간다.

은 사람(person)이 아닌 역할만을 가진 “인물”(character)이 되었다고 본다(37). 그리고 기술문명은 “악마적 무책임성을 부추겼다”고 논한다. 데리다는 또한 역할만의 인간은

“사회적 가면의 뒤에 대체불가능한 자신의 본원성을 숨김으로서 기술과학적 객관성에 의해 생산된 권태의 문명이 비밀을 숨긴는”상황이 도래했다고 해석한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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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결론: 브리오니의 선택과 독자의 책임

1999년으로 명기된 뺷속죄뺸의 마지막 장에서 77세의 브리오니는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가 되어 등장한다. 브리오니는 어머니처럼 두통을 심하게 겪 고 지적능력과 기억의 상실로 이어지는 혈관성 치매가 걸렸음을 알게 된다 (p.334). 브리오니는 “나의 뇌, 나의 마음이 이제 막을 내리고 있다”고 밝힌 다(p.334). 브리오니의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레온은 젊은 시절과 달리 성실 한 가장이 되어 아내를 간호하고 시끄러운 아이들을 잘 돌보았다. 88세의 폴 마샬은 거부가 되어 자선가로 알려지고 유명한 정치인이 된다. 브리오니 는 로비와 함께 있던 네틀에게 받은 편지 등을 전쟁박물관에 기부하기로 할 만큼 로비의 삶을 탐색하기 위해 전쟁에 대한 다양한 문서들을 수집한 다. 브리오니가 뺷속죄뺸를 쓴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가 속죄라면 다른 하 나는 복수이다. 브리오니는 자신과 더불어 책임을 져야 할 마샬경과 롤라에 게 복수를 하고싶어 한다. 그러나 거대 권력인 이 둘에게 복수하는 것은 브 리오니의 생전에는 힘들며 이 둘이 살아있는 동안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본다. 마샬은 미디어뿐 아니라 법에서도 권력을 가지고 있다. 브리오니는 자신이 이 책을 그들이 살아있을 때 내게 되면 엄청난 소송에 휘말릴 것이 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브리오니는 따라서 이 책이 롤라와 마샬의 사망 이후에 출판될 것을 부탁한다. 어떤 측면에서 브리오니는 자신의 생전에 논 쟁에 휘말리게 되면서 생기는 오명과 책임을 방기한다.

브리오니의 소설은 마지막 장을 중심으로 매큐언의 뺷속죄뺸와 공명하며 메타픽션의 특성을 지닌다. 브리오니는 평생 사랑하던 비밀을 버리고 “인 물의 나약함을 묘사하는 순간에 자기폭로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이었다. 독자 로 하여금 그녀가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고 고백한다 (p.6). 브리오니는 자신이 창조한 소설 속 세계의 중심이면서도 자신이 드러 나지 않게 창조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 한계를 결국 1999년의 시점에서 브리오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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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창조한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과 구원과 결혼이라는 행복한 결말 이 거짓이었음을 밝힐 수밖에 없이 만든다. 브리오니는 ‘허구’의 책임에서

‘진실’의 폭로로 진정한 작가로서의 책임을 지려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앞에 서 논했듯 자신의 변명으로 일관됨으로서 과연 그녀의 폭로가 얼마나 윤리 적인 책임을 보여주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브리오니는 뺷폭풍뺸 속 프로스페로처럼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고별인사 를 남긴다.

나는 이것이 유약함이나 회피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것은 오히려 친절 의 마지막 행위이며 망각과 절망에 대응하는 태도이며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계 속 살아가며 최종적으로 결합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 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용서한 것이라고 자족하지는 않으려 한다. 아직은 분명 히 아니다. 만일 내가 그들을 나의 생일잔치에 소환할 힘을 가지고 있다면 로비 와 세실리아는 아직 생존한 채 아직 사랑을 유지하며 이 서재에서 옆에 앉아 아 라벨라의 수난에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 나 나는 이제 잠들어야 한다.

I like to think that it isn’t weakness or evasion, but a final act of kindness, a stand against oblivion and despair, to let my lovers live and to unite them at the end. I gave them happiness, but I was not so self-serving as to let them forgive me. Not quite, not yet. If I had the power to conjure them at my birthday celebration...Robbie and Cecilia, still alive, still in love, sitting side by side in the library, smiling at the The Trials of Arabella? It’s not impossible. But now I must sleep. (p.351)

브리오니는 자신의 저자로서의 윤리적 책임이 책을 냄으로써 마무리되 었다고 본다. 그러나 자신조차 어느 정도 인정하듯 그녀의 ‘한 인간으로서 의 윤리적 책임’이 책의 출판으로 면죄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죽은 자들 은 이미 죽었다. 정의는 브리오니의 기억이 치매로 사라지고 그녀가 죽는다 고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독자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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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적 독해에 있게 된다. 단젤로가 논했듯 “만일 브로이니가 소설가로 성공 했다고 한다면, 그녀의 가장 큰 책임은 비판적이고 책임감이 있으며 정독하 는 독자들을 형성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이들만이 그녀의 죄에 대한 최종적 속죄와 사죄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p.102). 독자는 최종적 판단을 내리고 브리오니의 작품에 대한 비판적이거나 동조하는 독해를 내놓을 것이다. 자 신의 작품이 세계와 타자에 대한 통제의 대안으로 또한 자신이 현실에서 저지른 죄악에 대한 속죄로 기능할것이라 브리오니의 오만함은 책임의 불 가능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책임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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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thical Issues of An Author’s Responsibility in Ian McEwan’s Atonement

Kim, 11)Dae-Joong *

This paper aims to closely read and deeply examine ethical inquiries about author’s responsibility Ian McEwan’s Atonemen launches. McEwan’s Atonement has been widely known for its complex and delicate form and embedded daunting questions about ethics of authorship. To answer these questions, I utilize various theoretical lenses such as Jacque Derrida’s deconstructive arguments on the impossibility of responsibility and Wayne Booth’s investigation on ethical reading and responsibility of authorship.

The paper first of all tries to answer the question of purpose and intention of fiction per se by delving into Briony’s desire of control and creation of a fictional world that triggers a tragic serialization of unfathomable and contingent events happening between Cecila and Robbie. This serialization, reflecting author’s creation of narrative and caused by Briony’s desire of wish-fulfillment, results in imprisonment of Robbie and his enlistment to army during WWII. As an endeavor to resurrect Robbie and Cecilia who died during the war and atone for her sin, Briony brings forth a fantasy where she apologizes to Robbie and Cecelia. This paper philosophically analyzes Briony’s deceptive use of fantasy for atonement and impossibility of her authorial responsibility with Derrida’s deconstruction of responsibility in Western intellectual history; then the paper proposes that a way to be responsible in Atonement is critical reading of readers who allow atonement for the fictional characters.

Key Words : Ian McEwan, Atonement, Responsibility, Jacque Derrida, Ethics

* Kangwon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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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름: 김대중 소속: 강원대학교

전자우편: daimon2002@gmail.com 논문투고일: 2020년 1월 31일 심사완료일: 2020년 2월 25일 게재확정일: 2020년 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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