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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토 시 론
이제는 성숙사회를 준비하자
최진호 |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경제발전을 통하여 물질적 부가 증대되면 인류 의 삶이 그 전보다 훨씬 더 행복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아 경제가 크게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행복지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경제지표 로는 최빈국인 방글라데시나 부탄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성숙사회는 한마디로 국민의 주관적인 안녕과 행복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우수성을 추구하는 사회다. 데니스 가보르는 그의 책 「성숙사회」에서 성숙사회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세 가지 선물은 희망, 놀 이, 다양성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사람들이 행복해지려면 창작과 대인관계, 그리고 놀이가 필요하다고도 하였다. 그의 주장과 이후의 여러 논의들을 종 합하여 성숙사회의 특징을 몇 가지로 요약해본다.
첫째, 성숙사회는 일과 여가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다. 이제까지는 대부분 의 사회에서 생의 초점이 일에 맞춰져 있었다면 성숙사회에서는 여가도 일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생의 한 요소가 된다. 일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왔다. 과거 못살던 시기에는 일이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여겨졌고, 따 라서 일은 피하고 싶은 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일이 자아 실현을 위한 것으로, 누구나 일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게 되었다.
이렇듯 의미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하여 여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식 되었고, 일을 잘하기 위해 여가를 즐기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둘째, 성숙사회는 빠르게 사는 것보다는 느리게 사는 것에 더 가치를 두는 사회다. 세계적으로 ‘slow city’, ‘slow food’가 주목받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느리게 사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도나 네팔의 명상가를 찾고,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느리게 사는 것이 각광받는 시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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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최근 들어 제주도의 올레길이 인기를 끌고 명상, 힐링 등의 단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이는 빠른 성장 지상주의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이제는 멈추어 뒤를 돌아보고 현재의 삶도 성찰하는, 느리게 사는 것의 중요성이 점차 더 커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셋째, 성숙사회는 사용하면 없어지는 물질을 소 유하려는 사회가 아니라 경험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강한 사회다.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는 모 든 사람들이 물질을 더 많이 소유하려고 노력하였 다. 그러나 물질의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이제는 물질보다 경험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더 커졌다. 경험을 소유하는 것의 대표적인 예로는 여행과 등산을 비롯한 각종 스포츠 활동, 그 리고 문화와 예술의 감상, 창작활동 등을 들 수 있다.
넷째, 성숙사회는 다음 세대의 지구를 생각하는 사회다. 요즈음 많이 이야기되는 ‘지속가능발전’을 보통사람들도 생각하고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실천 하는 사회다. 우리 세대의 풍요를 위해서 다음 세대 의 안녕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서 현재의 불편함을 참는 사회다. 최근 교토의정서 의 정신이 다소 흔들리고 있지만 하나밖에 없는 지 구를 보존하고 지키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 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성숙사회는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회다.
나, 우리 가족, 우리 지역, 우리나라만 생각하는 것 이 아니라 시야를 더 넓혀서 나 혹은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함께 생각하는 사회다. 나 혹은 우리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 와 공통 선이 더 증진되도록 노력하는 사회다. 2000 년 새천년을 맞이하여 UN이 선포한 새천년개발계 획이 좋은 본보기다. 비록 처음에 2015년 목표연도 까지 설정한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 러한 범지구적인 노력은 앞으로도 지속되고 더 확
대되어야 하겠다.
한국도 이제는 성숙사회를 지향할 때가 되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20-50 클럽에 가입했다거나, 2012년에 무역규모 면에서 G8이 된 것도 의미 있 는 일이지만 개인의 삶의 질을 더 생각하는 나라, 세 계 속에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류의 장래를 걱정하 고 개도국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나라로서 자리 매김해야 한다.
국토는 국민들의 삶과 사회의 모습을 담는 그릇 이다. 성숙사회의 국민들이 생각하는 삶의 지향을 제 대로 담기 위해서는 알맞은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국토계획은 바로 이 그릇을 어떻게 빚어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계획이다. 성숙사회의 특징을 잘 담아낼 수 있는 국토계획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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