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환
1. 프랑스 대혁명; 정치혁명
자유민주주의 시대 개막2. 산업혁명; 사회경제혁명
자본주의 세계경제체제 형성
1. 프랑스 구제도(앙시엥레짐)의 모순
-1신분(성직자); 10만, 자발적 공납, 토지 10%, 봉건지대/농산물 십일조세 - 2신분(귀족); 40만, 직접세/부역 면제, 토지 20%, 법복귀족(고등법원 장악), 18C
후반 장원영주의 봉건적 반동
- 3신분(평민); 1∙2신분 제외 국민전체(98%,2600만),
부르주아지; 금융업/상공업자, 법률가, 의사, 소시민층 (20% 토지) 농민(3신분의 대다수, 30% 토지)→ 농민해방/토지보유자; 소작 인,
인구증가와 분할 소작제로 농업 영세화, 국가 직접세/간접세(염세) 교회 십일조세, 도로부역▶ ‘생산물지대’ 귀족에 대한 원성
※혁명전 사회 갈등; 귀족 대 평민
2. 계몽사상의 전파
1. 계몽사상의 전파
-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1748), 행정/입법/사법 3권 분립 - 루소; ‘사회계약’(1762),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 사회 불평등
2. 왕실 재정위기; 루이 14세 말기 이래 지속
-튀르고/네케르/칼론느; 면세특권 제한/철폐, 궁정경비 삭감→ 귀족층 반대 예상 ※평민(도시민) 생활 어려움; 도시 물가 상승(65%), 지대(98%) 임금(20%)
3. 루이 16세 3부회 소집 허가(1788)
- 고등법원(법복귀족); 새로운 세금부과 권한 3부회(1614) 절대왕권 제한/권력 회복 목적
▶샤토브리앙; ‘귀족이 혁명 시작, 평민이 이를 성취’
1. 1789. 5; 3부회 소집
- 관례; 신분별 300명 대표, 신분별 투표제→ 왕/특권계층 의사 관철 - 3신분대표 요구; 대표2배수 증원(600명),
머리 수(다수결)투표→1신분 하위 성직자, 2신분 자유주의 귀족 합 류 기대
- 절대왕정; 3신분대표 증원 동의, 투표방식 미결
- 6. 17; 국민회의 선포/신분별회의 거부→ 하위성직자 호응, 귀족대표 거부 - 6. 20; 테니스코트서약; 새로운 헙법 제정까지 해산 않겠다
- 6. 27; 루이 16세 귀족대표/나머지 성직자 대표 극민회의 참가 지시
※파리 대표단; 국왕군대 동원 경계, 자치위원회 구성, 민병대 조직 시작 - 7. 14; 파리 시민 바스티유 감옥 습격/점령 ▶ 혁명 민중 승리; 민중의 개입과 폭력화
★ 1789. 7. 14; 바스티유감옥 습격과 혁명의 폭력화
- 지방도시 파리 모방; 시민계급 주도 자치위원회/민병대 조직(8. 10 파리 국민방위군 설치)
- 농촌의 대공포와 폭동; 귀족의 혁명저지 소문(외국군/비적 동원)→ 귀족 성/영주 저택 습격, 봉건문서 화형
- 8.4; 국민의회 3신분대표 封建制 廢止 선언→ 봉건적 공납의 되사기(유상폐 지)
- 8. 26;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전문 17조) 채택; 자유/평등/저항/ 재산권 ※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고, 그렇게 존속한다. 따라서 시민이 법을 만 들고,
그 법 앞에서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
※2조; 모든 정치적 결합의 목적은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 수호
- 10. 5; 파리 여성 6천명 베르사이유 행진/국민방위군∙민중 2만명 호위 행진 - 루이 16세(빵집주인 호칭); 베르사이유→파리로 이동(절대왕정 파리 감금)
★ 국민의회의의 혁명적 개혁
- 교회재산 몰수(11월); 담보로 아시냐 화폐발행/교회재산 매각→ 부농, 부르주아지 구 입
- 수도원 해산/성직자 민사기본법(90. 7); 성직자선출 및 국가의 봉급 지불→ 교황 반대
- 자유주의 경제정책(길드/내륙관세 폐지), 샤플리에법(91. 6); 노동자 결사/파업 금 지
-
91년 헌법제정
(9.3); 입헌군주국(단원제, 3권분립), 간접선거(유산계급 지배 체제)능동시민(3일 임금 직접세 납부자 400만)에게 참정권 부여, 선거인(10일 임금, 5만)
★ 91년 10월 입법의회 개회; 의원 740명
(제헌의원 제외)- 우파(페비앙파, 260); 입헌군주제 옹호(자유주의적 귀족, 상층 부르주아지)
- 좌파(쟈코뱅파, 130); 공화주의/민주주의 요구(애국시민)→보통선거, 초기 지롱드파 주도권
- 중도파(평원파, 340); 브리소 중심 쟈코뱅파 동조/지원
1. 루이 16세 탈출 시도(1791. 6)과 혁명전쟁
- 국왕/왕비의 오스트리아 탈출 실패; 바렌느 체포/파리 압송→7월; 군중 국왕 퇴위 요구
2. 혁명전쟁(1792. 4~); 自由의 십자군
- 브리소내각(입법의회 평원파); 오스트리아 선전포고 + 프러시아 가세→ 프랑스군대의 연패
- 입법회의; 지방 의용군 조직, 파리시민 왕궁 습격(6월), '조국의 위기 선언‘(7월) 지방 의용군 파리 집결▶ 마르세유 의용군 군가(‘라 마르세예즈’ 혁명가
→ 국가)
- 8월; 프로이센 사령관 파리시민 위협→ 파리 지구 대표 혁명위원회 구성 →파리 민중(상-퀼로트)/의용군 왕궁 습격∙친위대 학살(8. 10) ▶왕권 정지, 국민공회 소집 결정
※혁명적 민중의 시대; 파리 9월 학살→ 즉결재판 1200 처형(非정치범 67%)
★1792. 9. 22; 프랑스 시민군 발미전투 승리(9. 20)
국민공회 왕정 폐지▶ 공화정 원년 1일 선포(혁명 력)
- 공화파; 쟈코뱅(산악파)→소시민층 지지, 중앙집권(파리중심/통제경제), 민주주의 신봉
지롱드파 부유 부루조이지 지지, 연방주의(지방분권), 경제적 자유주의
- 루이 16세 재판 중 사형 판결로 공화파 분열→ 단두대 처형(1793. 1. 21)
2. 혁명전쟁 격화; 영국 선전포고(1793. 2)→ 대부분 군주국과 전쟁상태
- 아시냐 화폐 급락(50%)/물가 폭등, 과격파(앙라제파) 출현, 방데 지방 반혁명 반 란
- 국민공회; 혁명재판소(3. 10) 및 공안위원회 설치, 보안위원회(92. 10), 순찰위원 파견
★1793. 5. 31; 파리 민중 국민공회 습격 지롱드 지도자 숙청(6. 2) ▶ 공포정치 시작
★‘93년 자코뱅 헌법(1793. 6. 24,로베스피에르 주도)
- 민주주의 헌법; 보통선거(능동/수동시민 구별 철폐), 생존권/노동권 공공 지원→ 복지국가 망명귀족 토지 분할 매각, 봉건 공납 무상(7. 17) 폐지→농민층 지지
※대외적 혁명전쟁, 국내 반혁명 반란으로 실시가 보류
※국내상황; 연방파 반란(리용, 보르도, 마르세유)/오스트리아, 프로이센 공격/물가고, 식량 난
★국민공회;공안위원회 강화, 국민총동원령(8월, 18~25 독신 남성 징집), 최고 가격제(9월, 물가/임금 통제), 미터법/혁명력 채택
- 10월 10일; 공안위원회(로베스피에르) 혁명정부 선언→ 왕비/반혁명파/지롱드 대대적 처형▶공포정치/자코뱅 독재(德의 공화국 지향;자유, 평등, 빈곤타파→방토즈 법 )
- 94. 봄; 당통파(온건파)/에베르파 제거(과격파, 상 퀼로트 결별)→ 4만 처형 ★94. 7. 27; 테미도르 反動(중간파, 부로조아지); 로베스피에르파 타도/처형
★‘95년 헌법(1795. 10.~99. 11)
- 테미도르파; 중간파/ 부패/로베스피에르 소환대상 의원→혁명 과격화 염증 부르조아지 - 공포정치 기구 해체(혁명재판소 해산, 공안위원회 권한 축소), 통제경제 포기→ 우파 테러
- 제한선거 500인회(유산계급), 상하원 입법부→ 5명 총재정부
※국내상황; -인플레 가중, 아시나 폐지(97), 물가고→ 국가 채무 지불거부, 보호관세 -평등파 바뵈프 음모(96), 왕당파 음모(97) 진압→ 군대 의존
-공화파 부활(99. 6); 우파 총재 3명 사직→ 공화파 선출 부르주아지/농민 정국 안정과 기득권 보호 강력한 군인 지도자 기대
★99. 11. 9; 브뤼메르 18일 쿠테타(나폴레옹 독재, ~1815)
※프랑스 혁명; 전형적 시민혁명, 민중혁명
1.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의 의미
-18C 영국에서 산업상의 큰 변혁; 기계의 발명, 기술의 혁신→ 생산력의 비약 적/
지속적 발전▶ 그 영향이 산업구조와 사회 정치에까지 파급 ※공업화/산업화(industrialization); 신석기혁명 이래 인류생활의 가장 큰 변화
※배경
- 정치적; 서유럽 민족국가간 경쟁 전개
- 사회경제적; 신대륙/아시아 광대한 식민지 보유→ 근대 자본주의 발전 본격화 상공업자/금융업자 등 기업가 계층이 사회적 활력
- 17C 과학혁명/18C 계몽시대; 과학, 기술의 발전, 환경에 대한 지배욕
2. 계몽사상의 전파
2.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혁신; 면직물 산업
- 존 케이; 날으는 북(flying shuttle, 1730)→ 직포생산 배가 - 하그리브스; 제니(다추)방적기(1760)
- 카트라이트; 力織機(1784)
- 휘트니; 繰綿機(cotton gin, 1793)→ 1명이 50명 노동력 대체 상공업자/금융업자 등 기업가 계층이 사회적 활력
-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1760)→ 1780’s 모든 기계 동력원▶생산력의 수백 배 증가
- 1730; 석탄의 코크스화 연료 기법, 새로운 용광로 개발▶ 제철업의 비약 발전 - 1830; 스티븐슨 증기기관차, 1807; 플턴 허드슨강 증기선(1840 대서양 정 기노선)
- 1844; 모스 電信, 1876; 벨 電話
2. 계몽사상의 전파
3. 산업혁명의 전파
- 1851; 런던 수정궁 박람회 영국이 세계 공장(석탄 2/3, 철강/면직물 50%
생산)
- 프랑스; 1830’s, - 독일; 1850’s - 미국; 1840’s, - 러시아; 1890’s
- 19C 말; 미국, 독일이 산업능력에서 영국에 도전 4. 산업화 결괴
- 공장제도 출현; 기계, 한 장소에 다수 노동자, 협동 생산작업, 가내 수공업 능가 - 새로운 공업지대 신도시 출현→ 주변 농촌 인구 흡수→ 도시화 진행
- 근대 산업 자본가(공장주, 관리인, 은행가) vs 임금 노동자 계급(공장 노동자, 몰락 수공업자)
- 도시 중산층/노동조합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