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사용할 줄 아는 청소기
최근에 로봇청소기 한 대를 집안에 들였다. 무선청소 기와 로봇청소기 목록을 열람하며 고민하다가 결국 로봇청소기로 최종 결정했다. 매사에 결정장애를 보 이다 보니 온갖 제품 리뷰를 비교하며 망설였으나, 결 정적으로 ‘지도 기능’에 혹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 매하게 되었다.
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설 치하고 사용자 계정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우리집 깔끄미’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순간 그가 내게 로 와서 나만의 청소기가 되었다. 청소 작동을 실행하 자 씩씩한 목소리로 ‘청소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 하더니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벽을 따라 돌아다니기도 하고 거실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다니기도 하면서 공원에 풀어놓은 강아지마냥 여기저 기를 쏘다닌다. 그냥 무턱대고 돌아다니는 건 아닌가 싶어 스마트폰 앱 화면을 보니 새로운 서식처에 대한 본인만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 는 아무 정보도 준 것이 없는데 약 한 시간 이상 구석 구석을 ‘측량(!)’하여 스스로 그럴싸한 평면도 하나를 만들어내었다.
몇 번의 자율학습이 진행되었다. 매번 청소 동선이 달라지더니 일정 횟수를 넘어서는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파악한 듯싶게 패턴이 생겼다.
물건을 건드려서는 안 될 구역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개입해서 지도 위에 ‘청소금지구역’을 설정해야 하고 방바닥에 놓인 전선은 집어삼킬 위험이 있으므로 미 리 장애물들을 제거해줘야 하는 수고가 따르긴 하지 만, 일단 작동시키면 군말 없이 씩씩하게 소파나 TV 선반 아래까지 구석구석 청소를 진행한다. 나는 그저 스마트폰으로 그가 직접 만들어 놓은 지도 위에 본인 이 수행한 청소 영역을 표시하는 현황을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청소기마저 스스로 ‘알아서’ 지도를 만들고 지도를 읽고 공간 내에서 행위를 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알아서’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스스로 집안의 공간을 ‘알아서’ 이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동을 하면서 거실의 형태 및 가구 배치 등을 ‘알아서’ 파악하여 전체 공간을 인식하고 자신이 사용할 지도를 생성한다. 그리고, 청소를 수행한 구역 과 수행하지 않은 구역을 파악하여 가장 효율적인 동 선을 ‘알아서’ 판단한다. 집안 도처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는 것은 기본이며, 낮은 문턱 정도는 쉽게 넘나들 며 ‘알아서’ 임무를 수행한 후 청소 수행결과 보고까지 요약하여 전달한다. 굳이 사용자가 개입하지 않더라 도 ‘알아서’ 공간 학습을 하면서 자가발전하고 의사결 정을 하고 행위를 하는 것이다.
임영모 | (주)웨이버스 부장, ‘맵인사이트: 지도를 보는 따스한 시선’ 저자([email protected])
56 국토 제451호(2019. 5) 공간공감(空間共感) 12
로봇청소기에는 자신의 노동 을 위한 지도가 쓰인다. 이 지 도를 직접 ‘알아서’ 만들고 업 데이트하고 청소에 활용한다.
이 지도는 ‘SLAM’이라는 방 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는
‘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의 약어로, 로봇 스스로 위치 인식(Localization) 을 하면서 자신 주변의 지도를 만드는 것(Mapping)을 동시에 (Simultaneously) 수행하는 방식 을 가리킨다. 로봇청소기에 부착 된 센서들을 활용하여 공간을 파 악하고 좌표 구간을 설정하여 본 인의 지도를 만든다. 최초 작동 시
지그재그로 운행하거나 빙글빙글 돌면서 탐색하는 모 습은 차마 ‘로봇’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꽤 어수룩해 보일 수 있으나, 주행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욱 활동이 정교해지고 효율적으로 발전하며 자가학습을 하며 진 화하기도 한다.
어느덧 도로 위에는 자율주행자동차가 운행할 채비 를 하고 있다. 발의 자유와 손의 자유를 넘어서서 눈 의 자유를 허용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으며, 생각의 자 유조차 허용하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국 내 자동차만 하더라도 고속도로 위에서 스스로 앞차 와의 간격 및 제한 속도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하고 차 선을 유지하는 기술을 도입한 차량이 상용화되었다.
아직 현재 시점 기준 현실 공간 내의 모든 객체정보를 지도화하여 담은 LDM(Local Dynamic Map) 개념까 지 적용된 상태는 아니지만, 지금의 초고속통신, 빅데 이터, 공간정보 등의 발전 속도로 본다면 자율주행자
동차가 도로를 누비는 일은 영화 속에서나 존재하던 상상만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역시 자 동차가 지도의 요소를 생성하기도 하고, 지도를 읽어들여 현재 자신 의 위치에서 수행할 행위의 판단 을 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사람만이 지도를 읽던 세상은 지났다. 이제 사물마저 지도를 읽 는 세상이 되었다. 지도의 사용자층이 변하면서 지도 의 목적도, 지도의 형태도, 지도의 제작방법도 바뀌 고 있다. 과거 공간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 시점 의 공간 현황이 중요해지며, 인간의 판단으로는 너 그럽게 허용할 수 있는 몇 미터 남짓의 오차가 아니 라 센티미터급의 정확성이 요구되며, 눈에 보이는 삶 의 공간뿐만 아니라 기계가 움직이는 모든 공간에 대 한 정보가 필요하게 되었다. 측량을 하고 도화를 해 서 인간이 보기 좋은 형태로 제작하던 지도보다는, MMS(Mobile Mapping System)와 같은 장비로 빠르 게 취득하여 기계들끼리 해독 가능한 수준의 공간정 보를 제공하는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세상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갖다 붙이지 않더 라도 지도의 패러다임은 변하고 있다.
어쩌면 이제 사물의 눈으로 공간정보의 미래에 대 해서 고민을 해야만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로봇청소기가 직접 지도를 그리고,
지도를 이용하여 청소를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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