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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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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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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김기성**

목 차

1. 문제의식

2. 새마을운동은 농촌 근대화운동인가?

3. 근대성이 배태되는 공간으로서 도시의 변증법 4. 대안 근대성의 장소 : 마을의 감성적 근대성을 묻다

<국문초록>

이 글의 과제는 지나간 마을의 경험공간과 기대지평 안에 이미 존재하지만 아 직 도래하지 않은 ‘마을’이라는 경험공간과 기대지평이 오버랩 되는 순간에 포착되 는 근대성의 계기들을 추적하면서 발굴해내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진 원지인 고도로 산업화된 도시의 해악 자체로부터 그 해악을 치유할 수단으로서 마 을의 잠재적인 것과 가능한 것을 탐색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한 국 사회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으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사회병리적 현상들을 치유 할 수 있는 대안이면서 동시에 IMF 이래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경제적 양극화와 그로 인해 고립된 개인의 원자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도시에서 경험적 으로 재발견하고 이론적으로 구상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이를 위해 나는 우선 70년대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과오를 되짚어보고, 이어서 서구 근대화과정에서 도 시의 근대성이 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NRF-2008-361-A00006)이며, 2016년 10월 21일 제8회 전남대학교 감성인문학연구 단 감성연구 국내학술대회에서 발표했던 원고임을 밝혀둔다. 이 자리를 빌려 논문심사를 위해 수고해주신 익명의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이 논문은 실험적 성격을 띤 글인 만큼 추후 심사자들의 의견을 참작해서 보다 완성된 형태로 발전시켜나갈 것을 약속드린다.

**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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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나는 마을의 감성적 근대성에 대한 이론적 구상을 소개할 것이다.

주제어 : 마을, 도시, 새마을 운동, 감성적 근대성, 심미적 인간

해악 자체로부터 그 해악을 치유할 수단을 이끌어내도록 노력하자.

새로운 결사를 통해 일반적 결사가 지니는 결함을 바로잡도록 하자.

-루소(Jean-Jacques Rousseau)

1. 문제의식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을’이 주목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을’이라 는 글자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단어가 되었고, 덩달아 언제부턴가 관공서의 새마을 깃발도 유난히 더 힘차게 펄럭인다. 2000년대 초반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뉴타운 사업의 출구전략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마을공동체 만들 기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민관의 협력 하에 각 지역마다 <마을지 원센터>가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1) 마을과 관련된 다양한 심포지엄이나 학술대회가 열리고, 올해 9월에는 “제9회 마을 만들기 전국대회”가 개최될 만큼 공론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심지어 서울시의 지역상생프로젝트와 연계 해서 모 대학 정치외교학과에서는 2015년 1학기 <마을학개론>이라는 과목 이 개설되었고, 다른 대학들에서도 잇달아 동참할 기세다. “마을인문학을 통 해 공동체 만들기”라는 시민강좌의 제목은 이제 식상할 만큼 유행이 되었다.

1) 현재 전국적으로 100개에 육박하는 다양한 형태의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한국마을지원센터연합> 홈페이지 http://www.koreamaeul.org/ 참조. 한국 사 회에서 “마을 만들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사용된 용어라고 한다. 이 용어는 일본의

“마찌츠꾸리(まちづくり)”의 번역어다. 나종석, 「마을 공동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 : ‘마 을인문학’의 구체화를 향해」, 뺷사회와 철학뺸 제26집, 2013, 2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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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석연치 않은 이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단 매우 반길만 한 일이다. 그렇다고 마을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승자독식(99대 1) 사회, 팔꿈치 사회, 위험사회, 탈감정사회, 모멸사회, 피로사회, 무연사회, 감시사 회” 등의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패치워크된 한국 사회를 묵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을과 사회, 또는 마을과 도시가 점차 대립적인 구도로 확 고하게 자리매김 되어갈수록 마을이 애틋한 향수나 아련한 추억이 서린 장 소(場所)로 지나치게 이상화 되고 낭만화 되어가는 경향을 우리는 경계해 야 한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대상의 이상화나 낭만화는 언제든지 그것의 상품화로 전도됨으로써 저 병든 사회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데 기 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과연 전 지구화된 신 자유주의의 격랑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된 사회적 공공성과 시민적 연대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운동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마을을 호 명하고 동원함으로써 국가를 ‘계산가능하고’, ‘통치가능한’ 공간으로 재편하 려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의 일환일 수도 있지 않을까?2)물론 행정의 분권 화와 지방자치의 극대화는 진보세력이 혁명적 아젠다를 보다 용이하게 추 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신자유 주의 때문에 빚어진 불평등을 한층 확대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하비 의 경고 또한 우리는 명심해야할 것이다.3) 이처럼 본의 아니게 전개될 수 있는 역설적 상황에 대한 경계로부터 이 글의 문제의식은 출발한다.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의 관계자들 사이에서 “작은 사례들만 있고 큰 그림은 없다”4)는 말이 종종 들린다. 이젠 큰 그림, 즉 이론이 필요한 때라

2) “통치성(governmentality)” 이론에 입각해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대한 비판 적 분석으로 박주형, 「도구화되는 공동체 : 서울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에 대한 비판 적 고찰」, 뺷공간과 사회뺸, 43호, 2013, 5~43면 참조.

3) 데이비드 하비, 뺷반란의 도시뺸,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2014, 152면 참조. 이하 뺷반란의 도시뺸로 축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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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어떤 사업이나 운동이든 방향성과 지속성 을 갖기 위해서는 이론이론이론이론이론이 필요하다. 이론이 없다면 참된 의미에서 경험경험경험경험경험도 불가능하다. 더욱이 “비국가적 행위자들(예를 들어 이른바 ‘시민사회’)을 동 원하고 발명하며 통치의 공간으로 소환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하나의 ‘앙상 블’의 형태로 재도입”5)하는 신자유주의의 교활한 통치술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자본의 가치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을 대신하 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대안을 제시하는 이론화 작업이 불가피하다.

이론화 작업은 혼자의 몫일 수 없다. 우리는 학제 간 협업을 통해 지금까 지 축적된 “작은 사례들”, 즉 마을공동체 만들기의 다양한 경험들을 서로 공유하고 그 경험들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는 더 나은 가능성을 현실화시키 고 제도화시키는 방안을 민주적으로 토론하면서, 동시에 그 경험들의 한계 배후를 추적함으로써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잠재되어 있는 ‘합리적’ 계기들 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이 계기들이야말로 규범과 현실 사이의 추상적 대 립을 해소하면서 현실적합성을 띤 이론, 또 다른 가능한, 더 나은 현실을 전망할 수 있는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 재료들일 것이다.

그 재료들은 다양하겠지만, 이 글의 연구관심은 그 중에도 근대성(modernity) 의 계기들에 있다.6)이 계기들은 지나간 마을의 경험공간과 기대지평 안에 이미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 도래하지 않은 ‘마을’이라는 경험공간과 기대지 평과 오버랩 되는 순간에 포착되는 그 계기들을 추적하면서 발굴해내는 것이 이 글의 과제다. 이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인 도시의 해악 자체로부터 그 해악을 치유할 수단으로서 마을의 잠재적인 것과 가능한 것을 탐색하려는

4) 조한혜정, 「후기근대적 마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것에 주목하는가? : 마을공동체 를 위한 철학과 방법론」, 서울특별시․서울시정개발연구원, 뺷마을공동체 학술세미나뺸 자료집, 2012 참조.

5) 박주형, 「도구화되는 공동체」, 12면.

6) “근대/근대성” 혹은 “현대/현대성”에 관한 어원적 의미와 철학적 의미에 관하여 김기 성, 「영원한 현재로서의 심미적 근대성: 짐멜의 심미적 근대 이론의 현재성과 한계 사이 에서」, 뺷범한철학뺸 제79집, 2015, 391~400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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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으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사회병리적 현상들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이면서 동시에 IMF 이래 신자유 주의가 야기한 경제적 양극화와 그로 인해 고립된 개인의 원자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도시에서 경험적으로 재발견하고 이론적으로 구상 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이를 위해 나는 우선 70년대 새마을운동의 성과 와 과오를 되짚어보고, 이어 서 서구 근대화과정에서 도시의 근대성이 역사 적으로 형성되고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볼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

발화자의 위치에서 뒤돌아볼 때, 양자는 서로 교차하면서 오버랩되는 것처 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바로 그 오버랩되는 지점에서 마을의 감성적 근대성에 관한 이론적 구상을 소개할 것이다.

2. 새마을운동은 농촌 근대화운동인가?

우리는 낙후된 마을을 새롭게 만드는 운동의 성공적인(?) 사례를 이미 경 험했다.7) “새마을운동”은 관 주도 하에 전국적으로 “마을 가꾸기 사업”을

7) 유네스코는 2013년 6월 18일 새마을운동에 관한 정부와 민간의 문서, 관련 자료, 사진 등 기록물 2만 2000여 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이 기록물들은 영문 등으로 번역되어 동남아시아와 나미, 아프리카 지역 개발도상국의 농촌 개발과 빈곤 퇴치 등을 위한 자료로 활용된다고 한다. 이것만 본다면, 새마을운동은 한국 농촌 근대화의 성공적 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기홍, 뺷마을의 재발견: 작은 정치, 경제, 복 지로 더 나은 세상 만들기뺸, 올림, 2014, 204면 참조. 이하 뺷마을의 재발견뺸으로 축약함.

하지만 1980년 10월 연구 설문조사에서 새마을운동이 성공적이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기껏해야 27.4%에 불과했다. 이용기, 「‘유신이념의 실천도장’, 1970년대 새마을운동」; 오 유석 편, 뺷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 근대화, 전통 그리고 주체뺸, 한울아카데미, 2014, 345면 참조. 이하 뺷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뺸으로 축약함. 그러나 박근혜의 정치적 부 상과 더불어 새마을운동은 2011년부터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새마을의 날>이 법정기 념일로 지정되었으며 <뉴 새마을운동>이라는 명칭으로 새마을운동의 세계화가 주창되 었다. 그 바로 한 해 전에 조선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가 발전에 큰 영향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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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하면서 시작된 범국민운동이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1970년 4월 22일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를 처음 제안한 이래 5단계 과정의 계획 하에 “소득증대 사업, 국민의식 개혁, 환경개선 사업”, “내 고장 환경 가꾸기, 도․농 직거래 촉진, 도덕성 회복”8)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박정희 사후 탈농과 이촌 현상이 가속화되고 마을 단위의 관계망이 와해됨 으로써 농촌 근대화 운동이라는 새마을운동 본연의 의미도 급속히 퇴색되었 다. 그렇게 새마을운동은 미완의 상태로 끝나버렸다.

만일 박정희가 피살되지 않았다면, 새마을운동은 보다 성공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을까? 그것의 성공이 오로지 박정희의 공로로 치부될 수 있을 까?9) 새마을운동 이후 한국의 농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자조(自助)’적인 주체가 되었을까? 아니면 거꾸로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타율적 객체로 전락해 버렸을까? 그리고 새마을운동은 과연 정(情)과 한(恨) 에 뿌리를 둔 마을 문화의 다양한 전통과 상부상조의 관계 원리에 입각한 시민운동으로 평가될 수 있을까? 결국 새마을운동은 농촌 근대화의 성공적인 모델로 인정될 수 있는가?

친 정책”으로 새마을운동을 꼽은 사람은 59.1%에 달했다. <‘새마을운동 40주년’ 전국 1500명 여론조사>, 2010년 4월 22일자 참조.

8) 뺷마을의 재발견뺸, 190면 이하 참조. 기반조성 1단계(1970-1973)에서는 환경개선뿐만 아니라 정신계발 및 생산소득 운동을 포함하는 방향설정이 이루어졌고 자조발전 2단계 (1974-1976)에서는 소득증대에 중점을 두고 추진되었으며, 자립완성 3단계(1977-1979) 에서는 생산소득 기반의 지속적 확충과 주택개량 등 주거환경개선사업 확대, 간이급수 시설, 전기․전화 가설 등으로 농촌 문화복지 생활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목표로 설정되 었다. 황병주, 「새마을운동 시기 국가와 농민의 정치경제학」, 뺷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 뺸, 49~50면 참조. 박정희 사후 4단계(1980-1989)는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변화되 는 침체․잠복기였고, 5단계(1990-2000)는 사회공익적 봉사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재 도약을 추진하는 시기였다.

9) 그것을 인정하는 입장과 오늘날 “한국의 재벌 또는 자본가 계급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살 수 있다”는 입장은 은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김수행․박승호, 뺷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 : 국제적․국내적 계급관계의 관점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3, 83~84면 참조. 이하 뺷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뺸으로 축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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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는 입장과 관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이분법적으로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새마을운동을 ‘신화’라고 우격다짐하는 사람들도 있고, 하나의 ‘역사’로 바로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양 자의 공통된 견해는 새마을운동이 마을 간의 경쟁을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 켜 단기간에 근대화를 달성한 전무후무한 사례라는 것이다.10)또한 새마을 운동은 낙후된 농촌의 경제적 빈곤을 극복하고 풍요로운 농촌으로 탈바꿈시 킨, 그와 더불어 “조국근대화”를 주도했던 국민운동이었다는 것이다.11)

새마을운동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상황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60년대 경제개발은 도시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근대화 전략이었다. 그로 인해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가 현저하게 벌어졌고, 농민들의 불만이 고조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출구가 1970년대 초 새마을운 동이었고, 그것은 농촌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던 근대화 전략이었다.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자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와 힘겨운 겨루기를 통해 가까스로 당선된 박정희는 집권 여당의 표밭이었던 농촌지 역의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다지고 지지율을 높이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 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한 가지 묘수가 바로 새마을운동이었던 것이다.

새마을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지방 공무원들은 공화당의 점조직으로 동

10)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은 마을을 등급화하고 차등 지원하는 방식으로 마을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효과적인 동원을 이끌어냄으로써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정치적 효 과를 얻으려는 전략을 취했다. 박정희 정권의 또 다른 전략은 농촌지도자들, 혹은 새마 을지도자들을 “우리 민주사회의 영웅”, “근대화의 역군”, “인간 상록수”, “10월 유신의 기수, 민족사의 주체”라고 치켜세우는 방식으로 상징적 권위를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영농자금 우선지원, 자녀 학자금지원과 같은 물질적 보상과 우수지도자 공무 원 특채와 같은 사회적 보상, 각종 훈장, 포상, 격려서한 등과 같은 심리적 보상을 제공 하면서 사기를 진작시켰다. 윤충로, 「새마을지도자 ‘만들기’와 ‘되기’ 사이에서 : 구술을 통해 본 1970년대 새마을운동」, 뺷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뺸, 222~223면.

11) 새마을운동이 국민경제의 유기적 일환으로 기여했던 계기는 박정희의 지시 하에 새마을 모범부락에 새마을공장을 건설하는 “농공병진정책”이었다. 새마을공장은 농가소득증대 보다는 국가수출향상에 더 큰 기여를 했다. 그것은 새마을운동의 본래 목표와 어긋나는 현상이었다. 황병주, 「새마을운동 시기 국가와 농민의 정치경제학」, 53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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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되었고, 새마을운동은 도시의 유신반대 여론을 상쇄시키고 공화당의 강 력한 세력기반을 마련함과 동시에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전기(轉機)가 되었 다. 새마을운동의 세례를 받은 농부들은 자급자족을 위해 농사짓는 과거의 농부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판매하기 위한 작물을 생산하여 이윤을 추구하 는 ‘영농인들’로 거듭났다. 그들은 아침저녁으로 마을 앰프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일손을 멈추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들은 근대국가의 주체가 되었고 그들의 ‘슬레 이트’ 지붕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슬레이트에 발암 물질인 석면이 함유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단지 우연일까?

분명 새마을운동은 표면상 낙후된 농촌의 근대화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것 의 실상은 성공적인 대중동원메커니즘이었다. 일제가 1932년부터 추진했던

“농촌진흥운동”을 거치면서 한국 농촌이 일본의 지배체제에 포섭되었던 것 처럼,12)새마을운동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농촌 마을은 점차 박정희 정권 의 지배체제에 포획되었다. 급기야 1972년 12월 27일 유신헌법이 발효되었고 유신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까지 새마을운동의 역할은 결코 적지 않았다.

새마을운동 정책노선의 기본원칙은 중앙 협의회, 시․도 협의회, 시․군 협의회, 읍․면 추진위원회, 이․동개발위원회에까지 이르는 종합적인 협 조체제를 이루면서 농민들의 자발성과 자율성, 자조정신과 협동정신을 내

12) 농촌진흥운동과 새마을운동은 많은 부분 유사성을 보여준다.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 황으로 인해 미가(米價) 폭락이라는 직격탄을 맞았고, 그 여파는 조선의 농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소작쟁의, 수리조합반대투쟁 등 농민들과 지식인들의 생존권 투쟁과 더불어 일제체제에 대항하는 정치투쟁이 급증했다. 농민층의 경제적 몰락을 막 고, 급진적 농민봉기를 봉쇄함으로써 안정적인 농촌지배체제를 구축하려는 일제의 위 기 대응 전략이 바로 농촌진흥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또한 농민층을 포섭하고 농민들의 자율적 자치공간인 마을공동체를 장악하려는 일제의 전략이기도 했다. 농촌진흥운동이 전개되면서 마을은 일제의 통치체제 속에 편입되었고,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은 약화되 어갔다. 농촌진흥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에 대해 김영미, 뺷그들의 새마을운동: 한 마을 과 한 농촌운동가를 통해 본 민중들의 새마을운동 이야기뺸, 푸른역사, 2009, 230면 이하 참조. 이하 뺷그들의 새마을운동뺸으로 축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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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웠다.13)하지만 그 정책을 실제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농민들에게 효율성과 가시적 성과만을 강요했다. 농민들의 자발성 배후에는 권위주의 적 정치질서와 관료체제가 작동하고 있었고, 그 자발성의 실체는 ‘농민들을 잘 살게 만들기 위한 농촌근대화운동’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새마을운동 의 주체는 마을의 주민이 아닌, 관(官)이었고 그 배후는 국가였다. 이데올 로기는 세뇌된 허위의식으로만 머물렀을 뿐, 새마을운동의 궁극적 목표였 던 농민의 소득증대로 현실화되지 않았다.14)

시간이 흐를수록 다급해진 박정희 정권은 새마을운동의 기조를 “경제적인 측면보다도 주민들의 정신개발이라는 측면”으로 변경했다. “경제건설과 정 신개발은 따로 떨어진 별개의 개념이 아니”며, “경제건설과 병행해서 정신개 발을 촉진해야 하고, 또 정신개발이 되어야만 경제건설도 촉진될 수 있는 것”이라는 기만적 연설도 서슴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은 심지어 새마을운동 을 역사상 최초로 농촌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하나의 의식혁명”이며 “조상 으로부터 연면히 물려받은 민족의 얼”이자 “국민정신의 기조”이고, 심지어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 수 있는 추진력”15)이라고까지 선전했다.

하지만 그 당시 사회적 상황은 그러한 선전이 연상시키는 이미지와는 너 무나 딴판이었다. 농촌 청년들은 보다 빠른 속도로 도시로 이동했다. 새마 을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실질 소득을 중공업 중심의 경제 개발이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청년들이 사라진 농촌,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생력을 상실한 농촌, 자본주의체제에서 경쟁력

13) 박정희 정권의 정책노선과 서울시의 뺷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뺸의 정책노선 사이에 상 당 부분 유사성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눈여겨볼만하다. 이에 관해 박주형, 「도구화되는

‘공동체’」, 18면 이하 참조.

14) 박정희 정권이 주도했던 국가경제개발계획 일환의 또 하나의 주요한 축은 1973년 1월 에 선언한 중화학공업화였다. 중화학공업화 정책은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지만 과잉중 복투자로 인해 노동자의 임금수준, 노동시간, 산업재해는 1960년대보다 더욱 악화되었 다. 뺷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뺸, 71면 이하 참조.

15) 황병주, 「새마을운동 시기 국가와 농민의 정치경제학」, 57~58면과 6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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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갖추는 데 실패한 농촌이 만들어진 것도 새마을운동이 고조되던 1970년 대였다.16)결국 새마을운동은 농촌, 농민, 농업이 희생한 대가로 공업화와 산업화를 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경제적 측면을 제쳐두고서라도, 다른 시각에서 새마을운동을 바라봤을 때, 그것은 한국인들을 국가권력에 순응하는 기성품화된 청중으로 길들이 는 역사적 유산을 남겼다는 사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새마을운동의 의 식혁명은 (지금도 여전히 다그치듯) “하면 된다”는 정신혁명이었다. “하면 된다”는 정신은 살면서 때론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사회구조적 문제를 아무런 반성 없이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로 작동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정경유착, 부동산투기, 수도권 인구 집중, 영호남 지역불균형의 시작을 알리는, 달리 말해 한국 근대화의 일면을 특징 짓는 “환원근대”17)의 출발을 알리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이었다.

새마을운동의 궁극적 목표는 구조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성공한 측면들도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수백 년 동안 전승되어 온 두레, 품 앗이, 계라는 마을의 일상적 원리는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 의 기본정신으로 현실화되었다. 그 오래된 전통의 원리, 즉 공동체성, 호혜 성, 상보성은 오늘날 강조되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미래를 담지하고 있었던 것이다.18)이와 함께 혈연중심 공동체에서 지역중심 공동체에 대한 근대적

16)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농가의 소득이 조금씩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도시근로자 소득에 크게 밑돌았고 1975년을 고비로 다시 급감하기 시작했다. 소작농가가 크게 증가 하면서 농가부채는 1971-1980년 사이에 27.4배가 급증했다. 1979년 기준으로 농가인구 는 3분의 1이 감소했고, 무엇보다도 청년들의 이촌향도 현상은 갈수록 심화됐다. 뺷박정 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뺸, 61면 각주 8번 참조.

17) “환원근대”에 관하여 김덕영, 뺷환원근대: 한국 근대화와 근대성의 사회학적 보편사를 위하여뺸, 길 2014 참조.

18) 전통 마을에 배태된 3가지 사회적 자본으로서 두레, 향약, 계에 관하여 뺷마을의 재발견뺸, 178~189면. 이와 관련하여 현대판 품앗이로서 “시간화폐(Time-money)”는 주목할 만하 다.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2&_fr=mb2 참 조. 물론 새마을운동의 성공여부는 전통이나 주체 못지않게 각 마을 특유의 역사적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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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따라서 공동체 의식이 실체적 단계에서 기능적 단계로 이행했다는 점에서 새마을운동의 경험은 성공적이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마을운동은 “최고 정책결정자, 정부 조직의 새마을운동 관련 공무원 집단 및 농촌 마을에서 새마을운동을 지도했던 새 마을지도자 집단 등 세 주체들 간의 상승작용”이라는 구도 속에서만 제대 로 평가될 수 있다. 이때 낙후된 마을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앞장섰 던 농촌운동가들이 새마을운동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결 코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19)사실상 이들이 새마을운동의 도화선이었고, 정 부의 적극적 지원이 그 도화선에 불을 붙여 새마을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 었다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여하튼 박정희 정권 하에서 새마을의 미래는 도시를 향하고 있었다.

3. 근대성이 배태되는 공간으로서 도시의 변증법

중세 신학자 아퀴나스는 “인간은 […] 그 본성상 도시적”20)이라고 주장했 다. 그가 가톨릭 신학자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의 주장은 의외일 수도 있다. 하지만 13세기 유럽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과 지리적 여건이 크게 좌우했다. 이에 관하여 이현정, 「1970넌대 새마을운동에서 마을공 동체의 역동성 비교 연구」, 뺷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뺸, 149~200면 참조.

19) 이에 관한 사례들은 뺷그들의 새마을운동뺸, 367~373면 참조.

20) Ernst Troeltsch, Die Soziallehren der christlichen Kirchen und Gruppen, Tübingen, Gesammelte Schriften, Erster Band, 1923, S. 344 참조.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들이 마을 과 도시를 구분하는 기준은 “공동체 내에 사회경제적 분화”의 유무이다. 주로 땅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정주하는 장소가 마을이라면, 이질적인 인구구성, 예를 들어 “전업 장 인, 상인, 사제, 공무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 도시라는 것이다. 이질 적인 인구구성뿐만 아니라 인구규모와 인구밀도가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특정 공동체의 독특한 생활양식, 혹은 공동체적 문화양식이 형성될 때에야 비로소 도시라고 명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존 리더, 뺷도시, 인류 최후의 고향뺸, 김명남 옮김, 지호, 2006,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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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을 통찰했던 선구자로 평가될 수 있다. 그가 학문적으로 활발하게 활동 하던 당시는 상업 및 무역의 발달과 더불어 중세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에 따라 농촌장원의 대토지 소유자에 대립하는 새로운 법적 계 급, 즉 부르주아 계급이 - 아직 혁명적 성격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 사적 영역에서의 자유를 강력하게 요구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퀴나스가 주목했 던 “자유로운 사회”21)로서 도시의 번영과 그 공간 안에서 화폐경제의 확대는 유럽 봉건적 생산양식의 독특한 주권의 분권화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었다.22)

하지만 유럽 중세 봉건제의 시작은 애초부터 그 체제 자체를 붕괴시켜버 릴 맹아를 품고 있었다. 도시와 농촌 간의 갈등, 산업자본가와 봉건지주 간 의 계급적 적대관계가 바로 그 맹아였다. 르페브르가 지적했던 것처럼, 상 업 및 무역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한 도시는 “봉건제를 극복하는 동시에 그 것을 와해시켰다. 도시는 [봉건제라는 전체체계에] 종속적인 동시에 응집력 있는 힘, 전체체계를 침식함과 동시에 그 체계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또 그 것을 파괴하는 부분적 체계인 것이다.”23)즉 도시는 그 태생부터 종속과 파 괴라는 이중적 얼굴을 지닌 공간이었다.

중세 봉건주의 사회에서 도시와 농촌 간의 본질적 모순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극도로 첨예화되었다. “제3신분 이 주도권을 잡은 이래 사회적․문화적 운동의 역사는 전적으로 새로운 속도 를 얻게 되었다.”24)농촌으로부터 탈자연화된 도시는 미신, 미몽, 권위로부터

21) 앞의 책, 288면 각주 125. 이 당시 한자동맹이라는 불리는 무역도시들의 진입문 위에는

“도시의 공기가 자유롭게 한다(Stadtluft macht frei)”라는 모토가 걸려 있었다.

22)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아퀴나스의 자연법 이론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에 관하여 박성수, 「사회계약론과 자본주의I : 홉스를 중심으로」, 뺷철학연구뺸 12권, 1987, 1~41면 참조. 또한 사유재산제에 대한 아퀴나스의 자연법적 정당화에 관하여 김준수, 「토마스 아퀴나스의 소유론 : 사적 소유의 신학 도덕적 정당화」, 뺷대동철학뺸 제44집, 2008, 169~

187면 참조.

23) 피터 손더스, 뺷도시와 사회이론뺸, 김찬호․이경춘․이소영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4, 25면에서 재인용. 이하 뺷도시와 사회이론뺸으로 축약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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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된 근대성을 경험할 수 있는 실험공간이었다. 하지만 근대성이 자본주의, 국민국가, 계급관계, 관료주의, (기술적) 합리주의, 진보주의라는 문명화의 양식으로 제도화되는 과정 속에서 도시는 재자연화된, 다시 말해 비인격화와 탈인격화, 도구화와 사물화, 상품물신화가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맑스와 엥겔스가 볼 때, 19세기 산업화된 자본주의 도시는 자본주의의 해 악이 극대화되는 온상이었고 지배와 억압 그리고 통제로 점철된 공간이었 다. 하지만 동시에 이 공간을 해체할 수 있는 힘이 극대화된 곳이 또한 도시 이기도 했다.25)왜냐하면 도시는 노동계급이 집중되는 가운데 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이 첨예화되고 가시화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스스로가 부르주 아지와는 적대적인 계급이라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계급투쟁 을 도모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맑스와 엥겔스가 예견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은 산업화된 문화가 주조한 도시의 총체성 안에서 점차 사물화 되거나 실종될 위험에 처했다. 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개인의 감성 영역 안에서 사회의 심리 적 대행자 역할을 수행하는 초자아로서 문화산업의 영향력이 아직 분명하 게 가시화되지는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문화산업의 총체성 안에서 개 인의 내적 구조가 왜곡되거나 변형되어가는 경향에 대해,26)아니면 도시라

24) 게오르그 짐멜, 뺷짐멜의 모더니티 읽기뺸, 김덕영․윤미애 옮김, 새물결, 2005, 64면.

25)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업과 공업은 대도시에서 최고도로 발달하기 때문에 노동계급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 또한 이곳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대도시에서는 부의 집중이 극한에 달하게 된다. [……] 그곳에는 단지 부유한 계급과 빈곤한 계급만이 존재하게 된다. 왜냐하면 날이 갈수록 중간계급이 사라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 에 “부르주아 계급이 수많은 인구를 무지한 농촌생활로부터 구제하는” 대도시를 창조함 으로써 계급투쟁을 돕는다고 그는 주장한다. 엥겔스는- 맑스 역시 마찬가지로- “도시와 농촌의 분리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의한 분업의 폐지를 통해서만 극복된다”고 역설한다.

왜냐하면 도시빈곤은 사회 전체의 변화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뺷도시와 사회이론뺸, 28면, 29면, 23면에서 재인용.

26) 문화산업에 관한 아도르노의 분석은 김기성, 「자포자기를 만드는 사회, 무엇이 문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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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외적 공간과 신체라는 내적 공간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에 대해 천착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27)그들의 인식관심은 오로지 혁명적 잠재력 이 배양되는 도시라는 공간의 부수적 조건에만 지향되어 있었다.

짐멜은 도시의 사회적 경계가 “사회학적 결과를 초래하는 공간적 사실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형성되는 사회학적 사실”28)에 근거한다고 주장하면서 관점변경을 요구했다. 말하자면 대도시의 외연적 범위는 개인을 내적으로 결합시키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응집력과 일치한다는 것, 즉 도시는 그 의미 와 기능의 크기가 지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작용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짐멜의 주장을 다시 유물변증법적 관점에서 변경하자면, 도시 안에 서 자본은 가변자본으로서 프롤레타리아의 신체를 통해서 순환함으로써 프 롤레타리아는 자본순환의 단순한 부속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순환의 범위가 확대되고 가속화될수록 신체와 도시는 점차 하나로 밀착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경향을 맑스와 엥겔스뿐만 아니라 짐 멜 또한 놓쳤던 것이다. “비-장소들(non-places)”29)이 도시의 공간을 잠식

가? : 아도르노의 개인파산테제에 대한 분석」, 뺷범한철학뺸 제67집, 2012, 223~227면 참조.

27)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의 철학은 - 푸코의 철학을 포함해서 - 하비가 정당하게 지적하 는 것처럼, “신체가 어떻게 생산되는가, 신체가 어떻게 의미의 기의자이며 준거자가 되는 가, 그리고 내부화된 신체적 실천이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현재적 조건하에서 어떻게 자아 생산과정을 변형시키는가에 대한 질문에 접근하기 위한 (변증법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적인) 적합한 인식론을 제공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 뺷희망의 공간: 세계화, 신체, 유토피아뺸, 최병두․이상율․박규택․이보영 옮김, 한울, 2009, 167면. 이 책에서 하비는 자본축적을 위한 “공간적 조정(spatial fix)”으로서 세계의 도시화 및 세계의 재영토화라 고 간주될 수 있는, 하지만 불가피하게 “지리적 불균등발전”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세계화 라는 거시적 공간과, 개인의 신체라는 미시적 공간이 상호 변증법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강조한다. 앞의 책, 143~167면 참조. 또한 고대 아테네에서 현대 뉴욕에 이르기까지 육체의 경험으로 풀어본 도시의 역사에 관한 다음 연구도 흥미롭다. 리차드 세넷, 뺷살과 돌 : 서구문명에서 육체와 도시뺸, 임동근․박대영․노권형 옮김, 문화과학사, 1999 참조.

28) 김기성, 「영원한 현재로서의 심미적 근대성」, 405면 각주 31에서 재인용.

29) 바우만은 “비-장소들”을 “정체성, 관계, 역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 없는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공항이나 도로, 익명의 호텔 방, 대중교통이 그것들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뺷액체근대뺸, 이일수 옮김, 강, 2010, 167면. 하버마스는 대중매체가 사회적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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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갈수록 개인의 신체는 자연스럽게 자본의 가치법칙에 길들여진다.

근대성은 “역사적 시간”30)을 가리키는 질적 범주로부터 출발했다. 하지만 그것은 도시라는 공간 범주를 통해 보다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었다. 20세기 에 들어서면서 근대성과 도시는 서로를 반사하는 거울이라는 사실이 명백해 졌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성찰적 근대화(reflexive modernization)”31) 는 도시의 근대성이 품고 있는 자기성찰성을 복원하려는 기획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근대 對 탈근대의 이분법을 넘어 근대성의 자기해체적 재구성을 통해 도시를 새롭게 근대화하기 위한 실천적 기획이 다름 아닌 성찰적 근대화 의 목표라고 파악될 수 있다.

농촌의 근대화라는 패러다임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2015년 기준 으로 도시화율이 82.5%에 달한 한국 사회의 경우, 사정은 더욱 그러하다.32) 고도의 도시화율을 마주할 때, 한 미국 지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의 물음은 결 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극적인 도시화는 인간의 행복에 기여했 는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꿔놓았는가? 혹시 아노미와 소외, 분노와 좌절이 만연한 세상 속으로 몰아넣기만 한 것은 아닐까? 우리는 도시라는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일개 단자가 된 것은 아닐까?”33)

작용의 구조변동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장소에 대한 무감각”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장소에 대한 무감각 현상은 신체의 사물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위르겐 하 버마스, 뺷공론장의 구조변동뺸, 한승완 옮김, 나남출판, 2001, 54~55면. 이하 뺷공론장의 구조변동뺸으로 축약함.

30) “역사적 시간”이란 역사적 사건과 흐름에 내재하는 시간을 가리키는 질적 범주다. 그것 은 “현재[하는] 과거”로서의 경험과 “현재화된 미래”로서의 기대 사이의 ‘차이’를 밝히 려는 노력 속에서만 해명될 수 있는 ‘사태’, 즉 이론적 해석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 김기 성, 「영원한 현재로서의 심미적 근대성」, 392~395면 참조.

31) 앤소니 기든스․울리히 벡․스콧 래쉬, 뺷성찰적 근대화뺸, 임현진․정일준 옮김, 한울, 2010 참조.

32) 다음 <통계청> 홈페이지 참조. http://kostat.go.kr/portal/korea/index.action 잉글랜드 와 웨일스의 경우 이미 19세기 후반 총 인구의 77%가 도시에 거주했다고 한다. 뺷도시와 사회이론뺸, 16면 참조.

33) 뺷반란의 도시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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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나는 재자연화된 도시를 해체할 수 있는 힘이 잠재된 장소 가 바로 그 도시 안의 작은 공동체, 즉 ‘마을’이라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우 리는 자본주의 위기의 진원지인 고도로 산업화된 도시의 “해악 자체로부터 그 해악을 치유할 수단”으로서 “마을의 귀환”34)을 목도할 수 있기 때문이 다. 이때 ‘마을’은 전통적 의미에서 농촌 마을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근대화 이전의 마을과 동일한 것일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마을’은 근대 對 탈근대라는 이분법을 넘어선 감성적 감성적 감성적 감성적 근대성감성적 근대성을 파편적인 방식으로 예시근대성근대성근대성 한다. 오래된 도시의 미래는 다시 ‘마을’로,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그 도시 안의 마을로 향하고 있다.

4. 대안 근대성의 장소 : 마을의 감성적 근대성을 묻다

우리가 한국 사회의 도시화율을 고려하면서 ‘마을’이라는 단어를 개념화 하여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 단어가 촉발하는 표상의 패러다임이 변경되어 야 한다. 즉 우리는 도시 안의 마을, 혹은 ‘도시적 마을’을 어떻게 새롭게 표상할 수 있고 무엇을 위해 구상하는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그 어원부터 따져 보자. 마을이라는 단어는 “​​”과 “​​”의 합성어로서

“땅, 뭍, 묻다, 마당, 뫼, 매, 모래”의 뜻을 지닌 “​​”에서 “ㄹ”이 탈락하고,

“흙”의 뜻을 지닌 “​​”에서 “ㅅ”이 유성음화하여 생겨났다. 이를 근거해서 추론하자면, 마을은 밭을 경작하고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농경 집단 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마을이라는 단어는, 서양에서 “village”와 마찬가지로, 농촌의 자연환경을 지시하고 있다.35)하지

34) 도시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삶을 꿈꾸는 마을 만들기에 관하여 오마이뉴스 특 별취재팀, 뺷마을의 귀환: 대안적 삶을 꿈꾸는 도시공동체 현장에 가다뺸, 오마이북, 2013 참조.

35) 물론 “village”는 서양의 중세 때 “신분이 낮은 힘없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가리 키는 단어로서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의 의미 또한 함축하고 있었다. 뺷마을의 재발견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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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이 모음교체 현상으로 “실”이 되어 통용되는 “마실”이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뜻으로 정의된다고 볼 때, 마을이라는 단어는 친교 혹은 사회적 상호작용 일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얼마든지 확장될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경험에서 발굴한 근대성 의 계기(사회적 자본)를 염두에 두면서 짐멜이 제안한 ‘사회’의 새로운 패러 다임을 원용할 수 있다. 즉 도시 마을은 더 이상 자연적 혹은 불변적 “실체 도 아니고, 독자적으로 구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볼 때 “기능 적인 어떤 것이고, 개인들이 행하면서 겪는 어떤 것”36)으로 표상될 수 있다.

하지만 도시 마을은 단순히 이념적 구성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장소’의 실재에 근거한 장소성을 지닌 쉬츠의 “사회적 실재(social reality)”

나 뒤르켐의 “사회적 사실(fait social)”로 설정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간사회(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장소는 더 이상 의미론적 실체에 한정 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그 자체로 볼 때 “무작용의 형식”으로서 허 (虛)하고 무(無)일 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텅 비고 아무 것도 아닌” 장소를 “우리에게 무엇인가로 만든다.” 사람들이 그 장소 안에 서 살면서 상호작용을 통해 그 장소를 실(實)하고 유(有)한 것으로 채우고, 거꾸로 “세계와의 관계를 구조화”37)하는 공간이 또한 장소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장소는 “하나의 사회과정”38)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91~92면.

36) Georg Simmel, Grundfragen der Sozioloige, in : Georg Simmel

Gesamtausgabe,

Hrsg. von Gregor Fitzi und Otthein Rammstedt, Bd. 16, Frankfurt/M. 1999, S. 70.

37) 김덕영, 뺷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뺸, 길, 2008, 137~138면 참조.

38) 하비는 장소의 물신주의의 빠지지 않기 위해 그것을 하나의 사회적 과정을 바라보는 관점변경을 요구하면서 그것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장소를 하나의 사회과정 으로 볼 경우 ‘왜 그리고 어떤 수단으로 사회적 존재들은 사회적 권력을 동원해 장소들 (국지성, 지역, 국가, 지역공동체, 기타 등등)을 발명해 내는가’ 그리고 ‘어떻게 무슨 목적 으로 그런 권력들이 뒤이어 상호연결된 장소들의 고도로 차별화된 시스템을 거쳐서 전 개되고 활용되는지’와 같은 문제제기들이 더욱 명확해질 수 있다.” 데이비드 하비, 「공 간에서 장소로, 다시 반대로 :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 대한 성찰」, 박영민 옮김, 뺷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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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도시 마을은 단순히 주민들의 집합도 아니고, 특정한 장소에 한 정된 공간도 아니다.39)사회의 개인은 도시 마을에 참여하지만, 어떤 개인 도 그 마을을 온전히 사유화할 수는 없다. 도시 마을은 개인들 사이의 심리 적이고 의식적인 상호작용으로부터 생성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부터 독립된 제3자로서 실재한다. 그런 까닭에 도시 마을은 내적 동기, 욕 구와 감정, 사고능력을 지닌 개인들 사이의 다양한 상호작용들의 합, 즉 서 로 간의 마주침으로부터 생성되고 변경되며 사라지는, “자본과 국가 너머 의 세상”으로서 지금 여기에 잠재된 어떤 어떤 어떤 어떤 공통적인 어떤 공통적인 것으로서의 “공통체공통적인 공통적인 공통적인 것것것것 (commonwealth)”40)라고 명명될 수 있다.

달리 말해 도시 마을은 자국 자국 자국 자국 내에 자국 내에 있는 타국의 영토라고 설정될 수 있을 내에 내에 내에 있는 있는 있는 있는 타국의 타국의 타국의 타국의 영토영토영토영토 것이다. 이 영토는 하버마스의 이론 안에서 보자면 오로지 교환원리 및 도구 적 합리성에 입각해 작동하는 “체계명령이 생활세계영역에 식민주의적 논리 로 침범하는 것을 저지하는” 장소로 표상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하버마스는

“일상적 의사소통의 실천 자체에 담겨 있는 이성의 잠재력을 발굴”41)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생활세계 전 영역에 걸쳐 잠재되어 있는 의사소통적 합리 성을 경험적으로 발굴해서 상호이해지향적상호이해지향적상호이해지향적상호이해지향적상호이해지향적 행위를 목표로 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탈감정주의(postemotionalism)”와 “탈감정사회 (postemotional society)”42)현상을 직시한다면, 의사소통적 합리성만으로는

과 사회뺸 제5호, 1995, 58~59면.

39) 이하 부분은 김기성, 「하나의 모델로서 심미적 공동체 : 짐멜로부터 블랑쇼를 거쳐 아 도르노까지」, 뺷범한철학뺸 제74집, 2014, 325~328면의 내용이 우리의 논의에 맞게 변경 되었다.

40)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뺷공통체: 자본과 국가 너머의 세상뺸,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책, 2014 참조.

41) 뺷공론장의 구조변동뺸, 39면과 41면.

42) “탈감정주의”와 “탈감정사회”는 감정이 결여된 시대나 감정 없는 사회를 가리키는 용어 가 아니다. 메스트로비치에 따르면, “탈감정주의는 감정적 무질서를 피하기 위해, 감정교 환이 매듭지어지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감정적 삶이라는 ‘야생’ 지대를 문명화하기 위해,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사회세계가 잘 정비된 기계처럼 순조롭게 움직이도록 감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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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명령, 특히 문화산업의 명령에 맞서기에 역부족이다. 감성이론의 관점에 서 볼 때, 도시 마을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포월(包越)한 일상적 삶의 실천 자체에 담겨 있는 감성의 잠재력이 배태된, 상호공감지향적상호공감지향적상호공감지향적상호공감지향적상호공감지향적 행위를 도모하는 장소로 표상될 수 있다.

도시 마을은 푸코의 이론 안에서 보자면 일종의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 즉 “일단 출항하면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한 자율권을 행사하며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곳에 존재하며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선박”43)과 유사한 공간으로 구상될 수 있다. 헤테로토피아로서의 도시 마을은 감각과 신체가 자유로운 장소,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포월해서 심미적 이성과 공감적 감성의 합리성이 만들어가는 장소로 구상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도시 마을은 정치경 제적 생산의 기능으로부터 벗어나 충만하고 자유로운 내면성으로서 사적 자율성을 배양하는 친밀성의 영역이면서 더 나아가 “반성적 협동으로서의 민주주의”44)를 연습할 수 있는 공공성의 영역으로 그려볼 수 있다. 이처럼

질서지우기 위해 설계된 하나의 체계이다.” 그리고 “탈감정사회는 기계 숭배의 확장이며, 따라서 감정은 맥도날드화되고, 무정해지고, 판에 박힌 것이 되거나,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왔다. 기계화는 그것의 제국주의적 영역을 기술과 산업으로부터 확장하여 자연 의 마지막 요새, 즉 감정을 식민화해왔다.” 그 결과 그는 감정과 행위가 분리된, 따라서 머리로는

머리로는 머리로는

머리로는 알고 알고 알고 알고 있지만 있지만 있지만 있지만 몸으로는 몸으로는 몸으로는 몸으로는 행할 행할 행할 행할 수 수 없는없는없는없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으로는 행할 수 없는 ‘탈감정적 인간’이 탄생했다고 비판한다.

스테판, G. 메스트로비치, 뺷탈감정사회뺸, 박형신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4 참조.

43) 푸코가 주장하는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적 공간과 같지만, 여타의 일상적 공간과는 질적 으로 다른 자신만의 (이질화) 기능을 갖는다. 또한 그것은 정상적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 서 유토피아와 같다. 하지만 현실적 세계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와 구분되는 공간이다. 이에 관하여 허경,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 초기 공간 개념에 대한 비판 적 검토」, 뺷도시인문학연구뺸, 3권, 2011, 233~267면. 특히 248~250면 참조.

44) 호네트는 과잉윤리화된 공화주의와 공허한 절차주의를 넘어 제3의 길을 제시하는 듀이 의 민주주의 이론을 “반성적 협동으로서의 민주주의”라는 테제로 특징짓는다. 그는 이 테제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시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민주 적 인륜성이 전제되어야만 하는데, 그 민주적 인륜성은 그러나 시민들의 정치적 덕목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에 대한 의식을 통해 형성된다.” 악셀 호네트, 뺷정의의 타자: 실천 철학 논문집뺸, 문성훈․이현재․장은주․하주영 옮김, 나남, 2009, 339~374면 참조. 인용한 부분은 3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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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성과 공공성 사이의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통해서야 비로소 도시 마을의 지속성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45)

마지막으로 나는 앞서 언급한 ‘어떤 공통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그것은 ‘근대적인 것’, 특히 감성이론의 관점 에서 볼 때 근대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마을 에 관한 담론에서 언급되는 근대성의 계기들, 즉 “상호부조와 연대적 삶”,

“풀뿌리 민주주의”로서 “다원화된/분권화된 자치”, “사회와 정치의 연계”,

“대안적 경제 질서”46)가 일단 그 ‘어떤 공통적인 것’으로 수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하비의 경고를 무마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물음이 고려되어야한다. 도시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인간의 정치경제적 삶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삶을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인류의 보편성과 맞닿아 있는가? 그 운동이 세계성과 지역 성을 동시에 담보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보편성은 무엇에 기초해야 하고, 세계성과 지역성을 매개하는 실재근거는 무엇일 수 있는가?

나는 그 보편성과 실재근거를 다른 자리에서 분석한 “신체매개적 비판원 리”47)로서의 인간성인간성인간성인간성인간성에서 찾고자한다. 하지만 아도르노가 고백했던 것처럼, 근대화의 정점에서 발발한 인류의 대참사였던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절대 적 선과 절대적 규범”이 무엇인지, 심지어 “인간 혹은 인간적인 것 그리고 인간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48)오로지 “반성적 협동으

45) 친밀성과 공공성의 변증법에 관하여 정성훈, 「도시공동체의 친밀성과 공공성」, 뺷철학 사상뺸 49권, 2013, 311~340면 참조.

46) 나종석, 「마을 공동체에 대한 철학적 성찰」, 1~32면 참조.

47) 이에 관한 논의는 김기성, 「비판으로서 형이상학 : 아도르노의 신체매개적 비판원리에 관하여」, 뺷시대와 철학뺸 제23권, 2012, 7~32면 참조.

48) Th. W. Adorno, Probleme der Moralphilosophie, Hrsg. von Thomas Schröder, Nachgelassene Schriften, Abteilung IV : Vorlesungen, Bd. 10, Frankfurt/M. 2001, S.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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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의 민주주의”가 가능한 장소를 만들어 가면서 ‘비인간적인 것’을 구체적 으로 고발하는 가운데 인간성이 무엇인지가 겨우 자각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최소한의 최소한의 도덕으로서 인간성의 이념조차 모르는 바는 아니최소한의 최소한의 최소한의 도덕도덕도덕도덕 다. 예를 들어 블랑쇼가 말하는 인간성, 즉 어떠한 인간의 본질도, 어떠한 인간의 이념도 가정하지 않는 탈존, “의식 너머 또는 의식 이하에서 직접 주어진 감각적 현시로써, 너와 ‘나’ 사이의 관계의 열림을 알리며 너와의 관계 와 함께-있음이 ‘나’의 실존적 조건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기표”로서 인간성이 있다. 그것은 “날 것으로서의 인간의 몸을 통한 생명의 공동성에 기초하고 있는 원초적인 인간성”49)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러한 신체매개적 인간성 이야말로 저 보편성과 실재근거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음에 틀림없다.

17세기 서양 부르주아의 근대가 국가와 개인을 매개했던 ‘사회’를 상상하 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면,50) 21세기 감성적 근대는 보다 작은 사회들의 연대로서 도시 마을들 간의 네트워크가 그 매개를 대체할 것이다. 큰 사회 의 주체가 자기의식을 지닌, 상호이해지향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개인’이 었다면, 작은 사회로서 도시 마을의 주체는 “로봇과 같은 기계적 존재도 아 니고 한갓 동물과 같은 생물학적 존재도 아닌, 또한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존재도 아닌,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상호공감지향적으로 행위할 수 있 는 “감성적 인간”으로부터 심미적으로 경험할 수 있고 상호이해지향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심미적 인간(homo aestheticus)”51)을 아우를 것이다.

49) 김기성, 「하나의 모델로서 심미적 공동체」, 338면.

50) 찰스 테일러, 뺷근대의 사회적 상상: 경제․공론장․인민 주권뺸, 이상길 옮김, 이음, 2010 참조.

51) 김기성, 「영원한 현재로서의 심미적 근대성」, 4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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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Old Future, Emotional Modernity of a Village

52)Kim, Ki-sung*

The task of this article is to trace and discover the occasions of modernity that exists already in the space of experience and the horizon of expectation of the past village; which are captured in the overlapping area with the space of experience and the horizon of expectation called ‘village’, that has not arrived yet. It is also an attempt to explore the potential and the possible of the village as a means of healing that evils from the evils of the highly industrialized city, the epicenter of the crisis of capitalism. In other words,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empirically rediscover and theoretically conceive an alternative in the city, which cure various social pathological phenomena stemmed from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of korean society; an alternative, which overcome economic polarization and the resulting atomization of isolated individuals caused by neoliberalism since the IMF. To this end, I will first review the achievements and the mistakes of the Saemaul Movement in the 1970s, and then examine the modernity of the city in the process of western modernization and its historical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Finally, I will introduce a theoretical conception of the emotional modernity of a village.

Key Words : Village, City, Saemaul Movement, Emotional Modernity, Aesthetic Human

* Chonnam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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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름 : 김기성 소속 : 전남대학교

전자우편 : philo.seminar@gmail.com

논문투고일 : 2016년 12월 25일 심사완료일 : 2017년 2월 10일 게재확정일 : 2017년 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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