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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약사(略史) (2021.1.4.)

1. 고대 정착민 역사

ㅇ B.C.3,500년부터 기원前後까지, 킴메리,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민족이, A.D.1천년까지는 고트, 훈, 불가리아, 아바르, 하바르, 마자르, 페체네그 민족이 현 우크라이나 영토내에서 출현, 명멸

ㅇ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에는 기원전 수세기 동안 타우리, 그리스, 로마인들이, 기원후 중세까지는 아르메니아, 슬로박, 제노아, 투르크, 타타르 인들이 거주 (지금도 그 후손과 문화 잔존)

2. 슬라브 민족 형성

ㅇ 카르파티야(Carpathia) 산맥 북부지역이 본거지로 추정되는 슬라브 민족이 7세기초 사방으로 분산, 이동하면서 7세기경 드니프로(Dnipro)강 서안에 동슬라브 민족 정착

ㅇ AD9세기 동슬라브 민족의 최초 봉건국가인 키예프 루시(Kyiv Rus)가 키예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북부 발틱해에서 남부 흑해까지, 동부 볼가(Volga)강에서 서부 티사(Tisa)강에 이 르는 지역을 영토로 삼음

- 키예프는 1500년 전에 형성되었으며 10~12세기경 인구는 약 15만명

ㅇ 9세기 후반부터 12세기 초반까지 200여년간 키예프 루시는 봉건국가로서 발전을 거듭하였으 며, 특히 볼로디미르 대공(Volodymyr the Great) 치세(980~1015)에는 그리스도교 수용 (988년) 및 비잔틴 문화 도입 등 문화적으로도 크게 융성 (키예프 공국)

ㅇ 1132년 므스티슬라프(Mstyslav)왕 사후, 왕자들 간의 후계 다툼으로 키예프 루시는 여러 공국 으로 분할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섬

ㅇ 1223년부터 3차례에 걸친 몽고족의 침입을 받고 1240년 키예프가 몽고족에 의해 폐허로 변하면서 키예프 루시(키예프 공국)는 멸망

ㅇ 이후 2세기에 걸친 몽고족(바투 칸)의 지배 하에서 현 우크라이나 영토의 대부분은 13~14세 기 중 ‘Halytsian-Volynian 공국’(후에는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4세기 중반 이후에는 점 차 리투아니아, 폴란드, 터키, 몰도바에 의해 분할, 예속

ㅇ 1569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합병에 따라 드니프로 강 서안은 폴란드에 귀속

3. 우크라이나 민족 형성

ㅇ 동슬라브 민족이 확장‧분화되면서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몽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왕국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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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거쳐, 러시아인, 벨라루스인과 구별되는 우크라이나인의 독자적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

ㅇ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우크라이나인의 코작(Cossacks) 집단이 16세기 초부터 형성되었으며, 동 무장조직인 자포로지아 코작 시크(Zaporogian Cossacks Sich) 주도 하에 1648~1654년간 독립투쟁 전개

※ 우크라이나 민족과 코작 집단은 상호 깊은 연관은 있으나 동일 개념은 아님. 우크라이나 민족은 민족(ethnicity) 개념이며 코작 집단은 사회 계층적 성격의 개념임. 코작 집단은 제 정 러시아 시절 러시아 변방 지역 수비 임무를 수행하는 대가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자치 및 조세 면제 등의 혜택을 부여받은 사회 집단으로 대부분 범법자나 도망 농노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에는 자포로지아 코작, 러시아 지역에는 돈 코 작‧쿠반 코작 등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코작 집단이 존재했었음. 제정러시아 시절 오늘 날 우크라이나 지역 내에는 우크라이나인이 코작 집단(자포로지아 코작)의 주류를 형성하였 고 대폴란드 독립 투쟁도 이들 우크라이나인 코작 집단이 주도함.

ㅇ 1632년 동슬라브 최초의 대학교인 ‘Kyiv-Mohyla Collegium’이 설립

ㅇ 드니프로강 동쪽은(비폴란드 점령지역) 1654년 잠시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코작 지도 자 흐멜니츠키(Khmelnitsky)와 러시아 차르간의 페레야슬라브 협정 체결

ㅇ 1772년 폴란드의 해체에 따라 드니프로 강 서쪽 폴란드 점령지역의 대부분도 러시아에 편입되고, 갈리치야, 볼리니아, 이바노프랑콥프크 등 일부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로 귀속

ㅇ 1905년 이후 제정 러시아에서의 반 황제 혁명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도 노동자, 농민들의 대규모 봉기 빈발

4. 볼셰비키 혁명 이후

ㅇ 1917년 볼셰비키 혁명시 우크라이나 인민대표 회의가 결성되었으며 1917.12.25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이 선포 (수도 : 하리코프)

ㅇ 제1차 세계대전 말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패퇴에 따라 동 지배하에 있던 서부 우크라이 나지역(Galicia-Volhynia)은 1918.11 서부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동 지역 거주 폴란드민족 봉기 및 신생 폴란드 정부의 무력개입으로 실패, 1919.7 폴란드 영토로 귀속 - 이바노프랑콥스키 지역은 신생 헝가리의 영토로 귀속

ㅇ 동부 우크라이나 지역(Greater Ukraine)에서는 1917~1921년간 독립을 추구하는 세력과 볼 셰비키파 등 6개 정파 간의 내란이 발생하였으나, 독립 쟁취에는 실패

-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중심으로 러시아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공화국 이 1917년 선포되어 활동하였지만, 수개월 후 볼셰비키 세력에 패해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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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내란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반러시아, 민족의식이 크게 확산됨에 따라 1921년 모스크바 볼 셰비키 정부의 전략적 양보 하에 제한적 외교 주권(조약체결, 영사관할권 등)을 갖는 우크라 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선포

ㅇ 1922.12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창설 조약에 서명, 창립 회원국으로 됨 (제한적 외교주권 상실)

ㅇ 소련 연방 가입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민족의식은 꾸준히 지속되었으며 모스크바 중 앙정부는 이러한 민족의식 말살을 위해 강력한 억압정책 시행

- 스탈린의 1932~33년 집단농장 추진 과정에서의 인위적 기아 정책에 의해 우크라이나 농민 350만 명이 아사하고 전쟁, 기근 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이주하여 1939년 당시 4천1 백만의 인구가 1945년에는 2천7백만 명으로 대폭 감소

ㅇ 1934년 키예프는 소련방(蘇聯邦)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으며, 소련방 당시 모스크 바, 레닌그라드 다음의 제3의 도시로 성장

ㅇ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 대전을 계기로 소련은 폴란드에 귀속된 서부 우크 라이나와 벨라루스, 베사라비아, 북부 부코비나를 병합

- 1941년 당시 소련방내 우크라이나 영토는 56만㎢

ㅇ 1941~44년 우크라이나 전역이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됨

ㅇ 1945년 유엔 창설 회원국

- 소련 연방내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회원국으로 참여

ㅇ 1954년 소련 정부는 우크라이나 합병 300주년 기념 선물로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이양 - 1953년 스탈린 사후 우크라이나에 로케트, 전자, 화학, 조선 산업 등 중화학 시설 건설

5. 우크라이나 독립이후

ㅇ 1980년대 고르바초프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소련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약화됨에 따라 1991.8.24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는 독립 선언법 채택, 1991.12.1 국민투표에 의해 독립 확정

ㅇ 1991.12.5 레 오 니 드 크 라 프 축 (Leonid Kravchuk)이 초 대 대 통 령 취임, 1991.12.8 우크 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3개국 정상간 소비에트 연방 탈퇴 문서 서명

ㅇ 독립후 1994.3, 1998.3, 2002.3 각각 제 2, 3, 4대 총선이 있었으며, 1996.6.28 신헌법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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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1994.5 제2대 대통령 레오니드 쿠츠마(Leonid Kuchma) 당선, 1999.10 제3대 대통령에 재선

ㅇ 2004.11 제4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야권의 불복(부정선거 주장)으로 “오렌지 혁명” 발발 -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 및 재선거(3차투표) 실시

- 2005.1 빅토르 유센코(Viktor Yushchenko) 야당 후보가 제4대 대통령에 취임

ㅇ 2010.2 빅토르 야누코비치(Viktor Yanukovych) 대통령이 제5대 대통령에 취임

ㅇ 2013.11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EU와 제휴협정(AA) 체결 추진 포기 및 러시아와 관계강화 선언에 따라 대규모 반정부 시위 촉발

ㅇ 2014.2 헌법개정안(대통령 권한 약화) 통과 실패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더 격화되고 정부가 강경 대응함으로써 마이단 혁명(친서방 반정부 시민운동) 발발

- 정부/경찰은 반정부 시위대를 강경 진압, 100여명 이상의 민간인 사상자 발생 - 이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러시아로 도주

ㅇ 2014.3.16. 크림반도 러시아 합병 관련 주민투표 실시한 결과 90% 이상이 찬성하여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 완료(3.21)

ㅇ 2014.4 親러시아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2개州(도네츠크州, 루간스크州) 분리주의 무장세 력과 정부군간 교전 발발 및 지속

- 2014.5 동 반군점령지역(2개州의 40-45% 면적, 주민수 320만명)은 분리독립 주민투표 강행 및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 및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정부수립 선언 (우 크라이나 중앙정부 및 국제사회는 미승인)

ㅇ 2014.5 조기대선 실시, 페트로 포로셴코(Petro Poroshenko) 제6대 대통령 취임

ㅇ 2014.6 우크라이나,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4개국 지도자가 프랑스에서 열린 노르망디 상륙 작전 70주년 기념식에서 회동하여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방안을 협의 (동 4개국은 그 후

“Normandie Format 회담”이라 불리는 회담 개최해 옴)

ㅇ 2014.9 우크라이나, 러시아, 동부2개州((도네츠크州, 루간스크州))간 제1차 민스크휴전협정 체결, 2015.2.15. 제2차 민스크 휴전 협정 체결

ㅇ 2014-2017, 우크라이나-EU간 제휴협정(Association Agreement) 체결(2014.6.27.) 및 완전 발효(2017.9.1.), EU와의 포괄적 자유무역협정(DCFTA) 발효(2016.1.1.), EU와 단기 무비자 사증면제협정 발효(201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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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2018.11.26. 우크라이나, 對러 인접 10개州에서 계엄령 시행(2018.12.26.까지)

* 11.25 Kerch대교 인근해역에서 러시아 함정이 Azov海로 진입하려던 우크라이나 해군 선 박 3척(장병/선원/정보원 등 24명 포함)을 공격/나포한 사태 발생직후 시행

ㅇ 2019.5.20 V. Zelenskyy 대통령 취임

* 3.31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및 4.21 결선투표 실시

ㅇ 2019.7.21. 국회의원 총선 실시

ㅇ 2019.8.29. 국회 개원

* 국회의장(Dmytro Razumkov) 선출

* 총리(Oleksiy Honcharuk) 및 외교장관(Vadym Prystaiko) 등 임명, 신정부 출범

ㅇ 2020.3.4. 정부내각 전면 개편

* 총리(Denys Shmygal), 외교장관(Dmytro Kuleba) 등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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