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건축 강의자료
제9주 :
포스트모던의 사례-2
9. Ricardo Bofill
Ricardo Bofill은 매우 논란적인 일련의 공동주거를 계획하 면서 잊혀진 도시공간의 회복에 진력해 왔다. 생 깡뗑 앙 이브린 느에 세운 공동주거에서부터 파리의 공동주거에 이르기까지, 그러 한 노력은 프리캐스트 콘크리트와 미러 글래스로 지어졌음에도 불 구하고, 역설적으로 고전적 언어와 매우 과장된 비례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하여 Ricardo Bofill에 대해 사람들은 과대망상증, 과장 됨, 그리고 복고주의 같은 표현을 하면서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모든 프로젝트의 공통분모는 서민을 위한 장려 한 주거를 세울 수 있다는 것과, 또한 앞선 기술들이 근대적 건물 에서와 마찬가지로 토속적이고 고전적인 스타일에도 적용될 수 있 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입장은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그 것은 근대말기에 역사적 인용을 하고자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프로젝트에 대한 끊임없는 이러저러한 논란에도 불 구하고, Bofill의 이미지는 단지 교외지역에서의 삶의 즐거움이나 지나간 기념적 꿈을 찬양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 다. 그가 다루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주민의 열망에 적절하게 대응 하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공동주거는 특히 뚜렷이 감지될 수 있는 척도 이며, 그때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해결책이다. 즉 그 것은 화려하고 장엄한 그의 작품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기념적인 건물에서 살고자 한다는 진정한 집단적 욕구에 응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건물에 대한 수요가 없다면 결코 그러한 건 물은 세워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Bofill의 공동주거에서 사는 주 민들의 호의적인 평가로 볼 때, 전통적인 지혜는 분석할만한 가치 가 있음을 보여준다.
Bofill의 작품 속에서 포스트모던운동의 특징적인 원리들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도시로의 회귀, 기념물의 부활, 기술의 망각, 그리고 풍부한 장식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의 첫 번째 특징은 기 념성이다. 그는 과거의 거대한 건물들의 스케일을 (가끔 스케일을
벗어나지만) 회복할 줄 알았다. 그의 작품은 이전 시대의 평범함, 무성격함과는 대조적으로 이례적이고 아이덴티티를 갖는 건물이었 다. 두 번째 특징은 도시성에 있다. 그는 18세기 건축의 질서정연 한 거대한 배치, 광장, 퍼스펙티브, 기념물 등을 선택하였다. 반면 에 그는 서민주거의 평범한 구조물위에 장식된 커다란 조립식 파 넬로 덮어씌움으로써 구조나 시공에 대한 기술이 나타나지 않게 하였다. 장식에 관해, 그는 창들이 서로 관계를 갖도록 하고 지붕 을 올리고, 그리고 덮어씌운 각 세대가 획일화되지 않도록 처리함 으로써 건물의 통일성을 이룩하였다.
<그림 9-12> 기념성을 잘 나타내는 극장건물, 프랑스 (건축가 : 리카르도 보필)
10. Michael Graves
힘찬 스케치, 무한한 상상력, 상징적 여러 수준을 중첩할 수 있는 지성의 덕으로, Michael Graves는 오늘날의 건축 경관에 자 신의 흔적을 남겼다. 그가 “은유적 경관”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을 구성하기 위해, Graves는 그 기원이 다른 여러 종류의 자료를 결 합 한다 : 이러한 “방식”은 문화에 대한 끊임없는 논평을 낳고 또 동시에 새로 창조한다. 그는 자신의 건축 경관의 가치를 풍부하게 하기위해서이건, 고전적인 것을 본떠서이건 간에, 일종의 여러 색 을 사용함으로써 주변의 컨텍스트와 연결을 한다. Graves는 우선 고전건축의 인체형상적(즉 머리, 몸통, 다리) 어휘를 끌어내었다.
그리고 나서 훨씬 제한된 어휘에 민감한 태도를 보였으며, 박식한 지역주의 관점에서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을 표현하는 데에 열중 하였다.
<그림 9-13> 포틀랜드 행정건물, 오레곤, 미국 (건축가 : 마이클 그레이브즈)
11. Terry Farrell
아카데미 출판사에서 마련해준 그의 작품집에서 Terry Farrell은, Isaiah Berlin의 표현에 의하면, 우직한 고슴도치이거나 아니면 교활한 여우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고슴도치는 하나의 전 략에 만족하지만, 반면에 여우는 지속적인 적응을 함으로써 살아 남는다. 짐작하겠지만, Farrell은 여우이다. 그는 대중의 기대에 미 리 대책을 세우고 심지어는 대중을 앞서가는 유연함으로 변화로부 터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영국 최초의 포스트모던 건축가라고 불리는 그가 그렇게 긴밀하게 참여한 포스트모던 운동의 변화를 견디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게다가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하고 그 후 포스트모더니즘의 표상중의 하나가 된, 런던의 TV AM 텔레비 전 스튜디오 건물이 어수선한 80년대 초에 지어졌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이 건물을 비난하면서도, 그의 접근태 도는 우선적으로 실용주의적이었음을 알게 된다. 비평가 Colin Amery에 의하면, 그의 예술의 이러한 면은 장래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그 이유는 : “Farrell이 대중의 특별한 애호를 받는다면, 그것은 컨텍스트에 점점 더 반영하는 건축을 통 하여 도시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를 양쪽 다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Farrell은 대중이 전문가보다 앞서나간다는 것을 기꺼이 인 정하는 최초의 건축가일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조건에 적응하는 그의 능력을 낙관적으로 보게 한다.
<그림 9-14> 미들랜드 은행, 런던, 영국 (건축가 : 테리 훼럴) 미들랜드 은행건물과 같은 훼럴의 많은 작품들은 시선을 끄는데, 그 이유는 매우 활기있는 도시구역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12. Henri Ciriani
Henri Ciriani가 마른느 라 발레에 설계한 주거단지에서 우 리는 다시 한 번 포스트모던 건축의 도시성과 기념성을 볼 수 있 다. 그는 분명히 근대사상의 경향과 1930년대의 근대건축사상에 의거하고 있다. 그는 그가 완벽하게 어휘를 해석해 낼 수 있는 Le Corbusier와는 한 세대의 격차를 두고 그 어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근대적 어휘는 역사주의적 어휘처럼 현대적인 건축의 창조에 여전히 기여하고 있다. 이는 고 전시대(즉 바로크시대)에 그리스 및 로마건축같은 고대건축을 참 조함으로써 그 당시로서는 완전한 근대적인 건축을 만들어 냈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Ciriani는 쌩드니의 <요람> 또는 토르시의 <유아센타>와 같 은 사회적 소명을 지닌 다른 프로젝트에서, 그는 공동주거에 부과 된 편협된 기준의 틀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입장을 취한다. 그래서 거기서의 문제는 신중함과 너그러움을 나타내면서 뚜렷하고 세련 된다. 즉 건축가로서의 야심이 있다면, 그것은 또한 개인적인 미학 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 “...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내가 스타일 또는 방식이라고 부르는 형태적 도덕이 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건축가의 특이성(즉 그의 정신감각적 양태), 그 리고 현실의 상황적 요인, 기억 또는 외적 양식적 영향 등에 속한 다. 이러한 작업방식과 개인적 시학(詩學)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 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필요성이다.”
<그림 9-15> 유아센타의 내부(위)와 입면(아래), 프랑스 (건축가 : 앙리 시리아니)
13. Richard Meier
Richard Meier가 뉴욕에 그의 사무소를 연 것은 1957년이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가 설계한 코넷트컷트주 다리엔의 스미스 주택은 Le Corbusier의 유명한 “건축의 5원칙”(즉 필로티, 자유 로운 입면,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옥상정원)의 재능있는 해석으 로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져다주게 된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근대운동의 논리를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이제 기술은 더 이상 건축의 유일한 내용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하나의 수단 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빛에 의해 이루어지는 미의 개념 을 결부시킴으로써 근대성의 조형적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 나는 볼륨과 면, 움직임과 머무름, 스케일과 조망의 변화를 연구한다.”
그의 경력의 초기부터 Meier는 일관성있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낸 자신만의 형태어휘의 다재다능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 러한 ‘공간의 서정미’의 추구에 몰두하였다. 근대운동 초기의 거장 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건물에서 주된 역할을 하고 사용자 에게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공간이다. 그의 ‘건축적 산책’은 심사 숙고한 것이며, 동시에 다양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부 볼륨을 강조 하는 수단으로 자연채광에 대한 그의 선호는 국제주의 양식의 최 선의 전통에 속한다. 그렇지만 Meier는 언제나 자신의 개성을 각 인시키는 것에 성공하고 있다.
<그림 9-16> 말리부의 주택, 미국 (건축가 : 리차드 마이어)
14. I. M. Pei
I. M. Pei는 Walter Gropius와 Marcel Breuer의 영향 하에 근대운동의 거장들의 시기에서 영감을 얻은 자신의 생각에 충실하 면서 오랜기간 많은 설계를 해왔다. 실제로 Pei는 빛, 구조, 그리 고 동선이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지는 공간의 특질을 우선시 하였 다. 그렇지만, 콜로라도주 바울더 힐의 국립대기연구센타, 와싱턴 주의 국립근대미술관, 그리고 북경의 시앙샨 호텔의 설계에서 보 듯이, 부지의 요구조건에 대한 고려는 후기 모더니즘의 특징을 나 타낸다. 시앙샨 호텔의 경우, 매우 민감한 역사적 부지에 중국정부 는 국제주의적 양식의 탑형태의 건물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Pei는 일련의 중정과 정원 주위로 높지 않은 건물을 구성함으로써 매우 친밀한 분위기를 이룰 수 있는 설계를 하고자 하였다. 부지에 대 한 이러한 그의 고려는 유리와 철로 된 루부르 박물관의 주입구인
“피라밋”의 설계에 영감을 주었다. 비록 루부르의 유리 피라밋은 건설 초기에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이제 그것은 매우 밀도가 높고 복잡한 건축적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으로 인정되고 있 다.
<그림 9-17> 루부르의 유리 피라밋 (건축가 : 아이 엠 페이)
15. Mario Botta
그의 건축과 컨텍스트 간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해, Mario Botta는 5개의 원칙을 이야기 한다. 첫째는 부지와 거기에 들어서 게 될 건축 간의 상호적 교환의 창조이다. Botta는 모든 외생적 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주어진 터(site)의 긍정적인 면을 우선시한 다. 그가 “터의 건설”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접근태도는 그에게는 프로그램이나 구조만큼이나 역시 중요하다. 둘째, 단순한 법규의 규제를 넘어 재료적, 심리적 그리고 상징적 영향을 검토할 수 있 는 건축 부지에 대한 절대적 고려의 필요성이다. 셋째, 건축가가 진정한 경관을 창조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오직 터의 지질을 잘 파 악할 때이다. 넷째, 과거에 대한 최선의 경의야말로 진정한 근대적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것이다. Aldo Rossi처럼 Botta는 인정할만한 모든 모델은 다양한 용도에 적응한다는 것을 주목한다. 그래서 그 는 특히 긴 역사를 통해서 여러 기능을 수행해온 판테온을 그 예 로 든다. 이러한 근대성은 기술적 또는 건설적 과시에 근거를 둔 다기보다는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요소들 은 합리주의적 논리에 쉽게 현혹되지 않게 하는 인본주의적 그리 고 초시간적 특질을 건물에 부여한다.
<그림 9-18> 로톤드 주택, 이탈리아 (건축가 : 마리오 보타)
16. Dominique Perrault
이제 더 이상 분석, 방법, 과정, 주의, 처리 방식, 술수와 책 략은 오늘날 도시의 생각에 대한 우리의 무능력을 감추게 하지 못 한다. 그것들의 진화와 변천은 인간과 건축 간의 관계에 대한 참 신한 개념을 통해서만이 일어날 수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 이루어진 근대건축과 거기에서 파생된 건축은 타파 되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근대의 최소주의(minimalism) 운동의 이미지는 예술과 삶을 분리시키는 간격을 만들기 때문이다.
예술과 인간 간의 관계를 배제하는 최소주의 건축은 내적 관 계에 의해서 구조화되지 않고, 자율적인 요소들의 불일치와 우연 에 의해 구성되며, 주어진 장소에서 동일한 볼륨 속에서 조립된다.
그것의 볼륨은 거의 비물질적이며,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빛의 막 대기이거나 또는 건축적 오브제의 은닉에 의한 사라짐으로 귀착된 다. 그 형태는 무성격하고 기하학적이다. 그 스케일은 거의 밀리미 터를 따질 만큼 세심하게 생각되고 계산되지만 그 재료는 무수하 고 선험적이지 않다.
마침내 최소주의 건축은 반발을 야기하게 되어있다. 건축과 의 일차적 접촉은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인지질서와 관계되기 때문 이다. 인상은 모든 모호성이 없이 즉각적이고, 이를테면 결정적이 어만 한다. 그것은 인간과 오브제 간의 단순하고 분명한 관계의 문제이다.
이제 우리는 특정한 반응을 야기하기 위해 특정한 장소와 결 부된 특정한 차원을 지닌 오브제를 만듦으로써, 새로운 길을 모색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9-19> 파리 국립도서관 (건축가 : 도미니끄 페로)
<그림 9-20> 이화여대 캠퍼스, 서울 (건축가 : 도미니끄 페로)
17. Jean Nouvel
Jean Nouvel이 설계한 부종에 있는 아름다운 이 병원건물은 포스트모던 건축에 있어 구조나 시공기술의 역할을 매우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에서 Jean Nouvel은 잘 알려진 기법을 취했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철도의 차량에 사용되는 길 게 늘인 강철판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의 근대건 축은 구조나 시공기술에 철저하게 제약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제 는 구조 및 시공기술은 거의 완벽하게 알려지고 습득되어졌고, 그 결과 그러한 기술은 종종 새로운 건축형태의 계기가 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Jean Nouvel의 이 작품에서 기술은 불가피한 구조적 필요성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우리시대의 일련의 모든 집 착, 즉 산업, 대량생산, 속도, 그리고 이와 동시에 상상적인 것, 시 적인 것, 근대성에 상징적으로 관계된다. 이점에 있어 Baudelaire 가 근대성에 대해 “그것은 일시적이고 사라지기 쉬우며 우연적인 것으로 예술의 반쪽인 바, 다른 반쪽은 영원함과 불변함이다”라고 한 말은 음미할 만하다.
<그림 9-21> 부종의 병원건물, 프랑스 (건축가 : 장 누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