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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릭의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 역사성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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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성의 문제

- 헤겔주의의 영향과 극복을 중심으로

장 원*1)

Ⅰ. 서론

Ⅱ. 헤겔과 미술사: 미술사에서 헤겔의 위치

Ⅲ. 곰브릭의 헤겔 비판과 극복

Ⅳ. 곰브릭의 문화사 연구와 역사성

Ⅴ. 결론

Ⅰ. 서론

본 연구의 목적은 곰브릭1)의 예술론과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 그 기저를 이

*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교육원 외래교수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2013년 가을 정기학술대회에서 자유주제로 발표한 원고를 수정보완하여 게재한 것임.

1)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곰브리치’라는 기존의 관습적 표기 대신 ‘곰브릭’이라고 표기한 다. 국내에는 관용적으로 ‘곰브리치’라고 표기해왔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의 이름 은 독일어 발음에서는 ‘곰브리히’이며 영어 발음에서는 ‘곰브릭’으로 발음하기 때문이 다. 연구자가 Indiana 대학 재학 당시 Eugene Kleinbauer 교수의 ‘Historiography of Art History’ 수업에서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영미권에서는 ‘곰브리히’나 ‘곰 브릭’으로 발음한다고 확인해주었다.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규정 제5항에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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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고 있는 역사관을 추적하고 현재의 연구들에 어떤 영향과 의의가 있는지를 살 펴보는 데 있다. 곰브릭은 1977년에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서 수상한 헤겔상2) 기념하여 행한 특강에서 헤겔을 미술사의 아버지라고 언급하고,3) 자신에 대해서 는 ‘헤겔로부터 달아나는 헤겔주의자(entlaufener Hegelianer)’라고 주장하는 동시 에 헤겔의 역사철학이 지닌 위험성들과 오류들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곰브릭은 이 강연에서 미술사의 아버지를 일반적으로 빈켈만이라고 일컫는 세간 의 관점과 달리, 헤겔을 미술사의 아버지라고 본다.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예술학 (Kunstwissenschaft)의 근원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고대의 미술사에 관한 빈켈 만의 저작이 아니고, 세계의 모든 미술들에 대한 역사를 조망하고 하나의 학문적 체계를 세우려고 처음 시도했던 헤겔의 미학입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광범위하 게 영향을 끼친 헤겔의 변증법적 보편 역사의 비전을 확고하게 거부하면서도, 헤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하되, 그 범위와 용례는 따로 정한다”고 지정하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데 도움이 되고자

‘곰브릭’이라고 표기한다는 점을 밝혀둔다. 또한 제3항에서 받침은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고 규정한 지침도 함께 참조하여 표기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규 정, http://www.korean.go.kr/09_new/dic/rule/rule_foreign_index.jsp(최종접속: 2014년 2월 2일 오후 12시 52분).

2) 헤겔상(Hegel-Preises)은 철학자 헤겔의 고향인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시에서 3년마다 수여하는 상으로, 헤겔의 방대한 철학 사상을 널리 전파하거나 재해석하는데 탁월한 업적을 세운 학자들에게 수여된다. 이 상은 2차대전 중 ‘사막의 여우’로 명성을 떨쳤 던 롬멜(Erwin Johannes Eugen Rommel) 장군의 아들인 만프레드 롬멜(Manfred Rommel)이 슈투트가르트의 시장이 된 이후에, 가다머(Georg Gadamer)의 제자로서 칸트와 헤겔 철학의 권위자이자 당시에 국제헤겔학회에서 회장을 역임한 디터 헨리히 (Dieter Henrich) 박사와 함께 설립했다. 곰브릭은 제3회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역대 수상자 중에는 하버마스와 미국 철학자 도널드 데이비슨 등이 포함되어 있다.

3) Ernst H. Gombrich, “Hegel und die Kunstgeschichte”, Rede anläßlich Verleihung des Hegel-Preises der Stadt Stuttgart, am 28. Januar 1977, Neue Rundschau, Nr.88, 2, 1977, p. 202. 원래 헤겔상의 수상 기념 강연문이었던 이 글은, 이후에 곰브릭 자신에 의해 수정 보완 및 번역되어 1984년에 영문으로 재출간되었다. 곰브릭은 영문판에서 제목 역시 미술사의 아버지 라고 수정해서, 자신의 논의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강조했다. 영어 번역: “‘The Father of Art History’: A Reading of the Lectures on Aesthetics of G. W. F. Hegel(1770-1831)”, Tributes: Interpreters of Our Cultural Tradition, Oxford; Phaidon, Ithaca: New York, 1984, pp. 51-69. 본 연구에서는 1977년도의 기념 강연에 사용된 독일어 원문을 참조하였다. 이후의 인용은 곰브릭의 1977년도 저작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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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의 미학을 상세히 다루면서 자신의 존경심을 지속적으로 표현했다. 즉 헤겔의 유산에 대한 비평이 자신의 작업들 속에서 결코 적은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고 밝힘으로써, 헤겔이 학문적 체계로 확립한 역사철학을 계승한 당시의 빈 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평생의 미술사 연구에서 헤겔의 역사 체계를 극복하는 것을 목 표로 삼았음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4) 엘킨스는 이에 대해 곰브릭이 묘사하 는 헤겔의 이론들은 미술사의 판단들을 위해 편리한 도구이거나 서술 가능한 술 어로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학 전체의 토대를 이루는 주요 개념들이 라고 보고 있다.5) 그럼에도 그는 200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곰브릭이 미술사 연 구가 다루지 않는 광범위한 관심 분야들에 관한 저술들과 내용들 때문에 곰브릭 을 미술사학자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6)

본 연구는 곰브릭의 미술사 연구에서 취하고 있는 역사적 입장이 헤겔의 보 편적이고 유럽 중심의 발전론적 역사관에서 벗어나 문화사의 연구로 확대되었다 는 점을 논의할 것이다. 미술사라는 학문의 영역은 인문학의 여러 분야들과 접목 되면서 계속 확장되었다. 그 연구 범위가 서구의 논리를 벗어나 그동안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국가와 민족, 인종, 성별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둘러싸고 있는 외 부 요소들까지 지속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곰브릭의 예술연구 가 현재의 미술사 연구 현황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왜냐 하면 최근에 이르러 예술연구에서는 다양한 관심과 주제, 매체와 영역 등의 범위 를 포괄하여 시각문화 전반을 연구하는 ‘이미지학(Bildwissenschaft)’이 미술사나

4) Ernst H. Gombrich, “Sind eben alles Menschen gewesen: Zum Kulturrelativismus in den Geisteswissenschaften”, Akten des VII. Internationalen

Germanisten-Kongresses Göttingen 1985, Vol. I, Ansprachen Plenarvorträge, Tübingen 1986, pp. 17-28. 영어 번역본: in; Critical Inquiry, Volume 13, Number 4, Summer 1987 참조.

5) James Elkins, “Art History without Theory”, in; Critical Inquiry, Vol. 14, No. 2, Winter 1988, p. 368.

6) James Elkins, “Ten Reasons Why E. H. Gombrich is Not Connected to Art History”, in; Human Affairs: Postdisciplinary Humanities & Social Science Quarterly, vol. 19, No. 3 - “Relativism versus Universalism & Ernst Hans Gombrich”, September 2009, pp. 30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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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에서 중요한 부분을 구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곰브릭이 스스로 ‘미술사학자 (art historian)’로 불리기보다는 이 분야의 연구에 대해 ‘문화사(culture history)’나

‘문화사가(culture historian)’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엘 킨스가 지적한 곰브릭과 미술사의 ‘비연관성’은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 협소한 관 점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먼저 헤겔이 곰브릭을 비롯한 여러 학자 들에 의해 ‘미술사의 선구’로 간주되는 이유를 간단히 살펴보고, 헤겔의 역사주의 에 대한 곰브릭의 비판과 극복 방법이 미술사 연구로부터 문화사로 확장된 점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곰브릭의 예술론 자체를 중요하게 다루 지는 않을 것임을 먼저 밝혀둔다.

Ⅱ. 헤겔과 미술사: 미술사에서 헤겔의 위치

제임스 엘킨스는 미술사는 글로벌한가?(Is Art History Global?)(2007)라 는 저서의 서문에서 도표를 통해 현대미술의 주요 논점들을 분석한다.7) 그에 따 르면 1940년부터 2000년까지 미술사 연구의 주요 이론들은 응시 이론, 정신분석,

7) James Elkins, Is Art History Global?, Routledge, New York, 2007, v-viii. 미술사의 주제들과 더불어 그가 제시한 또 하나의 도표는 1930년대부터 2000년까지 미술사가들 의 인용 횟수를 통해 그들이 다뤘던 주제가 현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 여주고 있다. 이 도표에 그래프로 표시된 수치를 토대로 본다면 바르부르크와 리글에 대한 인용 횟수가 이전보다 약간 증가해서, 바르부르크의 경우 60년대부터 꾸준히 50 회~100회 사이에서 인용되고 있으며 리글의 경우 1980년대 중반에 최대 50회 정도 인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엘킨스는 파노프스키와 곰브릭의 인용횟수가 ‘급격하 게precipitous’ 감소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그래프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이 그래프 에 따르면 리글과 곰브릭이 샤피로나 하우저 같은 미술사가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400 회 정도가 인용되었던 1970년대와 80년대의 상황과 달리, 1990년대를 지나면서 50회 정도의 수준으로 가파른 하향 경사면을 이루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엘킨스는 이에 대해 대부분의 미술사가 저명한 이론들이나 개별적인 미술사가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 은 물론 아니며 이 그래프들도 미술사의 문헌 내에서 의미 있는 조건들에 제한되어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현대에서 예술작품을 해석하는 미술사의 전략들이 급변하고 있 음을 그래프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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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기호학, 시각이론, 그리고 해체주의 등을 통해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가

미술사의 문헌(Bibliography of the History of Art)이라는 자료를 참조해서 작 성했다고 하는 이 도표에 따르면, 이 이론들은 2차 대전 이후인 1960년대부터 글 들을 통해 발표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 이후에는 응시 이론, 정신분석, 페미니 즘의 주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페미니즘의 경우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900편에 가까운 글이 저술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헤겔주의’라고 불리는 이론들이 현대의 학문 분야들에서 중심 논점들이 되어왔으며, 미술사가 학문으로 성립하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의 미술사 연구와 내용에서도 있어서도 가장 두드러지고 결정적인 요소라고 보고 있 는 것이다.8)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헤겔 철학이 끼친 강력한 영향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막시즘, 실존주의, 현상학, 실증주의, 그리고 더 최근에는 해체주의 등을 포함하여 이후의 동향들이 헤겔에 대한 반대와 복원의 복잡한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규정하려는 노력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미술사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독일어권 국가들에서 헤겔 미학을 각성하면 서 학문의 근대적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9) 가다머와 같은 학자들은 현대에서 헤겔의 영향력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고 평가하고,10) 현대의 미술이론 과 미술사에서 대표적 헤겔주의자로 평가받는 아서 단토는 헤겔의 전반적 체계와 형이상학적 배경이 어느 지점에서 관련될 수 있을지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 하 면서 “우리가 헤겔의 전체 사상 중에서 예술에 대한 역사적 비전을 어느 정도로 까지 분리시킬 수 있을지는 알기 어렵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난 헤 겔주의자’라고 부르긴 하지만 헤겔의 전체 사상 중에서 얼마만큼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11)고 말하고 있다. 곰브릭 역시 미술사에서 헤겔의 계

8) James Elkins, “Art History without Theory”(1988), pp. 354-355, p. 359.

9) Katerina Deligiorgi, “On Reading Hegel Today”,Hegel: New Directions, McGill-Queen's University Press, 2006, p. 2.

10) Hans-Georg Gadamer, “The Heritage of Hegel”, Reason in the Age of Science, Cambridge, Mass; The MIT Press, 1983, p. 38.

11) Arthur C. Danto, Beyond the Brillo Box: The Visual Arts in Post-historical Perspective, New York, 1992, p.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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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들이 헤겔의 극복을 꾀했던 부르크하르트와 더불어 뵐플린, 리글, 드보르작과 함께 마르크스나 딜타이, 그리고 호이징가와 같은 학자들까지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12)

헤겔은 미술사의 ‘진보’에 대해 확고한 개념들을 갖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 든 미술사의 ‘출발점’은 확실한 사실들의 경험적 연구이며, 사실의 수집은 예술의 생산과 마찬가지로 미술비평을 위한 일반적 관점을 제공하고자 마련된 이론들의 발전에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13) 미술사에서 실행 가능한

‘내용의 미학’은 첫 번째로 “헤겔의 ‘체계’ 안에 닻을 내리고 있는 도그마로부터 엄격해져야만 한다”는 한스 벨팅의 해석14)에 의해 전형화된 헤겔의 중요성과 의 미는 미술사가들 사이에서 우세한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브리짓 힐머는 디터 헨 리히의 글을 인용하여, 헤겔의 예술형식 구축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것이 목적론 적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가능성들 내부에 대한 반응들 속에서 미술사가 밟아온 단계들의 논리를 재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고 보고 있다.15) 미술사학자 클

12) Ernst H. Gombrich, In Search of Cultural History: The Philip Maurice Deneke Lecture 1967, Oxford, 1969; Ideals and Idols: Essays on Values in History and in Art, Oxford, 1979에 재수록. 이후의 인용은 곰브릭의 1979년도 저작으로 표기.

13) G. F. W. Hegel, The Philosophy of Fine Art, F. P. B. Osmaston(trans.), 4 vols., New York, 1975, p. 17, p. 19. 재인용: Elkins, “Art History without Theory”(1988), p. 376. 엘킨스는 이 글에서 헤겔의 이론이 미술사의 서술에서 발전적 역사관을 형성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헤겔은 근대 이후의 예술이 더 이상 ‘진실과 생명’을 소유하지 않는 ‘과거의 대상으로 남는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예술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의식을 갖게 되었던 정신을 통해서 필수불가결한 감각적 제시(Darstellung)를 수행했지만, 이후의 단계에서는 종교로부터 철학으로 ‘천년왕국’을 향한 진보적 발전을 시작하면서 고대의 그리스에서 완벽하게 완성됨으로써 예술은 재현(Vorstellung)과 개념적 사고를 통해 제시되었다고 주장한 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이제 내용과 형식,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관계를 고려하면서 예 술 제작을 지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 자체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분석 적으로 나뉘게 된 예술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14) Hans Belting, Das Ende der Kunstgeschichte?, München; Deutscher Kunstverlag, 1983. 영어 번역본: Christopher S. Wood(trans.), The End of the History of Art?,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p. 9-10.

15) Dieter Henrich, “Hegels Logik der Reflexion”, Hegel im Kontext, Frankfurt am Main, 1967, pp. 95-96. Brigitte Hilmer, “Being Hegelian after Danto”(1998), p.

82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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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바우어는 Modern Perspectives in Western Art History의 서문에서 헤겔을 통해 예술에 대한 낭만주의적 개념과 미학이 완전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진단한 다.16) 그는 헤겔이 역사에서의 진보라는 개념을 정교하게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이끌었고, 역사가 역동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는 이른바 정반합이라는 3항의 변증 법적 체계 안에서 예술이 종교 및 철학과 더불어 절대 정신의 구현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헤겔은 이 체계 안에서 예술을 형식과 내용으로 구분하 는데, 예술의 기능이 ‘시각적 형태’와 ‘개념’과 구분되면서, 이들과의 변증법적 화 해를 통해 자유롭고 전체적인 총합이 된다는 것이다. 헤겔에 의해 상정된 변증법 적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시대마다의 양식으로서의 정신적 현현이며,17) 라인바우어는 헤겔의 이론이 막시스트적 역사관을 가진 미술사에 끼친 막대한 영 향 때문에 오늘날의 미술사에서 중요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우리는 심지어 형식 주의의 대표적 비평가인 그린버그의 모더니스트 페인팅 (1960)에서도 헤겔의 강 한 영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는 마네 이후의 회화들이 모더니즘의 예술적 강 령을 향해 발전해왔다는 역사관을 피력하고 있다.18) 이러한 헤겔적 역사관에 대 해서 곰브릭은 칸트를 인용하여, “우리가 역사의 제단 앞에서 찬양하기 전에 역사 의 절대성을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데 대한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 다”고 말한다.19) 곰브릭은 예술 작품들이 제작된 ‘시대의 정신의 표현’들이라는 개념을 강력하게 부정하며, 역사에 대한 헤겔의 이론들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해 왔다. ‘표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대행물을 상정해야만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역사의 신화가 헤겔 이래로 역사기록에 대한 지배를 강 화했다고 보는 것이다.20)

16) W. Eugene Kleinbauer, Modern Perspectives in Western Art History,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89, pp. 25-26.

17) Jack Kaminsky, Hegel on Art: An Interpretation of Hegel's Aesthetics, Albany, 1962. 재인용: Kleinbauer, op. cit., p. 25.

18) Clement Greenberg, “Modernist Painting”, Modern Art and Modernism: A Critical Anthology, Francis Frascina & Charles Harrison(eds.), New York, 1982, pp. 5-10.

19) David Summers, “E. H. Gombrich and the Tradition of Hegel”, A Companion to Art Theory, Paul Smith & Carolyn Wilde(eds.), Oxford; Blackwell Publishers, 2002, p.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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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곰브릭의 헤겔 비판과 극복

곰브릭의 예술론과 미술사에 있어서의 역사성은 헤겔의 영향에서 출발했고, 헤겔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관계를 간단한 어구로 표현하자면, ‘From Hegel, Beyond Hegel’ 정도의 표현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헤겔 미학이 “개별 경험들을 총체화하는(totalizing) 형이상학의 산물로서 더 이상 세계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는 곰브릭의 묘사가 미술사의 학문 형성 단계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미술사와 철학의 관계에 대한 곰브릭의 특정한 해석만이 강한 원인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곰브릭과 월하임 (Richard Wolheim)의 제자였던 포드로(Michael Podro)는 The Critical Historians of Art(1982)에서, 정신의 역사에 관해 극단적으로 일반화된 헤겔의 범주들이 역 사적 증거들을 선택하고 제외했거나 특정한 해석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이미 동시 대에 회의적인 비판이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21) 헤겔에 대한 곰브릭의 비판은 바로 이 전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제이슨 가이거는 곰브릭의 반(反)형이상 학적 수사법(rhetoric), 공통감에 대한 호소, 추상적 보편성에 대한 불신, 그리고 우리가 자연과학의 방법들과 철학에의 의존 사이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는 주장 등 이 모두가 미술사에 있어서 독일의 이상주의적 유산과의 단절을 알리 는 신호로 받아들인다.22)

역사주의에 대한 곰브릭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헤겔에 관한 논의에서 이루 어지는데, 여기에서는 미술사의 논점들을 넘어선다. 곰브릭은 헤겔로부터 유래한 전체주의 철학들이 역사적으로 모든 도덕적 판단들을 결정했다고 보는 것이다.23)

20) Ernst H. Gombrich, “André Malraux on the crisis on Expressionism”, Meditations on a Hobby Horse and other Essays on the theory of Art, Phaidon, 1963, p. 79.

21) Michael Podro, The Critical Historians of Art, Yale University Press, 1982, pp.

28-30.

22) Jason Gaiger, “Hegel's Contested Legacy: Rethinking the Relation between Art History and Philosophy”, in; Art Bulletin, Vol. 93, Issue 2, June 2011, p. 190.

23) Ernst H. Gombrich, Ideals ad Idols, Oxford; Phaidon, 1979, p. 184. David Carrier,

“Gombrich on Art Historical Explanations”(1983), p. 93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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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현대의 미술사 연구에서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는 헤겔의 개념들 중 다섯 가지를 꼽고 있는데, ‘미적 선험성, 역사적 집단주의, 역사적 결정론, 형이상학적 낙관주의, 상대주의’를 열거하고 있다.24) 곰브릭은 헤겔의 미학강의가 근대 예 술연구의 토대를 세웠다고 하면서도 미술사가 ‘헤겔의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전통 자체를 비평적으로 검토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래서 그는 헤겔의 미학강의 보다는 역사철학에 대부분의 논의를 할애 하는데, 그는 헤겔의 ‘해석적 방법(exegetic method)’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특정한 국가나 사회의 정치적 구성, 법률 체계, 사고의 특징적인 방법 등 과 함께 그 안에서의 종교적 관점, 문화적 삶, 도덕적 헌신 등으로 드러나는 통일 된 ‘민족정신’을 문제가 있는 개념이라고 보고 비판을 집중시킨다.25) 곰브릭은 ‘민 족정신(Volksgeist)’이나 ‘예술의욕(Kunstwollen)’과 같이 실체화된 독립체를 통해 매개되는 사유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헤겔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바라보는데, 이렇 게 단일한 원리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신화 만들기’의 형태로 나타나는 전통에 대 한 곰브릭의 비판은 “그 신화적 해석은 ‘인류’ ‘민족’ ‘시대’ 등과 같은 어떤 집단 적 관점에서 말하는 습성을 강요함으로써 전체주의적 기질에 대한 저항을 약화시 키게 된다”26)는 신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와 같은 곰브릭의 입장은 칼 포 퍼의 전체주의의 발현에 대한 분석과 그의 책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1945)27)에서의 헤겔에 대한 맹렬한 비판에 신세를 지 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망명의 경험과 비엔나학파의 유산을 계승하는 과정에서도 결정적으로 형성되었다. 곰브릭은 이미 28세에 에른 스트 가르거의 글에 대한 리뷰에서 예술작품과 ‘시대정신’ 사이의 ‘연관성의 기능’

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28) 헤겔이 철학강요(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24) Gombrich(1977), p. 212.

25) Gombrich(1979), p. 46.

26) Ernst H. Gombrich, Art and Illusion: A Study in the Psychology of Pictorial Representation, 5th ed., London; Phaidon, 1977, pp. 16-17. 한글 번역: 백기수 역,  예술과 환영,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85, p. 30. 이후의 인용은 곰브릭의 1985년도 저작으로 표기.

27) Karl Popper,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2 vols., London; Routledge,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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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senschaften im Grundrisse)(1830)에서 ‘실재(Wirklichkeit)’는 경험이나 우연 및 존재(Dasein)에 의해서가 아닌 이성에 의해서 확인될 수 있다29)고 주장한데 대해서, 곰브릭은 헤겔과 미술사 (1977)에서 로제크란츠를 인용하여 헤겔의 역사 인식은 결국 ‘역사적 결정론’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예술은 철학의 관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을 펼친다.30) 데이비드 서머스는 앞에서 언급한 헤겔의 역사와 예술에 대한 도식이 미술사의 근대적 학문 체계에서 기본적인 이론적 문 제들의 기초가 되어왔기 때문에, 헤겔에 대한 곰브릭의 비판과 심문은 미술사와 문화사적인 해석에 관한 가장 기본적 논점들을 제기하기 위해 지속되었다고 평가 한다.31) 곰브릭은 그 예로 르네상스 역사가인 J. A. Symonds의 관점은 궁극적으 로 헤겔이 “르네상스의 자연주의는 모든 변화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변화인 종교 개혁의 조짐으로서의 지리학상의 발견들과 (동등한 중요도로) 연관되어야만 한다”

고 주장하는 시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역사철학 강의(1840)를 인용하면 서 헤겔의 역사적 상투성을 비판하는 것이다.32)

곰브릭은 또한 빈학파의 선배 학자들인 알로이스 리글과 한스 제들마이어의 미술사가 지니고 있는 헤겔주의적 태도, 혹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그들이 역사 전체를 ‘인류가 유년기에서 원숙기로 진화되어온 거대한 드라마’로 바라보는 것은,

“예술이 ‘시대의 표현’이 되고 세계정신이 지나쳐가는 한 단계의 자취가 되는” 낭 만주의의 신화적 해석이라고 비판한다.33) 곰브릭에 따르면 리글 뿐만 아니라 “그

28) Ernst Garger의 “Wertprobleme und mittelalterlicher Kunst”에 대한 곰브릭의 리뷰는 포드로에 의해 번역되어, 곰브릭의 Meditations on a Hobby Horse 중 “Achievement in Mediaeval Art”라는 제목으로 재수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Ján Bakoš의

“Gombrich's Struggle against Metaphysics”, in; Human Affairs 19, 2009, p. 239 참조.

29) 곰브릭이 인용한 글은 다음과 같다. Karl Rosenkranz, Georg Friedrich Wilhelm Hegels Leben, Berlin, 1844, p. 335.

30) Gombrich(1977), p.213.

31) Summers, op. cit., p. 139.

32) Ernst H. Gombrich, “Art and Scholarship”, Meditations on a Hobby Horse and other Essays on the theory of Art, Phaidon, 1963, p. 115. 곰브릭이 비판하는 J. A.

Symonds의 견해는 “근대적 정신의 해방 속에서 내딛은 첫 발걸음은 예술에 의해 시 작되었다 … 회화가 다룬 것은 회화에 의해서 인간이 다루는 것이 되었다”라는 부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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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추종하고 해석했던 보링어, 드보르작, 제들마이어의 저작에서는 … 여러 가지 중요한 시사와 역사적인 문제들이 풍부하게 등장하지만, 그들로서는 가장 큰 자 부심을 느꼈던 것이 사실은 치명적인 오류”가 되며, “취미와 유행의 역사는 취향 내지 기호가 변화해 온 역사이며, 주어진 대안들의 선택의 역사”라는 것이다. 곰 브릭은 그 예로 동시대의 아카데미적 관습을 배척한 라파엘전파와 아르 누보를 밀어낸 일본 취향을 꼽는다.34) 서머스는 미술사의 서술에 있어서 곰브릭의 이러 한 역사관이 예술과 환영이 저술되던 당시에 자주 언급했던 칼 포퍼의 저작들 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특히 포퍼의 역사주의의 빈곤의 내용에 대 해서는 예술과 환영 및 곰브릭의 다른 저작들에서도 헤겔의 전통을 이어받은 19세기 이래의 발전론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시각에 이의를 제기하며 꾸준히 언급 하고 있다. 한 예로, 예술과 환영의 서론에서는 “그 ‘정신’이라는 것, 관념주의에 있어서의 그 정신의 원형, 그리고 그 정신이 변증법적으로, 그리고 유물론적으로 실현되어 나타난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공감을 갖지 않는다”는 부분을 인용하여 역사주의를 비판한다. ‘시대정신’ 혹은 정신의 연속적 표현들이 목적론을 가지고 전개된다는 문화적 진보나 헤겔의 역사 개념과 같은 거대 담론들에 저항하기 위 해, 곰브릭은 ‘상황의 논리(logic of the situation)’라는 포퍼의 방법을 빌려오고 있 다. 곰브릭은 역사적 사건들, 예술의 양식과 작품의 의미들에 대해 비합리적이거 나 추측에 근거하는 이론들로부터 타당하고 논리적인 설명들의 경계를 정하는 방 법으로 포퍼의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다.35) 곰브릭이 20세기 초반에 양식 문제에 의 집착을 무너뜨리고 무엇보다도 지각심리학과 같은 현대 자연과학 연구와 긴밀 한 관련성을 정초하면서 미술사의 올바른 ‘과학적’ 모델에 기여한 바는 의심할 여 지없이 유용한 영향을 줬다. 예술의 창작과 수용에서 개념적이고 지각적인 요소 들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대한 그의 예증은 묘사의 철학에 관한 최근 연구들에 여 전히 필수불가결한 출발점을 형성하고 있다.36)

33) ibid., pp. 31-32.

34) ibid., p. 32.

35) Cunliffe, op. cit., p. 66.

36) John Hyman, The Objective Eye: Colour, Form and Reality in the Theory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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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서머스는 곰브릭이 받은 헤겔의 역사적 영향이 헤겔 저작의 즉각 적인 전통을 벗어났으며, 따라서 이제는 어느 누구도 헤겔과 전혀 연관시키지 않 을 미술사에 관한 언급들은 곰브릭이 배척한 헤겔주의적 개념들의 전통에 있어서 핵심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곰브릭의 이러한 입장이 ‘표현’에 대한 개념들에 가 장 기본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곰브릭이 ‘표현’을 미술사가들이 특히 경도되기 쉬운 ‘근거 없는’ 역사적 추론이라는 인습의 기저를 이루는 것이라 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서머스는 라파엘의 <아테네 학당>(1510-1511)을 예로 제 시하여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이 작품이 ‘전성기 르네상스’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 다는 식의 적용과 달리, 곰브릭은 그러한 (해석의) 기만적 편리성을 신뢰할 수 없 다고 주장한다.37) 곰브릭은 표현주의의 위기에 대한 앙드레 말로의 입장 (1963) 이란 글에서, 이 기만적 편리성이란 우리가 어떤 예술 작품을 볼 때 하나의 특징 적인 전체로 보게 되고, 그 연후에 한 개인이나 집단적인 내면을 완전히 ‘표현하 는’ 하나의 객관적 외형으로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곰브릭이 ‘인상학의 오류’라 고 부르는 이러한 방식은 ‘게슈탈트의 오류’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며, 예술 작 품 속에서 ‘전체 형태의 동시적 포착’이 한 사람의 예술가나 그 예술가가 속한 문 화 전체의 ‘비전’이 된다는 생각에 근거하는 필연적 귀결로부터 나타난다는 것이 다.38) 곰브릭은 예술과 환영에서 재현의 예술을 만드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규정하는 문화적 사회적 과정과 함께 인식의 과정의 중요성을 여타의 이 론들이 간과한다고 보기 때문에, 예술과 더불어 자기표현에 대한 표현주의 이론 을 설명하는 일은 곰브릭에게 중요했다.39)

또한 곰브릭은 예술작품들의 표현적인 효과들에 대한 설명들을 보강하기 위 해 공감각의 관계들과 골상학적 지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데, 컨리프는 이에 대해 곰브릭이 표현주의 작품들을 예술가의 무의식적 정신의 산물이라고 바라보 기 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그물망 안에서 이 작품들이 갖는 효과들과 능력에 대한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6 참조.

37) Summers, op. cit., p. 141.

38) Gombrich(1963), p. 79.

39) Cunliffe, op. cit., p.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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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타당한 설명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본다.40) 이를 위해 곰브릭은 예술가들이 각자가 속한 전통의 영향력에 의해 현실을 지정하는 ‘도식’을 이어받는다고 설명 한다.41) 이러한 도식들에는 그에 필요한 기술과 선배 대가들의 작품들이 추가되 며, 예술가 각자가 ‘시도와 실패’를 수행하는 과정의 출발점이 된다고 보는 것이 다. 곰브릭의 ‘도식과 수정’, ‘창조와 조응’ 등의 개념은 포퍼의 과학철학에서 ‘추측 과 반증’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들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예술이 과학의 보편적 법칙과 유사한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보고 있다는 관점이 헤겔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해준다고 생각될 수 있다. 서머스 는 곰브릭이 헤겔의 ‘진보’라는 개념을 단순하게 부정하지는 않으며, 그 대신에 문 화사를 통해 이 개념을 적용시킨다고 보고 있다.42) 곰브릭이 스스로를 헤겔주의 자가 아니라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데 대해 화이트는 한 대담에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곰브릭이 예술과 환영에서 ‘양식’을 표기(notation)의 한 체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미술사를 언어 자체의 진화나 발전과 유사한 것으로 바라 보고 있으며, 따라서 문학이나 음악 같은 여타의 장르 양식적 전통들과 상호 관 계를 지닌다고 본다면, 이처럼 서로 다른 체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작용에 대 한 변증법적인 개념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곰브릭은 ‘변 증법적’이라는 형이상학적이고 헤겔적인 용어를 조각낸다면 자신의 예술 개념이 변증법적이라고 묘사해도 좋을 것이라고 대답하며, 곰브릭 자신은 이와 관련해서 변증법이라는 표현보다 ‘예술의 교향악적 요소(symphonic element)’란 용어를 여 러 번 사용해왔다고 부연하며 미술사에서 양식의 개념을 넘어선 문화사의 관점에 서 연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43)

40) ibid., p. 71.

41) Christopher S. Wood, “E. H. Gombrich's ‘Art and Illusion: A Study in the Psychology of Pictorial Representation’, 1960'”, in; The Burlington Magazine, December 2009 참조.

42) David Summers, op. cit., p. 142. 서머스는 곰브릭의 “In Search of Cultural History”(1979) 에서 이러한 진보의 개념이 헤겔의 보편주의를 대체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며 개별 성을 항상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43) Ernst H. Gombrich, Hayden White, Allen W. Wood, Theodore M. Brown, David I.

Grossvogel and Robert Matthews, “Interview with Ernst Gombrich”, in; Dialec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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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곰브릭의 문화사 연구와 역사성

곰브릭이 미술 이외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열정을 쏟고 그 연구 성과를 꾸준하게 글로 발표44)했기 때문에 미술사와 거리가 멀다는 엘킨스류의 견해는 그 동안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미술사학 내에서의 곰브릭의 위상과는 거리가 있 는 새로운 주장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클라인바우어로부터 시작하여 마이클 포드 로나 (1998년도의 초판에서는 포함되었지만 2009년의 2판에서는 제외된) 도널드 프레지오시의 최근 저서와 같이 미술사의 역사와 방법론에 관한 그간의 저술들은 곰브릭을 빠뜨리지 않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사의 외부 영역에서 지각에 관한 연구들이나 전반적인 이미지 연구에 강력한 영향을 주면서 곰브릭은 미술사의 영역뿐만 아니라 최근의 문화사와 문화비평에 관한 연구들과

Vol. 1, No. 2, Winter, 1971, p. 48. 이 인터뷰는 1971년 4월 16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곰브릭이 바로 며칠 전에 코넬 대학에서 행했던 강연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대담에는 UCLA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헤이든 화이트, 코넬 대학의 철학과 교수인 앨런 우드, 코넬 대학 미술사학과 교수인 씨어도어 브라운, 그리고 Diacritics紙의 편집자인 데이빗 그로스포겔과 로버트 매튜가 패널로 함께 참여했다.

44) 실제로 곰브릭의 주요 논문이나 강연 원고를 포함한 출판물 중에는 미술사나 예술심 리학 등의 예술론뿐만 아니라, 역사 일반과 문학, 정신분석과 심리학, 자연과학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그가 저술한 정신분석과 예술 심리학에 관한 글들은 자연과학 분야의 학회지 등에 게재되어 있으며, 모차르트의 오 페라 <코지 판 투테>에 관한 글은 1991년에 이태리의 마기아 무지칼레에서 출판되었 고, 슈베르트에 관한 강연은 이태리 피렌체의 무지쿠스 콘센투스에 의해 비공식적으 로 출간되었다. 또한 곰브릭의 첫 출판물은 비인대학 시절이던 1930년 ‘중국적인 한 편의 시’였으며(E. H. Gombrich, “Ein chinesisches Gedicht - und was ihm bei seiner Übertragung ins Deutsche alles passieren könnte”, Literarische Monatshefte, 5, pp. 12-13),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에서는 괴테를 주제로 삼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가 1935년에 26세의 나이로 6주 만에 저술하여 출판했던 어린이를 위한 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세계사(Weltgeschichte von der Urzeit bis zur Gegenwart - Wissenschaft für Kinder)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곧바로 3개 국어로 번역되고, 출판 50주년을 기념하여 1985년에 2판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2판을 번역하여 국내에 도 1996년에 곰브리치 세계사라는 두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는데, 한 편의 저서가 50년 동안이나 끊임없이 팔리고, 2판이 50년이나 지난 뒤에 다시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성공으로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 저술한 책이 바로 서양 미술사(Story of Art)(1950)인데, 그의 미술사 연구 이면에는 이러한 역사 인식과 다 방면의 깊은 관심들이 자리 잡고 있다. Gombrich & Eribon, op. cit., pp. 38-3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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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연관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역사 인식은 헤겔과 반헤겔적 전 통 사이에 놓여 있으며, 시각문화를 지역과 민족 등의 제한된 집단적 영역을 벗 어나 다양한 문화사 연구로 발전시킨 데에는 곰브릭이 평생을 걸쳐 유지해온 다 방면의 관심과 연구들이 기초하고 있다. 레슬리 컨리프에 따르면, 대학 시절에 스 승이었던 슐로서(Julius Schlosser)는 곰브릭에게 미술이 한 시대의 표현이라는 점 에 대해 회의하도록 영향을 주었고, 불러(Karl Buhler)의 심리학과 언어학 강의들 은 기호 체계들이 사실적인 이미지에 충실함으로써 재현의 범위들을 갖고 있다는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해주었다고 한다.45) 이와 더불어 곰브릭이 영국에서 알게 되어 교류를 시작한 포퍼의 철학 개념들이 곰브릭의 이후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고, 2차대전 당시에 BBC를 위해 독일 방송을 모니터링했던 경험은 지각과 소통의 심리학과 관련된 문제의식을 더욱 자극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 다.46)

프랑스의 사진가인 까르띠에-브레송의 ‘방정식: 지식+눈; 해답은 곰브릭’이라 는 문구가 곰브릭의 서양미술사 표지에 실려 있다.47) 곰브릭은 “미술(Art)이라 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만이 있을 뿐이다”이라는 표현으로

서양미술사의 머리말을 열고 있다.48) 그는 미술(art)이란 용어가 우리가 만들어 45) Leslie Cunliffe, “Gombrich on Art: A Social-Constructivist Interpretation of His

Work and Its Relevance to Education”, in; Journal of Aesthetic Education, Vol. 32, No. 4, Winter, 1998, p. 62.

46) ibid.

47) Ernst H. Gombrich, The Story of Art, 15th ed., London; Phaidon, 1995.

48) E. H. Gombrich, The Story of Art. 한글 번역: 백승길 & 이종숭 역, 서양미술사, 1994, 예경, 3쪽. 이에 반해 단토는 서양미술사에 나타난 곰브릭의 언급처럼 미술가 들만 존재하고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미술가들의 역사가 설명되어야 할 필요의 가능성 역시 명백하게 사라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곰브릭이 표현주의와 관련하여 앙드레 말로에 대해 “예술은 자연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예술에서 태어난다”라고 했던 언급이 재현적 예술에 대한 특별 한 적용이 없을 때에만 일반적인 사실이라고 설명하면서, 예술가들은 환영적인 재현 에 관심을 가졌던 여부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선배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이런 점에 있어서 모든 미술사는 역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Arthur C. Danto, “E. H.

Gombrich”, in; Grand Street, Vol. 2, No. 2, Winter, 1983, pp. 122-124, p. 130 참조).

그러나 곰브릭은 “내 관심들은 재현적이거나 비재현적인 것 중 어느 한 쪽에만 제한 을 두고 있지 않으며, 그래서 내 전문분야와 더불어 모든 시대와 문화들을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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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 범주이고, 또 미술이라는 말에는 서로 다른 의미들이 결부되어 왔다고 설명하 고 있다. 이것은 곰브릭이 미술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기 이전에 ‘미술’이란 무 엇인가 하는 미학과 예술론의 개념 정립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 는데, 그는 이 표현을 자신의 스승인 슐로서에게서 빌렸다고 회고하고 있다. 곰브 릭에 따르면 크로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슐로서는 ‘미술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미술가들만이 있을 뿐이라고 했던 심리학자 립스(Theodor Lipps)와 논쟁했던 한 평론가에 관해’ 언급하면서, “각각의 미술 작품이란 어떤 점에서 우발적인 창작이 며 하나의 ‘섬’과 같이 독립적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독특한 역사관을 피력했 다고 한다.49) 이것은 헤겔이 주장하는 ‘절대정신의 역동적인 발전’ 과정으로서의 역사관과 정면으로 대치되며, 당시 비인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막스 드보르작의 연구로 새로운 평가를 받으며 널리 회자된 매너리즘의 재평가에 대한 인식50)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역사 자체가 연속성을 갖고 있을지 모르나, 우 리에게 역사란 ‘수없이 구멍 뚫린 스위스 치즈’와 같아서 각각의 역사적 사건들과 요소들이 고립된 섬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역사에 대 한 우리의 지식에는 엄청나게 많은 공백들이 있으며, 이 공백들을 어떻게 메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절대로 완벽하게 만족스러울 정도로 대답을 얻을 수 없다고 본다.51) 이런 이유로 미술의 역사에 관한 글들은 ‘문예적 미사여구’를 전적으로

만 한다”고 데이빗 케리어에게 보낸 답신 서한의 끝을 맺고 있다(E. H. Gombrich,

“Comment on ‘Theoretical Perspectives on Arts, Sciences and Technoloy’”, in David Carrier's “Reply to Sir Ernst Gombrich”, in; Leonardo, Vol. 18, No. 2, 1985, p. 126 참조). 곰브릭은 또한 만일 추상미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예술과 환 영을 저술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 단 한 순간도 부정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에 대한 질문들은 현대의 쟁점들로부터의 촉발이 아주 빈 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현대미술이나 현대의 쟁점들로부터 암묵적으로나마 영향을 받지 않은 미술사 연구와 저술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Ernst Gombrich, Hayden White & Others(1971), p. 50 참조.

49) Gombrich & Eribon(1997), pp. 33-34.

50) ibid., pp. 73-74.

51) Ernst H Gombrich & Peter Burke, “Ernst Gombrich discusses the concept of cultural history with Peter Burke”, in; The Listener, 27th December, Vol. 90, 1973, p.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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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하고 구체적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과학적이고 정확한 기술을 요구한다는 그 의 강조는, 헤겔의 예술철학과 역사주의의 관점을 극복하고 예술을 역사적, 심리 적, 사회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미술사라는 인문 분야의 학적 토대를 이루기 위해 집중했던 평생의 연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곰브릭은 자신의 학문을 미술사라 는 단일한 명칭으로 부르지 않고 문화사나 예술학이라고 종종 사용했는데, 이것 은 그가 역사에 깊은 관심과 식견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사가 가장 일 반적으로 빠질 수 있는 위험성’52)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주의를 배제하며, 미술사 분야에서는 순수예술과 장식예술뿐만 아니라 각 부족의 예술들을 망라하고 이들 을 문화사 연구를 통해 시각예술의 미술사적인 일반적 방법을 넘어가는 것이다.

그 예로 곰브릭의 질서의 감각(Sense of Order)(1979)은 장식미술에 대해 심리 학적 연구를 시도하는데, 곰브릭 스스로가 ‘다성음악적(polyphonic)’인 저작이라고 부르는 이 책에서 모든 문화적 맥락에서 발견되는 시각예술의 패턴과 장식, 그리 고 특징들 배후의 심리적 사회적 전개에 대한 커다란 문제를 다룬다. 그는 패턴 과 장식의 지각과 창출에 관련된 심리학적 전개를 설명하기 위해 정보이론으로부 터 그 개념을 결합시킨다.53)

곰브릭은 이전의 많은 문화학자들이 지녔던 헤겔주의와 전체주의에 회의적 인 이유가 그들의 묘사 방식이 그들 자신의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곰브릭은 부르크하르트와 호이징가를 다룬 문화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In Search of Cultural History) (1969)라는 논문에서 문화사 역시 헤겔적인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고 보고 있다.54) 그에 의하면 부르크하르트나 호이징가가 특정한 사회나 시대로부터 그려낸 모습들이 과학적 수량의 분석에 의거하지 않고 직관을 기초로 했기 때문에 상상력을 기반으로 작품을 생산한 예술가들과 다름없다는 것 이다.55) 그러면서 헤겔의 발전론적이고 직선적이며 보편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역

52) Elkins(2009), p. 305.

53) Cunliffe, op. cit., p. 71.

54) Gombrich(1979), p. 48. 곰브릭은 문화사가 “하나의 시대나 민족은 스스로를 예술과 종교 및 법률 등의 안에서 표현하거나 대상화했다”는 헤겔의 개념 위에서 형성되었는 데, 이 개념의 토대들은 이제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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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을 부정하며 르네상스를 새롭게 바라봤던 첫 번째 인물은 바르부르크라고 주 장한다.56) 그는 바르부르크가 빈켈만과 헤겔 이래로 미술사의 이론이 중점을 두 었던 ‘예술에 대한 양식적 접근’을 보류하고 미술사를 문화적 징후들 속에서 시대 정신의 표명들로 간주하기 보다는 지속적인 ‘선택과 갈등’의 무대로 간주했다고 받아들인다.57) 이런 이유를 근거로 해서 곰브릭은 자신의 스승인 슐로서의 업적 과 바르부르크를 본질적인 지적(知的) 태도의 예로 제시하는 것이다.58) 곰브릭에 따르자면 바르부르크는, “미술의 역사를 인간 삶을 규정하는 정신적, 사회적인 힘 들의 복잡한 대결상이 총체적으로, 그것도 특정한 도식에 의한 일방적인 해석이 나 체계화가 불가능하게끔 그대로 드러나는 역동적이고 긴장에 가득찬 과정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59) 즉 바르부르크는 ‘미술사가 어느 정도로 해석하는 (eine

‘einige’ Interpretation der Kunstgeschichte) 것을 거부하고, 하나의 ‘시대’를 이루 어내는 복합적인 힘의 장들을 이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60) 그러나 곰브릭은 바 르부르크 역시 ‘사회적 기억의 이론을 ‘민족적 기억’의 개념과 연관시켜서 민족주 의와 결부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확실한 영향 관계를 알 수 는 없지만 바르부르크가 융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추측한다.61) 또한 바르 부르크가 ‘원시적인 비이성적 상태에서 이성의 승리에 이르는 오래고 더딘 역정’

으로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은 진화론적 해석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 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예가 자신의 서재를 ‘마술에서 이성으로의 진보’를 예 시하는 방식으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꼽는다.62)

곰브릭은 미술이나 문화의 연구에 있어서 그 어떤 문화도 전체 안에서 온전 히 파악되거나 이러한 문화의 그 어떤 요소도 독립적으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55) Gombrich & Burke, op. cit., p. 882.

56) Gombrich, “Art and Scholarship” Meditations, 1963, p. 115.

57) Gombrich(1986), pp. 313-314. 재인용: Summers, op. cit., p. 140.

58) Gombrich(1985), pp. 35-37.

59) Ernst H. Gombrich, Aby Warburg: An Intellectual Biograph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p. 313.

60) 박정기, 아비 바르부르크 , 미술사논단 vol. 7(1998), 한국미술연구소, 283쪽.

61) Gombrich(1986), pp. 240-242.

62) Gombrich & Eribon, op. cit., p.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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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예술, 문학, 종교 사이에 어떤 상호관계들을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는 양식의 불변적 안정성이나 변화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 샤피로의 의견에 동의하면서,63) 재현적 양식에 기여하는 것은 초 기 도식의 특징들, 형식적 특징들로 은유적으로 번역된 기존 사회의 가치들, 그리 고 사회적 압력 등 다양한 요소들이라고 주장한다.64) 그러면서 ‘미래의 미술사가 지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기능의 문제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라고 주장함과 동시 에 ‘도구들의 역사가 과거의 생활 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문화사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있다.65) 각 시대마다 새롭게 발명되고 등장한 것들, 예를 들면 풍경화나 풍자화 같은 것들을 정신성의 변화를 보여주는 징후로 보기보다는, 기술적 진보로서 보고자 한다. 그는 여기에서 수정주의적인 계몽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인간의 기술적 수단들이 엄청나게 발전해왔 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다른 면에서는 여전히 야만적 상 태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66) 곰브릭의 궁극적 해결책은 생존과 발전에 대 한 문제들과 함께 ‘적합하지 않은 것들을 제거하는 잔인한 메커니즘(grausame Mechanismus)’을 연구함으로써 역사의 목적론적인 모델들을 대체하는 것이다.67) 엘킨스는 곰브릭의 이러한 전략이 예술과 환영의 경우에서처럼 과학적 토대로 부터 헤겔주의적 체계가 야기될 수도 있다고 보는데, 그는 곰브릭이 헤겔주의를 피하기 위해 포퍼의 ‘상황들의 논리’를 해결책으로 삼아 각 개인들과 사회 상황들 안의 완전한 합리성을 가정하고 그 개인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반응 을 발전시키는지를 물음으로써 필연적 진보라는 헤겔의 가설을 성공적으로 피하 63) Meyer Schapiro, “Style”, Anthropology Today, Kroeber(ed.), Chicago, 1953, p. 311.

Theory and Philosophy of Art: Style, Artist, and Society, George Braziller, 1994에 재수록, pp. 51-102: Ernst H. Gombrich, “Art and Scholarship”, in; Art Journal, Vol.

17, No. 4, Summer, 1958, p. 355에서 재인용.

64) Ernst H. Gombrich, “Visual Metaphors of Value in Art”, Meditations on Hobby Horse and Other Essays on the Theory of Art, Oxford; Phaidon, 1978, pp. 12-13, p. 29.

65) Gombrich & Burke, op. cit., p. 880.

66) Gombrich & Eribon, op. cit., p. 49.

67) Gombrich(1977), p. 214.

(20)

고 ‘견해의 양극성’ 등과 같은 주제들에 집중해왔다고 설명하고 있다.68)

미술사의 기원을 헤겔로부터 찾는 곰브릭의 관점이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심도 있는 이론과 방법론 위에서 그 체계들을 돌이켜보게 한다는 점이다. 문화사의 연구에 있어서(In Search of Cultural History) 라는 곰 브릭의 논문에서 핵심을 이루는 논점은, 미술사학이 원래 수행하고자 했던 체계 의 무게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하는 헤겔의 토대 위에서 구축되었다는 점을 다루 는 것이었다.69) 문화사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동안 무너져온 헤겔의 토대 위에서 구축되어왔다”는 곰브릭의 관점이 옳다면, 헤겔 철학의 마지막 잔여 들을 제거하고 더욱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틀을 구축함으로써만 바르게 성립할 수 있는 이 분야의 중심에 이론적 결핍이 남게 된다.70) 이를 위한 모델은 포퍼가 과학적 발견의 논리(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에서 시도한 해석에서 발견 하는데, 이 글에서는 경험적 증거를 통한 변조가 과학적 지식의 유효성을 수립하 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다. 곰브릭은 이와 동시에 넓은 역사적 시대들보다는 개별 예술가들에 집중하는 미시적 연구에 대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곰브릭은 문화사 가들이 헤겔의 전체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구조들과 패턴들의 연구보다는 개 별적이고 특정한 것들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71) 철학자 인 데이빗 케리어는 곰브릭의 미술사 이론을 전개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은 철학이 아닌 심리학과 생물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곰브릭이 자주 인용하는 포 퍼의 이론 중에 ‘훌륭한 자연과학의 이론은 변조가 가능한 것’이라는데, 그는 예술 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올바르게 보이지 않으면’ 재현도 실패한다고 보았다. 즉 과 학과 재현적 미술의 역사는 가장 적합한 이론들과 그림들의 생존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케리어는 과학적 진실이 우리의 믿음과는 별개지만 재현은 우리의 믿음 과 관련되며, 자연과학이 판타지를 제외하는 반면 모든 재현적 미술에서는 판타 지가 출발점이 된다고 분석한다.72) 곰브릭의 예술과 환영은 이런 관점에서 재 68) Elkins(1988), p. 366.

69) Gombrich(1979), pp. 24-59.

70) ibid., p. 28.

71) ibid.,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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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적 미술에 관한 논의가 ‘창조와 조응(making and matching)’의 역사와 동일하 다고 보며, 미술의 역사란 재현되는 이미지가 실제의 대상과 부합될 때까지 창조 의 도식이 수정되며 각 양식을 형성해온 역사라고 보는 것이다. 칼 포퍼의 저작 들에서 연구의 적절한 모델을 찾을 수 있는 올바른 ‘과학적’ 지식 혹은 주장에 대 한 곰브릭의 개념이 극소수의 현대 미술사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을지라도, 경험적 증거에 의한 수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예술이론의 신비화에 대한 지지자 로서의 헤겔에 대한 곰브릭의 비판은 그동안 살펴본 것처럼 여전히 폭넓은 인정 을 받고 있다.

Ⅴ. 결론

독일 철학자 헤겔의 개념들이 근대 미술사의 학문적 성립에 핵심적 역할을 했고, 미술의 역사적 발전 속에서 의미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들을 파악하려고 했 던 그의 시도는 알로이스 리글, 하인리히 뵐플린, 막스 드보르작과 같은 근대의 미술사가들의 연구에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인정받아왔다. 엘킨스 는 직접적인 헤겔주의적 개념인 무가치적 역사의 개념으로서 리글에 의해 처음 발전된 개념, 곰브릭의 헤겔상 강연에도 포함된 통시적인 문화적 연관성들, 그리 고 공시적인 문화적 연관성들에 대한 이론들 속에서 헤겔주의가 생존해있다고 분 석한다.73) 그러나 헤겔의 ‘세계정신’과 같은 예술이론은 형이상학에 기반을 두고 있어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관점 역시 그만큼 동일하게 받아들 여지고 있다.74) 이러한 관점에서, 어떠한 인식이 미술사학의 ‘설립의 아버지’ 중 한 사람으로서의 헤겔과 부합되든지 간에, 그의 저작은 곰브릭이 미술사의 아버 지 에서 역설했듯이 현재의 관심들보다는 미술사의 역사에 속한다. 곰브릭은 ‘시

72) Carrier(1983), p. 91.

73) Elkins(1988), p. 371.

74) Gaiger, op. cit., p.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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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신’, ‘계급투쟁’, ‘문화적 진화’ 등과 같이 ‘거대 담론’들을 역사 변화의 동인이 라고 보는 관점을 강하게 반대하는데, 김난영은 미술사가로서의 곰브릭이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세계의 문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도식적 양식들과 서구 에서 사실적 재현의 전통이 갖는 힘의 영향들에 주의를 기울였고, 그 두 가지 모 두를 설명하기 위한 일반론을 발전시킨 것이었다고 평가한다.75) 엘킨스는 우리가 곰브릭을 따른다면 미술사가들이 헤겔주의의 지배에 대한 경험적 방어를 순조롭 게 제공할 수 있고, 이러한 사실은 실증주의적 자료들의 컬렉션이 미술사가들이 가질 수 있는 가정들의 어떤 변화도 점검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 다.76)

그러나 미술사가의 임무가 예술작품들의 경험적 다양성을 묘사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각기 상이한 역사적 시대들마다 예술가들이 세계를 재현해 온 근저의 시각적 개념적 도식을 분석하는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77) 브리 짓 힐머는 ‘헤겔주의’가 철학체계 내에 깊숙하게 뿌리박힌 역사주의에 어떤 기여 를 했다고 여겨지는 일반적 관점이 헤겔 철학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 다.78) 또한 엘킨스는 만약 곰브릭의 주장이 옳다면 ‘헤겔주의’적인 이론들은 경험 주의에 굴복해야만 할 것인데, 일반적인 ‘헤겔주의’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그 수용 과 계승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79) 그러나 곰브릭은 인간 존재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에 전체성의 포착은 불가능하며, 헤겔에 대한 자신의 비판 역시 그에 대한 불완전한 포착이자 체계를 부여한 비판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80) 데이빗 케리어는 우리들 중 누가 곰브릭의 저작을 올바르게 칭송하

75) Nanyoung Kim, “Ernst H. Gombrich, Pictorial Representation, and Some Issues in Art Education”, in; Journal of Aesthetic Education, Vol. 38, No. 4, Winter, 2004, p.

36.

76) James Elkins(1988), p. 377.

77) Jason Gaiger(2011), p. 181.

78) Brigitte Hilmer, “Being Hegelian after Danto”, in; History and Theory, Vol. 37, No.

4, Theme Issue 37: Danto and His Critics: Art History, Historiography and After the End of Art, December, 1998, p. 72.

79) James Elkins(1988), p. 359.

80) Ernst H. Gombrich, Hayden White & Others(1971), p. 4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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